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69)
러스트 [RUST]-69
큐슈 남부 해역. 카타마란이 돛을 활짝 펴고 속도를 높였다.
뛰어봐야 8~10노트(시속 15~18km)였지만, 그래도 열심히 노력하는 중이었다. 돛으로 뽑을 수 있는 속도는 전부 뽑은 상황. 엔진까지 최대로 돌리면 해류와 바람의 상황에 따라 20노트(37) 넘게 갈 수 있겠지만, 야간 항행을 엔진으로 돌리는 상황인지라 기름을 아껴야 했다. 낯에는 돛으로, 밤에는 엔진으로.
‘인근 항구엔 들어가지 못할 가능성이 커.’
기순은 상황을 곱씹었다. 어차피 중간에 기항하지 않고 다이렉트로 도쿄만으로 갈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주 넉넉한 건 아니지만, 식량이나 연료는 아끼면 가능했다. 낮에 바람을 타고 최대한 이동해야겠다. 기순은 그렇게 계획을 잡았다.
삑-
삐익-
삑삑삑삑-
레이더에 고속으로 접근하는 함선이 잡혔다. 그것도 한 척이 아니라 두 척.
레이더 영상으로 짐작한 크기로 보면 길이 50m 정도의 고속함. 50m짜리 고깃배가 있을 리 없고, 있다고 하더라도 고깃배라면 30노트(55km) 이상으로 다닐 리 없으니. 두 척 모두 고속 순시선이라는 소리였다.
“씨발. 하나를 자르니까 둘이 되어 돌아왔네. 히드라냐?”
고속 순시선 하나를 치웠더니, 둘이 되어 돌아오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또 2척이랑 드잡이질할 상황. 대체 뭐가 문제였나? 2척을 치우면 다음엔? 진짜 어렵네.
기순이 상황을 설명하자, 자칭 사장이 다리를 꼬고 앉으며 대답했다.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처음에 제가 뭐라 그랬죠? 전파방해하고 처리하는 게 좋겠다고 했었죠?”
“안쪽으로 들어와서 전파방해 상황인 걸 저쪽에서 알고, 와락 달려들어 20mm 발칸 이쪽으로 긁어버리고 시작하는 건 피하자고 했었잖아요. 지금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사장과 기순이 한 번씩 주고받았지만, 답이 뾰족하지 않았다. 전에 고속 순시선을 잡은 것도 쉽게 잡은 것 같지만, 셋 가운데 하나만 없었어도 힘들었다.
광학 은신 장비 그리고 시속 80km 이상의 속도로 고속기동 가능한 제트스키. 마지막으로 제트스키를 타면서 폭탄을 원하는 곳에 던질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 이 셋 가운데 하나만 없었더라도 고속 순시선을 그렇게 쉽게 제압할 순 없었다.
“순시선을 잡아 보니까 어때요? 한 사람이 하나씩 잡을 수 있겠어요?”
“잡는 게 문제가 아니라, 순시선을 잡고 난 뒤가 문제 아니겠습니까? 계속 저렇게 몰려오다 항공자위대나 해상 자위대가 오면 그걸로 끝이라고요.”
“항공자위대는 오기 힘들 겁니다. 화산 폭발로 인해 큐슈 전 지역이 항공 제한 구역으로 설정됐거든요.”
“그건 다행이네요. 해상 자위대는 올까요?”
“해상 자위대가 오기 전에 떠야지요. 지금이라도 엔진을 돌려서 최대한 빨리 이동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지금 속도를 올리면 저쪽에서 정말 의심할 겁니다. 바로 추격하면서 공격 준비를 하겠죠. 그리고 바로 나포하려고 할 가능성이 큽니다. 겉보기로 보면 이 배랑 순시선이 교전한 것처럼 보일 테니까요.”
마루가 기순과 사장의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잠깐만. 일단 정리하죠. 지금 오고 있는 순시선을 처리해야 합니까? 아니면 처리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있는 겁니까? 다른 거 다 떠나서 해야 하냐? 하지 않아도 방법이 있냐? 이것부터 가죠.”
기순과 사장은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처리해야죠.”
“피할 수 있습니다.”
사장과 기순이 동시에 말하고는 서로를 쳐다봤다. 시발- 마루는 고개를 저었다.
“좋아. 기순아,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 그것부터 설명해봐. 어차피 네가 이해시키지 못하면 처리하는 방법뿐이니까.”
“중국을 이용하는 거야.”
“중국을?”
