RUST RAW novel - Chapter (662)
러스트 [RUST]-662
제국- 잠들지 않는다는 도시 뉴욕은 정말 잠들 수 없었다.
“런던으로 추정된 위치에서 진도 6.8 이상의 지진 발생. 인공지진입니다.”
인공지진이라는 말은 핵이 터져서 생긴 지진이라는 의미였다. 4,200m 상공에서 터진 차르 봄바가 만든 지진이 5.2 정도였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6.8 이상의 지진이라면 차르 봄바 이상의 위력을 가진 핵폭발이 일어났다는 의미였다.
“진도 6.8 이상이라고? 영국놈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차르 봄바 급(級) 수소 폭탄을 4~5방이나 터트렸다고? 영국 놈들이 미쳤나? 아니 애초에 그 정도 수소 폭탄을 쟁여 놨다는 게 문제였다.
“신형 수소 폭탄의 실험 같습니다.”
“계절을 노린 건가?”
혹한의 겨울에는 연락이 끊겼다. 항구는 전부 얼어붙었고 거대한 유빙 때문에 항행 자체가 불가능했다.
인공위성과 레이더라도 제대로 돌아갔으면 모를까,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민감한 전자기기일수록 상태가 좋지 않았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미친 짓을 해놓고는 미리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고 오리발 내밀기 좋은 계절이라는 말.
“그건 아닐 겁니다. 런던 지하든 런던 근처든 중요한 곳에서 대놓고 수소 폭탄 실험을 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나라의 수도에서 핵실험을 하지는 않았을 터. 그럼 더 큰 문제였다. 영국 런던이 핵 공격을 받았다는 뜻일 테니까.
“런던에 수소 폭탄을 터뜨린 놈들이 있다는 소린가?”
몇 시간을 우왕좌왕하는 와중에 급보가 이어졌다.
“프랑스 파리. 파리로 추정되는 위치에서 진도 6.8 이상의 지진이 터졌습니다. 인공지진입니다.”
“······.”
“······.”
재난경보센터가 침묵에 빠졌다. 런던에 이어 파리까지. 이건 분명 핵 공격이었다. 그것도 차르 봄바 급 수소 폭탄을 여럿 때려 박은 핵 공격이거나, 차르 봄바 이상의 초대형 수소 폭탄을 쓴 핵 공격.
‧
‧
‧
겨울이면 변이 괴수들도 잠잠한 계절이었다. 먹이를 찾겠다고 설치는 놈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어지간한 놈들은 전부 겨울잠 비슷한 것을 자며 버티기 마련이었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변이 괴수를 퇴치하기 좋은 계절이 겨울이었다. 제국은 방한복과 엑소슈트 그리고 대괴수용 특수탄이라는 첨단 장비로 무장하고 겨울잠에 빠져 있는 변이 괴수들을 사냥했다.
사냥에 실패해도 결국 이기는 건 인류였다, 겨울잠에서 깨 억지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 괴수는 칼로리를 보충해야 했고, 혹한의 겨울 에너지를 보충할 방법이 없는 괴수는 서서히 약해지고 죽어갔기 때문이었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리라고 생각했던 혹한의 겨울이. 어지간한 화기로는 잡을 수 없게 된 변이 괴수를 죽일 수 있는 덫으로 변한 것.
뉴욕 외곽에 성벽을 쌓을 정도로 위험했던 방어가, 겨울을 기점으로 다시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이렇게 겨울을 이용해서 변이 괴수를 토벌하는 방법을 찾았으니, 다음 겨울에는 본격적으로 토벌에 나설 생각이었다.
뉴욕 지하에 똬리를 틀고 있는 시궁쥐 왕국이 문제였지만, 이것도 새로 건설 중인 신도시로 옮기고 본격적으로 토벌하면 그만이었다.
북미자유무역 협정 문제로 신성 왕국과의 사이가 소원해졌다고 해도, 신성 왕국은 파견한 들쥐를 뒤로 빼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제국도 신성 왕국과의 교역을 중지하지 않았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신성 왕국의 기술력은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었다.
