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693)
러스트 [RUST]-693
덴 브라운의 얼굴에 미세한 균열이 갔다.
“선택이라. 거절하면?”
“신성 왕국은 제국의 문제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그뿐.”
“내 머리에서 정보를 뽑게 한다면 제국에 관여하겠다는 건가? 어디까지?”
“덴 브라운 총통의 권력이 안정될 때까지.”
언제 균열이 갔었느냐는 것처럼 덴 브라운이 쓰게 웃었다.
“그런 엉뚱한 계약이 어디 있나? 제국은 신성 왕국이 아니야. 선거가 있고, 청문회와 임명 동의 절차가 있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어. 그런데 권력이 안정될 때까지? 설마 평생 뒷바라지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종신 총통할 생각이었습니까?”
“선거에서 정당하게 이긴다면···.”
“정당한 선거라. 그게 가능할까요? 지금 같은 상황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겠습니까? 세상이 이런데 말입니다.”
“······.”
“솔직히 미합중국이 건재하던 시절에도 불가능한 거 아니었습니까? 제대로 된 민주주의.”
덴 브라운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지만, 기순이 그게 아니라며 신호를 보냈다.
[야- 너무 갔어. 그냥 감정이 끓어 오르고 있다. 갑자기 왜 발진했어. 깜빡이 좀 키자.]“저도 싫어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 나중에나 할 법한 이야기지만 입헌군주제 정도까지는 가려고 계획 중에 있습니다. 생존에 필요한 것을 제외하면 내려놓을 생각도 있고요.”
“그래. 군권은 잡고 있겠다는 소리군. 여차하면 엎을 수 있게.”
잠시간 침묵이 이어졌다.
“자네 말이 맞아. 자네도 날 믿지 못하겠지만, 나 또한 자네를 믿을 수 없지.”
“그렇겠죠. 이해합니다. 뚜껑을 따보면 속이 다른 게 인간이니까 말이죠.”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야. 상황을 반대로 생각해보세, 자네가 위기에 빠져서 제국에 의탁하려고 하는데 내가 저기 있는 뇌가 둥둥 떠 있는 기계를 옆에 가져다 놓고, 자네의 머리통에 저걸 박아서 정보를 뽑아봐야 믿겠다고 하면 자네는 하겠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야. 그래서라도 일단 기회를 잡아야 할 테니까 말이죠.”
“생존이 우선이라. 그런데 만약 저 기계가 정보 추출기가 아니라 세뇌 기계라면? 아니면 바로 뇌부터 감염시켜 식인귀나 흡혈귀로 만드는 장치였다면?”
“······.”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지, 머리에 구멍 뚫는 걸 가져다 놓고 내 선택이라고 한 것부터가···.”
[워우- 아재 감정이 존나 씨발. 조심해라.]기순의 호들갑과는 달리 덴 브라운의 표정은 놀랍도록 일정했다.
“그렇지 않은가?”
“······.”
“지금 이 상황에 선택을 붙이다니. 그건 좀 심하군. 하기야 입장이 반대였다면 선택권이니 뭐니 하지 않았을 걸 세···.”
그러니까 자신이었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정보 추출기를 사용했을 것이라는 이야기.
[어우 진짜-]감탄사를 절로 뱉는 기순이었다.
마루도 이렇게 묻고 지지고 하고 싶지 않았다.
대체 뭔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냥 콱 해버리고 싶었지만, 기순의 예상대로라면 덴 브라운은 자폭할 만한 수단이나 방법이 있다고 봐야 했다.
자폭하면 바이탈 사인이 끊기는 것과 동시에 덴 브라운의 사망이 알려질 터.
전파 방해로 사망을 숨긴다고 한들 바이탈 사인이 끊겼다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기에 최악의 상황이 될 것이 확실했다.
단순하게 폭탄이나 독약으로 자폭해도 피곤한데 만약 생화학적인 무언가로 자폭한다면? 감염병 같은 게 퍼진다거나 치명적인 가스가 퍼진다면?
그렇지 않아도 목숨을 걸고 신경가스로 식인귀가 된 자들을 한 번에 쓸어버린 덴 브라운이었다. 그런 그가 생화학적 자폭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러니까 강제로는 힘들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것처럼 덴 브라운이 말했다.
“선택하라고? 내 대답은 ‘내 머리에 손대지 마.’일세.”
“······.”
그 대답에 마루는 깔끔하게 일어났다.
“제국의 일은 제국이 하는 겁니다. 신성 왕국과 엮으려고 하면 통째로 지워버릴 겁니다.”
“통째로 지워버리다니, 난민이 생기지 않게 싹 없애겠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그러고도 왕국이 유지되리라 생각하나?”