“큐슈 남부 지역 해상은 중국과 영토분쟁 지역이라, 고속 순시선은 항상 중국 순시선과 마찰에 대비한다고 들었어. 그러니까 우리가 이대로 쭉 중국과 일본 경계수역을 타고 이동하면 중국과의 마찰을 생각해서 추격을 포기할 가능성이 커.”
기순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사장이 즉시 반대했다.
“현재 상황이 일반적인 상황이면 그렇겠죠. 일본 정부가 살아있다거나, 해상 자위대나 해상보안청이 제 기능을 하고 있다면 당연히 그랬을 겁니다. 중앙에서 지시가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거나, 중앙의 명령을 수행하면 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중앙이 무너진 상태. 추격을 포기하면 그 책임을 누가 지죠? 책임소재가 중앙이 아닌 자신들이 되는 데 그걸 선택할 리 없습니다.”
“아니 책임지기 싫다고 무조건 추격한다고요? 그게 정상입니까?”
“지금 책임은 단순히 그냥 책임이 아니니까요. 고속 순시선이 격침됐다. 누가 그랬냐? 정체불명의 적이다. 그럼 그 적이 누굴까? 큐슈 남부 해역이니 한국은 아닐 테고, 일본이 재난으로 힘들 때 막 갈 수 있는 나라는 어디냐? 하필 침몰 지역도 큐슈 본토에서 떨어진 남방해역. 그렇다면 중국이겠지?”
“그럼 지금처럼 일본 본토가 힘든 상황이라면 더욱 추격을 중지하지 않겠습니까?”
기순의 반론에 사장이 코웃음 쳤다.
“정말. 모르는군요.”
“뭘 모른다는 겁니까?”
“됐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중국해역으로 가려고 한다면 고속 순시선들은 최대속도를 내서라도 달려들 겁니다. 아마 발칸포의 유효사거리에 닿는 순간, 형식적으로 멈추라고 해놓고는 바로 공격해서 벌집을 만들고 시작할걸요. 죽은 자는 중국이 될 테니까요.”
“아니 사장님. 이해되게 좀 설명을 해주셔야지요. 죽은 자가 중국이 된다니요. 이거 샬롯 그룹의 배 아닙니까? 사장님이 타고 있다고 전문 보내면 되는 일 아닙니까?”
“그 똑똑한 머리로 생각을 해보세요. 전 분명히 말했습니다. 어떤 방법을 쓰든 추격해오는 고속 순시선을 처리하고, 피해야 한다고.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어요. 고속 순시선을 처리하지 않고 중국 쪽으로 간다고 결정할 거라면 저와 경호원은 제트스키를 타고 빠지도록 하죠. 여기 있다가는 죽을 테니까요.”
“아니 이유를 좀 설명해달라니까 그냥 빠지신다고요? 그럼 경호 계약은 해지 되는 겁니까?”
기순의 말에 사장이 웃었다.
“그렇게 그게 불만이었다면 잘됐네요. 순시선을 처리하지 않고 중국 쪽으로 간다고 결정한다면 경호 계약은 해지하도록 하죠. 열심히 해보세요. 5분 안에 결론 내지 못하면 저와 경호원은 빠집니다.”
사장은 5분이라는 말을 반복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정말 빠질 생각이었다. 기순은 ‘씨발 뭔 생각이야?’를 반복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5분. 뭔가를 판단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 하물며 여러 목숨이 달린 상황이라면 더욱 그랬다. 사실 따지고 보면 기회긴 했다. 마루가 안전하게 마음껏 힘을 쓰려면 중화제가 더 필요하긴 했지만, 저번에 힘을 쓴 걸 보면 그렇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적당히 조절할 수 있다면 지금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어차피 중화제 꽂고 칼질하는 인생을 살 거 아니지 않은가? 경호한다고 한 뒤로 교전만 3번이었다. 지금 오고 있는 순시선도 사장을 내세우면 교전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식별번호를 확인하면 샬롯 그룹의 배로 나온다. 무전을 교환하면 호텔 샬롯 사장이 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쏜다고? 샬롯 그룹이 일본 그룹이지만 한국에서도 지분이 상당한 그룹이었다. 그런데 그냥 쏜다고?
이 배가 중국과 관련된 배가 되면 무슨 이익이 생기지? 중국과 분쟁이 생길 텐데? 일본 본토가 재난으로 지랄 난 상황에서 중국이랑 분쟁? 미쳤나? 기순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좋아. 일단 통신 요청을 한다. 해적에게 공격당했고, 해적들을 피해서 이동 중이라고. 먼저 통신을 보내는 거야.”