초대형 비행선만 해도 그랬다. 전장 1,000m가 넘는 수송선이 등장한 것부터 알 수 있었다. 200톤 내외의 수송량만 해도 물리적으로 가능하니 마니 하는 판국인데, 훌쩍 넘어선 압도적 수송량.
변이 새떼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있는 까마귀 호위대까지 생각한다면, 사실상 신성 왕국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된 무역은 어렵다고 봐야 했다.
대형 비행선을 넘겨준 것은 제국. 그러니까 예전의 미합중국이었는데, 고작 1년 만에 그보다 몇 배는 더 어려운 초고난도 기술을 확보한 신성 왕국이었다.
“엑소슈트와 혹한을 극복한 비행선만 봐도 특이점이 넘었으리라 생각했지만, 저렇게 초대형 비행선이라니. 기술적 특이점을 넘어선 것이 분명합니다.”
몇 달 전에 언급된 주제였지만, 지금처럼 눈앞에 보이는 증거가 생생하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인공지능을 통한 기술 개발과 연구는 놀랍도록 무서웠다. 제국도 있는 자원 없는 자원 전부 끌어다가 인공지능을 개발. 연구에 투입하고 있었으니까.
“신형 클론은 어떻게 됐지?”
“연산력을 총동원해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연산력 대부분 신형 클론의 설계와 생산에 투입하고 있는지라, 다른 분야는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겨울이 지나기 전에 신형 클론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도 기술 특이점을 향해 가야 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신성 왕국을 앞지르지는 못하더라도, 턱없이 밀릴 지경이 되는 건 안 됐다. 현재 신형 클론은 그간 U+ 프로그램과 블러디 메리 프로그램이 가진 단점을 보완해 진행 중이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유 이사 클론과 블라디나루 클론의 유전자를 합성해 만든 오리지널 클론을 연구하고 있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반발이 생겨 배아가 사멸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더 강력한 특성을 보유한 유전자를···.”
“블라디마루 칼린의 유전자를 노리자는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겠지? 전에도 말했지만 각하(却下)다.”
연구진들은 블라디마루 칼린의 유전자를 더하면 최강의 인간형 병기가 나올 것이라며 기회가 될 때마다 요청했지만, 덴 브라운이 칼같이 잘랐다.
블라디마루 칼린의 유전자를 노린다?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뒤가 없을 뿐.
“클론 기술에서 앞서고 있는 우리가 신성 왕국 국왕의 유전자를 노리는 순간. 전면전이 터진다. 클론을 양산할 때까지 신성 왕국의 공격을 막을 자신이 있나?”
“핵 억지력으로 전면전을 누르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전면전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양쪽 모두 공멸이니까요.”
“아니. 그것도 작년까지다. 신성 왕국 놈들은 이미 기술 특이점을 확보했어. 누구와 싸우건 미사일 공격은 막아낼 수 있다고 가정해야 해. 그래도 전면전을 각오하고 블라디마루 칼린의 유전자를 확보해야겠나?”
“······.”
“······.”
고작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신성 왕국은 이지스함을 확보해 방공망을 구축했고. 기술 특이점을 이용해 한층 더 강력한 방어체계를 만들었다.
편집증적으로 안보와 안전에 집착하는 신성 왕국이었다. 그런 신성 왕국과 전쟁을 한다면,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다. 이쪽의 미사일은 쏘는 족족 막히는데 저쪽에서 쏘는 미사일은 이쪽에 틀어박힐 테니.
“전쟁할 필요도 없지, 뉴욕 지하를 지키고 있는 들쥐만 퇴각시켜도 우리는 자멸할 테니까.”
“······.”
“······.”
최강의 클론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양이 쌓이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을 누가 벌어줄까?
“엄한 생각하지 말고, 지금 추진하고 있는 연구나 확실히 하도록.”
“알겠습니다.”
“······.”
