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679)
러스트 [RUST]-679
뉴욕 총통관저.
덴 브라운은 기순이 보낸 문자를 확인하고 있었다. 상호불가침 조약 폐지, 대사관 철수, 교역소 폐쇄를 한 마당에 비상연락망은 남겨둔 이유가 아쉬울 때 문자라도 보내려고 그런가?
덴 브라운의 관점에서 보자면, 신성 왕국은 너무 나갔다. 다른 것은 몰라도 특이점에 대한 독점은 필연적으로 다른 국가들의 공적이 되길 자처하는 짓이었다.
‘아무리 다른 나라들이 엉망이라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질서가 잡히기 마련.’
식인귀들이 정권을 잡는다고 가정하면 어디를 공격하려고 할까? 당연히 신성 왕국이었다. 신성 왕국이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발달하기 전에 끝을 보려고 할 테니까.
‘남부 연맹과 제국 둘 가운데 하나와는 제대로 된 관계를 맺었어야 해.’
신성 왕국은 영토 크기를 고려하면 인구가 턱없이 부족했다. 캐나다 영토를 전부 계승한다고 가정했을 때, 인구 4백만 전후 아무리 많아도 5백만 이하로 추산되는 신성 왕국 인구로는 영토의 유지, 방어도 불확실했다.
‘인공지능으로 부족한 인력을 전부 대체하는 건 위험하지.’
일반적인 상황에서라면 보조 인공지능의 활용이나 드론, 로봇을 이용하는 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전시 상황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해킹, 전자기기 마비, 전자기기 통제와 관련된 능력을 각성한 사람들이 소수지만 나오고 있었다. 능력의 범위가 좁아서 전선에 직접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지만, 스파이로 침투해 중요 시설을 마비시킬 정도는 됐다.
신성 왕국의 인공지능 디아나와 사만다를 마비시킨다면? 슈퍼컴퓨터나 양자컴퓨터를 무력화한다면? 신성 왕국의 방어체계는 완전히 무너지리라.
남부 연맹이 제국과 화해의 손을 내민 데에는 신성 왕국의 약점이 뚜렷했기 때문이었다. 제국 내부에서 지금은 남부 연맹과 손을 잡고 신성 왕국을 나눠 먹자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기도 했고.
덴 브라운은 기순이 보낸 문자를 다시 살폈다.
[···남부 연맹은 사실상 무너졌습니다. 식인귀와 흡혈귀의 특성상 상위 개체가 죽으면 지배력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들은 서로가 상위 개체가 되기 위해 서열 싸움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싸움을 포기하는 순간, 지배당하는 운명이기 때문이죠.]알고 있었다. 제국에서 식인귀나 흡혈귀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식인귀나 흡혈귀를 받아들이는 순간 자유민주주의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해지기 때문이었다.
[···버지니아 랭리 컴퍼니 본사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중역 대부분을 처분했지만, 죠셉 마이어 회장이 탈출했습니다. 시나리오 예측 결과 버지니아 랭리 잔당과 죠셉 마이어가 생물학 테러를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큰 것으로 나왔습니다.]그건 신성 왕국이 걱정해야 하는 문제인데. 테러와의 전쟁을 떠올리게 해서 죠셉 마이어를 감싸지 못하게 하려는 수작인가?
‘어리군.’
그런 귀여운 협박이 먹히리라 생각하나?
[···뉴포트뉴스 조선소와 신성 왕국 제2 항모전단을 장악하려는 적의 시도는 실패했습니다.]덴 브라운의 눈썹이 살짝 움직였다.
뉴포트뉴스 조선소에는 제국에서 보낸 인력과 병력이 있었다. 신성 왕국과 한 척씩 나눠 갖기로 한 신형 항공모함이 건조 중인 곳.
그곳이 공격받았다고?
첨부된 사진 파일 속에는 처절한 현장 사진이 들어있었다.
[뉴포트뉴스 조선소의 신형 항공모함과 제2 항모전단을 장악하려는 시도가 실패로 끝난 만큼, 적들의 다음 목표는 제국이 될 것으로 예측됩니다.]‘······.’
[제국의 상층부를 장악한다면 제국의 손을 빌려 신성 왕국과의 전쟁을 계속할 수 있게 될 테니까요.]‘이런 식으로 견제하겠다는 건가?’
