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704)
러스트 [RUST]-704
마루는 땅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껄끄러웠다.
아무리 위기 감지를 하더라도 땅속에서 벗어나지 못해 묻혀버리면 끝이었으니까. 하지만 여왕을 잡으려면 다른 방법이 없었다.
‘유인은 먹히지 않을 테고.’
불을 지르거나 가스를 넣어서 나오게 하는 방법도 생각해봤지만, 시뮬레이션 결과 소용이 없었다.
‘매연이나 유독성 가스를 넣으면 나도 들어갈 수 없을 거다.’
변이체들의 밀도가 극단적으로 높아지면 생기는 현상 때문이었다. 통신장애를 시작으로 최악으로는 전자기기 오류를 일으키는 현상.
EMP는 아니지만, 사실상 EMP나 마찬가지인 일종의 생체 EMP 탓에 레이븐 슈트의 화생방 대응장치가 먹통이 될 확률이 높았다. 독가스를 구멍에 뿌리려고 할 때마다 느껴지는 찝찝함을 보자면 확실히 그러리라.
특이점에 도달한 기술력으로도 그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모순적인 결과가 동시에 나왔기에 어쩔 수 없었다.
밀도가 높다는 것의 기준도 제멋대로였고, 통신방해나 전자기기 오류를 일으키는 밀도도 마찬가지.
변이 괴수의 밀도가 높다 싶으면 발생하는 현상이지만, 구체적인 기준을 알 수 없기에 대응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당장 까마귀만 해도 그랬다. 천 단위의 까마귀를 비행선에 실었을 때는 멀쩡했지만, 천 단위의 쥐떼와 싸웠을 때는 장거리 통신이 교란되기도 했으니까.
그 원인이 까마귀 때문인지, 아니면 쥐떼 때문인지 둘이 싸우면서 시너지 효과가 났는지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보니, 무턱대고 불을 질러 버리거나 살충제를 뿌릴 수 없었다.
여왕을 죽이는 게 아니라, 생포하는 게 목적인지라 더욱 그랬다.
그리고 지금. 개미들은 통신장애를 넘어서 센서까지 오류를 만들고 있었다. 이런 전자기기 간섭 현상이 강해져 엑소슈트에 영향을 끼친다면?
개미의 물량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들쥐들도 물량으로 대응하는 만큼, 남쪽 국경지대는 EMP에 두들겨 맞은 것처럼 모든 전자기기가 먹통이었다.
‘젠장.’
마지막으로 보고받은 전황은 팽팽했다.
개미들의 야습에 대비했기도 했지만, 곤충에 쥐약인 화염방사기와 나주연이 만든 특수 살충제까지 쟁여 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번에 내성을 얻지는 못할 테니, 썼을 때 최대한 많이 잡아야 해.’
전선 곳곳에 뿌려지는 살충제와 화염은 개미들을 지옥으로 보내는 데 충분했다. 문제는 살충제와 네이팜의 양이었다.
총력전을 선언하고 전시체계를 가동하고 며칠 지나지 않은 상황. 당연히 재고가 많지 않았다. 그에 비해 개미들의 숫자는 예상 밖으로 너무 많았다.
뉴욕을 공격하기 위해 지상으로 올라온 시궁쥐의 숫자가 700~800만 마리라고 한다면, 지금 신성 왕국을 공격하는 개미떼는 최소한 8,000만 마리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었다. 그것도 캐나다 방면을 공격하고 있는 개미들은 제외한 수치였다.
‘공습이라니.’
날개미를 떠올리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 까마귀 부대와 싸우고 병정개미를 강하시킬 정도로 많은 숫자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날개미 자체가 수개미고 수개미는 공주 개미와 짝짓기를 하고 쫓겨나거나 죽는 역할을 하는 개미였기에 그랬다.
[지도 활성화.] [위치 정보 확인 시스템 작동합니다. 오토-맵핑(Auto-mapping)을 시작하겠습니다.]레이븐 슈트의 보조 인공지능이 복잡한 미로처럼 엉킨 개미굴 지도를 만들기 시작했다. 마루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오토 맵핑이 가능하다는 건 외부 센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소리니까.’
이곳 주변에는 개미들이 많지 않다는 뜻. 그렇다면 불을 지르거나 살충제를 써도 되지 않을까?
두근-두근-
개미의 밀도가 낮음에도 미미하게 경고하는 심장 소리. 쓰면 위험하다는 경고.
‘젠장.’
욕설과 함께 굴 내부로 진입하는 마루였다.
‧
‧
‧
여왕개미가 자리한 개미굴은 상당히 컸다.
개미들의 전초기지(?)가 지름 90cm~110cm 정도의 터널로 연결됐다면 여왕개미 굴은 지름이 250cm~300cm 가까이 됐다.
이렇게 터널을 크게 뚫었다는 건.
‘그만큼 큰 개체가 있다는 뜻이고 동시에 대량의 물동량을 감당할 수 있다는 의미겠지.’
빌어먹을 개미 새끼들 뭐 하나 정상적인 게 없네···.
그냥 스쳐 지나가면 대단할 것도 없는 그냥 굴로 보이지만, 자세히 따져 볼수록 규모나 공법에 있어 말이 안 나올 지경.
