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699)
러스트 [RUST]-699
김 양에게는 대충 간질간질한 그런 게 없었다.
애초에 믿고 뭘 한다는 개념이 있다면 마루와 함께 작업했을 때 정도?
‘백정이라면 믿을 만하지. 응.’
서로 목숨을 구해주면서 뿌듯하고 갚을 건 갚는다는 그런 느낌.
근데 지금 같은 경우는 뭐라고 해야 하나?
뻘쭘하다고 해야 하나?
좆도 안 되는 것들이 이렇게 빙 둘러서 있으면 뭐하자는 짓인가?
혼자라면 금방 도망칠 수 있는데 이것들이 여기 죽치고 있으면?
‘아니 실컷 간다고 해놓고. 이게 무슨 짓?’
김 양은 뻘쭘한 듯 간질간질하면서도 짜증 났다.
[새끼들 너희들 전부 명령 불복종이야.]한 사람 몫을 하니 마니 하는 것들이 튀라고 했더니 졸라게 말을 안 들어요.
[뭐함? 빨리 안 가고.] [대장님께서 앞장서셔야죠.]이 새끼들이 진짜?
양키 새끼들 본래 이러는 것들인가?
‘기래. 어디 보갔어.’
아주 어디까지 하나 보자.
김 양의 손보기 대상 목록에 1호기 다음 순서로 친위대원들 새겨졌다.
[전진.]부스터가 맛이 갔기 때문에 조금 전처럼 막무가내로 갈 순 없었다. 바글바글 몰려오는 개미들은 크기가 천차만별.
작은놈은 손바닥 정도 크기인데, 큰 것은 팔뚝만 한 것부터, 아주 큰 것은 중형 강아지 정도의 크기였다.
땅속에 빠지는 함정을 파고 김 양의 발목을 물고 들어간 놈이 그 큰 놈이었다. 그렇게 큰놈이 있음에도 검은 물결처럼 밀려오는 개미들은 태반이 손바닥 크기였다.
총알도 아까운 놈들.
김 양 전용 엑소슈트가 개미를 짓밟고 달리기 시작했다. 작은 것들도 변이체는 변이체인지, 센서 오류가 심했다.
[지반은 함정 파악 가능?] [센서 오류로 함정 파악이 어렵습니다.]개미들이 또 함정을 만들었을지도 모르니 탐지는 필수였다.
[고속카메라로 탄착지점 분석해.]김 양이 총구를 아래로 내린 뒤 방아쇠를 당겼다..
파바바바박-
7.62mm 탄이 바닥을 뚫고 들어가는 모습. 보조 인공지능이 HUD에 착탄 영상을 올렸다. 중간중간 총알이 쑥 빠지는 것처럼 사라지는 구간이 있었다.
[지금 쑥 들어간 부분 지도에 표시해서. 뒤로 전달-] [데이터 전송 실패.]뒤따라 오는 친위대원들에게 정보를 공유하라고 했지만, 간단한 통신은 가능한데 대용량 정보전달은 어렵다는 보조 인공지능이었다.
[그럼 애들 내 뒤를 바짝 따라오라고 해. 내가 밟는 자리만 따라오라고.] [전달했습니다.]지도에 표시하는 정도도 힘든 걸 보니, 개미 년들이 주변에 쫙 깔린 것 같았다.
[먼저 간 애들은? 연결해봐.]기순과 1호기, 에리카, 나루즈는 처음 이야기했던 대로 먼저 갔다.
[근접 통신 거리에서 벗어났습니다.]빨리도 갔네.
바바바바박-
바닥을 긁은 탄환에 구멍이 숭숭 뚫리는 땅바닥. 두더지 게임처럼 여기저기 휑한 공간이 드러났다. 그 아래에 대기하고 있는 커다란 개미들.
갑작스럽게 타액과 흙을 비벼 만든 함정 천장이 무너지자, 더듬이를 바쁘게 움직여 상황을 파악하려는 거대 개미의 모습에 김 양은 네이팜 수류탄을 던져 넣었다.
화르륵- 붉게 타오르는 화염과 뭉클뭉클 치솟는 검은 연기는 뒤따른 친위대원들에게는 이정표가 됐고 먼저 간 기순과 일행에게는 뒤따르는 부대가 살아 있다는 생존 신호가 됐다.
김 양과 친위대가 함정지대를 빠져나오자, 언덕 아래 기순과 일행들이 개미떼에 둘러싸인 모습이 보였다.
[화염방사기!]화염방사기를 장비한 친위대원들이 앞으로 나섰다. 시시각각 기순과 일행을 포위하는 개미떼 그리고 함정에 빠진 일행이 있는지, 푹 꺼진 구덩이 안쪽에서 총성이 요란하게 들리고 있었다.
[1조는 화염방사 후 전진.] [2조는 함정에 화염방사 후 이탈.] [넵.] [휘하!!!]김 양은 사전에 이야기한 대로 전진할 생각이었다.
