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696)
러스트 [RUST]-696
대뜸 개미를 찾아서 떠나게 된 간호사는 우울했다.
그녀는 벌레가 싫었다.
바퀴벌레도 싫고 파리나 모기도 싫었다. 그리고 개미도 싫었다.
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무너지기 시작한 일본의 뒷골목이 떠오르게 하는 벌레들. 당시 죽은 고양이의 살을 파먹고 있던 것은 바퀴벌레가 아니라 개미떼였다.
그건 사이코메트리 에리카도 마찬가지였다. 바퀴벌레가 우글거렸던 뉴욕 하수도에서 사이코메트리를 사용했을 때의 그 불쾌함이 떠올랐다.
와글와글 바글바글
개미라고 다를까?
[왜들 얼굴이 죽상임. 다들 인상 펴고 즐겁게. 응.]김 양이 아저씨처럼 두 여자를 얼렀다.
[바퀴벌레는 새우 맛, 개미는 새콤한 맛.] [벌레 새끼들은 모두가 좋아하는 훌륭한 단백질원-] [간호사가 맛있다고 모또-모오또- 사이코메트리는 쨉쨉째앱-]경쾌한 운율로 중얼거리는 김 양의 노랫소리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 [······.] [다들 어릴 적에 개미 똥꼬 한 번 안 빨아 본 것처럼 왜들 그럼?] [설마. 경험이 없는 것임?]이게 무슨 소리···.
개미 똥꼬를 뭐가 어떻게?
[이번에 개미 잡으면 꼭 맛보게 해주겠음.]흐에에엣-
히이이익-
아주 끔찍한 소리라도 들은 것마냥 놀라는 두 여자를 보곤 김 양이 깔깔 웃었다.
‘배때기가 부른 년들. 이번 기회에 새우 맛이랑 새콤한 맛을 제대로 알려주겠어.’
두 사람이 알면 기절할 생각을 하는 김 양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1호기의 반항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그녀였다. 어지간하면 뒤끝이 없는 김 양이었지만, 일단 ‘뒤끝’ 하기로 하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기순이 고개를 저었다.
‘어쩐지 딴소리 없다 했다.’
군소리 없이 냉큼 간호사 끌고 나간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걸 노렸던 듯싶었다. 기순이 개인 채널로 김 양에게 말했다.
[적당히 하면 좋겠는데?] [그린 순. 지금 방해임?] [방해고 자시고 선은 넘지 말자는 거지. 애들 이상해지면 마루가 완전히 빡 칠 텐데 넌 그거 감당할 수 있겠냐? 난 못한다.] [······.] [군기 잡는 거 안 말리니까 적당히만 가자.] [알겠음.] [그래도 개미 똥꼬는 뺄 수 없음.]응.
기순이 허탈하게 웃었다.
그래 본래 이 여자는 그랬었다.
어딘가 약간 이상한.
봄이었다.
2~3m 두께로 얼어붙었던 얼음은 전부 녹아 도로변을 흐르고 있었다.
포장되지 않은 곳은 전부 진흙탕. 포장된 도로도 여기저기 죽죽 갈라져 터진 곳이 태반. 이제 날이 풀리고 갈라진 틈으로 잡초가 자라고, 잡초의 뿌리가 도로의 기초를 헤집을 것이다.
한여름엔 영상 40도가 웃돌고 아스팔트가 녹아내릴 정도의 끔찍한 폭염이 2달 가까이 이어지면, 어느 순간 가을이 되고 다시 또 6개월 가까운 겨울이 되겠지.
[에-또- 이렇게 물이 많으면 개미들 익사하지 않을까요?]간호사가 흙탕물로 변해버린 물줄기를 보며 말했다.
[홍수나 쓰나미로 물에 잠겼던 지역에서도 물이 빠지고 나면 개미들이 멀쩡하게 돌아다녔다는 이야기도 있고 하니, 괜찮을 겁니다.] [그게 괜찮음?]기순의 답변에 김 양이 톡 쐈다. 개미들이 매년 봄과 여름마다 뒈져줘야 하는데, 안 죽는다는 게 괜찮은 거냐고 반문한 것.