이건 사실 확인이 우선이었다. 저 사진이 정교한 CG라면? 특이점에 도달한 신성 왕국의 기술력이라면 사진 위조쯤은 일도 아닐 것이다.
‘설령 사실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야.’
건조가 거의 완료된 신형 항공모함이 남부 연맹에 넘어갔다고 한들 지금은 상관없었다. 겨울이기 때문이었다.
혹한의 겨울은 뉴포트뉴스 조선소 인근과 항구를 전부 얼려버렸다. 신형 항공모함을 진수해 가져갈 수 없는 상황이라는 이야기.
다시 말해 실질적으로 피해를 본 건 신성 왕국 뿐이었다. 그렇기에 덴 브라운은 기순이 보낸 문자와 사진을 견제용이라고 판단했다.
제국과 신성 왕국이 전쟁하도록 유도한다는 것도 마찬가지. 놈들이 제국의 상층부를 무슨 수로 장악한다는 건가?
식인귀의 전염력은 턱없이 낮아져서 사실상 감염확산은 없어졌다고 봐야 했다. 흡혈귀가 되는 조건도 까다로울 터.
식인귀나 흡혈귀가 되고 싶어도 쉽지 않은 판에, 설령 된다고 하더라도 상위 개체의 지배력에 종속된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다.
자유를 잃는데 자처해서 노예를 선택하는 자들이 있을까? 만에 하나 있다고 하더라도 극소수이리라.
[···2 항모전단 지휘관과 영관급 장교들이 식인귀로 변했습니다. 죠셉 마이어는 상대방을 식인귀로 만들 수 있는 수단이 있다고 보입니다.]사실일지도 몰랐지만, 아닐 수도 있었다.
기순이 보낸 문자를 신뢰하기엔 너무 일방적이었고 편의적인 부분이 많았다.
덴 브라운의 시선이 기순이 보낸 문자를 향했다.
“잠시 기다리라고 해.”
띠릭-
(삭제하시겠습니까?)
(YES.) (NO.)
잠시 시간이 흐르고 덴 브라운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띠릭-
(삭제되었습니다.)
‧
‧
‧
기순은 덴 브라운의 답변을 기다렸다.
“아- 미치겠네.”
읽었으면 읽었다. 아니면 아니다. 뭔가 반응 있어야 찔러 보기라도 할 텐데, 생으로 씹기로 했는지 반응이 없었다.
‘설마 죠셉 마이어와 만났나?’
마루 이야기대로라면 시체의 온기가 채 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만약 죠셉 마이어와 만나고 있다면 뉴포트뉴스 조선소에서 뉴욕까지 바로 갈 교통수단이 있다는 뜻이었다.
현재 제일 고속으로 이동할 수 있는 교통수단은 비행선. 그것도 혹한의 겨울이었으니, 제국의 신형 비행선을 보유하고 있다는 이야기.
‘아. 미치겠네. 제국이 애지중지 개발한 신형 비행선을 넘겨줄 정도였다고?’
어쩌면 남부 연맹의 죠셉 마이어와 덴 브라운의 제국은 진작 손을 잡고 있었던 것일지 몰랐다.
‘두 사람 모두 정보기관장이었지.’
버지니아 랭리와 국토안보국.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정보를 다루는 기관이었다. 윗선끼리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쪽으로 생각하다 보니, 뉴포트뉴스 조선소를 방어하는 거점 요새가 너무 쉽게 뚫린 감이 있었다.
‘요새 방어 시스템의 핵심이 인공지능이라는 정보가 샜다는 건데.’
기순은 부정적으로 흐르던 생각을 억지로 중립에 박았다.
아무리 그래도 대놓고 손을 잡지는 않았을 거다. 제국의 주적은 남부 연맹이었으니까.
근데 정말 그럴까?
특이점에 달한 신성 왕국의 기술력을 뺏기 위해 전략적으로 손을 잡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마루가 안다면 제국에 선제공격하자고 할 게 뻔했다.
‘어? 잠깐?’
기순의 고개가 까드득- 뻣뻣하게 옆으로 돌았다. 신성 왕국과 제국 유럽 대륙이 확대된 지도가 시야에 들어왔다.
