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709)
러스트 [RUST]-709
띠—–이—-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는 듯, 동작 감지 센서에서는 낮은 단음만 흘러나왔다.
띠—–이—-
무심하게 반복되는 소리가 최면유도음이라도 되는 것처럼 희연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센서에 잡히는 건 없지만, 무언가 있는 듯한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들리지 않는 센서 소리. 수분을 가득 머금은 흙이 엑소슈트의 발자국을 깊게 남기는 모습이 반전하며 황야로 변했다.
?
누렇게 바싹 마른 들판 건너 울퉁불퉁 바위가 튀어나온 거친 언덕.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도로변을 걷는 부대원들이 터덜터덜 걷는 광경.
이라크와 아프간의 황야가 떠오르며 희연에게 녹아있던 유 이사의 기억과 경험이 매복임을 경고했다.
척-
앞장선 희연이 손을 들자, 그녀의 뒤를 따라오던 뉴포트뉴스 방어부대원들이 즉시 사주경계를 펼쳤다.
[클리어.] [클리어.] [클리어.]좌측 우측 이상 무.
후방도 안전하다는 통신이 들어왔지만, 희연은 전진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분명히 뭔가 있었다.
앞에 아무것도 없고 동작 감지기에도 생체 반응 센서에도 잡히지 않지만, 무언가 있었다.
바짝 긴장한 채 흘러가는 시간.
[······.] [······.] [······.]그녀의 바로 뒤에 있던 병사가 석상처럼 굳어있는 희연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의 어깨에 살짝 손을 댄 병사가 작게 흔들며 말했다.
[괜찮으십니까?] [움직이지 마.]희연의 눈동자가 전방과 양옆을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없다.
있다.
없다.
있어.
광야의 환상과 현실이 겹쳐지며, 머릿속이 울리기 시작했다.
조금씩 거칠어지는 희연의 호흡.
[과호흡 징후가 있습니다.] [후-흐흡-]희연은 반사적으로 호흡을 조절했지만, 유 이사의 기억이 그녀를 옭아매기 시작했다.
[후으으-흡-]보조 인공지능이 자동으로 대응했다.
[전투력 유지와 판단력 강화를 위해. A형 전투자극제 투여합니다.]칙-
목에서 느껴지는 따끔한 감각을 타고 시원하다 못해 차가운 액체가 전신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두근거렸던 심장이 고요하게 잦아들었다. 웅웅 드릴로 파고드는 것처럼 잠식하던 유 이사의 기억이 정리되며 링크가 안정적으로 변했다.
‘질기네.’
유 이사의 기억은 질겼다. 분명히 선을 그었다고 생각했는데.
‘링크가 역류했던 건가?’
U+ 클론에 내장된 유 이사의 기억이 링크로 연결된 그녀에게 영향을 준 것 같았다. 희연은 재빨리 상황을 정리했다.
[지원 고마워.] [···동작 감지기에 탐지되는 것은 없습니다.]보조 인공지능의 목소리에 어쩐지 부끄러워하는 느낌이 게 담긴 것만 같았다.
[아니. 매복에 당했어.]거미줄을 발견했을 때부터 여긴 거미의 영역이라고 생각해야 했다. 전투자극제의 영향 때문인지 희연의 머릿속이 빠릿빠릿하게 돌아갔다.
주변을 살핀 희연의 시선이 문득 위를 향했다. 둘레가 한 아름은 될 법하게 굵었지만, 헐벗은 나무가 보였다.
아직 새싹이 돋지 않은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흔들리는 거미줄이 있었다. 오래된 것처럼 여기저기 나뭇잎과 먼지가 묻은 거미줄.
자연스러운 모습이었지만, 희연은 저것이 위장임을 알 수 있었다. 유 이사의 기억이 남기고 간 경험치였다.
[2시 방향 나무. 상단 거미줄을 향해 화염방사.] [화염방사!]뒤따르던 병사가 복창과 함께 불꽃을 내뿜었다.
