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708)
러스트 [RUST]-708
개미들이 투입되자 피해 복구에 속도가 붙었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더라?”
“작업하려는 방향에 한 방울 떨어뜨리라고 했잖아.”
페로몬으로 위치를 지정해야 했기에 현장에서 조금 버벅거리기는 했지만, 몇 번 합을 맞춰본 뒤부터는 나름 합이 잘 맞는 인간과 개미였다.
“얘네들 위치만 잡아주면 그 뒤에는 알아서 척척 잘하는데?”
“교육받은 애들만 온다고 했잖냐.”
“곰방 하나는 끝장이네.”
“자재 운반만 잘하는 게 아니라, 미장도 하더라.”
“미장까지? 개미가? 개미 다리에는 집게 같은 것도 없잖아. 어떻게 하는 건데?”
“침이라고 해야 하나? 타액? 그거랑 새로 만든 시멘트 비슷한 걸 섞어서 턱으로 바르는데. 그냥 끝내준다.”
개미들은 말 그대로 타고난 일꾼이었다. 성인 남성 팔뚝 크기인 병정개미의 몸무게는 대략 2kg 내외. 이렇게 가벼운 병정개미가 버틸 수 있는 무게는 자기 몸무게의 수백 배에 달했다.
생으로 들고 옮기는 것만도 거의 50~60배 가까운 무게를 옮길 수 있었으니, 팔뚝만 한 개미가 40kg짜리 시멘트 포대를 옮기는 건 공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됐다.
개미 병력의 주력을 담당하는 병정개미가 이럴 정도였으니, 개미 군단의 최상위 개체인 장군급 개미는 말 그대로 노동계의 끝판왕이었다.
성인 남성 허벅다리 크기인 장군 개미는 무게가 12~15kg까지 나갔다. 어지간한 총탄을 튕겨 낼 정도로 강력한 생체장갑. 포유류와 파충류를 통틀어도 상대가 없을 정도로 강력한 근육까지.
12~15kg짜리 장군 개미가 2,000kg이 넘는 SUV 자동차를 번쩍 들어 옮기는 모습은 말 그대로 신성 왕국 SNS에 박제될 정도였다.
이런 개미들이 툭하면 15~20만. 여차하면 30만씩 몰려다니면서 복구공사에 참여하다 보니, 순식간에 작업이 끝나는 건 당연한 이야기.
문제는 개미들에게 지급하기로 한 보상이었다.
“30만 마리의 병정개미에게 약속한 고기 경단을 지급하려면 하루에 30만kg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장군급 대형 개미에게는 10kg의 고기 경단을 지급하기로 해서 이대로 가면 보급이 부족합니다.”
일꾼으로 들어온 개미들과 소통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 후드가 보급품 재고와 공사 현황 그래프를 모니터에 올렸다.
하루에 많게는 30만 마리에서 적게는 15만 마리가 동원되다 보니, 그동안 쌓아 놓은 물자가 삽시간에 줄어들고 있었다.
“콩고기도 상관없다고 했으니까 콩고기로 대체해 보도록 하지.”
“배양육(cultured meat)도 상관없다면 그쪽도 섞도록 하겠습니다.”
마루는 후드의 요청에 고개를 끄덕였다.
‘배양육이라.’
배양육 제조 기술은 라이저 제약그룹에서 확보한 것을 비롯해 비상시를 대비해 추가로 연구한 방법까지 있었다.
그리고 지금 현재. 신성 왕국은 다양한 육질의 배양육을 만들 정도로 기술을 축적하고 있었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도 그렇지만, 식인귀의 식인 욕구를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장기적으로 연구하고 있던 부분이 배양육, 대체육 분야였다.