간호사를 태우는 걸 몇 번 막았더니, 김 양의 뒤끝이 자신까지 노리고 있는 느낌. 기순은 흠흠 헛기침을 하곤 입을 다물었다.
한참을 걸었을까. 엑소슈트로 이동함에도 조금은 버거웠는지 에리카가 투덜거렸다.
[비행선이나 장갑차를 타고 가면 안 됐나요?] [미쳤음? 얼음이 녹으면서 지반이 어떻게 됐을지 모르는 데 장갑차?] [··· 그 비행선은요?] [날이 풀려서 새들 미쳐 날뛰고 있는데 비행선으로 가면?]까마귀와 비행 드론으로 새떼를 뿌리치는 건 문제가 아니었지만, 천천히 조사하기는 힘들다고 봐야 했다.
[전방에 들쥐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위력 정찰조가 보내온 통신에 김 양이 대응했다.
[제자리에서 대기. 1호기 출동.] [에? 어디로요?] [들쥐에게 가서 개미들 정보 물어오셈.] [···알겠어요.] [나도 같이 가지.]간호사와 기순은 전방에 대기하고 있는 정찰조에게 다가갔다.
[오셨습니까? 70m 오른쪽 아래에 보이십니까? 들쥐들이 우리가 오는 것을 마중 나온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네.]간호사가 엑소슈트 헬멧 바이저를 열고 들쥐를 향해 다가갔다.
찍? (누구냐?)
찌익 찌이익? (죽음의 신께서 보내셨는가?)
겨울 동안 국경을 지키는 들쥐들에게 약간의 기호품을 보낸 신성 왕국이었다. 번식할 정도로 많은 양은 아니었어도 맛보기에는 충분한 양.
긴 겨울이 지났음에도 예전과는 달리 1세대 많게는 2세대가 늘어났을 뿐, 죽음의 신과 관련된 공포는 잘 이어지고 있었다.
“네. 그분께서는 여러분이 국경 방어를 잘하고 있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찌이이익-
찍-
찌이익!
들쥐들이 환호했다. 기분 좋은 색깔이 피어오르는 광경. 기순은 그 밝은색을 보곤 긴장을 풀었다.
[진짜 좋아하네요.]“네. 그런 것 같아요.”
간호사는 자신의 능력이 강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예전 같았으면 그녀가 들쥐의 말은 알아들을 수 있어도 들쥐들은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지금은 이해하고 있었다.
[능력이 강해졌군요.]“에- 또- 그런 것 같아요.”
[축하합니다.]“가. 감사합니다.”
그분도 아시면 좋아하시겠지? 간호사는 몸을 감싸고 있는 엑소슈트가 조금 갑갑한 기분이었다.
들쥐들은 죽음의 신이 보낸 인간들을 환영했고 국경까지 호위해줬다.
“개미를 본 적 있나요?”
찌이익? (개미 그게 뭐지?)
찍? (먹는 건가?)
간호사가 태블릿으로 개미 사진을 보여줬지만, 들쥐들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다만 남부 국경 아래로 깊숙하게 들어간 정찰대 들쥐들이 전부 실종됐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겨울 직전에 대규모 정찰을 보냈는데, 겨울이 끝날 때까지 한 마리도 돌아오지 못했다고 해요.”
[대규모 정찰이요?]“네. 변절한 쥐떼들이 남쪽으로 도망을 쳐서, 그 무리를 찾으려고 추격대 겸 정찰대를 보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도.”
기순의 실눈이 가늘어졌다. 변절한 쥐떼를 잡지 못하면 폭발적으로 번식해 역공을 취할 가능성도 있었다.
‘아니야. 어쩌면 개미에게 밀렸을 수도 있어.’
변절 쥐들은 본진을 잃고 떠돌다가 개미에게 밀렸을 수도 있고, 반대로 개미를 영양분 삼아서 다시 본진을 만들고 무리를 다시 번성시켰을 수도 있었다.