지름 3m짜리 배수관을 묻는다고 가정해도 제법 괜찮은 철근 콘크리트 기술과 시공 능력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걸 개미들은 도구 하나 없이 해낸 것.
마루는 터널 벽을 살짝 두들겨봤다.
툭툭-
둔탁하면서도 약간의 탄성이 느껴지는 벽면. 단순하게 흙을 다져서 만든 터널이 아니었다. 외벽을 쪼금 뜯어 샘플을 채취한 마루가 점점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스륵-
레이븐 슈트를 장비한 마루의 걸음걸이는 어딘지 묘했다.
미세한 진동마저 느껴지지 않는 발걸음.
마치 몸무게가 없는 것만 같은 움직임.
그래서인지 병정개미들은 마루가 거의 더듬이 근처까지 와서야 이상함을 깨달았다. 공기의 움직임도 땅의 울림도 없이 갑자기 뿅-하고 허공에서 튀어나온 것 같았기 때문.
심지어 그렇게 나타난 존재는 같은 병정개미의 페로몬과 장군 개미의 페로몬이 뒤섞인 존재였다.
이건 뭐지?
더듬이로 확인해보려는 찰나, 마루의 칼날이 병정개미의 머리통을 수직으로 쪼갰다. 단칼에 죽였음에도 마루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두근-두근-두근-
‘?’
‘설마?’
개미는 머리가 잘려도 페로몬을 뿌릴 수 있었다는 것.
심지어 목이 잘려도 턱 힘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생명체라는 점.
위험. 침입자.
세로로 쪼개진 병정개미가 내뿜은 페로몬이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위험한 것은 다른 동물들이나 곤충들이 동료가 죽은 장소를 피하는 경향이 있음에 반해, 개미들은 동료가 죽은 장소를 확인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었다.
마루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하는 개미들.
병정개미를 시작으로 덩치가 큰 장군급(級) 개미들까지 왔다.
‘시뮬레이션과 완전히 다르잖아?’
2회차까지 진행했던 가상 현실 시뮬레이션에서는 이렇지 않았다.
지능이 높게 잡힌 개미들은 동료가 죽으면 그 주변을 포위한다거나, 인근에 매복해 동료를 죽인 적을 잡으려고 했지 지금처럼 무작정 밀고 들어오지 않았었다.
씨발-
이대로 가면 전후‧좌우‧상하 할 것 없이 밀려드는 개미로 바글거릴 판이었다.
‘죽인다!’
마루가 터트린 살기가 파동처럼 퍼져나갔다.
살기로 잡고 단숨에 쓸어버리자.
쥐떼와 새떼를 밀어버렸던 필승 패턴. 바퀴벌레도 도망치게 했던 짙은 살기가 터졌다.
!!!
맹렬하게 움직이던 더듬이들이 잠시 굳었을 뿐, 개미들은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이것도 시뮬레이션과 달라?
[동작감지 센서 오류.] [광학 센서 오류.] [변이 개체의 밀도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습니다.] [오토 맵핑 종료합니다.]그나마 적외선 감지기는 버티고 있었다.
그 초록빛의 인도를 따라 마루의 이클립스가 날아들었다.
콰직-
개미의 체액과 죽음의 페로몬이 튀기 시작했다.
‧
‧
‧
12.7mm 철갑탄도 튕겨내는 생체장갑이 알루미늄 포일 찢어지듯 찢어지는 소리.
단단한 갑각질이 썰리고 살이 꽉 들어찬 껍질을 토막 치는 소리가 어두컴컴한 개미굴을 가득 채웠다.
서걱- 뿌득 –콰직-
마치 절단기에 넣고 갈리는 소리는 분명 죽음의 소리일 진데, 안으로 들어가는 개미들의 발걸음엔 일말의 주저함도 없었다.
배수로에 흐르는 것은 지하수나 빗물이 아닌, 개미들의 체액이었다. 그 덧없는 죽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통로 전체에 가득한 죽음의 페로몬.
토막 낸 개미에게서 뿌려지는 체액을 뒤집어쓰면서도 마루는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전진. 그리고 또 전진.
멈추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기에 무조건 안으로, 깊숙이 침투한 마루의 눈앞에 거대한 공동이 드러났다.
그 공동에 들어가려는 것을 막는 것처럼 장군급 개미보다 더 큰 개미들이 마루의 앞을 막아섰다.
츄릭-
사각에서 쏘아진 개미산. 개미산을 피하려면 후퇴하거나 옆구리를 공격하는 턱을 피할 수 없었다.
두근-두근-
순간순간이 선택임을 경고하는 심장 소리.
마루는 뒤를 보지 않았다.
물러서는 순간 공동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
선택은 전진.
일반 병정개미가 쐈던 산보다 더욱 농도가 짙은 개미산이 마루의 전신을 두들겼다.
치이이익-
내산성이 강한 레이븐 슈트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름에도 마루는 전진했다.
뿌걱-퍽-
앞을 가로막은 근위대 개미의 머리통에 이클립스를 박아 넣고 이어진 몸통 박치기. 중심을 잃고 뒤로 나동그라진 개미가 중간 다리로 마루의 몸통을 붙잡았다.
