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678)
러스트 [RUST]-678
보란 듯이 사방을 붉게 칠해 놓은 흡혈귀들.
[필터 교체까지 30분 남았습니다.]‘빌어먹을 새끼들.’
리퍼 슈트 헬멧에 달린 화생방 대응 장비가 쉬지 않고 돌아가는 것을 보아, 단순히 피만 칠 한 게 아니었다. 복도 끝에 놓인 함교에 들어서려는 순간, 오도도 소름이 돋았다.
‘함정?’
죠셉 마이어라면 죽일 정도의 함정은 쓰지 않을 텐데? 정보의 가치를 아는 놈들이니 생포할 정도의 함정을 썼으리라 봤는데, 생존 감각이 반응하는 것을 보니 그게 아니었다.
마루는 함정이 설치된 것으로 보이는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옆의 벽을 뚫고 들어갔다. 두툼한 철판에 둥그런 구멍이 생겼다.
팅-
클립 튀는 소리. 그리고 강력한 섬광과 폭음이 구멍 뚫린 안쪽에서 터졌다. 리퍼 슈트의 헬멧이 일정 데시벨 이상의 폭음을 차단하고, 광센서가 자동으로 마루의 시력을 보호했다.
저쪽에서 섬광탄을 썼으니, 이번에는 마루의 차례. 연막탄과 신경가스를 조합한 흉악한 가스탄을 안쪽으로 던져 넣은 마루가 반대편 벽으로 이동했다.
낮은 폭음과 가스 터지는 소리가 안쪽에서 들렸지만 조용했다. 놈들도 화생방 대응 장비가 있다는 뜻.
신경가스와 연막이 짙은 틈을 타, 벽을 뚫은 마루가 슬며시 안으로 진입했다. 안쪽도 역시 피를 발랐는지 꾸덕꾸덕한 핏물 특유의 소리가 났다.
방탄스크린을 내렸는지 관제실 내부는 어두웠다. 다양한 센서를 동시에 활용해 시야를 확보했지만, 보이는 게 없었다.
‘리퍼 슈트?’
리퍼 슈트 자체가 예전 군부와 버지니아 랭리에서 개발했던 것임을 생각해보면 놈들이 리퍼 슈트를 사용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신인류니, 진화의 정점이니 능력을 자랑질하던 것들이 리퍼 슈트를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확실히 놈들은 변했다.
핏물을 이용해 상대방의 위치를 파악하는 능력 따윈 없었기에, 마루는 한쪽 벽을 기준 삼아 발걸음을 옮겼다.
끼극-
아주 작은 금속음이 음향 센서에 잡혔다.
문제는 그 소리가 천장 쪽에서 들렸다는 것. 당혹스러울 법한 상황에서도 마루는 침착하게 모르는 척 움직였다. 놈들이 리퍼 슈트로 무장한 채, 천장에 매달려있다면···.
마루는 섬광탄을 벽면에 붙이며 이동했다. 다섯 개쯤 붙였을 때, 벽이 오른쪽으로 꺾였다. 본래대로라면 관제실이었어야 할 공간은 텅 비어있었다.
에드먼드 가필드 사령관을 구하려고 했더니, 이미 상황이 늦은 것 같았다. 마루는 힐끗 천장을 살폈다. 언제 소리가 났었느냐는 것처럼 아무것도 없는 매끈한 천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뭔가 기다리고 있다는 건가?’
마루가 벽을 따라 움직이는 걸 알아챘음에도 놈들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마루는 놈들이 원하는 데로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삑-
낮은 전자음과 함께 벽에 붙여 놓은 섬광탄이 동시에 폭발했다. 마루의 위치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한껏 노려보고 있던 놈들의 시야가 하얗게 불탔다.
끅!
끄엇!
신기술이 듬뿍 들어간 신성 왕국의 섬광탄을 가히 신무기라 불러도 될 정도였다. 그 강력한 빛에 시신경이 맛이 갔는지 리퍼 슈트의 헬멧을 벗어 던지고 눈을 비벼대는 놈들을 향해 마루가 뛰어올랐다.
툭- 투둑-
바람이 불고 설익은 과일이 떨어지듯, 잘린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는 모습. 그렇게 머리 없는 몸통이 거꾸로 매달린 채 흔들리는 모습이 함교를 장식했다.
‧
‧
‧
제2 함대를 비롯해 전조 중인 항공모함에는 예상보다 적의 숫자가 많지 않았다.
쿠직-
놈들이 함정을 판 것을 확인한 뒤로 마루는 정상적인 통로와 벽을 쓰지 않았다. 외벽을 뚫고 잠입하거나, 천장 혹은 바닥을 뚫고 내부로 침입했다.
중위급 식인귀나 하위라고 해도 흡혈귀들이 머리가 되어 이제 막 식인귀가 된 자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2 항모전단 병사들이군.’
식인귀로 만들고 지배력을 이용해 장악하는 방법. 놈들은 소수로 2 항모전단을 장악하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서. 설마 블라디마루 칼린?”
