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685)
러스트 [RUST]-685
마루가 칼질하던 초기를 떠올려 본다면, 그의 특기는 분명 기습(奇襲)이었다. 그리고 여러 차례 다양한 전장을 경험한 뒤엔 뒤치기 장인으로 거듭났다고 할까?
리퍼 슈트를 이용한 은신, 습격은 거의 달인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감각이 예민한 변이 괴수부터 어지간한 식인귀는 마루를 감지하지 못했다.
고위급 식인귀나 흡혈귀는 간혹 낌새를 알아차리기는 했으나, 마루가 선공을 시작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마찬가지. 기순이 있는 총독관저를 장악한 버지니아 잔당들은 마루가 자기들 곁으로 스며든 것을 모르고 있었다.
‘20명은 넘겠는데.’
죽이려면 쉽게 목을 벨 수 있었지만, 마루는 놈들을 피해 패닉룸으로 향했다. 지키고 있는 놈들을 죽이는 순간, 동료의 죽음을 알아채고 벌집을 쑤신 것처럼 발광할 테니까.
죽인다면 이놈들 지휘하는 대가리부터 잡아야 했다. 고위급 식인귀나 흡혈귀를 효과적으로 잡는 공식이 있다면 제일 높은 지위에 있는 것부터 잡는 것이었다.
‘저건···. 우리 무기 같은데?’
놈들이 들고 있는 장비는 신성 왕국의 무기였다. 독특한 모양의 12.7mm 총과 다양한 장비는 분명히 이쪽 무기였다.
‘경비병이 당했거나. 아니면 군수창고가 털렸나.’
어느 쪽이든 좋지 않았다. 당할 수는 있지만, 당했다는 게 위로 보고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무엇보다 보조 인공지능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게 제일 큰 문제.
놈들이 인공지능과 센서를 교란하는 능력이나 기술을 확보했다면 지금과 같은 식의 소규모 침투를 막기 어려웠다.
마루는 떠오르는 생각을 잠시 뒤로 미루고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에 발을··· 디디지 않았다. 두근두근- 계단으로 내려가기 직전 느껴진 감각 때문이었다.
‘부비트랩?’
아니면 은신하고 있는 놈들이 있다는 뜻이겠지.
부웅-
마루는 계단을 딛지 않고 점프했다. 부엉이가 소리 없이 날갯짓하듯 내려선 계단의 끝에는 패닉 룸이 있었다.
구멍이 뚫린 문짝과 채찍을 들고 있는 흡혈귀. 그리고 그 뒤를 지켜선 호위까지. 호위는 모두 둘. 하나는 계단 쪽을 보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채찍을 들고 있는 놈 옆에서 언제든 뛰쳐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촤리리리릭!!!
채찍이 살아있는 것처럼 비틀리며 쏘아졌다.
?
물리법칙을 거스른 공격.
대체로 채찍을 휘두른다면 반동이나 원심력을 이용하는 법인데 지금 저 공격은 그런 방식에서 벗어난 공격이었다.
‘능력?’
마루의 시선이 둥그렇게 뚫린 문짝으로 향했다. 붉은 기운이 감도는 액체가 문짝을 녹이고 있었다.
‘산성?’
이것들 대체 뭐야?
가가가가가가각!
뱀처럼 움직인 채찍이 패닉룸에서 저항하고 있는 여자의 칼날을 휘감았다. 모두의 신경이 그쪽에 쏠려있을 때. 마루가 움직였다.
휘릭!
스틸레토 2자루가 계단을 감시하고 있던 놈을 향해 날아들었다. 사각에서 날린 스틸레토였지만, 놈은 비상식적인 반사신경으로 하나를 쳐냈다.
팅!
쳐낸 팔 사이로 깊숙이 들어가는 2번째 스틸레토. 꼬리에 꼬리를 문 것처럼 들어간 2번째 스틸레토가 놈의 머리통에 박혔다.
“스븝-!”
머리통에 스틸레토의 손잡이가 돋아난 채 비척비척 뒷걸음질 치던 놈이 벽에 등이 닿자, 스르륵 무너져 내리는 모습.
?
!!!
채찍을 휘두르던 놈 곁에 있던 호위의 고개가 돌아가는 순간, 뒤를 노리고 있던 마루의 이클립스가 길게 선을 그었다.
툭- 투둑-
잘린 머리통 두 개가 나란히 바닥을 굴렀다.
[어이 괜찮냐?]구멍 뚫린 안쪽에서 긴장이 풀어진 소리가 새어 나왔다.
‧
‧
‧
기순을 구조했으니, 바로 총독관저 곳곳에 있는 놈들을 조질 생각인 마루였다.
“내가 나가고 나면 계단 폭파해라.”
“계단을 폭파하라고?”
실화냐는 기순의 표정에 마루가 부연 설명했다.
“놈들이 산성인지 뭔지 모를 거로 문짝 뚫었잖냐. 그러니까 계단실을 통째로 무너뜨리는 게 좋아.”
