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677)
러스트 [RUST]-677
알 수 없는 찝찝함에 마루는 일단 현재 상황을 복기했다.
‘구멍은 다 막았어.’
개미굴처럼 지하 깊숙이 들어선 본사에 남은 식인귀들과 흡혈귀들이 처절하게 버텼지만, 전투 드론의 물량 앞에서는 소용없었다.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소규모로 실험실이나 연구실, 자재 창고를 하나 잡고 농성이라. 역시 아까 잡은 놈들이 대가리였나?’
상위 개체를 잡으면 하위 개체들은 뿔뿔이 흩어지기 마련이었다. 지금 본사 지하에서 저항하는 자들이 꼭 그런 상황이었다.
‘중급 이상은 다 빠졌다.’
하급이나 중급으로 보이는 흡혈귀들이 서로 세력을 키우려고 싸우기까지 하는 모습이 전투 드론에 포착될 지경이었으니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었다.
수직적 지배구조가 가진 한계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현장이 지하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수소 폭탄에 맞은 대도시 주변도 마찬가지였다.
신형 엑소슈트로 완전무장한 친위대와 토벌대 그리고 전투 드론의 조합은 주력 부대를 잃은 군부와 귀족원이 감당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쪽도 대가리라고 할 자들이 수소 폭탄과 첫 집중 척살에 대부분 쓸려버린 뒤인지라, 지배력에서 벗어난 자들이 서로 자기가 머리가 되겠다고 싸워대기 시작했다.
‘놈들이 서로 싸우고 흩어지는 것까지는 예상했었고.’
그런데 왜 이렇게 찝찝하지?
본사가 위치한 워터 파크 근처도 김 양을 미끼로 삼아 싹 뒤집고 있었다.
죠셉 마이어나 고위급 인사가 있다면 김 양이라는 먹음직스러운 미끼에 낚이지 않을 리 없었다. 그녀를 생포하는 데 성공한다면 어떻게든 협상 가능하다고 생각할 테니까.
그런데 이틀이 지나도록 반응이 없었다. 간혹 중위급 식인귀가 파일 드라이버를 들고 김 양과 맞짱 뜨기도 했지만, 끽해야 중위급.
마루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김 양 선에서 컷이었다. 흡혈귀도 마찬가지. 이쪽은 중위급도 아니고 하위급이었다.
하위급이라고 해도 흡혈귀는 흡혈귀였기에 식인귀보다 강력한 정신파가 있었다. 특유의 지배력으로 김 양을 홀리려는 놈들도 나왔지만, 정신파 차단 장비를 갖춘 김 양에겐 소용없었다.
‘빵순이도 까마귀들이 검거(?)했으니까 정리됐는데.’
까마귀와 드론을 이용해 저인망을 훑고 지나가는 것처럼 몬트리올과 인근 지역을 싹 뒤집은 결과, 로아나 블랑을 이용하려던 놈들을 싹 잡아들이는 데 성공했다.
식인귀도 아니고 일반인과 능력자가 대부분이었고 하급 흡혈귀가 몬트리올 작전의 총책임자였다. 문제는 생포한 놈들을 대가리에 정보 추출기를 꽂았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는 것.
‘다른 놈은 몰라도 죠셉 마이어는 꼭 잡아야 해.’
흔적을 찾았다 싶으면 더미 정보나 미끼인 경우가 대부분. 교묘하게 진짜 정보는 꼬리가 끊겨있었다.
‘정보를 다루던 것들이라서 그런지 거슬리네.’
마루는 차가운 물을 들이켜 정신을 깨운 뒤, 다시 처음부터 복기했다. 메모 패드에 상황을 정리하던 마루가 신성 왕국의 지도를 살폈다.
미시간 주에서 시작해, 사실상 캐나다 중부에서 동부를 전부 장악한 광활한 영토가 펼쳐져 있었다.
‘음?’
그리고 본토에서 외따로 떨어진 곳에 작게 튀어나온 영토 표시가 마루의 눈에 들어왔다.
‘저긴?’
