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673)
러스트 [RUST]-673
미합중국답게 워터 파크(water park) 규모가 상당했다. 초대형 풀에 인공 파도 발생장치를 비롯해 기네스북에 오른 놀이기구까지 엄청난 시설과 면적.
“그런데 공식 설계도면에 있는 배수로는 하나뿐이라는 건가?”
[네. 건물에 배치된 도면을 확인한 결과 배수로는 하나뿐이었습니다.]마루는 도면에 나온 배수로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눈으로 도면을 확인했음에도 찝찝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뭔가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여기에 나온 배수로는 아니야.’
일단 너무 좁았다. 물론 엎드려서 기어 나올 정도는 됐지만, 드론이 추격할 텐데 좁은 배수로를 기어서 탈출한다?
‘그럴 리 없지.’
“정찰드론으로 인근 샅샅이 뒤집어봐. 여기 말고 분명히 다른 배수로나 출입구가 있을 거다.”
[캐년 호수(Canyon Lake)까지 정찰하도록 하겠습니다.]버지니아 랭리 컴퍼니의 진짜 본사를 워터 파크 아래에 감춘 것은 확실히 발상의 전환이었다. 찾는 사람들이 많으니, 출동하거나 들어올 때 인파에 섞여 감추기 쉬웠다.
‘자리를 잘 잡았군.’
실험실을 운영하기에도 적합했다. 전력과 용수를 사용해도 워터 파크라는 특성상 무난하게 넘어갈 수 있을 테고, 폐기물 처리도 마찬가지. 수많은 인파가 배출하는 폐기물 분변처리에 슬쩍 끼워 넣으면 그만일 테니까.
‘EMP에 자료가 전부 날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전투에 승기를 잡았습니다.]인공지능의 보고에 마루가 화면을 고쳤다.
지하시설을 장악하는 것은 순조로웠다. 인공지능이 통제하는 전투 드론은 마치 개미처럼 일사불란하게 적을 압박했다.
지하에 저렇게 넓은 공터를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실내 축구장 2배에 달하는 거대한 공간에서 드론과 식인귀와 교전하는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충격흡수 방탄 방패와 파일 드라이버?’
마치 중세시대로 회귀한 것 같은 접근전이 펼쳐졌다. 예상과는 달리 식인귀들이 드론 다수를 순식간에 무력화시키며 선전했지만, 그뿐이었다.
천장과 벽을 자유롭게 타고 움직일 수 있는 전투 드론이, 특유의 기동성을 이용해 적의 본대와 방어선을 무너뜨리면서 승패가 결정된 것.
[적의 뇌에서 정보를 추출한 결과, 저들은 기사(Knight)라는 병종이었습니다.]넉넉하게 인육을 보급받은 본사 직원이어서 그런지, 교전에 참여한 기사들의 신체능력은 일반 하급 식인귀와는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뛰어났다.
‘식인귀 놈들···. 시간을 주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라니.’
며칠 시간을 줬다면, 사람들 잡아먹고 더 강해졌을 터. 지금도 예상보다 센데 이보다 더 강해졌다면 전투 드론만으로는 곤란했을 정도.
[현재까지 입수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적의 기사급 전투병은 친위대와 호각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거의 중급 식인귀에 가까운 육체 능력. 단순한 출력만 놓고 보자면 신형 엑소슈트에 필적할만한 힘.
여기에 식인귀 특유의 순발력을 더한다면, 엑소슈트로 무장한 친위대도 승패를 장담할 수 없다고 봐야 했다.
[···현재 엑소슈트의 장갑으로는 남부 연맹의 파일 드라이버를 막을 수 없습니다.]“한 번 붙어봐야겠군. 그 기사란 놈들 밖에서 발견하면 알려줘.”
[알겠습니다.]마루는 워터 파크를 돌아나가는 강을 따라 걸었다. 무소음으로 비행하는 초소형 드론이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는 모습.
콰아아아앙!
멀리서 치솟는 폭음과 화염을 보니 주유소가 날아간 것 같았다. 친위대와 토벌대도 식인귀를 착실하게 몰아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HUD(Head Up Display)에 떠오른 전황은 순조로웠다. 두 번에 걸친 방어선을 뚫고 나자 적들은 제대로 된 방어선을 구축하지 못한 채, 각개격파(各個擊破)되고 있었다.
‘이상한데?’
고급 병종인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이렇게 맥없이 밀린다고? 영상을 자세히 살펴보니, 지휘계통이 처음처럼 하나로 묶이지 않고 각기 따로 놀고 있었다.
마루는 상위 개체의 명령이 끊겼다는 걸 직감했다.
뉴욕에서 1차 식인귀 토벌 때가 떠올랐다. 고위 식인귀가 된 뉴욕 부시장을 죽이자, 그 아래 있던 것들이 각기 따로 놀았던 일.
식인귀가 된 범죄조직도 마찬가지였다. 대가리를 따고 나자, 나머지가 삼삼오오 흩어졌었다. 그럼 대가리가 죽었다는 건데? 누가 죽였지?