[총통 각하. 재난경보센터에서 긴급 보고가 올라왔습니다.]“무슨 일인가?”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가 수소 폭탄 공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는 보고입니다.]“관계 자료 전부 올리도록.”
즉시 비상대책회의가 시작됐다.
“확실한 정보입니까? 수소 폭탄이라니요.”
“런던과 파리입니다. 그곳을 공격하다니 대체 누가 그랬다는 겁니까?”
덴 브라운 총통은 직감할 수 있었다.
범인은 신성 왕국. 달리 생각할 곳이 없었다. 우선은 투발 수단.
‘런던과 파리를 지워버릴 정도의 위력이라고? 최소한 탄두 중량이 20톤이 넘어야 해.’
차르 봄바의 중량도 27톤이었다. 단순하게 차르 봄바 급 수소 폭탄을 미사일로 쏘아 올릴 수 있는 나라는 현재 없었다.
제국에는 그 정도 미사일을 발사할 곳이 없었으며, 남부 연맹은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설비와 시설이 있었지만, 2발이나. 20톤 중량의 수소 폭탄을 런던과 프랑스에 때려 넣을 이유가 없었다.
러시아가 갑자기 프랑스와 영국에? 중국? 7개로 쪼개진 뒤 서로 죽고 죽이는 판국에 갑자기 런던과 파리에?
중국이 쐈다고 하는 걸 믿을 수 없는 이유는 또 있었다. 이미 미합중국과 한 판 붙어서 대륙간탄도 미사일을 소진했고, 관계 시설이 전부 파괴된 상황이었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7개로 쪼개져 서로 싸우는 와중에 대륙간탄도 미사일을 만들고 거기에 차르 봄바 급 수소 폭탄을 실어 프랑스와 영국에 꽂는다? 대체 왜? 그러니 중국도 아니었다.
남는 것은 신성 왕국뿐. 초대형 비행선이라면 폭격의 방식으로 수소 폭탄을 쓸 수 있었다. 런던과 파리를 날려버린 이유?
‘신성 왕국은 왕정이니까. 이유가 필요 없지.’
블라디마루 칼린이 결정하면 그걸로 끝인 정치 시스템. 왕이 전쟁을 선언하면 바로 전쟁 시작인 나라.
‘미치겠군.’
‘무엇 때문에 런던과 파리에 수소 폭탄을 쓴 거지?’
이유가 뭘까? 아무 이유 없이 그러지는 않았을 터.
‘좋지 않아. 위험해.’
문제는 덴 브라운 자신이 소거법으로 범인을 신성 왕국으로 특정했듯, 남부 연맹도 신성 왕국을 특정할 것이 분명하다는 점.
그리고 시간이 걸리겠지만,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 각국도 신성 왕국이 수소 폭탄을 썼다는 걸 유추하리라는 것이었다.
[남부 연맹 요원이 특사의 자격으로 회담을 요청하고 있습니다.]“기다리라고 해.”
“남부에서? 이 혹한을 뚫고 요원이 왔다고?”
“긴급 제안이라면 수소 폭탄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요. 그런데 이렇게 빨리 반응했다는 건.”
“남부 연맹에 통신 수단이 있는 게 확실합니다.”
제국이 혹한에 이동할 수 있는 비행선을 건조했듯, 남부 연맹은 장거리 통신 수단을 확보한 게 분명했다.
덴 브라운 총통은 일단 상황을 정리하기로 했다.
“런던과 파리를 날려버린 나라는 신성 왕국일 가능성이 크다. 신성 왕국이라고 가정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의견을 내보도록.”
“남부 연맹의 요원이 왔다는 건 아마도 그 문제 때문일 겁니다.”
그렇겠지, 사이가 조금 소원해졌다고 하더라도 제국은 신성 왕국의 우방에 가까운 나라니까.
“손절해야 합니다. 우리 제국을 우방으로 생각했다면 핵 공격을 감행할 정도의 중요한 사안에 대해 사전에 의견을 교환했을 겁니다.”