뉴포트뉴스 조선소와 인근 지역. 신형 항공모함이 건조되고 있는 곳이었다. 순간 마루의 심장이 두근거리며 찜찜함이 배가됐다.
기분 나쁜 감각이 조선소와 관련된 기억을 헤집기 시작했다. 불꽃 쥐와 산성 쥐 그리고 산성 갈매기가 주력으로 방어하는 곳.
신성 왕국의 인공지능이 통제하는 거점 요새와 경비대가 있지만, 조선소를 경비하는 인간 대부분은 제국군이었다.
‘항공모함 건조에 필요한 전문가들과 기술자들은 제국 사람들이었어.’
신형 항공모함을 건조할 기술과 인력이 당시 신성 왕국에는 없었다. 그래서 했던 협정. 미합중국에서 건조 중이던 항모 2척을 제국 측 인력이 건조하고 한 척씩 나눠 갖기로 했었다.
당연히 관련 업종 기술자들 연구진들이 뉴포트뉴스로 들어왔고, 이들을 지키기 위해 제국군도 들어왔다.
병력이 부족했던 신성 왕국은 뉴포트뉴스 조선소 외곽 중요 지점에 인공지능을 이용한 한 거점 요새를 만들어 방어했다.
신성 왕국과 제국이 합심해서 방어하던 곳이 뉴포트뉴스 조선소였다. 거기에 새로 합류한 제2 항모전단의 보수도 뉴포트뉴스 조선소에서 이뤄졌다.
어쩐지 두근거리는 심장과 찝찝한 느낌이 뉴포트뉴스 조선소로 향하고 있었다.
“뉴포트뉴스 조선소 외곽 요새에 연락해봐.”
[문자 전송했습니다.]외곽 요새를 관리하는 인공지능이라면 돌아가는 상황을 알겠지. 잠시 뒤 보조 인공지능의 교신 결과를 보고했다.
[외곽 경계 이상 없다는 보고입니다.]“자세하게. 제국의 반응은 어떤지, 신형 항모 건조는 어느 정도 추진됐는지, 불꽃 쥐와 산성 쥐의 경쟁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물어봐.”
[외곽 경제 이상 없다는 보고만 반복되고 있습니다.]‘···씨발.’
마루는 그대로 전용 비행선을 타고 뉴포트뉴스 조선소로 향했다.
“기순아. 제국에 연락해서. 남부 연맹 특히 버지니아 랭리 죠셉 마이어랑 엮이면 우리랑 끝장 본다고 경고해.”
졸지에 살벌한 문자를 받은 기순은 당황스러웠다.
[끝장을 본다고? 제국이랑? 남부 연맹의 텍사스도 해결 안 됐는데?]“놈들이 그냥 있겠냐? 우리한테 생물학 테러 실패한 게 확실하다 싶으면 제국에서 그 지랄 하겠지. 그렇게 식인귀 늘려서 우리랑 제국이 싸우도록 유도하겠지. 무엇보다 이미 식인귀나 흡혈귀가 된 새끼들이 제국 상층부에 있을지도 몰라. 타협은 없다.”
[아니. 깜빡이 좀 제때 키라니까 갑자기 왜 그래?]“뉴포트뉴스 조선소가 이상하다.”
[뭐? 거긴 또 왜?]“우리랑 제국이랑 같이 경비하고 있었잖아. 그런데 지금 확인해 보니, 외곽 요새 관리 맡은 인공지능이 이상하다.”
[인공지능이 이상하다고? 뭔- 하- 일단 알았다.]마루의 말에 기순이 대충 상황을 정리했는지 알았다고 했다.
[제국이랑 이야기는 내가 할 테니까. 급발진하지는 말자, 조선소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제국 기술자들 날려버리는 건 참아라. 알았지?]“······.”
[아니. 진짜로. 양면 전쟁도 아니고 그냥 막 대가리부터 디밀다가 뒈진다니까.]지금까지는 효과적이었다. 남부 연맹의 맹주 텍사스를 무력화하는 데 성공했고, 최고위 식인귀와 흡혈귀들을 몰살했으니까.