붉고 파란 선으로 칠해진 지도엔 몬트리올에서 보낸 용병대가 스위스 방향으로 진격 중인 표시가 있었고. 프랑스 서부 해안가를 중심으로 난민들을 구조하고 있는 나루즈의 표시가 있었다.
프랑스 해안가에서 대서양을 건너는 화살표가 깜빡이는 모습. 나루즈가 대서양을 건너온다는 뜻이었다.
‘나루즈를 전부 불렀다? 왜? 어디로?’
뉴포트뉴스 조선소 방어로 부른 건 아니었다. 거기는 희연이와 유 이사 클론 부대가 갔으니까. 그럼 천 단위가 넘는 나루즈는 어디에 쓰려고?
남부 연맹 선제공격에서 부르지 않은 나루즈를 지금 부른 이유가 뭐지? 처음과는 달리 지금 나루즈는 전부 전투 경험이 있었다.
그러니까 전투 경험이 있는 전투 클론이 무려 천 단위로 있다는 이야기. 기순의 눈동자가 유럽과 뉴욕을 오갔다.
설마.
진짜.
레알.
아니겠지?
‘아니라고 말해줘.’
기순이 문자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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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는 전용 비행선으로 뉴욕을 향했다.
[야. 나루즈로 뭐하려고?]뭘 하긴.
[진짜 그건 아니지?]그게 뭔데?
[제국에서 깽판 치려는 건 아니지?]깽판은 무슨. 다 인과응보일 뿐.
[양면전선은 진짜 아니다. 남부 연맹도 텍사스만 무력화됐지, 다른 6개 주는 멀쩡하잖아.]남은 6개 다 합쳐도 텍사스 인구의 40% 정도인데 뭘 그렇게 쫄아.
[답 좀 해라. 진짜. 소원이다.]마루는 친구의 소원을 들어줬다.
[답.]······.
시공간을 건너 기순의 절규가 들리는 듯한 마루였다. 낄낄- 웃은 마루가 제대로 문자를 보냈다.
[죠셉 마이어는 무슨 일이 있든 잡아야 해.] [나루즈는 그래서 불렀고?] [어.] [제국이랑 전면전 할 생각이냐?] [난 아닌데, 제국이 죠셉 마이어를 끼고돌면 어쩔 수 없지.] [미친. 제국이랑 싸우겠다고? 지금? 실화냐?] [진정해. 전면전 하자는 건 아니니까. 죠셉 마이어랑 그 따까리 애들 죽이고 빠질 거다.] [아니 씨발. 왕님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죠셉 마이어가 어디에 있겠어요. 제국 의회, 총통관저. 최고급 호텔 이딴 데 있지 않겠어요? 나루즈랑 같이 뉴욕을 뒤집어 놓고 전면전 하자는 건 아니다? 왜 그러세요. 진짜.] [이번에 죠셉 마이어가 빠져나간다면 정말 위험해져. 알잖아. 게릴라가 얼마나 끔찍한 건지. 심지어 놈들은 식인귀를 만들 수 있다. 그게 제국과 신성 왕국에 퍼진다고 생각해봐.] [아니 잡자는 걸 반대하는 건 아닌데, 제국이랑 협상할 수도 있잖아.]제국과 협상이라. 좋은 말이긴 하다. 하지만 제국이 남부 연맹과 영국, 프랑스 운운하면서 협상하자고 했던 걸 생각하면 그리 좋을 건 없었다.
협상하자고 하면 무슨 조건을 달지 누가 알겠나? 핵융합 기술이나 양자컴퓨터 기술을 달라고 하면? 그걸 넘겨야 하나?
마루는 절대 그럴 수 없었다. 핵심 기술이 넘어가면 안전과 생존이 위협받기 때문이었다. 제국에 핵융합 기술과 양자컴퓨터 기술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다음에는 뭘 요구할까? 특이점에 도달한 인공지능? 뇌둥둥 정보 추출장치?
제국과 협력해야 할 일이 생길 때마다 정보를 요청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뭐든지 처음이 중요했다. 제국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기로 한 지금. 무리한 요구를 들어줘 가며 호구 잡힐 이유가 없었다.
[기순아 지금 죽여야 해. 죠셉 마이어가 뉴욕으로 갔다는 확신이 드는 지금.] [······.]잠시 뒤 기순이 느릿하게 문자를 보냈다.