어설프게 바리케이드를 쳐 봐야 그냥 녹이고 들어올 테니까.
“무너진 건 나중에 굴착 드론으로 뚫고?”
마루가 남은 놈들 정리하는 동안, 혹시라도 인질극 당하지 않으려면 그게 효과적이긴 했다.
‧
‧
‧
쿠르르르릉-
계단을 무너뜨린 기순이 골머리를 끙끙 앓는 여자에게 말했다.
“그냥 뒀다가 블라디 아크 타워 가서 수리하는 게 낫지 않을까?”
채찍과 힘겨루기를 하면서 무리가 갔는지, 소음과 진동이 생긴 기계 팔을 분해하고 있는 여자였다.
“그러기 전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합니까. 장비는 미리미리 손질해서 최소한 써먹을 수 있게 해둬야 하는 겁니다.”
솔직히 외팔이 여자는 싱그러운 건강미가 넘치는 스타일이었다. 미인계를 쓰려고 했다가 팔 하나 잘린 뒤로 외곽지역을 전전하다 이제는 기순의 전담 경호원이 된 여자.
팔이 잘린 원한을 잊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 그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기순은 묵묵하게 최선을 다하는 여자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공적 쌓으면 잘린 팔 다시 회복시켜 준다고 들었는데.”
“그러면 좋겠지만, 본래 팔로 돌아가면 전투력이 급감할 겁니다.”
조금 전만 하더라도 기계 팔이 아니었으면 손목이 돌아갔을 것이다. 채찍으로 칼날을 엮어 놓고 뒤틀었을 때의 힘을 떠올린 여자가 담담하게 말했다.
“능력이 뭐였지?”
“신속. 가속 계열입니다.”
물리법칙을 벗어난 채찍을 중간에 쳐냈을 만큼 반응 속도가 좋긴 했다.
“······.”
“······.”
짧게 대답하곤 기계 팔을 고치는 데 집중하는 그녀. 기순은 문득 이 고요함의 의미가 궁금해졌다.
살짝 능력을 끌어올리자, 서서히 그녀의 주변에서 흐릿하게 색이 떠올랐다. 감정을 색으로 표현하는 기순의 능력이 그녀의 상황을 알려줬다.
푸른색. 이성적인 색.
기계 팔을 고치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픽- 눈에 힘을 풀곤 웃는 기순.
대체 뭘 원했던 거지?
그런 기순에게 여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남부 연맹에 핵 공격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사실이야.”
파란색 잉크에 붉은 잉크를 섞은 것처럼 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감정이 퍼지기 시작했다는 뜻.
아- 그렇지.
잠시 잊고 있었지만, 그녀는 마루를 허니 트랩(honey trap)으로 엮기 위해 온 여자였다. 빵순이도 마찬가지였고.
‘둘 다 남쪽 군부와 관계된 사람이었지.’
빵순이 로아나 블랑은 의도하지 않게 테러에 엮여 구금됐다. 놈들이 익명으로 로아나 블랑에게 접근해 테러에 이용하려고 했던 것.
놈들이 익명으로 접근했다는 건 기순을 호위하고 있는 에릴린 뉴먼에게도 언제든 다시 손을 뻗을지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기순은 칼잡이 여자의 색을 계속 파악했다. 핵을 떨어뜨렸다는 이야기에 급속하게 붉은 쪽으로 변하던 색이 다시 서서히 푸른색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꼭 핵 공격을 해야만 했습니까?”
“먼저 핵을 쏘지 않았다면 이쪽이 위험했으니까.”
따지고 보면 기순은 핵 선제공격에 반대하는 쪽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마루의 결단이 맞았다. 바로 핵을 쓰지 않고 주저하며 시간을 보냈다면 더 위험해졌을 테니.
“······.”
“······.”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조용함을 의식하기 시작하자, 어쩐지 계속 신경이 쓰이는 기순이었다.
“그. 고맙다.”
본래 기순이라면 ‘호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식으로 말했을 텐데. 어쩐지 ‘고맙다.’라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담백하게 대답하는 그녀였다. 슬쩍 궁금한 점을 물어볼까 어쩔까 하는 기순에게 통신이 들어왔다.
[다 정리했다.]“······.”
이렇게 빨리?
기순은 어쩐지 아쉬웠다.
갇힌 김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했더니 마루가 도와주지 않았다.
[굴착 드론으로 뚫을 테니까 바로 올라와.]“그래.”
낮은 진동음과 함께 굴착이 시작됐다.
‧
‧
‧
캐나다 총독 기순을 노리는 공격은 몇 차례 더 있었다.
‘한 번 막았으니, 이제 안 오겠지.’ 하는 생각의 틈을 뚫고 들어온 공격이었지만, 마루의 찝찝함 예보를 피할 수는 없었다.
‘두 번 공격해서, 두 번 다 막혔는데 설마 또 공격하겠어?’