라이저 제약에서는 인육 배양을 통해, 식인귀의 식욕을 제어하고 식인을 하지 못했을 시 생기는 문제들을 극복하려고 했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인간의 고기를 배양했으니 과학적으로 따진다면 분명 인간 고기임에도, 식인 관련 부작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연구 자원을 모조리 끌어다 쓴 기스 라이저도 결국 포기한 것을 보면 단순하게 복제나 증식, 배양의 문제가 아니라고 봐야 해.’
변이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발생한 사태도 그렇고 급작스럽게 변이가 시작된 동물도 그랬다. 기존의 과학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너무 많았다.
‘수상 도시 관련 기술만 끝내면, 양자컴퓨터로 변이 바이러스와 급속 변이 부분을 파봐야겠어.’
“콩고기와 배양육을 섞어 지급했더니 개미들의 만족도가 높아졌습니다.”
양자컴퓨터를 이용해 개미들의 기호에 맞는 고기 경단을 생산한 것이 정답이었다.
‘그래도 가짜임.’
문득 마루는 김 양의 목소리가 재생되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맛있어도 배양육이든 콩고기든 가짜라고 했었지.
콩고기나 배양육은 진짜 고기에서 느껴지는 생생한 삶이 없다고 했던가?
‘그러니까 고기는 모름지기 진짜 고기만 고기임.’
김 양의 진지함이 떠오른 마루가 피식- 했다.
‘삶인가?’
생명체가 살아가면서 쌓아가는 삶.
다른 말로 업.
어쩌면 얽힘의 관계.
배양육으로는 식욕을 다스릴 수 없었던 이유가 삶, 업, 얽힘의 부재 때문이었다면···.
일본 지하에 봉인되어있었던 그것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잠시 생각에 잠겼던 마루가 보고서에 집중했다.
“도로 공사는 금방 끝나겠군.”
“네. 지금 속도로 진행된다면 늦어도 보름 안쪽으로 복구공사가 끝날 것 같습니다.”
‘보름이라. 보름.’
생각보다 빠른 공사속도였지만, 마루는 시간을 더 줄였으면 했다.
“생산능력은 충분하니까 개미를 더 고용하도록 해.”
“네? 30만 마리 이상을 고용하라는 말씀입니까?”
후드가 깜짝 놀랐다.
“참여한 개미들이 많아질수록 다음이 편해질 테니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고기 경단 맛에 빠진 개미들이 늘어날수록 향후 협력이 수월해지겠지.
‧
‧
‧
‘약속은 지킨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계약은 실행된다.’
이건 마루가 가진 일종의 선이었다.
덴 브라운의 제국과 어딘가 모르게 삐걱거리면서도 관계를 유지하는 이유도 선 때문이었다.
마루가 용병이었을 당시, 권력자들이나 군부와는 다르게 덴 브라운은 주고받음이 명확했다. 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의견을 교환했고 대가를 협상했다.
그렇게 주고받은 결과는 반드시 이행됐다.
계약대로 일하고, 일한 만큼 받는다.
실행하고, 약속한 만큼 대가를 준다.
이 간단한 원리는 신성 왕국을 지탱하는 기본적인 방침이었다. 약속한 대상이 까마귀든, 늑대든 하다못해 들쥐와 한 약속이더라도 마루는 지켰다.
노동에 대한 대가도 마찬가지.
쥐와 개미에게는 약속한 만큼의 현물이 지급됐고 까마귀들과 늑대 무리는 넉넉한 보너스까지 받았다.
“늑대들은 요즘 놀면서 날로 먹는 거 아님?”
“그렇지는 않습니다. 봄이 되면서 장거리 순찰이 많아졌으니까요.”
늑대 무리에게 성과급을 지급한 이유를 설명하는 PD였다.
“개미와의 소통은 이제 좀 익숙해졌나?”
성과급에서 개미로 화제를 전환한 마루의 물음에 후드가 답했다.
“네. 생활 수준 대화는 가능합니다.”
의사소통 가능하다는 이야기에 기순이 의견을 냈다.
“개미들 말이지. 작업 훈련도 됐는데 그냥 해산하기는 아깝지 않아?”
