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687)
러스트 [RUST]-687
모니터로 상황을 확인하던 기순이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우리 빵순이 인기 어마어마하네.”
문자와 사진 정도만 올릴 수 있는 조악한 SNS가 폭주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초 단위로 올라가는 문자들.
“어이가 없군. 다들 이러고 노는 건가? 이 시간에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어?”
신성 왕국은 인구가 적었다. 400만에서 많아도 500만은 넘지 않을 상황. 미시간주(州)만 하더라도 대한민국보다 2.5배나 컸다.
거기에 캐나다 중부와 동부를 합하면 엄청나게 넓은 면적. 그렇게 넓은 면적에 고작 400만에서 500만. 뉴욕시가 1천만이 넘는 인구인 것을 생각하면, 신성 왕국의 인력 부족은 끔찍할 정도였다.
그런데 한참 일 하고 있을 시간에 빵순이가 올린 근황 문자에 이렇게나 많은 인파가 몰릴 줄 전혀 몰랐다.
“겨울이라서 그렇지 뭐.”
“겨울 핑계 대지 말고. 지난 겨울이라면 모를까 이번에는 아니잖아.”
기순이 겨울 탓을 해보려고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혹한기 대비를 충분히 했기 때문.
핵융합 발전이 가능해지면서 디트로이트는 거의 무한대의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됐고, 캐나다의 주요 도시들은 디트로이트에서 사용하던 모듈 원전을 넘겨받아 나름 풍족한 전력 사용이 가능했다.
“먹을 것 많아, 겨울에 따뜻해, 치안도 좋아. 클럽도 매일 열고 있어 그런데 왜들 빵순이 같은 인플루언서(influencer)만 구경하고 있지? 그런 애들 노는 것 구경하는 것보다 자기가 직접 경험하는 게 좋지 않나?”
은근히 신성 왕국 시민에게 불만을 표출하는 마루였다. 기순의 실눈이 실룩였다.
“네가 할 말이냐? 시민이 누굴 본받겠어. 왕님 아니겠어? 왕님이 그쪽으로는 관심도 없으니까 다들 왕님 따라서 그러는 거잖아.”
사람들이 불능처럼 변한 이유가 너 때문이라고 톡 쏘는 기순이었다.
“그게 무슨 개 소리야? 내가 연애를 하지 않으니까 사람들도 안 한다고? 그래서 너도 그러는 거냐?”
“···왕님 되더니 양심이 가출했구나. 나 일하는 거 못 봤어? 내가 무슨 시간이 있다고 연애야.”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 런런, 파리 찍고 온 뒤로 돌아가는 꼴을 봐라.”
남부 연맹과 제국이 협박, 상호불가침 조약 해제, 선전포고 후 선제 핵 타격 그리고 식인귀 흡혈귀 토벌, 버지니아 랭리 본사 타격 그리고 지금은 버지니아 잔당과 대테러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인정.”
두 사람은 동시에 입을 꾹 다물었다.
“······”
“······”
신성 왕국 지휘부는 정말 건전(?)하게 갈리고 있었다. 왕을 비롯해 각 부서를 맡은 사람들 모두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고 있었다.
그렇게 살기 좋은 신성 왕국을 만들었더니, 왜 다들 연애도 하지 않고 애도 안 낳는 건데? 심지어 인공지능이 관리하지 않는 곳에서는 생산성까지 소폭 감소하고 있었다.
“일단 지금은 놈들부터 잡고 보자.”
“그래.”
빵순이를 이용해 꼬리를 잡고, 죠셉 마이어의 기억 앰풀을 써서 거점을 날린다. 놈들의 보급 거점을 한 번 날려버리기만 하면, 최소한 신성 왕국 영역에서는 테러 걱정이 많이 줄 터.
다른 문제는 일단 놈들부터 잡고 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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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아나 블랑은 SNS를 다룰 줄 알았다.
“특별사면이 아니라니까요.”
우선 갑작스럽게 소식이 끊긴 이유를 의심하는 분탕 종자들부터 처리해야 했다. 예전 같았으면 매니저가 알아서 이런 애들은 차단하고 정리했겠지만, 지금은 그녀 혼자서 해야 했다.
[약 때문에 빵에 들어갔던 건 아닐까?] [맞음. 그거 과자에 약 넣고 유통하다가 걸린 거.]분탕 새끼들이 약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아니라니까요. 제국에 특사로 가게 됐습니다.”
그녀는 재빨리 공문서를 사진으로 찍어 올렸다.