마치 심리의 틈을 뚫겠다는 것처럼 재차 침투한 놈들은 대기하고 있던 마루의 칼질에 붉은 얼룩으로 변할 따름이었다.
“설마 또 오지는 않겠지?”
[느낌이 없는 걸 보니까 포기한 거 같다.]“아우 지긋지긋해라. 그럼 이제 디트로이트로 가는 건가?”
[이왕 온 김에 이쪽 병사들과 용병들도 한 번 보고 가려고.]마루의 말에 기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리카는? 에리카도 불렀냐?”
[어. 지금 오고 있다.]총독관저를 노린 놈들이 신성 왕국의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다는 건 그냥 지나갈 일이 아니었다. 반드시 막아야 할 구멍.
“그나저나 끈질기네. 그냥 한 번에 싹 없앴으면 좋겠는데.”
[···그건 힘들 것 같다.]죠셉 마이어 회장을 죽였음에도 놈들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일반적인 식인귀, 흡혈귀들은 머리를 자르면 아래에 있던 놈들이 서로 머리가 되려고 싸우는 데 반해, 버지니아 놈들은 서로 머리라고 인정했는지, 싸우지 않고 각자 따로 놀기 시작했다.
“참 이상한 놈들이네. 머리를 잘랐더니 머리가 더 많이 생겼다는 거잖아.”
그렇게 생각하면 계속된 총독관저 습격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해볼 만하다고 판단한 머리들이 독립적으로 습격했다고 보면 되니까.
“그럼 이 새끼들 머리 숫자 늘어난 만큼 각자 제멋대로 테러할 수도 있다는 소리잖아.”
[아마도.]마루의 대답에 저절로 욕이 나오는 기순이었다.
디트로이트는 철통방어였으니, 신성 왕국을 노린 테러가 터진다면 어디서 터지겠나?
국경선 길어서 드나들기 좋고, 잡기만 하면 영양가 만점인 총독이 서식하는 캐나다 아니겠는가?
시발.
“정보 뽑아서 아지트 찾자. 어디에 숨어있든 찾아서 싹 뿌리를 뽑자.”
[해봤는데 이 새끼들 뇌에 뭔 장치를 했는지, 뇌세포가 전부 녹아내렸더라.]그러니까 산채로 생포해야 한다는 건데. 그게 쉽지 않았다.
마루가 쉽게 쉽게 잡는 것처럼 보여도 따지고 보면 그게 아니었다. 일격필살의 칼질이 아니라면 놈들은 특유의 재생력과 신체능력으로 반격했다.
그렇지 않아도 신체능력이 그리 크지 않은 마루인지라, 장기전으로 들어가면 쉽지 않았다. 특히 산성 체액 특성인 놈들은 더 그랬다.
팔다리를 잘라 생포하겠다고 하는 순간, 최소한 3번 이상의 칼질이 필요했고 이는 산성 체액에 3번 이상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클립스는 산성에 약했고, 새로 챙긴 스틸레토 2자루도 마찬가지인지라 생포하겠다고 교전이 길어지면 부담이 커졌다.
[그것도 그런데, 능력이 있는 흡혈귀가 있다는 게 문제다.]“채찍?”
[어- 채찍도 그렇지만 산성 체액을 능력으로 본다면 확실히 위험하지.]식인귀와 흡혈귀는 능력을 각성할 수 없다는 가설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가설이 유효하다면 능력 각성자가 흡혈귀가 됐다는 뜻인데. 몬트리올에서 그럴 만한 가닥이 있는 세력은 하나뿐이었다.
“용병들이냐?”
기순이 중간단계를 생략하고 바로 결론으로 나갔다.
[그러니까 그걸 확인해 봐야지.]그러려고 사이코메트리 에리카를 부른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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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총독관저.
작은 폭발음과 함께 전신에 구멍이 뚫린 흡혈귀가 길바닥으로 튕겨 나왔다.
치이이익!
빨간 핏방울이 두껍게 쌓인 눈과 얼음을 녹이기 시작했다.
[항복하라.]중무장한 신형 클론이 엉금엉금 기어가는 흡혈귀에게 경고했지만, 흡혈귀는 들리지 않는 것처럼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투다다다앙!
머리통이 수박 터지듯 터지며 사방으로 터진 조각들이 사방을 녹여댔다.
[클리어.]기순이 테러에 시달린 것처럼 덴 브라운 총통도 흡혈귀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었다.
죠셉 마이어라는 구심점이 있었을 때와는 달리, 각기 머리가 된 흡혈귀들이 단숨에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한 트로피로 기순과 덴 브라운을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침입자 제거했습니다.] [산성 체액으로 방벽과 도로에 구멍이 뚫렸습니다.]오늘만 벌써 3번째 침입.
그나마 다행인 것이 신성 왕국에서 정신파 차단 기술과 장비를 보내왔다는 것. 이를 통해 지배력에 흔들린 자들을 정상화할 수 있었고, 흡혈귀의 침투를 막을 수 있었다.
“신성 왕국과 이야기를 해봐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