‧
‧
‧
철컥!
‘진정한 장인은 연장을 탓하는 법.’
응.
명장일수록 명품 장비를 사용하는 게 당연했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전용 엑소슈트는 명품 그 자체였고.
후후훗-
김 양은 뿌듯한 마음으로 스코프와 HUD를 연동했다. 시원한 16K 화면에 놈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깨끗하고 선명한 화면을 확대하자, 윤기가 좔좔 흐르고 핏이 딱 떨어지는 슈트 차림의 놈들이 드러났다.
뭔가 있어 보이는 놈들의 옷차림에 김 양은 자기도 모르게 히죽- 웃었다.
‘역시 백정을 따라가면 왕건이 나온다니까.’
위대한 옆자리를 확고히 하려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실적이었다. 회사에서도 그렇고 조직에서도 그렇지만 제일 중요한 건 성과.
그럼 성과를 높이는 데 필요한 건 뭐냐? 실력도 실력이지만,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잡는 것이 중요했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뒷방으로 밀려나는 순간 끝이었다.
그리고 김 양은 실력을 발휘할 곳을 찾을 자신이 있었다. 지금도 보라, 마루가 이상하게 움직인다 싶어 따라왔더니 한 건 했다.
‘어디 보자.’
거리가 제법 있고 벌컨포니까 자연빵으로 쏘기는 좀 그렇고. 이럴 때 신규 업데이트를 써먹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조준 보조 프로그램을 시작하자 다양한 표시가 떠올랐다. 습도, 풍향, 풍속, 적의 이동 속도, 탄도 예측 표시까지.
‘흐응-’
탄도 진행 예측이 균일하지 않고 흔들리는 모습에 작게 콧김을 뿜어내는 김 양. 연사력에 방점을 둔 벌컨포인지라, 탄착군 형성이 조금 아쉬운 건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많이 좋아졌네. 인공지능 년.’
인공지능의 탄착군 예측 보정과 김 양의 경험이 더해지자, 말 그대로 깡패 같은 공격력과 연사력의 콜라보(collaboration)가 됐다.
위루루루룩!
전기모터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올망졸망 강변을 따라 이동하는 놈들의 대가리가 후두둑- 일렬로 곤죽이 됐다.
HUD 화면을 보고 있던 김 양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입은 옷은 어디 회사 중역급으로 보이는 놈들이라 한 번에 조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절반 가까이 피한 것.
‘저렇게 많이 피해? 이거 진짜 대박인데?’
깜짝 실적 좀 올리려고 했더니, 저쪽 반응이 예사롭지 않았다. 김 양은 재빨리 마루에게 연락했다.
[여기 이상한 놈들 찾았음.] [어딘데?] [지금 정보 보냈음.]마루는 갑작스럽게 등장한 김 양에 할 말을 잃었다. 샌 안토니오(San Antonio) 정리하고 나면 댈러스(Dallas)로 가기로 해놓고 갑자기 여긴 왜?
[하···. 일단 거기부터 정리하고 이야기하자.] [······.]대답을 회피한 김 양은 작고 귀여운 16 드론을 뿌린 뒤, 냅다 후퇴했다.
마루가 저렇게 말해도, 자신이 찾은 왕건을 보고 나면 잘했다고 할 거다.
응.
‧
‧
‧
퍽! 퍼퍼퍼퍼퍽!
눈앞에서 달걀처럼 터지는 경호원들의 머리통.
“엎드려!”
콤마 초의 영역에서 반응할 수 있었던 건 고위 귀족이 됐기 때문이었다. 보안 팀장을 비롯한 몇 명은 본능적으로 회피했지만, 그러지 못한 자들도 절반이나 됐다.
“매복이다!”
“여긴 비밀통로인데 매복이라니!”
“죠셉 마이어가 우릴 팔아먹었나?”
“어느 쪽에서 공격했나?”
“11시 방향.”
“20mm 탄이다. 벌컨포야.”
경호원이 재빨리 현장을 보고했다.
“11명 사망. 2명 중상입니다. 중상자는 신선한 보급이 없으면 어렵습니다.”
“혈액 팩으로는 어렵나?”
“네. 심각한 중상입니다. 제대로 된 보급이 필요합니다.”
“어쩔 수 없지, 편히 보내주도록.”
“알겠습니다.”
“그리고 11시 방향을 확인하고.”
“생포합니까?”
“정보만 얻고 치워.”
“예.”
경호원이 일을 처리하는 동안 보안 팀장은 주변을 살폈다. 인기척 하나 없는 강변이 길게 이어진 풍경.
‘블라디마루 칼린을 포섭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인육과 흡혈에서부터 자유로운 진정한 신인류가 되는 것입니다.’
갑자기 자연산(?) 귀족이니, 인류의 진화가 선택한 존재라느니 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항상 무표정에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 수 없었던 회장이 그렇게 대놓고 반응한 것은 처음이었다.