[봤쥬. 다들 봤쥬.] [이럴 줄 알았음. 증거 나오니까 바로 런 하는 거.] [분명히 이거 주작이니 어쩌니 하는 놈 나온다.] [사진이 선명하지 않음] [이거 봐라. 나왔지.] [날짜랑 사인까지 붙였는데.]로아나 블랑은 순식간에 달아오른 문자방을 보며 흐뭇했다.
“신성 왕국이 다시 제국에 교역소를 설치하려고 합니다.”
그녀가 자연스럽게 정보를 풀기 시작했다.
“···그래서 제가 문화 센터 강사로 가기로 했어요.”
기순과 덴 브라운을 공격하던 움직임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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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총통관저.
덴 브라운이 작전 계획서를 내려놓았다.
“로아나 블랑을 이용한 유인 작전은 확실히 효과가 있기는 할 걸세.”
모니터 위에 블라디마루 칼린이 보낸 문자가 떠올랐다.
[어느 정도까지 쳐낼 수 있느냐가 문제죠.]“그것도 문제지만, 작전을 세울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게 하나 있지.”
덴 브라운이 ‘반드시’라고 강조한 적이 거의 없었기에 마루도 진지하게 들었다.
“놈들을 하나의 단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하나의 머리가 잘리면서 여러 개의 머리가 생긴 괴물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하는 게 좋아.”
죠셉 마이어라는 구심점이 사라진 지금, 버지니아 랭리는 머리가 여럿인 괴물이 됐다.
분화된 머리들이 얼마나 많이 낚일지도 중요했지만, 반대로 낚이지 않은 머리들이 뭘 할지도 중요하다는 덴 브라운의 이야기.
[일리 있는 말입니다.]그래서 마루도 그에 대비하고 있었다. 김 양을 호출해 기순의 호위를 부탁했다. 근거리에는 기계 팔 여자가 있으니, 그 둘이라면 기순을 보호하는 데 문제없으리라.
“아마 자연스럽게 둘이나 셋으로 나뉠 걸 세.”
[그렇겠죠.]신성 왕국 총독 기순을 노리는 쪽. 제국 교역소에 있는 로아나 블랑을 작업하려는 쪽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국 총통 덴 브라운에게 공사를 치려고 하는 쪽으로.
최악의 상황은 놈들이 뭉쳐서 한쪽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중위급 이상 흡혈귀 수십과 중상위 식인귀 수십이 한 곳만 노린다면? 마루가 없는 쪽은 버틸 수 없다고 봐야 했다.
그것을 알기에 마루는 비밀리에 제국에 들어왔다. 로아나 블랑이나 덴 브라운에게 몰릴 경우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로아나 블랑은 친위대와 나루즈가 덴 브라운은 신형 클론들이 호위하고 있었지만, 상대방은 최소 중위급 흡혈귀를 중심으로 한 중상위 식인귀들인지라 예상 밖의 상황이 생겨도 이상할 게 없었다.
‘산성 체액이라니.’
흡혈귀들이 그딴 걸 쓸 수 있게 될 줄 아무도 몰랐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산성 체액을 쓸 수 있는 숫자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
흡혈귀들 전부 디폴트로 산성 체액을 사용할 수 있었다면, 제국의 도시들은 전부 흡혈귀에게 당했으리라. 남부 연맹의 텍사스주(州)에서 토벌 중인 신성 왕국에서도 막대한 사상자가 나왔을 테고.
“어쩌면 어느 한쪽을 노리는 것처럼 우리를 낚고, 다른 곳을 공략하고 할 가능성도 있지.”
[동의합니다.]덴 브라운의 이야기에 마루는 말을 아꼈다.
‘제발 좀. 긁지 말자.’
‘좋게좋게 가면 좋겠다.’
‘깜빡이 미리 켜고.’
관대한 마루는 기순의 애원을 들어줬다. 덴 브라운 총통의 이야기를 넓은 마음으로 받아주고 있던 것. 연합작전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도중에 덴 브라운이 운을 뗐다.
“···중요한 것은 기동성이고 조심해야 할 것은 오발 사고라고 보네. 그래서 말인데 제국과 신성 왕국 모두 아군식별장치를 넣으면 어떻겠나?”
신성 왕국의 나루즈든 제국의 신형 클론이든 주력은 엑소슈트로 무장하고 있었다. 이들이 서로에게 총질하는 오발 사고가 터지지 않도록 아군식별장치를 나누자는 이야기였다.
아군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면, 확실히 이점이 많았다.
“오발 사고가 줄 뿐 아니라, 포위, 기습, 지원 사격을 할 때도 효과가 좋을 테니 말이야.”
덴 브라운의 말에 마루는 미묘한 느낌이 들었다. 찝찝한 건 아니고 미묘한 느낌. 지금 상대해야 하는 적은 흡혈귀와 식인귀였다.