[다른 정보는 없었습니까?]“에- 그러니까 그물을 짜는 괴물? 아! 거미가 위험하다고 했어요.”
기순의 발걸음이 멈췄다.
‘거미도 변이를 일으켰다고?’
동물에게 일어났던 변이가 곤충에게까지 퍼지고 있었다.
‧
‧
‧
디트로이트. 블라디아크 타워.
남부 국경 지역에 도착했다는 문자를 마지막으로 보고가 오지 않고 있었다.
“통신망은 어떻게 됐지?”
[성층권 통신 비행선이 위치를 잡았으나, 연결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전파장애에서도 문자는 보낼 수 있지 않나?”
[변이 괴수의 밀도가 일정 수치 이상이 됐을 때는 전송 지연이나 전송 실패가 생기는 것으로 보고됐습니다.]변이 괴수가 많은 지역으로 진입했다는 뜻.
들쥐들도 많이 뭉치면 통신 장애를 일으켰으니, 그쪽 구역으로 들어간 듯했다.
‘친위대와 나루즈를 붙였으니 위험하지는 않겠지.’
어지간하면 비행선으로 국경 인근까지 한 번에 보내려고 했지만, 작년과는 달리 새떼들이 대규모로 뭉쳐 다니고 있었다.
마치 토네이도처럼 몰려다니는 새떼들.
까마귀와 비행 드론이 있으니, 비행선을 호위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막대한 희생이 불가피해 보였다.
그래서 개미 탐사대를 육로로 보냈다. 육로로 가면 될 일을 까마귀를 희생하면서까지 비행선 타고 갈 일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삑-
기다리던 문자가 왔다.
[들쥐들 말로는 곤충들이 위험하다고 하네. 곤충이 변이를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 [개미 말고, 다른 벌레들도?] [일단 거미를 조심해야 한다고 하고, 말벌도 그렇다고 하네.] [개미는?] [그쪽으로 깊숙하게 들어간 정찰 쥐들이 전부 실종됐다고 해.]곤란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마루가 답을 보냈다.
[시간이 지나면 더 위험해 질 것 같으니까. 일단 개미까지는 확인하는 게 맞지 싶다.] [내 생각도 그래. 그리고 간호사의 소통 능력이 발전한 것 같다.]그건 다행이었다.
[문자 통신망은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들쥐들 많으니까 먹통 되더라. 그나마 신형 엑소슈트끼리 근거리 통신은 됐고.]기순과의 문자 통신이 끝나자, 김 양의 문자 보고가 떴다.
[남부 들쥐 배신 기미 없음. 곤충 변이 위험 경고. 1호기 재교육 필요.]응? 간호사는 왜 재교육?
마루는 수고하라는 답장을 보내곤, 인공지능 디아나를 호출했다.
“변이 곤충 대책을 연구하라고 해. 특히 살충제 쪽.”
[전달했습니다.]잠시 뒤 나주연이 연락했다.
[살충제 연구는 효과를 보기 어려워요.]신경가스에도 금방 적응해 버리는 변이 바퀴벌레를 생각해보면 살충제를 연구하는 건 시간 낭비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
“여러 번 쓸 게 아니니까 상관없어.”
여차하는 순간 한 번만 쓰고 던져버린다고 해도 충분했다.
“되도록 단일 성분으로 여러 종류를 만들었으면 좋겠군.”
[그렇겠네요. 종류를 바꿔가면서 한 번씩만 사용한다면 내성이 생기기 어렵겠네요. 알겠어요. 그리고 스틸레토의 구조, 성분 분석 결과가 나왔어요.]이클립스로 잘라내지 못했던 스틸레토의 분석 결과였다.
[예상했던 대로 이클립스와 상당히 유사한 구조였어요. 그리고 성분에는 제단의 파편이 검출됐고요.]제단의 파편이 검출됐다는 건, 버지니아 랭리 놈들이 뭔가를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이클립스의 구조와 유사하다?