[칙- 간호사와 에리카가 함정에 빠졌다. 개미들이 그 두 사람을 집중적으로 노리고 있어.]기순의 다급한 목소리에 김 양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친위대는 명령대로 전진.] [옙!]구덩이에 빠져 치열하게 교전하고 있는 나루즈와 구덩이 밖에서 포위망을 뚫으려고 하는 기순 사이에 화염의 벽이 치솟아 올랐다.
네이팜으로 불타는 길을 따라 내달리는 김 양과 친위대. 1조가 전방을 불바다로 만들며 나갔고, 이어서 2조가 구덩이에 화염을 뿌렸다.
[미친년!] [화염방사기를 쏠 거면 이야기를 하고 뿌려야지!] [탄창 빼! 탄창!] [총에 불. 불!] [트롤이다!] [본체년 같은 년!]뜬금없이 네이팜 불꽃 세례를 받은 나루즈들이 불구덩이 속에서 아우성쳤다.
[지랄하지 말고 빨리 나오셈.] [야. 미친년아!] [구해줘도 지랄이니? 먼저 간다.]쌩하고 불길을 따라 달려가는 김 양과 친위대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던 기순이 이제는 불구덩이가 된 함정에서 나나에와 에리카를 끌어 올렸다. 엑소슈트 여기저기 가득한 녹아내린 흔적.
[엑소슈트는 왜 그래?] [개미들이요. 개미들이 똥꼬로 산을 뿌렸어요.]간호사가 개미 똥꼬를 말하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개미산!’
기순의 실눈이 가늘어졌다.
씹- 개미들이 산성 공격을 하고 있었다.
신형 엑소슈트부터 산성 공격에 대응하는 복합장갑을 채택했다. 말 그대로 겹겹이 쌓은 장갑 사이사이에 내산성 소재를 코팅한 것이라 산성 공격에 허무하게 녹아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내열 장갑 부분이 문제였다.
내산 코팅으로 산 공격을 차단하는 데 성공했지만 여기저기 녹아내린 내열 장갑 사이로 화염방사기가 피워올린 불꽃의 열기가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겹겹이 쌓은 구조인 장갑인지라, 1차 장갑이 녹았어도 안쪽에 내열 장갑이 또 있어서 열기가 바로 파고들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내산 코팅에 계속 열을 받으면 코팅이 깨질 거야.’
그렇게 되면 조금씩 장갑이 파먹히는 꼴이 될 것. 기순은 일행을 추슬러 김 양과 친위대가 뚫어 놓은 탈출로를 따라 이동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앞에 김 양과 친위대가 거대 개미들과 뒤엉켜 싸우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바닥에는 손바닥만 한 개미들이 바글바글 기회를 노리고 있었고, 엑소슈트에는 성인 남성 팔뚝 크기의 개미들이 빼곡하게 달라붙어 산을 뿌려대고 있었다.
[국경까지는 얼마나 남았지?] [저 언덕을 넘으면 국경지대입니다.]보조 인공지능의 대답에 기순이 그대로 속도를 높였다. 국경 근처만 가도 중계기가 있으니 지원 요청이 가능했다.
기순이 필사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김 양과 친위대를 그냥 지나쳐가자, 간호사가 ‘안 도와주고 그냥 가는 거냐.’는 것처럼 ‘에?’하는 소리를 냈지만, 기순은 무시하고 일행을 이끌었다.
언덕을 넘자, 들쥐들과 신성 쥐들이 빼곡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젠장.’
이렇게 쥐떼가 몰려있으면 중계기로도 통신이 어려웠다. 기순이 외부 스피커를 통해 간호사에게 소리 질렀다.
[언덕 건너편 개미를 공격하라고 해! 빨리!]김 양과 친위대를 구해야 했다.
[언덕 건너편에서 아군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개미들이 아군을 공격하고 있어요. 모두 개미를 공격하세요!]간호사의 외침에 국경 지역에서 수비진형으로 대기하고 있던 쥐떼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찌이이익! (전쟁이다!)
찌이익-찍! (죽음의 신께- 승리를!)
찌이익! (죽이자!)
찍!!! (공격!!!)
암회색과 갈색 물결이 넘쳐흐르는 쓰나미처럼 언덕을 타 넘겼다.
산에 녹아내린 냄새, 폭발과 화염에 타버린 고기 냄새가 진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
‧
‧
마루는 김 양이 가져온 개미 샘플을 봤다.
크기로 분류해 보자면 대략 세 종류. 손바닥만 한 일개미. 성인 남성 팔뚝 크기의 병정개미. 그리고 올림피아 선수 허벅지 정도는 될 법한 가칭 장군 개미.
간호사의 의사소통 능력은 통하지 않았고, 에리카의 사이코메트리 능력도 제한적으로밖에 쓸 수 없었다고.
그나마 기순의 감정 읽는 능력으로 포위가 취약한 지점을 파악했지만, 역으로 그걸 이용해 보급의 고갈을 노렸다는 기순의 이야기에 마루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놈들이 교환비를 알고 있다는 거다. 심지어 자기들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우릴 생포하려고 했어.”