다만 그게 전쟁의 승리를 확정한 건 아니었다.
남부 연맹은 이미 봉건제에 가깝게 변해 있었다. 대도시가 수소 폭탄으로 날아가 버리면서 상위 개체와 고위 흡혈귀의 지배력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건 상위 개체가 될 기회가 열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인간을 더 많이 확보해 보급할 수 있는 개체가 더 강해질 수 있는 세상이 열린 것이었다.
[자기들끼리 싸울 거라는 건 예상했지만, 인간이 핵심 자원으로 취급되는 상황은 예측 불가능했어. 며칠 사이에 텍사스 중소 도시가 개판이 됐다고.]제국이 신성 왕국을 좋게 볼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우리 대사관도 철수했고, 교역소도 폐쇄했잖아. 덴 브라운이랑 긴급 문자 통신이 가능하니까 권고는 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힘들어. 촉이 왔나 본데, 그래도 강경하게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다 살자고 하는 짓이지 같이 죽자고 하는 짓은 아니잖아.]“··· 그래. 제국은 맡긴다.”
마루의 문자에 기순은 힘이 쪽 빠지는 것 같았다. 마루 새끼 결정하면 뒤도 안 돌아봐서 진짜 조마조마한 기순이었다.
[뭘 하든, 다 좋은데. 미리 이야기하자. 미리. 좀.]“수고해라.”
백색의 전용 비행선이 뉴포트뉴스 조선소를 향해 속도를 높였다.
‧
‧
‧
퍼어어엉!
김 양의 엑소슈트가 데굴데굴 옆으로 구른 자리에 지름이 8cm는 될 법한 파일 드라이버가 굉음을 내며 박혔다.
젓가락으로 부드러운 카스텔라를 쿡 찌른 것처럼 단단한 얼음에 깊숙이 박힌 파일 드라이버가 속에서 폭발하는 광경에 김 양이 혀를 찼다.
칫-
‘이래서 근접전을 피하려고 했는데.’
중하위급 식인귀의 움직임은 아니었다.
‘흡혈귀 년인가?’
힘은 중하급 식인귀와 비슷한데 순발력이 압도적으로 좋았다. 무슨 리듬체조 선수처럼 움직이는 모습은 이제껏 김 양이 경험하지 못한 기동 방식.
직선적으로 달려드는 척하다가 옆으로 뒤트는 몸짓은 헛방을 유도하는 데 최적화된 움직임이었다.
그나마 김 양이었으니 여기까지 왔지, 친위대였으면 5분을 버티지 못하고 분대 단위로 학살당할 정도였다.
투두두둥!
20mm 벌컨포로 대여섯 발을 쏴. 거리를 조금 띄운 그녀가 친위대에게 신호를 보냈다. 접근 금지, 5인 1조로 작전. 퇴각로에 부비트랩 설치 등과 같은 신호였다.
10m 거리 안쪽에서 쐈음에도 춤추는 것처럼 빙글빙글 몸을 돌며 총알을 피하는 흡혈귀 년의 입꼬리가 살짝 위로 치솟았다.
‘저년이 웃어?’
김 양은 저런 년이랑 드잡이질할 생각이 없었다.
잡으려면 잡겠지만 굳이?
이상하게 움직이는 흡혈귀 년 하나 꼬였으니, 미끼 역할은 충분히 한 거 아닌가?
그러니까
‘가라 백정!’
[이상한 흡혈귀 년 꼬였음.]멀찍이 따라오는 던 백정이 조용했다.
[여기 흡혈귀 년 꼬였음.]후딱 와서 처리하라고. 그 짧은 틈을 타 거리를 좁혀오는 흡혈귀.
투다다다닥!
넌 백정 올 때까지 다가오지 마.
이제 곧 죽었어.
응.
이렇게 흡혈귀 년 신경을 끌었으니, 백정의 뒤치기가 저년의 모가지를 똑 썰어버릴 것이다.
띵-
언제봐도 흥미진진한 마루의 칼질을 기대하고 있던 김 양의 눈앞에 문자가 도착했다는 표시가 떴다.