‘블라디마루 칼린이 신인류의 미래이자 열쇠라니.’
그 죠셉 마이어니 만큼 모든 게 거짓일 가능성도 있었지만, 갑작스럽게 신성 왕국에 대한 공작을 멈췄던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진심이라고 보는 게 맞겠지.
그리고 그놈의 미래와 열쇠가 우리를 몰살하려고 하고 있고. 보안 팀장은 피와 골수가 흩뿌려진 현장을 보곤 헛웃음 지었다.
죠셉 마이어 회장은 실수했다. 그가 정말 신인류의 정점이라면, 자신들과 손을 잡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는 이미 한 왕국의 국왕이었고, 그에게 충성하는 짐승들이 있으며, 그를 믿는 신도들이 있었다. 거기에 우리가 끼어들 곳이 있을까?
‘회장은 무슨 생각을 한 거지?’
그놈을 어떻게 건드렸기에 상호불가침 조약을 파기하고 당일 선전포고까지 한단 말인가? 공격받자마자 바로 탈출해?
“공격받은 곳에서는 바로 이동해야 하는 것 아닌가?”
“빨리 자리를 옮겨야 합니다. 놈들이 포위라도 하면 어떻게 할 겁니까?”
웅성거리는 생존자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살아남은 임원진들이 따로 움직인다면 저들을 따르는 경호원들도 뿔뿔이 흩어질 터. 그럼 남은 건 각개격파되는 결말뿐.
“정찰을 보냈으니, 다들 잠시 진정합시다.”
보안 팀장의 말에 임원 몇이 바로 발끈했다.
“진정? 지금 이 상황이 진정할 상황인가?”
“당신 말을 듣다가 이렇게 됐는데 한다는 소리가 진정하라고?”
“대책이 있어야 할 것 아니오. 대책이.”
“우리가 무슨 난장판이라도 벌이고 있었나?”
이래서 펜대만 굴리던 놈들이 임원이 되면 지랄이었다.
“이렇게 소리 지르는 이유가 뭐지? 아? 놈들을 유인하겠다는 건가? 유인 작전을 할 생각이었다면 미리 알려줬으면 좋았을 텐데.”
말투가 변한 보안 팀장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번들거렸다. 기묘한 정신파가 얼어붙은 강편 수풀을 타고 퍼져나갔다.
샤샤샤샤샤샥-
스스스스스슷-
사각사각 눈과 얼음이 갉히는 소리가 빙글빙글 회전하듯 보안 팀장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변한 분위기에 불만을 토로하던 자들이 입을 다물었다.
“······.”
“······.”
“······.”
“······.”
무거운 침묵이 가라앉은 가운데, 정찰을 보냈던 경호원이 돌아왔다.
“11시 방향에서 흔적을 찾았습니다. 20mm 벌컨포로 무장한 엑소슈트의 흔적입니다.”
“숫자는?”
“흔적은 하나였습니다.”
“···하나였다고?”
혼자 방아쇠를 당겨서 두 자리 숫자를 잡았다고?
방아쇠를 당긴 채 총구를 횡으로 움직여서 쐈다는 소린데 그게 가능한가?
그것도 머리통만 노리는 게?
그 정도로 미친 총잡이가 신성 왕국에 있기는 있었다. 하나는 제국의 U+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클론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야니아 킴.
U+ 클론들이 중‧근거리 총격전에 특화됐다면, 야니아 킴은 중‧원거리 저격에 특화된 인물. 지금 공격한 것은 야니아 킴일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진짜 문제는 야니아 킴의 곁에는 대부분 블라디마루 칼린이 함께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11시 방향으로 갑니다.”
보안 팀장이 먼저 앞장섰다.
그가 내딛는 발걸음에 따라 사사사삭-거리는 작은 소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입을 꾹 다문 임원들과 경호원들이 보안 팀장의 뒤를 오리 새끼처럼 따랐다.
저벅저벅-
샤샤샤-사사사삭-
언제부터인가 보안 팀장의 주위를 맴도는 소리. 그 소리가 일순 뚝 끊겼다.
?
발걸음을 우뚝 멈춘 보안 팀장이 옆으로 쓰러지듯 몸을 던지며 외쳤다.
“엎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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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찢고 길게 그어지는 검은 실선이 보안 실장의 동공에 박혔다. 머뭇거리는 임원들 옆으로 몸을 던지려는 경호원들의 모습이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였다.
그와 동시에 검게 그어진 선을 따라 삐죽 빨간 핏방울이 돋아오르며 뼈와 가죽, 근육이 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콰가가가가가각-
자신의 뒤를 일렬로 따라오던 경호원들과 임원들의 머리통이 분리되는 모습에 보안 팀장이 소리 질렀다.
“나와라!”
그 처절한 정신파에 반응하듯.
하얗게 쌓인 눈과 얼음을 뚫고 다갈색 더듬이들이 삐져나오기 시작했다.
키릭키리리리릭-
샤샤샤샤샤샤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