“확실해?”
교환비를 고려는 것도 그렇지만, 인간을 생포하려는 짓은 들쥐나 늑대도 하지 않았던 행동 양식이었기에 마루가 재확인했다.
“증거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놈들은 분명하게 나나에와 에리카를 집중적으로 노렸다.”
마지막 언덕에서 기순과 나루즈의 전진에 함정을 무너뜨리지 않고, 뒤따라오던 나나에와 에리카가 있는 그룹이 통과할 때를 정확하게 노려 함정을 발동한 것을 보면 확실했다.
간호사와 사이코메트리를 핀포인트(pinpoint)로 노렸다는 것도 이상했지만, 교환비는 더 이상했다. 개미들이 교환비를 따져?
“그게 무슨 소리지?”
“쥐떼처럼 달려들지 않고 차례대로 대형을 갖춰 공격했음.”
개미에는 화염방사기가 직방이었는데, 놈들이 뜨거운 맛을 보곤 순차적으로 병력을 투입해 화염방사기의 소모를 유도했다는 이야기.
“들쥐 군단과 붙었을 때도 교환비 따져가며 싸우다가, 일정한 선 이상 넘어가면 미련 없이 퇴각했음.”
흥분한 들쥐 무리가 퇴각하는 개미들을 추격해 굴로 들어갔지만 돌아온 들쥐는 없었다. 퇴각하면서 추격에 대비했다는 뜻.
놈들이 교환비를 따져 스스로 퇴각하지 않고 결판을 내겠다고 끝까지 싸웠으면 피해가 엄청났을 상황.
“들쥐들 피해가 컸어요.”
간호사가 들쥐들이 이야기했던 것을 떠올렸다.
“개미들의 단단한 갑각을 단창으로 뚫는 건 어려웠다고 해요. 그리고 개미의 힘도 너무 세고요.”
들쥐에게 지급한 기본 무장은 꼬챙이처럼 끝이 뾰족한 단창(短槍)이었다. 투척하기도 좋고, 근접전 무기로도 나쁘지 않은 무기. 무엇보다 생산성이 좋아 대량 생산에 유리했다.
이제까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던 단창이 개미들에게는 잘 먹히지 않았다는 건 좋지 않았다. 게다가 개미의 괴력도 문제였다.
들쥐의 무게는 평균적으로 10kg은 훌쩍 넘었다. 몸통 길이만 해도 50~60cm는 됐고 꼬리 길이까지 따진다면 1m는 거뜬했다.
그런 들쥐의 앞다리 힘을 고작 손바닥 크기의 일개미가 버텨냈다. 팔뚝만 한 병정개미는 한술 더 떠서, 턱으로 들쥐를 집어 던지기까지 했다. 장군 개미는 그냥 답이 없었고.
들쥐들이 병정개미와 장군 개미를 잡기 위해 함정을 팠지만, 그건 개미도 마찬가지. 서로 굴을 파고 서로 함정을 만들고 개싸움이 될수록 개미들이 유리해졌다.
작은 일개미가 난전 사이로 침투해 개미산을 뿌려대기 시작했기 때문. 이쪽에서도 신성 쥐가 성스러운 자폭으로 대응해서 전선을 유지했지, 아니었으면 위험할 뻔했다는 이야기.
마루는 머릿속으로 전황을 떠올렸다.
난전 상황이 계속됐다면 개미들이 국경을 뚫고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런데 퇴각했다?
어째서?
기순과 김 양은 개미들이 교환비를 생각해서 후퇴한 것 같다고 했지만, 마루는 어쩐지 찜찜했다.
‘간호사의 능력이 먹히지 않은 이유가 개미의 의사소통 방식 때문이라면···.’
개미들은 페로몬으로 의사소통했다.
‘페로몬이라.’
마루의 시선이 나주연을 향했다.
이쪽에는 중학교 시절부터 페로몬 향수를 개발한 여자가 있었다.
‧
“여왕개미의 페로몬이요?”
“그래. 여왕개미의 페로몬을 합성할 수 있다면, 개미들끼리 상잔(相殘)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 테니까.”
잠시 생각을 정리한 나주연이 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페로몬을 이용해 정보 교환을 하는 개미였는데, 변이까지 했으니 어지간한 흉내로는 먹히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가능할 것 같아요. 다만 개미들을 혼란에 빠뜨릴 정도의 페로몬 신호를 합성하려면 여왕개미가 필요해요.”
그것도 산 채로.
그래야 다양한 페로몬 신호를 파악하고 합성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나주연의 설명이었다.
그 미친 개미들을 뚫고 여왕개미를 납치해야 한다고?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여왕개미를?
끔찍한 난이도에 다들 학을 떼는 가운데 마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지금까지 얻은 정보로 시뮬레이션부터 돌려보지.”
여왕개미 포획 작전을 추진하는 마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