“일당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일이 없어도 모아놓으면 일당을 줘야 해.”
“생활 수준의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면, 개미들을 인솔해 뉴욕시 재건 공사에 투입하면 어떨까?”
“···가능합니다만 실익이 있을까요?”
수소 폭탄으로 뉴욕이 반쯤 날아가 버렸다. 거기에 개미를 투입한다고 무슨 이익이 있을까는 후드의 의구심.
“실익이야 충분합니다.”
“어떻게요?”
당연히 있었다. 괜히 인력센터가 돈을 버는 게 아니었으니까. 30만 단위의 노동력을 파견하면서 10%만 뗀다고 해도 어딘가?
제국에서는 개미들에게 지급할 고기 경단을 신성 왕국에서 구해야 할 테니, 양쪽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동시에 개미 제국과 아메리카 제국을 서로 소개하는 장이 될 수 있고.
“그게 가능할까요? 뉴욕이 날아가 제국 경제가 침체에 빠졌는데 개미들을 고용하려고 할까요? 돈을 풀어도 제국에 풀고, 일거리를 줘도 제국 사람들에게 일을 주지 싶은데요.”
뉴욕시의 인구는 1천만이 넘어가는 추세였다. 하지만 시궁쥐의 습격과 수소 폭탄 처리로 600~650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집과 직장을 잃었다.
뉴욕 인근 지역으로 분산한다고 600만의 이재민을 수용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뉴욕에서 돗자리 펴고 텐트 쳐서 600만을 수용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미합중국 전성기라고 해도 한 방에 600만 이재민이 발생하면 주변 경제가 초토화됐는데, 지금은 종말의 시대.
제국의 경제력으로 600만 이재민을 먹이고 재우고 일자리까지 만들어 주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재민을 노동력으로 삼아서 잔해 치우는 데 몇 년 걸리는 것보다. 가성비 쩌는 개미 친구들을 소개해 주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개미를 제국에요?”
“······.”
“······.”
“계속해봐.”
어깨를 으쓱한 기순이 상황을 설명했다.
“덴 아재가 요즘 골머리 아픈 거 같더라고.”
“자기 손으로 뉴욕을 날려버렸으니 그럴 수밖에.”
“뭐. 해상 도시 건설에 집중해서 도시 기초가 될 메가 플로트부터 만드는 중이야. 기술 인력들 전부 그쪽에 투입하고 있는데, 뉴욕시 재건하자는 여론이 식지 않아서 고전하고 있더라. 그래서 악수(惡手)를 두는 것 같고.”
“악수?”
“여론은 좋지 않지, 경제는 나락이지, 당장 지금부터 준비해도 600만 이재민은 어쩔 거야? 여름은 그렇다고 쳐도 월동준비 실패하면 태반이 얼어 죽을 텐데.”
“그래서. 악수를 뒀다?”
기순의 실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어쩌겠어. 당장에라도 콩가루 난 걸 뭉치지 못하면 눌러놨던 문제들이 한 번에 터지게 생겼는데. 그래서인지 일단 냅다 뽕부터 넣은 거 같더라.”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정부(···government of the people, for the people, by the people)’를 인간으로 바꿔서 인류를 위한 제국임을 선언했다는 이야기.
PD와 후드가 맥락을 이해했다.
“인간중심주의를 선언해 혼란한 틈을 타 식인귀나, 흡혈귀 세력이 파고드는 것을 견제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인간이 아닌 것들에 대한 처분 명분을 선언한 것이라는 PD의 해석이었다.
인간을 위하는 정부, 오직 인간만을 위한 정책. 그래서 인간이 함께 모여 살아가는 제국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분열을 막으려고 했다는 것.
“인간중심주의를 선언했다는 건 식인귀, 흡혈귀뿐만 아니라 변이 괴수와 동물까지 배제한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분위기가 그런데 일꾼개미를 데려가자는 건 좀··· 위험하지 않을까 싶네요.”