“저쪽에서 이쪽으로 승선해서 확인하겠다고 하면.”
“일단 승선을 허락해야지.”
“그러다 우리 물건 걸리면?”
“식량이나 그런 것들은 구호품이라고 하고, 도끼나 창, 중국식 박도 같은 냉병기는 바다에 던지자. 어차피 네가 쓰지도 않는 거 싣고 있을 필요가 없잖아. 총이랑 폭발물, 금괴랑 돈은 배 아래 깊이 넣었으니까 까뒤집지 않는 이상, 별문제 없을 거고.”
‘그래도 박도는 좀. 그것도 칼인데.’ 마루의 눈빛을 모르쇠 하는 기순이었다.
“그럼, 여기서 사장이랑 갈라서는 거냐?”
“그게 낫겠지. 갈라선다고 완전히 갈라서는 건 아니니까. 약속했잖아. 우리가 호텔 샬롯 쪽에 먼저 칼을 들이밀지는 않기로 했던 건 유효하니까. 지금 갈라서는 건 경호 문제일 뿐이야. 그리고 경호에 관해서 이견이 있을 뿐. 우리든, 사장이든 나쁘게 찢어지는 건 아니니까. 다시 또 이익이 된다고 생각되면 같이하면 되는 일이고.”
기순의 말에 마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루가 생각하기에도 나쁘지 않았다.
목적은 일상이니까. 그래. 조금 돌아도, 일상이 우선이었다. 마루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입이 살짝 마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입술을 핥아, 어쩐지 마른 입술을 적시곤 마루가 말했다.
“그래. 그럼 내가 이야기하고 올게. 너랑 사장은 궁합이 정말 최악인 거 같다.”
“아니지 반대야. 서로 머리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이야기하니까 그렇게 보이는 거지.”
기순이 썩은 웃음을 지었다. 정말 끔찍한 소리를 하는 녀석이었다. 마루는 5분이 지나기도 전에 사장을 찾았다. 사장은 이미 대충 짐을 챙기고 있었다. 자기와 기순의 선택을 미리 짐작이라고 한 걸까?
“후훗- 뭔 표정이 그렇게 심각한가요? 심각할 필요 없어요. 다 그런 거죠. 계약 관계란 건.”
자기 표정이 그렇게 썩었나? 마루는 살짝 옆을 봤다. 투명한 창에 비친 모습은 어쩐지 낯설어 보였다.
“심각한 얼굴을 보니, 여기서 우리가 헤어지는 거로 결론이 났나 보군요. 아쉽네요. 정말. 끝까지 같이 갔으면 좋았을 것을. 그래도 기순 씨나, 마루 씨, 김 양에게 나쁜 감정은 없답니다. 그냥 비즈니스였을 뿐이니까요.”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고맙습니다.”
“어머- 저도 고마워요. 그래서 한마디 조언을 하자면, 역사적으로 극도의 긴장과 혼란에 빠졌을 때, 비상식적인 일들이 벌어졌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답니다. 그리고 이거.”
자칭 사장이 조그만 장치와 무전기 2개를 마루에게 건넸다.
“이게 뭔가요?”
“이건 제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장치입니다. GPS 연동이라, 도쿄와 인근에서는 먹통이겠지만, 오사카 인근까지는 아직 통신이 유지되니 거기까지는 절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무전기는 12~15km까지 다이렉트로 통신할 수 있는 무전기입니다. 환경이 좋지 않더라도 10km까지는 연결이 가능할 거예요.”
마루는 사장의 준비성에 조금은 감탄했다. 기순과 의견이 갈라선 지 5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런 걸 준비하고 있었다는 건. 전부터 이런 상황에 대비해서 준비하고 있었다는 소리였다.
“저 사장님. 대역이 아니라 본인이십니까?”
마루는 그게 궁금했다. 호텔 샬롯에서 봤던 사장님과는 다른 판단이나 행동이 보이기도 했는데, 또 판단이나 실행력을 보면 사장님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정말 헷갈리는 사람. 대역이든 아니든 대단했다. 찢어지는 마당이니까 살짝 알려주지 않을까?
“글쎄요. 어떨까요?”
대답 대신 미소를 보인 사장이었다.
“이쪽에서 제트스키 2대와 고속 모터보트를 가져갑니다. 쿼드 스키와 수륙양용 아르고는 본래 여기서 쓰려고 했던 거니까요.”