“리퍼 슈트와 마검?”
“미친!”
“놈이 맞다.”
“신성 왕국 국왕이 왜 여길 왜?”
언제고 신성 왕국에서 조사단을 보내리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었다.
“벌써 오다니. 정보가 샜나?”
“그럴 리 없어.”
“닥치고 막아.”
“고기 방패 앞장세워!”
“크윽- 살려주세요.”
“강제로. 놈들이 강제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총을 든 손을 벌벌 떨면서도 마루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 병사들.
“어어- 엇- 이건 제가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강제로 식인귀가 된 병사들이 안타깝지만, 당장 방법이 없었다. 그냥 지나친다면 더 큰 문제가 생길 뿐. 마루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편히 쉬게 해주는 것밖에 없었다.
2함대를 돌아다니며 흡혈귀와 식인귀를 쓸어 버린 마루가 기순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뉴포트뉴스 조선소? 와- 본진 털리는 마당에 탈출하자마자 거길 털 생각을 하다니.]기순이 학을 뗐다. 얼어붙은 항구에 발이 묶인 2 항모전단이라지만, 항모전단 하나만으로도 어지간한 나라 후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내장 공사 일부만 남은 신형 항모 2척은 또 어떤가? 최신 항모 2척에 기존 항모 1척을 합해 3척의 항공모함이 운영되는 항모전단이라면 말 그대로 끔찍했다.
[제공권과 제해권이 넘어갈 뻔했어.]항공모함이 위험한 이유는 날이 풀려도 전투기를 쓸 수 있다는 점에 있었다. 일반 공항은 전부 새떼와 쥐떼가 차지하고 있었다.
사실상 이‧착륙이 불가능하니 항공 전력이 무의미했지만, 바다 위에 떠 있는 항공모함을 쓴다면 달랐다.
애초에 마루가 제2 항모전단을 받아들인 것도, 신형 항공모함을 건조하려고 한 것도 제공권과 제해권 때문이었다. 심지어 항모전단이라 핵잠수함에 핵미사일까지 세트로 가지고 있었다. 그게 통으로 날아갈 뻔했던 것.
[제국에서는 뭐라고 하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하더라.]모르는 일이라···. 바로 코앞에 있는 2 항모전단이 식인귀와 흡혈귀에게 통째로 먹힌 걸 모르고 있었다?
[그나저나, 거점 요새는 어떻게 된 거야?] [전기‧전자 쪽 능력자가 있는 것 같다.]요새를 관리하는 인공지능은 특이한 능력에 해킹당할 위험이 닥치자, 물리적으로 보드를 태워 자폭했다.
그렇게 당한 요새가 두 곳. 인공지능들이 격렬하게 반항하자 놈들은 나머지 거점 요새는 그냥 두고, 2 항모전단을 장악하는 데 집중한 것 같았다.
[어떻게 할 거냐?]신성 왕국은 인공지능과 인간이 서로의 약점을 채우는 방식인데, 이에 대해 완벽한 카운터가 가능한 전력을 버지니아 랭리가 숨기고 있었다.
특유의 정신파 능력으로 인간을 무력화하고 특수능력자가 전자기 능력을 사용해 인공지능을 무력화시키는 방법.
여기에 들쥐의 방어선까지 흔들 수 있는 정신파 발생기까지 더해서 고려한다면, 마루의 선제공격 선택은 천운이나 마찬가지였다.
[죠셉 마이어를 잡아야지.]마루는 단호했다. 전자기 능력자도 마찬가지 반드시 잡아야 했다. 해킹 능력자가 있을지 모른다고 가정하긴 했지만, 막상 진짜 그런 능력자가 있다니. 인공지능이 행정 업무 대부분을 수행하고 있는 신성 왕국엔 가히 독약과 같은 존재였다.
[어떻게? 캐나다에 있는 놈들 잡았는데 철저하게 점조직 느낌이더라.]로아나 블랑에게 퀘스트를 준 스파이를 잡아 족쳤지만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했던 기순이었다.
마루는 북미 지도를 펼친 채, 감각을 집중했다. 특유의 찜찜함이 이렇게 해도 발현될지는 어쩔지 몰랐지만, 죠셉 마이어를 잡지 못하면 두고두고 우환이 될 확률이 100%였다.
‘문제가 터질만한 곳을 찍는 건 됐었는데.’
사람이 대상인데 되려나?
한참 감각에 집중하던 마루가 인상을 팍 썼다.
“에이 씨-”
여기저기 찜찜한 곳이 한두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몬트리올, 퀘벡, 토론토, 미시소거, 오타와. 캐나다 지역 주요 도시들 전체에 느낌이 좋지 않았다.
디트로이트도 마찬가지. 색깔로 따지자면 진홍색으로 느껴질 정도로 위험한 느낌. 남부 연맹의 핵시설까지 전부 장악했는데 이럴 리 없었다.