마루가 밖으로 나가자 기순이 뇌둥둥 정보 추출기를 들고 따라나섰다.
“그렇게 티를 내면 위험할 걸세.”
기순이 신호를 보낸 것을 알아챘다고 경고해주는 덴 브라운. 기순은 살짝 고개를 숙여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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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대로 제국 언론 절반 이상이 흉흉한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신성 왕국 특작 부대. 제국 의원 살해 의혹.] [신성 왕국 특작 부대 진실. 그들은 본래 제국의 클론 병사였다?] [클론 병사와 관련 기술을 신성 왕국에 팔아먹은 자는 누구인가?] [덴 브라운. 국토안보국 국장에서 제국의 총통까지 독재를 위해 달려온 길.]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그날 국토안보국에서 있었던 일. 독재와 싸운 부국장의 희생.] [제국 의회 참사 사건. 당시 과연 무슨 일이 있었나?] [남부 연맹 버지니아 랭리 컴퍼니 죠셉 마이어 회장 사망 사건의 진실.] [사고가 아니라 계획된 살해. 살인자는 신성 왕국의 도살자 국왕 블라디마루 칼린으로 밝혀져!] [신성 왕국의 백정이 제국 의회에 나타난 이유. 누가 그를 불렀는가?] [용병에서 영웅. 영웅에서 국왕까지 기적의 행보에는 뒷배가 있었다?] [덴 브라운 총통과 블라디마루 칼린 과의 관계. 독재와 왕정. 이것이 우연일까?] [제국에 드리운 암울한 독재의 그림자.]서로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계속해서 쏟아지는 기사들. 그리고 식인귀를 몰아냈을 때처럼 사람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독재자 덴 브라운을 끌어내라!”
“제국 의회 참상의 진실을 밝혀라.”
영하 40도의 날씨에도 규탄대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뉴욕 방위군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혁명 군부. 덴 브라운 독재 정권을 끝낸 뒤 본연의 자리로 돌아갈 것을 약속.] [구국의 결단을 환영하는 시민.]“봤습니까? 시민들이 쿠데타군을 인정했습니다.”
총기 자유화 제국에서 시민이 쿠데타에 저항하는 민병대를 꾸리지 않고 오히려 환영하고 있었다.
“쿠데타군과 협상을 하기로 하죠.”
“덴 브라운 총통을 버릴 겁니까?”
“우리가 버리는 게 아닙니다. 민심이 그를 떠났어요.”
“쿠데타군이 의회를 해산해버리면 전부 끝입니다.”
“쿠데타군이 폭주하지 못하도록 최소한의 견제를 하려면 어떤 방법을 쓰든 의회가 살아남아야 합니다.”
“쿠데타를 인정하면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른단 말입니까?”
성공한 쿠데타는 언제나 혁명으로 불렸다. 그리고 지금은 나중 생각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 현 상황에서 제국 의원 자리가 날아가 버리면 사실상 다시 얻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그러니 무조건 제국 의회 해산, 제국 의원 자격 박탈 사태는 막아야 했다.
“다들 미쳤습니까?”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여론이 험악해진 것도 모자라, 쿠데타까지 터지자 정신이 나가 버린 것. 소수가 반대했지만, 다수는 쿠데타군과 손을 잡았다.
[제국 의회. 쿠데타군이라는 표현 철회. 혁명군으로 명칭 변경에 합의.] [제국 의회. 덴 브라운 총통 청문회 결의.] [혁명군. 제국 의회의 권위를 인정] [제국 의회와 혁명군 덴 브라운 독재 타도를 위해 손을 잡아.]쿠데타군은 제국 의회를 이용해 쿠데타군이라는 딱지를 벗고 혁명군의 지위를 확보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어수선한 분위기를 틈탄 나루즈가 제국의 핵을 무력화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핵 보관소가 파괴됐습니다.]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 파괴. 핵탄두 해체됐습니다.]쿠데타군과 제국 의회는 화들짝 놀랐다.
“잠수함은?”
“핵잠수함이라도 지켜야 합니다.”
“항구가 얼어붙어 잠항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항구에 정박 중이던 핵잠수함 공격받고 있습니다.] [잠수함 탄도 미사일(SLBM : Submarine-Launched Ballistic Missile) 전량 소실(消失)됐습니다.]동시다발적으로 실행된 나루즈의 작전에 제국의 핵이 증발해 버렸다.
“빌어먹을.”
“덴 브라운 총통이 수작을 부린 거요.”
“미쳤군. 정말 미쳤어.”