미국에서 개미는 해충 가운데 하나였다.
뉴욕이 무너지면서 스트레스가 쌓일 대로 쌓인 뉴욕 시민들이 팔뚝만 한 개미들이 돌아다니는 걸 그냥 보고만 있을까?
“위험하지. 그래도 지금 안면을 터 둬야 최악의 상황을 피하지 않을까? 최소한 지금이라면 뉴욕 재건에 개미들이 참여하는 걸 직접 보게 될 테니, 대놓고 사건을 일으키지는 않을걸.”
그건 모를 일이었다. 워낙 신기한 사건이 일어나는 미국이었으니까.
마루는 상황을 정리했다. 기순의 의견인 일꾼개미 보내면서 겸사겸사 이익도 챙기고 인간중심주의 선언으로 달궈진 제국을 좀 식혀주자는 이야기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위험요소가 있다는 게 걸림돌이었다. 그런 위험성에 대해 개미 군집은 신경 쓰지 않았다. 몇 마리에서 수십 마리가 죽어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개미들이 다소의 사건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으니, 덴 브라운 총통에게 일꾼개미가 필요한지 확인해봐.”
‘예이예이 왕님.’ 가볍게 대답한 기순이 제국 보스턴으로 향했다. 뉴욕이 아닌 보스턴으로.
‧
‧
‧
덴 브라운은 뉴욕시를 그 자리에 재건할 생각이 없었다.
똑같이 재건하는 데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래 지나지 않아 무너질 게 뻔한 도시를 왜 재건해야 하는가?
하지만 시민들은 뉴욕을 재건하길 원했다. 절대 잠들지 않는 도시 뉴욕, 찬란한 밤의 도시이자, 황금빛 황소의 도시가 부활하길 바랐다.
“그러니까. 개미를 일꾼으로 써보라는 이야기인가?”
“그렇습니다. 어차피 뉴욕을 재건할 생각은 아니지 않습니까? 여론을 생각하신다면 잔해를 정리하고 재건한다는 모습을 보이셔야 할 텐데, 그쪽으로는 우리 개미들이 전문가입니다.”
기순은 하루도 아니고 반나절만 일꾼개미를 써보라고 권유했다.
“지금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겠지?”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 중심 선언도 위험하다는 걸 알고 하신 거죠?”
노동력(?) 공급 계약서를 교환한 두 사람이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덴 브라운은 깜짝 놀랐다. 고작 반나절 만에 총통관저 인근에 널브러진 폐허가 깨끗하게 치워졌기 때문이었다.
“What the···.”
반파된 철근 콘크리트 건물에 다닥다닥 달라붙은 개미들이 건물을 통째로 해체하는 모습.
맙소사.
======
======
뉴포트뉴스 조선소 방어를 점검한 희연은 곧장 변종 거미를 확인하러 출발했다.
[비효율적인 선택임을 알려드립니다.]보조 인공지능이 재차 만류했다.
변종 거미를 생포하는 게 목적이라면, 산성 쥐나 불꽃 쥐에게 명령을 내리면 그만이었다. 꼭 링크까지 해서 직접 갈 필요는 없었다.
[간단한 정찰이나 방어면 모를까, 현장 상황에 맞는 대응을 하기엔 부족한 게 사실이잖아.]희연은 말문이라도 터진 것처럼 말했다. 역시 링크를 하면 혀짧은 소리를 내지 않아서 좋았다.
[통신 이상 없습니다.] [센서 정상 작동 중.]거미줄이 눈에 보일 정도로 가까이 접근했지만, 전파장애나 전자기기 간섭이 없었다.
[근처에 없어?] [동작 감지 센서, 생체 탐지 센서에 잡히는 것은 없습니다.]희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산성 쥐가 마지막에 찍은 영상에는 거미들이 집단을 이루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