[위험한 건 알지? 너를 잘 아는 덴 브라운과 제국이다. 분명히 너를 대비했을 거야. 그게 기계든 능력자든 뭐든지 간에.] [그래. 혹시 모르니까 들쥐와 까마귀, 늑대들 준비해.]기순의 한숨이 여기까지 들리는 느낌에 마루가 피식 웃었다.
[허드슨 강으로 바로 진입할 수 있게 준비해놓을 게.]시궁쥐에게 뉴욕이 먹힐 위험에 처했을 때, 들쥐들이 사용한 루트이자, 뉴욕에서 빠져나왔을 때 사용한 루트였다.
[어지간하면 덴 브라운 아재는 죽이지 마라. 그 아재 없으면 진짜 어떻게 될지 몰라.] [내가 무슨 백정이냐? 무턱대고 다 죽이게? 식인귀면 모를까 일반인은 안 죽여.]마루의 문자에 기순이 한숨을 폭 내쉬었다. 안 죽이긴, 총 쏘면 죽일 거잖아. 제발 덴 아재가 건드리지 않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캐나다 방면은 쥐어짤 대로 짜서 모조리 남부 연맹 텍사스 전선에 투입한 상황. 기순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전쟁 준비를 시작했다. 들쥐, 까마귀, 늑대를 중심으로 동물들이 몬트리올에 집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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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대를 원했는데, 덴 브라운은 자신을 제국 대회의장으로 불렀다. 그러니까 혼자 만나지 않겠다는 이야기.
거기에 대회의장으로 불렀다는 건, 제국 의회 의원들과 각부서장들이 있는 자리에서 이야기하자는 소리였다.
어떤 이야기가 나오건 가부(可否)를 그 자리에서 끝내겠다는 뜻이라고 봐야 했다. 상황이 예상과는 달리 돌아가도 죠셉 마이어는 무표정했다. 포커페이스에 느긋한 발걸음.
하지만 속은 그렇지 못했다. 뉴포트뉴스 조선소에 있는 제2 항모전단 사령관과의 연결이 끊어졌기 때문이었다.
신성 왕국 놈들이 공격했나? 그렇다면 공격을 알아챈 게 너무 빨랐다. 뉴포트뉴스 조선소에서 떠나자마자 놈들이 들이닥쳤다는 뜻이니까.
‘신성 왕국이 놈들이 알아챈 게 너무 빨라.’
비행선에 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위 개체들과의 연결이 우수수 끊겼다. 마치 집중 공격을 받은 것처럼.
더 이상한 점은 하위 개체들이 보낸 마지막 감정이 ‘공포.’와 ‘죽음.’이었다는 것이었다. 공포와 죽음을 심어주고 다니던 부하들이, ‘죽음의 공포’에 몸부림치다 죽었다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심지어 항모전단 사령관은 ‘안식.’을 느끼며 죽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끼이이익-
제국 대회의실 출입문이 열리자, 낯선 회의장이 내부가 보였다.
“하?”
죠셉 마이어의 무표정했던 얼굴이 살짝 구겨졌다.
제국 대회의실의 자리가 독립적인 방탄유리로 꼭꼭 가로막혀 있었다. 죠셉 마이어는 1인 독서실처럼 사방이 막힌 자리에 앉았다. 자리엔 물도 없이 종이컵만 덩그렇게 놓여있었다.
‘오셨습니까?’
‘미리 운을 떼어놨습니다.’
정신파를 건네는 몇몇 의원들과 관리들. 죠셉 마이어는 중앙의석에 앉은 덴 브라운을 바라봤다.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진작 이쪽으로 전향한 자들도 충분했고 여론전은 자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이유가 밝혀졌다.
덴 브라운이 자기 앞에 있는 종이컵을 들어 침을 탁 뱉곤 말했다.
[회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앞에 놓은 종이컵에 침을 뱉으시기 바랍니다.]덴 브라운은 침을 뱉은 종이컵을 모두가 보도록 들어 올렸다. 아무런 변화가 없는 모습. 그러니까 이 앞에 있는 종이컵은 식인귀 창궐 당시 썼던 식인귀 판별 키트라는 뜻?
대회의장이 적막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