!!!
머리통을 관통한 칼날이 얇은 목을 뚫고 몸통을 헤집어도 근위대 개미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이미 생물학적으로는 뒈진 놈인데도 거대한 턱으로 마루의 머리를 노리는 모습.
마루는 개미 대가리에 박은 이클립스에 힘을 줘, 아래로 썰어 내렸다. 갑각질 잘리는 거친 느낌과 동시에 억세게 조이던 턱이 느슨해지자,
퍽-
앞차기로 엉겨 붙은 근위대 개미를 떨군 마루가 기어코 동공 안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높다란 천장. 미미하게 흩뿌려진 인광(燐光)이 별처럼 빛나는 공간 한쪽 구석에 거대한 개미가 있었다.
······?
어쩐지 여왕개미와 시선이 마주친 것 같은 느낌.
[······.]······.
그것은 개미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컸다.
마루는 지름이 3m에 달하는 터널이 필요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거대 여왕개미와 짝짓기하는 수개미의 크기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날개미가 절반 이하 크기라고 해도 엄청 큰 거잖아.’
까마귀들이 실종된 이유를 알 법했다.
!!!!!!
사각에서 개미산을 뿌려댔던 근위대 개미들이 마루를 몰아내기 위해 몸을 던졌다. 반원으로 포위한 채 밀고 들어오는 개미들을 향해 검은색 만월이 두 번 떠올랐다.
검은 달빛에 더듬이가 후두둑 잘려나갔고 동그랗게 이어진 달그림자 닿은 개미들의 머리가 분쇄됐다.
질척하게 흘러내리는 체액과 개미산이 섞이면서 죽음의 냄새가 메케하게 차올랐지만, 여왕개미를 구하기 위해 바글바글 몰려드는 개미들.
죽음의 공포를 모르는 기계처럼 통로를 가득 채운 개미들이 공동을 향해 밀려들었다.
쯧-
‘머리가 좋으면 살기가 먹혔는데···.’
개미들에게는 살기가 통하지 않고 있었다.
칙-
중화제를 박아 넣자, 전신을 달구었던 열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으며 진정됐다.
후-
칼질로 정리하기엔 너무 오래 걸렸다. 이클립스의 절삭력에도 어느 정도 버티는 개미들, 특히 근위대나 장군급(級) 개미들은 정말 단단하고 질겼다. 이걸 생으로 모조리 썬다?
‘하나부터 열까지 엉망이로군.’
일반 개미 병력은 예상보다 적었지만, 여왕개미를 지키는 우수한 호위 병력은 예측보다 많았다.
저걸 전부 썰다가는 중화제 중첩 부작용이 먼저 생길 게 뻔했다.
‘네이팜 수류탄으로 통로를 막을까?’
처음에는 위험하다고 반응했던 감각이 지금은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마루는 즉시 통로 안쪽으로 네이팜 수류탄을 까 넣었다.
퍼어어어어엉!
1,300도가 넘는 불꽃이 통로를 불살랐다.
삽시간에 개미 껍질 태우는 냄새와 검은 연기가 통로를 채우나 싶었는데, 개미들의 건축 능력은 실로 놀라웠다.
검은 연기가 순식간에 환기구로 배출되는 모습에 마루가 잠시 말을 잃었다.
‘지하수 처리 시설에, 환풍 장치? 어이가 없군.’
네이팜 수류탄으로 시간을 벌었으니 이제는 여왕의 차례.
여왕을 보좌하는 시녀 개미들이 마루의 앞을 막았지만, 그저 쿠직- 짓밟힐 뿐이었다. 시녀 일개미들이 짓밟혀 죽었음에도 여왕개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끌고 가지?’
덩치가 커도 너무 컸다. 탱크로리 급이라니.
이걸 끌고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 마루였다.
[시스템 복구. 재시작 성공.] [시스템 정상 작동.] [각부 센서 작동 정상.] [외부 카메라 작동 정상.] [로봇, 드론 작동 가능.]보조 인공지능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음? 개미의 밀도가 떨어졌다고? 어째서?
불꽃 때문에 통로로 들어오지 못하니까 대응 방향을 바꾼 건가?
여왕을 버리고 공주를 챙겨서 분가했다거나.
마루의 시선이 개미 여왕을 향했다.
‧
‧
‧
이게 인간?
그럼 지금까지 먹은 인간은 뭐였지?
여왕개미는 인간의 몸에서 풍기는 진득한 죽음의 페로몬을 맡을 수 있었다.
그것도 한둘이 아니었다.
수백 마리의 자매들이 죽어가며 남긴 페로몬 흔적.
단단한 갑각과 강인한 턱. 강력한 개미산도 저걸 막을 수 없었다.
전쟁에서 단련된 근위대까지 한갓 일개미처럼 스러지는 것을 본 그녀는 페로몬과 함께 의념(意念)을 일으켰다.
저건 인간이라고 하기엔 너무 이질적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원하는 게 뭔가?)
언젠가 인간을 먹고 생긴 능력.
쓸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능력을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