이클립스는 국토안보국 시절 덴 브라운이 준 것이었다. 그 구조와 유사하다는 것은 버지니아 랭리가 이클립스를 연구했었거나, 이클립스와 같은 게 있다는 이야기.
마루가 서랍에서 붉은 앰풀과 투명 앰풀을 꺼냈다. 죠셉 마이어의 기억이 담겼다는 앰풀과 흡혈귀를 만드는 앰풀이었다.
나주연에게 이걸 맡겨도 될까?
매드 사이언티스트(Mad scientist)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녀였다. 수상 도시 건축을 비롯해 연구 주제가 나오기만 하면 그녀에게 몰아버린 것도. 그녀가 선을 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었다.
고양이가 햄스터를 죽였다면 그건 고양이 잘못일까 아니면 햄스터 관리를 제대로 못 한 주인의 잘못일까?
죠셉 마이어의 기억을 재구성해서 정보를 뽑을 수 있다면 궁금한 것들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정보 속에 들어있는 지식을 나주연이 접하고 변할 위험성을 감수할 정도인가?
후-
마루는 눈을 감고 심호흡했다.
‘아니.’
지금은 동결처리 한 김 실장들을 만든 게 나주연이었다. 자기 아빠인 나오진을 실험체로 만든 것도 그녀였고.
그녀 딴에는 마루의 가족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이런저런 약을 썼지만, 그게 순도 100% 치료를 위해서였을까?
기순이 슬쩍 언급했던 홍 과장 자료를 보면 마루 자신도 일종의 실험체나 다름없이 관리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주연이 변하고 변하지 않고 따질 게 아니었다.
그녀는 본래 그런 여자였으니까.
단지. 그런 여자에게 죠셉 마이어의 앰풀을 줄지 말지 결정하는 건 자신일 따름.
마루가 인공지능 디아나를 호출했다.
“나주연에게 오늘 저녁. 개인 면담을 하자고 해.”
[전달했습니다. 저녁 식사를 같이하는지 확인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어떻게 답할까요?]“···그래 식사도 같이.”
[전달했습니다.]‧
‧
‧
거울 속에는 딱 한 마디로 묘사할 수 있는 여자가 있었다.
‘미친년.’
이건 좀 바꿀 필요가 있었다.
‘우선 눈빛부터 정리해야겠네.’
나주연은 흐릿하다 못해 퀭한 눈에 안약을 넣었다. 반짝반짝 초롱초롱 이라는 라벨이 붙은 안약. 몇 방울이 그녀의 눈에 떨어지는 순간 마법처럼 눈빛이 변하기 시작했다.
뭐라고 할까 음습하고 위험해 보였던 눈빛이 꽃사슴 눈망울로 모습. 이리저리 눈빛을 확인한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으로 다크서클부터 없애고.’
그래도 너무 멀쩡해 보이면 하라는 연구는 안 하고 땡땡이친 것처럼 보일 테니까 약간 초췌한 느낌은 남기면서.
‘시나리오 76번에서 108번 상황인가?’
마연시 시나리오에서도 저녁 식사 이벤트가 있었다. 좋다고 나댔다가는 절반 이상이 사망 엔딩이었으니까, 그쪽은 회피해야 했다.
‘화제가 될 부분은 수상 도시 건설, 이클립스 분석 결과 그리고 살충제 정도?’
‘향수는··· 뿌려야겠지?’
약품 냄새 병원 냄새는 좀 그랬으니까.
그래도 호감도 올리는 향수는 아웃. 그거 썼다가 엔딩 간 적도 있었다.
나름 마연시 경험을 총동원해 힘을 준 그녀가 조심스럽게 저녁 식사가 준비된 식당으로 들어섰다.
안내 로봇을 따라 예약된 룸에 들어서는 순간, 그녀의 전신이 파르르 떨렸다.
강제로 심쿵하게 만드는 마루의 모습.
그녀가 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생각에 잠긴 마루가 있었다.
아-
마연시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