“예?”
아니 두 사람이 어떻게 제트스키 2개 비상용 고무보트 1척 이렇게 3개를 가져간다는 건가?
설마?
마루는 처음 해적들을 처리했을 때를 떠올렸다. 왼쪽의 해적선과 오른쪽의 해적선이 정말 빨리 처리됐었다.
혼자서 그렇게 빨리 처리할 수 있었을까? 샬롯 그룹의 사주를 받은 배 6척이 덤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기동성을 잃었다지만 무장한 병력이 남아있는 보트 4척을 혼자서 그렇게 빨리 정리할 수 있었을까? 고속 순시선을 정리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단독으로 그렇게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었을까?
그렇다는 건. 경호원이 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소리였다.
일렁.
일렁.
대놓고 움직이는 두 그림자. 애초에 두 명이었다. 한 명을 보여줘서 한 사람인 것처럼 믿게 하고는 다른 한 사람을 숨기고 있던 것이었다.
하-
기순과 자신을 감시한다고 단 한 명인 경호를 밖으로 내돌렸겠나? 애초에 두 명이었던 것이었다.
하- 진짜.
마루는 감탄했다. 그럼 이 앞의 사장은 과연 진짜일까? 정말 모르겠다.
그렇게 제트스키 2대와 강력한 모터를 장착한 고무보트가 쏜살같이 멀어졌다.
“경호원이 2명이었다는 거네.”
“그렇다니까. 나랑 김 양이 낌새를 차리는 것 같으니까, 한 명은 그냥 짱 박아뒀던 거였어. 어쩐지 느낌이 이상하더라. 나한테 걸렸었는데 모른 척 또 온 것도 그렇고. 필요할 때만 돌렸더라고. 우리 처음 해적들 해결했을 때, 왼쪽 배가 터졌나 했더니 금방 오른쪽 배가 터졌었잖아. 그땐 그냥 넘어갔었는데 그렇게 빨리 처리하긴 힘들잖아.”
마루의 말에 동의하는 기순이었다. 당시 혈압이 올라 그냥 지나갔는데 생각하면 확실히 그랬다.
“대단하네. 사장 누님. 진짜인지 아닌지 나도 지금까지 감이 안 잡혀. 미묘하게 다른 것 같다가도 판단을 하는 걸 보면 사장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생각들 보여주고. 제약회사 지하 비밀 연구실 깐다고 치면 본인인증 같은 걸 할지 모르니, 본인이라고 할 수도 있고 다른 뭔가가 있다면 아닐 수도 있고.”
기순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렇게 대역인지 아닌지 모를 정도의 사람이 필요하다는 건. 그만큼 목숨의 위협을 많이 받았다는 소리였고, 그런 위협은 기순 자신도 겪었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장 누님도 참 인생이 그랬겠어.”
“인생이 그런 건 나도 그렇다. 그리고 너랑 김 양도 만만치 않아 보이고. 뭣보다 우리가 지금 사장님 걱정할 때냐?”
마루의 말에 기순과 옆에 있던 김 양이 고개를 같이 끄덕였다.
“좋아 일단 최선의 상황부터 말하면, 순시선이 통신을 받고 항로를 변경하는 게 베스트. 최악은 이쪽 통신을 받고 멈추라고 한 뒤, 해상보안 요원들을 보내 옮겨 탄 후, 나포하려는 것.”
“그러니까 견적을 보려면 일단 통신 시도를 해야겠네?”
“그렇지. 그리고 좋은 소식이 하나 더 있어.”
“뭔데?”
“순시선 한 척이, 사장 누님 쪽을 발견했는지 그쪽을 따라가는 것 같아.”
“워- 이거 참.”
마루의 감탄사에 기순이 애매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트스키랑 고무보트라 어지간히 민감하게 굴지 않으면 놓쳤을 텐데 말이지, 식별번호가 있는 것도 아니고, 파도랑 속도를 생각하면 더 그렇고. 어쨌든 우리 뒤를 따라오는 건 한 척이다. 좋게 좋게 가자고.”
마루는 기순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아재칼을 뽑아 슥삭- 스윽삭- 갈기 시작했다. 뭔가 평안해 보이는 마루의 표정을 본 기순이 중얼거렸다.
“너는··· 그래. 알아서 잘 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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돛으로 항행하는 고급 카타마란을 쫓고 있는 순시선 함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통신도 엉망이고 정보 전달도 개판이어서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정보가 제대로 돌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받은 식별번호에 따르자면, 샬롯 그룹의 배였다. 그것도 선종 정보를 보면 초호화 급에 준하는 고급 요트였다.
