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665)
러스트 [RUST]-665
마치 마루의 신경을 모니터 쪽으로 끌려는 듯. 기순의 보낸 문자가 빠르게 올라왔다.
[우리] [진정하자.] [일단 심호흡부터.] [후후하- 후후하-] [진정됐냐? 일단 잠깐만 멈춰봐.]‘이 새끼.’
김이 조금 빠진 마루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상황을 문자로 전송받고 있으면서도 마치 현장에 있는 것처럼 대응이 빠른 기순이었다. 1초만 늦었어도 마루가 생체 통신기를 조각내버리고 전쟁을 선포했을 테니. 그걸 막는 데 성공한 기순의 순발력은 실로 대단한 수준이었다.
[진정했지? 칼 내려놨지?]마루의 분위기가 서늘해진 걸 알아챘는지, 기순이 빨리 본론으로 넘어갔다.
[남부 연맹이 뻥카를 쳤을 수도 있지, 사실일 경우를 생각해봐야 해. 까놓고 사실일 가능성이 크고.]“······.”
[냉정하게 따져보자고. 덴 아재가 우리랑 척 질 각오를 했다는 것부터 이상해. 당장 우리 들쥐 빠지면 뉴욕이 날아갈 수도 있지 않나? 그런데도 대표로 나와서 전쟁 가능성 언급한 건 뉴욕이 안전할 수 있다는 보장이 있으니까 총대를 멘 거잖아?]과연. 기순은 기순이었다. 지금 상황은 남부 연맹의 기술을 제국이 검증했다는 뜻. 남부 연맹과 제국이 손을 잡은 것도 그랬다.
사실 제국에서는 신성 왕국과 손을 잡고 나머지와 척을 지느냐? 아니면 남부 연맹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과 손을 잡고 신성 왕국과 척을 지느냐? 둘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 했다.
제국의 선택은 덴 브라운 총통 혼자서 바꿀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음을 볼 때,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지. 한 달 아니, 두 달만 시간 끌자.]시간이야말로 신성 왕국의 편이었다. 특이점에 도달한 연구 역량을 정신파 연구에 쏟아붓는다면 반드시 대비책을 찾아낼 수 있을 터. 남부 연맹의 생체 정신파 장치를 해킹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았다.
[아니. 지금 당장 공격해야 해.]마루의 단언에 기순이 ‘미친. 대체 뭐가 문제인데?’ 속으로 울분을 참곤 정성스럽게 문자를 날렸다.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하다니까. 왜 그러세요. 좀.]마루는 직감했다. 기순마저 시간이 신성 왕국의 편이라는 걸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들은 그걸 모를까?
특이점에 도달했다고 보이는 신성 왕국에 시간을 줄까? 지금 이렇게 대화하겠다며 생체 통신기를 보낸 것도 신성 왕국의 방어 태세를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한 위장은 아닐까?
[아니. 씹- 그게 왜 위장이야. 지금 우리를 공격하면 생체 통신기를 뜯어보라고 보냈다고? 그러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그러고도 남지.]생체 통신기에 무슨 짓을 해놨을지 누가 알겠는가? 소형 포유류만 흥분, 폭주시킨다고 했었는데 덩치 상관없이 포유류 전반을 자극할 수 있다면?
통신기 기능이 있는 전파 발생기였다면? 하다못해 독가스 탄이나 더티밤이 속에 숨겨져 있다면?
[그러니까 회담이 결렬되고 우리가 생체 통신기를 압류하길 노렸을지 모른다? 그러니까 바로 치자?] [그래.]단호한 마루의 반응에 기순이 조심스럽게 문자를 보냈다.
[그 혹시. 느낌이 왔냐?]주로 직접 싸웠을 때 불쑥불쑥 올라오는 감각인지라, 지금은 발동되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마루는 잠시 눈을 감고 집중했다.
느껴지는 게 없었다. 굳이 있다고 한다면 아까 올라왔던 짜증이 가시지 않았다는 것. 짜증도 부정적인 감정이긴 하니까.
[어.] [아니지? 느낌 안 온 거지?]마루의 뻔뻔함이 살짝 부족한 틈을 타 마루를 뜯어말리는 기순이었다.
[전쟁할 상황이면 해야지. 근데 우리가 유리할 때 해야 하는 게 전쟁 아니냐? 지금 당장 전쟁하는 게 우리한테 유리하냐?]나루즈는 유럽 대륙에서 피난민들 나르고 있었고, 몬트리올은 얼마 전 사교도 토벌에 업소 조직 날려버리면서 정리가 안 된 상황. 캐나다 북부 거점 요새는 겨울이 지나 봄이 되면 굶주린 변이 괴수들 막으려고 뺑뺑이 돌 예정.
신성 왕국은 전부터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서 좋게 말하면 내실을 다지는 중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간신히 유지 중이었다.
[무엇보다. 우리 국경 방위가 문제다.]이미 한 차례 인공지능 포탑과 GP(guard post)를 건설해 남쪽 국경 방위를 강화했었다. 하지만 디트로이트가 속한 미시간주 남부 국경을 지키는 건 팔 할이 들쥐였다.