저 넓은 도시들이 전부 찜찜하려면 핵 공격이나 대규모 생화학 공격이라는 소린데, 남부 연맹 상위 계급을 몰살한 지금 현실적이지 않았다.
만약 신성 왕국 주요 도시가 한 번에 위험에 빠진다고 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건 단 하나였다.
제국이 신성 왕국을 공격했을 경우. 덴 브라운이 미쳤다고 신성 왕국과 싸울까? 제국의 고위층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 이상 신성 왕국과 전면전을 벌일 이유는 없었다.
‘제2 항모전단은 끝이야.’
식인귀가 된 에드먼드 가필드 사령관이 한탄하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를 비롯한 주요 장교와 부사관급 병력이 전부 식인귀가 된 상황이었기에 손을 쓸 수밖에 없었다.
마루는 지도위에서 피어오르는 찜찜함의 정체를 알 것만 같았다. 죠셉 마이어 이 새끼. 제국 지휘부를 전부 식인귀로 만들 생각이었다.
뉴포트뉴스 조선소에 있는 신형 항모 2척과 제2 항모전단은 제국과 협상하기 위한 제물 같은 것일까?
신형 항모 2척에 항모전단과 항모전단을 운영하는 병력을 통째로 넘긴다고 하면, 그걸 제국이 참을 수 있을까?
당연히 자세히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할 테고, 협상장에 덴 브라운과 제국 지휘부가 나온다면···.
마루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불쾌할 정도로 찝찝한 감각이 전신을 핥기 시작했다.
‘에드먼드 가필드 사령관처럼 식인귀로?’
일단 식인귀로 만들기만 한다면 지배력으로 조종하는 건 쉬운 일이니까. 사실상 제국을 통째로 먹는 거나 마찬가지가 됐다.
신성 왕국 전체를 인질 삼아 마루의 DNA를 요구한다면? 조직과 혈액, 정액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것을 요구한다면 제국 연구진들도 좋다고 동의할 게 뻔했다.
제국을 장악하자마자 핵 공격을 한다면? 제국과 신성 왕국은 너무 가까웠다. 거기에 죠셉 마이어가 데리고 있는 특수능력자가 인공지능 방어 시스템을 무력화시킬 것을 고려하면 위험도는 급증했다.
마루의 기분이 무섭도록 차갑게 식었다. 최악의 상황이지만 불가능한 게 아니었다. 지금까지 돌아가는 꼴을 보자면 죠셉 마이어는 뭘 하든 할 놈이었다.
[기순아. 바로 제국에 전달해. 뉴포트뉴스 조선소는 신성 왕국이 재탈환했고, 제2 함대도 완전히 수복했다고.]마루는 바로 피바다 넘치는 현장 사진을 전달했다.
[내가 직접 싹 쓸었다고 하고 증거로 보내줘.]기순은 마루가 보낸 사진을 보곤 고개를 흔들었다.
거꾸로 매달린 목 없는 시체들, 여기저기 토막 난 조각들이 널브러진 통로에 핵잠수함 해치가 뜯어진 아래 찰랑거리는 핏물까지. 그냥 정상적인 사진이 없었다.
[미친. 이거 협박이냐?] [협박이 아니라 현실이다. 죠셉 마이어가 우리 항모전단을 식인귀로 만들었고. 그 결과가 이거다. 제국과 죠셉 마이어가 뭘 가지고 협상할지 어쩔지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해 식인귀 놈들이 원하는 건 제국을 식인귀 판으로 만들려고 하는 거다.] [······.] [그리고 제국이 식인귀 판이 된다면···. 제국은 신성 왕국과 싸울 수밖에 없게 된다.]마루는 항모전단 사령관의 최후를 설명했다. 일단 식인귀가 되는 순간, 상위 개체의 지배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경고했다.
[사진은 내가 알아서 보낼 게.] [그건 알아서 해라.] [후- 덴 브라운 아재한테 경고는 하겠는데. 안 먹히면 어떻게 하게? 제국이랑 사이가 예전 같지 않은 게 사실이잖아.] [경고했으니까 직접 가야지.]경고했음에도 식인귀랑 붙어먹는다면, 직접 가서 끝을 보는 수밖에.
마루는 뉴포트뉴스 조선소 정리와 방어를 희연과 유 이사 클론 부대에 맡기고, 유럽 대륙에서 난민들을 보호 수송하고 있는 나루즈를 호출했다.
“오라버니와 작전이다!”
“왕님이 부르셨다아앗!”
“제국에서 작전이라는데”
“제국? 걔들이랑 쫑-나지 않았어?”
“상호불가침도 깨지고.”
“그럼 급습인가?”
“강습으로 선빵?”
“그럴 거면 거점 타격부터 했겠지.”
“본체년이 물고 빨았던 뉴욕을 실물로 보는 거야?”
“근데 우리 전부 다 가는 건가?”
“아싸- 전부 다 오라고 하셨다!”
꺄아아아아아악!
뉴욕에서 오라버닝과 불꽃축제라니.
천 단위의 나루즈들이 생애 첫 뉴욕 나들이를 준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