핵이 있는 위치를 적들이 알았다는 건 극비정보가 샜다는 뜻이었다.
“권력에 미쳐서 핵을 포기한 게 틀림없습니다.”
“신성 왕국의 특작 부대가 확실합니다.”
“설마 이렇게까지 할 줄이야.”
덴 브라운도 그렇지만 공격하는 놈들도 미친 건 마찬가지였다. 핵시설을 공격했다는 건 전쟁해도 좋다는 소리 아닌가?
“신성 왕국도 미친 게 분명합니다.”
“심증은 확실하지만, 물증이 없어요.”
“물증이고 뭐고 핵이 날아갔으니 방법이 없습니다.”
핵이 없다면 신성 왕국을 억제할 억제력이 없었다. 신성 왕국뿐만이 아니었다. 텍사스가 날아가 버린 남부 연맹도 제국이라는 거대한 파이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쿠데타군과 제국 의회는 남부 연맹의 식인귀, 흡혈귀 부대를 막을 힘이 부족했다.
“신성 왕국에 특사를 보내야 합니다.”
“신성 왕국과 상호방위 조약을 맺어야 합니다.”
“덴 브라운과 한통속인 놈들인데 되겠습니까?”
“최악의 경우에는 신성 왕국과 전쟁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전쟁은커녕 신성 왕국의 핵 공격을 걱정해야 할 판입니다.”
“그렇지요. 놈들이 남부 연맹에 수소 폭탄을 던진 걸 보세요. 우리도 그렇게 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특사를 파견하지 말자는 겁니까?”
“파견해야죠. 어떡하든 시간을 끌어야 합니다. 일단 시간··· .”
푸슛-
머리통이 날아간 의원이 뒤로 넘어갔다.
“저격이다!”
“혁명군은 뭘 하고 있나!”
“경비! 경비는?”
푸슛- 푸슛-
억눌린 소음을 시작으로 제국 의회가 다시 피로 뒤덮였다.
그리고 피바다가 펼쳐진 건 혁명군 사령부도 마찬가지였다.
커다란 폭음과 함께 사령부 건물이 불길에 휩싸였다. 제국의 신형 클론이 날뛰는 것을 관찰하던 나루즈가 작게 감탄했다.
[덴 브라운 음흉해.] [건물에 미리 폭탄을 설치해 뒀다니.]사령부로 쓸 법한 건물이라면 전부 폭탄을 설치해둔 덴 브라운이었다.
[군부를 잡는 게 이렇게 쉽나?] [덴 브라운 쪽 사람들이 구멍을 뚫어놔서 그런 거잖아. 폭탄도 미리 박아 놓고.]사령부 밖에 있어 살아남은 지휘부 몇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저격수의 먹잇감이 될 뿐이었다.
[제국 신형 클론 움직임이 익숙한데.] [그러게. U+ 프로그램인가?]유 이사의 전투 경험을 내려받은 나루즈인지라 신형 클론의 전투 방식이 눈에 보였다.
나루즈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이거 영상 찍었지?] [쟤들 만나면 영상부터 찍어. 오라버니께 보내드려야 할 것 같으니까.] [흐으응. 후딱 처리하고 왕님이랑 또 브런치 타임 갖자고 하자.] [너희는 저번에 먼저 오라버니 봤잖아. 이번에는 우리 차례야.]나루즈의 웅성거림을 배경으로 혁명군 사령부가 불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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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들은 바로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쿠데타군 와해.] [군부 덴 브라운 총통이 장악.] [쿠데타 정권 7일간의 기록.] [일주일 만에 끝난 쿠데타가 남긴 참상.] [쿠데타의 원인은 무엇인가?] [의원 권력 이대로 괜찮은가?] [쿠데타군과 야합한 제국 의회 기능을 잃어.] [덴 브라운 총통. 쿠데타를 미리 예견 모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위기의 순간에 언제나 제국을 지킨 선택. 덴 브라운 총통.] [신성 왕국과의 교류 확대로 제국 경제에 청신호.] [쿠데타로 폭락했던 주식 시장, 덴 브라운 총통의 귀국과 함께 일제히 반등] [위기에 강한 지도자. 덴 브라운 총통.]주류 언론 전부가 덴 브라운을 찬양했다.
“총통 각하. 연설 준비가 끝났습니다.”
“······.”
화마(火魔)의 흔적이 가득한 제국 의회 건물 앞에 선 덴 브라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우두커니 선 그의 시선은 떨어지는 물방울을 향하고 있었다.
뚝-
뚝-
또옥-
제국 의회 건물 한쪽에서 똑똑 떨어진 물방울이 붉게 흘러내리는 모습.
겨울의 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