‘통신이 아니고 문자? 왜?’
수신확인 버튼을 누르자, HUD 한쪽 구석에 마루가 보낸 문자가 열렸다.
[나 지금 뉴포트뉴스 조선소로 간다. 그쪽은 맡길 게.]?
미끼 하면 백업해준다고 했으면서?
끼융끼융 이리저리 움직이던 엑소슈트의 스텝이 순간적으로 단순해지자, 흡혈귀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철크럭!
파일 드라이버가 장전되는 소리와 함께 견제 거리를 뚫고 들어온 흡혈귀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이겼다.
파일 드라이버가 김 양의 머리를 노리고 쏘아졌다.
떠어어엉-
종소리처럼 강력한 굉음과 하얗게 피어오르는 연기 틈새로 보이는 모습. 고개를 옆으로 꺾어 파일 드라이버를 피한 김 양이 흐른 눈빛으로 흡혈귀를 바라봤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쏜 파일 드라이버를 피할 줄 몰았는지, 잠시 당황한 흡혈귀가 특유의 몸놀림으로 뒤로 빠지려고 했지만, 김 양의 손이 더 빨랐다.
한 손으로는 파일 드라이버가 있는 팔을 다른 한 손으로는 흡혈귀의 허리춤을 감싼 김 양이 중얼거렸다.
[미끼도 하고···.]“이익- 놔- 이거 놔-”
전용 엑소슈트의 출력만큼은 아니었지만, 흡혈귀의 힘도 제법 셌다. 흡혈귀가 발버둥 쳐 벗어나려고 하자, 김 양의 박치기가 작열했다.
뻑!
[생각하고!]박치기 한 번에 아름다운 여자 흡혈귀의 코에 쌍코피가 흘렀다.
빠각!
[쐈는데!]재차 이어진 박치기에 흡혈귀의 눈이 살짝 풀렸다. ‘무. 무슨 소리야-’라고 묻기도 전에 세 번째 박치기가 흡혈귀의 골을 흔들었다.
뻐극!
[백업은?]끼이이이융!
휘청거리는 흡혈귀를 그대로 저먼 수플렉스(German Suplex)로 메다꽂아 버린 김 양이 축 늘어진 흡혈귀의 머리통에 20mm 벌컨포를 겨누곤 미련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이건 전부 약속 어긴 백정 탓.
응.
‧
‧
‧
미려한 곡선을 가진 예술품이 하늘에 수를 놓고 있었다.
하얀 윤기가 흐르는 몸체는 금속에 도장을 칠했다기보다, 고급 대리석을 통째로 깎아 만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비행선.
대리석으로 만든 예술품이 하늘을 날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그 본질은 특이점에 도달한 기술이 집약된 흉악한 비행체였다.
그리고 그 흉악함을 증명이라도 하듯 순식간에 뉴포트뉴스 조선소 상공에 도달한 전용 비행선이었다.
[착륙 신호를 보내시겠습니까?]“아니. 강하한다.”
마루는 비행선 착륙장에 착륙하지 않고 제트팩을 이용해 강하하는 것을 선택했다.
“강하 위치는 제2 항모전단(航母戰團) 기함.”
[이동하겠습니다.]잠시 후 하늘에서 떨어진 작은 점이 항공모함의 아일랜드를 뚫고 들어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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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의 옆구리가 동그랗게 뚫리며 일렁거리는 그림자가 안으로 스며들었다.
통로 안쪽은 엉망이었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시체와 사방에 가득한 탄흔이 긴박했던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아직 따뜻해?’
열 영상 센서에 비친 시체들은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열기를 농락하기라도 한 것처럼 통로가 전부 피로 물들어있었다. 신기술을 이용한 전투화라고 하더라도 피 칠갑한 바닥에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걷기란 불가능했다.
누가 흡혈귀 새끼들 아니랄까 하는 짓도 가지가지였다. 어차피 걸린다면 이렇게 조심스럽게 갈 필요 없겠지.
마루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제일 먼저 확인해야 할 사람은 제2 항모전단 사령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