그러니까 들쥐에게 정신파 공격이 가능하다면 남부 국경이 통째로 뚫린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디트로이트는 남쪽 국경과 너무 가까운 도시였다.
[···더 큰 문제는 육로를 막을 수 없다는 거야.]들쥐와 변절하지 않은 신성 쥐들 없이 긴 국경선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건 더티밤 같은 무기를 육로로 운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루의 감각이 반응했다. 찝찝한 느낌. 마루는 바로 디아나를 호출해 지금 기순이 말한 시나리오를 분석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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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셉 마이어는 생체 통신기로 마루를 관찰했다.
‘어리군.’
너무 어렸다. 동양인은 동안이라는 말이 있듯, 그냥 겉으로 보이는 것만 본다면 고등학교 졸업반인 자기 아들보다도 어려 보이는 얼굴.
전술카메라 영상을 비롯해 군 시절 영상을 봤을 때도 느꼈던 감정이었지만, 이렇게 보니 위화감이 들 정도였다.
‘저 나이 때는 1년이 다르고 2년이 다른 법인데···.’
이상했다. 나이를 먹지 않은 것 같은 마루의 모습에 죠셉 마이어의 눈꼬리가 가늘어졌다.
남부 연맹과 척을 지는 이유가 혹시 블라디마루 칼린이 신인류이기 때문은 아닐까? 예전에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자신이 신인류이기 때문에 자신보다 더 높은 단계의 신인류에게 지배당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남부 연맹을 부정하고 있다는 가설.
하지만 높은 단계의 실험체와 신인류가 블라디마루 칼린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현생 인간중심주의자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중심주의자라는 꼬리표가 붙은 것도 잠시, 까마귀와 늑대에게 권리와 의무를 부과한 것을 통해 인간중심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것도 모자라 인공지능에까지 권리를 줬다고 하는 소식에, 남부 연맹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그럼 신인류와 적대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 때문이냐는 것.
‘식인 행동은 인류사에 빈번하게 등장했습니다.’
‘혹시라도 신인류에게 가족을 잃은 것은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확보한 자료로 보면 전혀 접점이 없습니다.’
‘그러면 대체 왜 그러는 겁니까?’
이유를 안다면 협상할 수 있었다. 개개인의 문제라면 단순히 꼴 보기 싫어서 상종하지 않겠다는 게 가능해도. 그 개인이 대표가 된다면 다른 문제라고 생각했다.
일단 블라디마루 칼린 국왕과 협상장에 앉기만 하면, 개인적 감정을 사유로 협상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을 것. 이게 남부 연맹에서 내린 결론이었다.
그래서 남부 연맹은 제국에 생체 통신기를 제공하면서 협상장에 함께 들어갈 것을 요청했다. 제국은 남부 연맹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신성 왕국을 압박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회담이 시작되고 이야기의 진행은 제국과 남부 연맹이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블라디마루 칼린 국왕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외교 관행이나, 협상 문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간 신뢰를 쌓고 친하다고 여겼던 덴 브라운 총통과도 선을 그어버렸고. 그대로 회담이 쫑 날 판이 됐다.
죠셉 마이어는 이대로는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베스트는 제국과 미리 의견을 나눴던 것처럼 신성 왕국의 기술을 어느 정도 양도받는 것이었다.
남부 연맹과 제국 모두 원하는 기술은 크게 셋. 강인공지능, 양자컴퓨터, 핵융합발전. 셋 가운데 하나라도 받는 것을 조건으로 전쟁을 회피할 수 있다고 하려고 했다.
그런데 블라디마루 칼린 국왕의 반응이 너무 단호했다. 뜯길 바에야 전쟁하겠다고 박아버리니 이야기가 될 리가.
‘이쪽의 압력을 단순한 협박이라고 생각했나?’
그건 좋지 않았다. 죠셉 마이어는 그래서 끼어들었다.
“제국 지하에 있는 들쥐나 시궁쥐 모두, 남부 연맹의 정신파 장비를 이용한다면 쉽게 정리할 수 있게 됐다는 뜻입니다.”
[그래서?]죠셉 마이어는 마루의 살벌한 반응에 깜짝 놀랐다.
‘무슨 반응이···’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이었다.
동시에 생체 통신기의 센서가 출렁이며, 생체 통신기 모듈에 오류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삑삑삑삑삑삑-
삐에에에에에-
[뽀그르를르어ㅁㅁㅏㅁㅁ앙]팟-
디트로이트 회의실과 연결된 정신파 영상이 뚝 끊겼다.
“지금 끊긴 건가?”
정신파 통신이?
“통신기 두뇌 모듈이 패닉에 빠졌습니다.”
“······뭐?”
저쪽에 있는 모듈과 연결된 이쪽 모듈도 같이 오류가 떴다는 보고.
죠셉 마이어는 말문이 막혔다.
그게 가능한 건가?
생체 부품화한 두뇌 모듈이 공포에 빠졌다고?
‘설마···. 그런 건가?’
이제껏 이해하기 어려웠던 블라디마루 칼린의 위력이 가진 비밀이 이것인가?