“동의합니다. 아무리 국제 질서가 무너졌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사전 조치 없이 핵 공격을 했다는 건 신용할 수 없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왕국 아닙니까. 왕의 판단에 따라 생사를 손바닥 뒤집듯 뒤집을 수 있는 나라였던 겁니다.”
“우리의 클론 기술에 대해 간섭한 것도 그렇고, 북미자유무역 협정에서 했던 행동을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우리와 상호방위동맹을 맺는 걸 거절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여러 방면에서 상호호혜의 관계를 맺었다고 하지만, 제국과 신성 왕국 사이의 공식적인 협약은 상호불가침조약 하나뿐입니다.”
신성 왕국과 제국의 맺은 조약은 그것 하나였다. 남부 연맹과도 맺은 상호불가침조약.
“현실적으로 봅시다. 신성 왕국이 프랑스와 영국에 수소 폭탄을 쓴 것이 사실이라면 전쟁은 필연적입니다. 혼란한 시국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된다면 프랑스와 영국은 전쟁을 선언할 테니까요.”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할 상황이 아니더라도 전쟁을 선택할 겁니다. 내부의 혼란을 잠재우려면 전쟁만큼 효과적인 게 없을 테니까요.”
“문제는 단순히 영국, 프랑스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EU가 참전할 테니까요.”
사실상 EU와 신성 왕국의 전쟁이 시작된다는 이야기였다.
“곤란하군.”
“선전포고도 없이 핵 공격을 한 것이니, 전쟁을 피할 수 없습니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지 않나?”
“신성 왕국에 대한 강력한 시찰을 요구할 겁니다.”
신성 왕국에서 시찰을 허락할 리 없었다.
“시찰 거부를 명분으로 EU 회원국들이 핵폭탄을 양산할 겁니다. 당장 영국과 프랑스가 아무런 전조 없이 핵을 맞았으니까요.”
“EU뿐만 아니라, 정부가 유지되는 국가 전부 핵을 생산할 겁니다.”
위태롭게 지켜지고 있던 억지력이 풀려 버렸다. 신성 왕국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신생 국가가 북아메리카에 떡 하니 등장하더니, 건국 2년 만에 영국과 프랑스의 수도를 핵으로 날려버렸는데 핵 억지력? 핵확산 방지조약? 그딴 게 통할 리 없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거냐. 블라디마루 칼린.’
덴 브라운 총통은 신성 왕국으로 특사를 파견했다.
======
======
[우리 왕국과 전쟁을 선택하겠군요.] [연산 결과 전쟁이 일어날 확률이 98% 이상입니다.] [우리 왕국과 전쟁을 선포해 내부 정리에 들어가겠다는 판단이겠지요.] [거기에 더해 우리 왕국이 가진 기술과 자원 전부를 확보하겠다는 것입니다.]신성 왕국의 전부를 빼앗을 생각이리라.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인공지능 디아나와 사만다는 인간들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인간은 미개하군요.] [미개하다는 건 인간 차별적인 용어입니다. 부족하다, 모자라다, 안타깝다. 정도로 순화해서 사용하길 권고합니다.]두 인공지능은 주거니 받거니 상황을 분석한 자료를 마루에 전달했다.
“그러니까 모르는 일이라고 하면 시찰을 요구할 거라고?”
[네. 그렇습니다.]“시찰을 거부하면 그걸 명분으로 전쟁 준비에 돌입할 테고?”
[네. 그렇습니다.]“모른다고 발을 뺐는데?”
[연산 결과 전쟁 준비에 돌입할 확률이 98% 이상입니다.]마루는 조금 짜증이 났다. 의태 괴물과 슬러그 괴물이 전 세계에 퍼지는 것을 막았더니 그 대가가 전쟁이라니.
“······.”
[제국의 특사가 접견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EU뿐 아니라, 제국과 남부 연맹, 멕시코 연합까지 전부 신성 왕국에 등을 돌릴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인공지능 디아나의 말에 마루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이거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