“이거 난감하군.”
그랬다. 일단 고속 순시선이 침몰한 인근 해역을 지나간 규모 있는 배는 저것 하나였다. 중국과 관계된 배거나 중국이어야 하는데, 중국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쨌든, 중국이어야만 했다. 그래야 중국을 견제한다는 명목으로 미국을 끌어들여 급한 불을 끌 수 있었다.
“함장님. 저쪽에서 온 무선 교신으로는 도쿄에 구호품을 전달하러 가다, 해적들을 만났다고 합니다. 낚싯배들과 어선들이 갑자기 해적으로 변해 공격해, 그것을 피하려고 멀리 돌아서 이동하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그 보고를 받은 함장은 앓는 소리를 냈다. 샬롯 그룹에 구호품이라.
함장은 어쩐지 여백사를 죽이고 조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함장은 깊게 숨을 쉬고 말했다.
“저 배에서 한 통신은 전부 거짓이고 기만이다. 우리가 쫓는 저 배는 중국 특수부대에 나포당한 배다. 저 배의 항로가 중국해역을 향하는 것이 그 증거다.”
“······.”
“저 배의 승무원들은 전부 중국 군인들에게 죽임을 당했고, 중국은 저 배를 나포한 뒤 중국해역으로 끌고 가 음모를 꾸미기 위해 도망치는 것이다.”
“······.”
“우리는 결코 저 배를 놓치지 않을 것이며, 저들을 잡을 것이다. 저들을 잡아 중국의 만행을 세계에 밝혀, 일본이 중국을 견제하는 세계의 방파제라는 것을 알릴 것이다.”
함장의 선언에 승무원들의 표정이 비장하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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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더를 보던 기순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야 씨발- 쟤들 왜 저러는 거지? 미친 듯이 속도를 높이는데?”
아니. 통신까지 잘했는데 답신도 없이, 그냥 속도부터 뽑아? 존나 불길한데?
스으으윽- 삭— 스으으으- 삭
마루는 담담하게 아재칼을 갈았다. 보위 나이프가 살아있다면 좋았을 것을.
“아니 칼만 갈지 말고 생각을 말해 봐. 쟤들이 왜 저러는 거 같냐?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구호품 전달하는 배를 향해 전속력으로 돌격? 쟤들 굶었나? 이거 샬롯 그룹 배라는 거 밝혔는데? 멈추라고 통신 때리는 것도 아니고. 그냥 돌격? 뭐지?”
스으윽-삭- 슥삭슥삭슥삭 기순은 마루의 칼 가는 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았다. 그렇게 미친 듯이 칼을 갈던 마루가 만족한 표정으로 아재칼을 칼집에 넣은 뒤 말했다.
“뭐긴? 사장님 예상처럼. 좆된거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더러운 걸 보니까. 저쪽에선 우릴 죽일 생각 만반이다.”
아 씨발. 기순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다시 레이더를 봤다. 속도가 더 빨라졌다. 이 속도라면 5분 안쪽에 따라 잡혔다.
마루는 혼란스러워하는 기순의 어깨를 잡았다.
“네가 말했잖아. 하려면 확실하게 해야 한다고. 정신 차려. 이게 우리 현실이다.”
칙- 마루가 무전기로 김 양을 호출했다.
“김 양아, 사거리 들어오면 발칸부터 무력화시킨 뒤, 조타실부터 집중적으로 조지고 그 뒤는 자유사격이다.”
[네. 발칸 무력화 조타실 집중 공격. 이후 자유사격이요.]음. 마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순순한 김 양이라니. 이제 좀 적응이 됐다.
기순은 조종실에 앉아, 씨발로 실뜨기를 하기 시작했다.
저거 또 버릇 나왔네. 빡- 칼집으로 기순의 등판을 후려준 마루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야-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고, 우리가 좆된 경험 한 두 번 해보냐? 뒤 부탁한다.”
기순은 마루가 떠난 자리를 한 번 돌아보곤 전파방해장치에 손을 올렸다.
3km-2.5km-2km. 파직하는 소리와 함께 전파장해장치가 작동됐다.
고속 순시선이 맹렬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마루가 탄 쿼드 스키가 순시선을 향해 마주 달렸다.
탕!
바렛의 총성이 파도 소리를 뚫고 하늘로 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