마루의 살상력은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살상력이었다. 객관적으로 분석된 사실만 따진다면 블라디마루 칼린의 신체능력은 고작 하급 신인류 정도의 신체능력이었다.
비밀 실험실 몇 곳을 털어버린 범인이라고 밝혀진 뒤, 이지스함을 나포하고 쪼갠 범인이라는 말에 연구진들은 말 그대로 혼란에 빠졌다.
하급 신인류의 신체조건으로는 불가능한 짓이기 때문이었다. 건물 자르고 이지스함 찢은 건 이클립스라는 희대의 마검 때문이라고 하자. 그럼 그걸 지키고 있던 병사들은?
신인류 실험체들과 상위개체도 모자라 말석이나마 귀족까지 죽인 그 살상력은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블라디마루 칼린이 가진 비밀에 근접하게 됐다. 죠셉 마이어의 무표정한 입꼬리가 살짝 움직였다.
“강력한 정신파 능력이군.”
상위개체가 하위개체를 지배하는 능력. 귀족이 신인률 정신적으로 장악하는 능력. 그와 같은 능력이라면. 블라디마루 칼린이 이제까지 벌인 일을 설명할 수 있었다.
‘이제까지 우리와 대립각을 세웠던 이유가 동족혐오였나?’
‘신인류에 가까운 돌연변이? 변이 바이러스의 무한한 조합이 만들어낸 극히 희박한 확률의 신인류일지도.’
남부 연맹과 동류라고 가정하자, 지금까지 이해하기 힘들었던 신성 왕국의 행태가 전부 설명됐다.
편집증 환자처럼 이중삼중으로 친 보안도 이해할 수 있었다.
구원자니, 현인신이니 하는 존재가 사실은 그렇게 토벌하고 다닌 식인귀와 비슷한 존재였다는 걸 감추려면 보안이 철통 같아야지.
까마귀와 늑대 같은 동물과 무생물 프로그램 따위인 인공지능에 권리를 주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자신이 인간 이상의 존재인데, 권리 주는 게 무슨 문제?
쥐들을 지배할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 상위개체와 귀족들이 바퀴벌레를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그는 쥐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일 뿐. 본질은 같았다.
‘지배력도 마찬가지겠지. 아- 그랬나? 그런 거였나?’
HOLLY 교도 역시 신인류 특유의 지배력으로 생각하면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블라디마루 칼린은 우연과 우연이 겹쳐 만들어진 자연산(?) 귀족이었던 것.
죠셉 마이어는 안개가 낀 것처럼 뿌연 것들이 깨끗하게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정신파 발생기와 미인계로 엮으려고 했던 시도가 실패한 것도. 젊은 나이의 블라디마루 국왕에게 여자 관련 스캔들이 없었던 것도 전부 자연산(?) 귀족이라고 가정하는 순간 설명됐다.
‘욕구를 조절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테니.’
성욕과 식욕은 맞닿아 있는 욕구였다. 성욕을 채우려다 실수하면 꽁꽁 감췄던 정체가 드러날 위험이 있을 테니 아예 금욕한 것이리라.
‘대단하군. 정말 대단해.’
이렇게까지 감췄을 줄이야. 죠셉 마이어는 감탄했다.
그러고 보니 신성 왕국을 건설한 것도 그랬다. 남부 연맹이 차근차근 시간을 들여 만들고자 한 게 무엇이던가?
신인류를 정점으로 한 완벽한 사회였다. 기사는 장원을 갖고, 귀족은 영지를 갖는다. 그리고 귀족의 정점은 왕이었다.
남부 연맹은 내실을 다진 뒤, 왕국 연맹으로 이름이 바뀔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는 홀로 이미 왕국의 왕이 된 것이었다.
그는 이미 남부 연맹이 추구하는 목표에 먼저 도달한 자였다.
‘처음부터 접근을 잘했다면 애초에 싸울 이유가 없었던 거야.’
죠셉 마이어는 개안한 것 같았다. 신성 왕국의 체재가 사실 그들이 원했던 체재와 유사하다는 것이 이제야 보였다.
“생체 통신기 진정됐습니다.”
“디트로이트 회의장과 연결 가능합니다.”
흐음-
죠셉 마이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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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식-
삐삐삐삐- 삐이이익
[뽀르르르륵외망오얌앙하]마루의 살기에 맛이 갔던 생체 통신기가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오작동이 있었군요.]죠셉 마이어의 목소리에 어쩐지 친근함이 가득했다. 너무 티가 나는 친근함에 마루는 순간 당황스러웠다.
조금 전, 정신파로 쥐떼 뒤집을 수 있다고 협박하던 작자가 갑자기 왜?
[우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봅시다. 제국은 일단 퇴장시키지요.]팟-
제국과 연결된 생체 통신기가 강제로 꺼졌다. 제국 특사가 생체 통신기를 들고 밖으로 나가자, 죠셉 마이어가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전쟁이 터진다면, 우리 남부 연맹은 신성 왕국의 편에 설 생각입니다.]“무슨···.”
[Wh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