신성 왕국의 나루즈든 제국의 신형 클론이든 1:1로 잡긴 힘든 적이었다. 압도적인 물량과 함정, 기습으로 놈들을 잡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정찰이 중요했다.
문제는 정찰병이 놈들에게 잡혔을 경우였다. 아군식별 장치가 역으로 아군의 정보를 그대로 노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제국과 아군식별 장치를 통일할 이유가 없어.’
신성 왕국 엑소슈트는 보조 인공지능을 통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다. 근처에 있다면 자연스럽게 식별이 되고 있다는 의미.
‘느낌도 미묘한데 굳이 아군식별장치니 뭐니 그럴 필요는 없겠지.’
마루는 덴 브라운의 주장을 거절했다.
“연합작전을 하지 않겠다는 건가?”
[아군식별장치를 나눠야만 연합작전이 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신성 왕국은 교역소를, 제국은 총독관저를 중심으로 방어하기로 하고, 위험한 상황이 온다면 각자 예비대를 보내 지원하기로 하지요.]어차피 지원부대가 간다면 적의 후방을 공격할 테니 오발 사고가 날 확률이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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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시궁쥐가 휩쓸고 간 폐허 구석에 모인 자들이 장비를 나누고 있었다.
“이건 함정입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나?”
“······.”
“제국에서 나온 정보였다면 확실히 함정이었겠지만. 신성 왕국에서 나온 정보라서 확률은 반반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반반이라.
“그랜든 팀에서는 교역소는 자기들 관할 구역이니 접근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랜든이?”
“예.”
“···우리는 손 떼겠다고 해. 대신 언제 작업을 시작할지 작업 시간을 알려달라고 해.”
로아나 블랑을 작업하면 모든 시선이 그쪽으로 쏠릴 터. 그 틈을 타 덴 브라운을 공략하면 어떨까?
아니, 이렇게 생각하는 놈들이 분명 있을 거다. 그러니까 덴 브라운을 노리는 경쟁률은 높겠지, 그렇다면 오히려 지금 작업해야 할 놈들은 제국 의원과 행정부 관료 그리고 군부였다.
“18시 22분에 작업 시작한답니다.”
혹한의 겨울. 오후 6시면 어두웠다. 리퍼 슈트의 미세한 일렁임까지 감춰지는 시간.
“우리는 뉴욕 방위군 사령관을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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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들이 총통관저를 공격하기 시작했네.]요란스럽게 공격한 것과는 달리 적들의 숫자가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는 내용. 덴 브라운의 문자를 확인한 마루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교역소 상황은 어떻지?]마루의 통신에 돌고래 음파가 터졌다.
[꺄아아아아아악!] [오라버닝이닷!] [왕님의 목소리!] [미친년들아 조용히 해.] [너희들 때문에 왕님이 문자로 하시면 어떻게 하려고.]순식간에 조용해지는 근거리 통신망.
[로아나 블랑을 노리는 적들의 숫자는 대략 15~17명 정도입니다앗-] [적들의 지휘권이나 명령권이 통일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ㅇ-] [현재 적 생포 2명, 사살 7명이요.]쉽지 않으리라 예상한 것과는 달리, 교역소 방어는 굉장히 수월하게 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덴 브라운이 긴급 지원을 요청했다.
[놈들이 군부를 노렸어!]군부만 노린 게 아니었다. 덴 브라운 총통과 로아나 블랑을 노릴 것이라는 예측과는 달리, 놈들은 제국 의원과 행정 관료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젠장. 감이 오지 않았어.’
신성 왕국이 위험한 사건이 아니라서 그런지, 마루를 위협할 정도의 사태가 아니라서 그런지 위기 감각이 뜨지 않고 있었다.
마루는 즉시 방위군 진지를 향해 내달렸다.
어둑한 시간. 하얀 눈에 반쯤 잠긴 가로등이 도로를 알려주고 있었다.
‘놈들이 미쳤나?’
방위군이 아무리 만만하다고 한들 군대는 군대였다. 심지어 군 주둔지에 들어가다니 자살하려고 하나?
정신파 차단장치와 차단 기술을 알려줬으니, 지배력이나 정신파로 흔드는 게 먹히지 않았을 텐데.
두근-
마루의 느낌이 이상함을 알려왔다.
동시에 ‘만 단위가 넘는 병력에 정신파 차단 헬멧을 전부 지급할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두근-
신형 클론에는 전부 지급됐겠지만, 일반 병사들에게는?
두근- 두근-
그리고 멀리 주둔지 방향에서 총성과 폭음이 터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