푸화아아아아악!
거미줄 친 나무를 통째로 불태우자, 동작 감지 센서의 낮은 저음이 고음을 끊어댔다.
띠—–
삐이이익- 삑- 삑- 삑-
[나무다!] [매복이다!] [나무 주변에서 떨어져!]희연은 유 이사의 기억과 산성 쥐가 촬영해온 영상 속 정보를 뒤섞어 판단했다.
‘왔던 길은 이미 놈들이 매복하고 있을 거야.’
인간과 싸우면서 불꽃에 대해 적응한 거미들이었다. 그러니 왔던 길로 가는 건 아니었다. 그녀의 눈빛이 번뜩였다.
[2시 나무를 폭파한다. 수류탄 투척!]활활 타는 나무 둥치에 신형 수류탄이 떨어졌다. 맹렬한 폭음과 함께 둥치가 푹 뜯긴 나무가 옆으로 길게 쓰러졌다.
쿵!
불길에 휩싸인 나무가 쓰러지며 사방으로 불꽃이 튀었다. 불똥과 불티가 퍼지면서 카멜레온처럼 보호색으로 은신하고 있던 거미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생체 반응 센서에는 잡히지 않았습니다!]알아.
[포위됐습니다.]포위는 무슨. 지금 막 뚫었잖아.
희연은 묵묵하게 나무가 쓰러진 방향으로 정찰대를 이끌었다. 바닥에 깔린 거미줄은 불똥과 불티를 맞아 오징어 다리처럼 오그라들고 있었다.
[열기에 닿으면 접착력이 없어집니다.] [불에 잘 타지는 않지만, 접착력은 확실히 떨어집니다.] [거미줄 샘플 채취해. 그쪽에 있는 거미 사체도.]정찰대원들이 샘플을 회수하는 동안 그녀는 길을 뚫었다.
[화염방사기. 2시에서 3시 방향으로 방사. 이후 4시 방향으로 이동한다.]희연은 퇴각로를 막은 채 매복하고 있는 거미들을 역으로 칠 생각이었다.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 함부로 덤비지 못하지.’
거미들이 중간까지 나와서 거미줄을 치고 매복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년들도 뉴포트뉴스를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도시에서 인간 좀 잡아 봤다는 거야?’
희연의 눈빛이 흉흉하게 변했다.
[거미줄 샘플 채취 완료.] [사체 3구 챙겼습니다.] [살아있는 것도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챙겨. 챙겼으면 바로 움직인다.]경로 좌우에 있는 나무에 불을 지르면서 이동해, 거미줄을 이용해 습격하는 것을 원천 차단하는 희연이었다.
거미 인간 영화처럼 거미줄 타고 액션 찍게 둘까 보냐?
그녀의 판단은 정확했다. 이동 루트에 근처에 있는 나무들에 모조리 불을 붙여, 횃불처럼 사용해 이동하자. 후방을 차단하고 있던 거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거미들이 리치먼드(Richmond)로 퇴각한 것 같습니다.] [여기서부터 저쪽 끝까지 전부 벌목하고 방화선을 판다.]거미들이 다시는 간을 볼 수 없도록 중간지대를 전부 불태워 버리는 희연이었다.
‧
‧
‧
[뉴포트뉴스에서 긴급 보고가 들어왔습니다.]인공지능 디아나가 희연의 소식을 전해왔다.
“변종 거미가 리치먼드(Richmond)시를 반쯤 장악했다고 하네.”
산성 쥐 정찰부대가 생존자들과 거미의 교전을 촬영한 영상이 이어졌다.
“저거 거미 새끼들 사람들과 싸우면서 배우는 거 같은데?”
전투 쪽으로 눈썰미 좋은 김 양이 실시간으로 변하는 거미의 움직임을 파악했다. 기순도 김 양의 의견에 동의했다.
“거미들 지능이 제법 높아 보인다는 게 문제네. 횃불에 대응하는 방법도 그렇고 함정도 인간을 노린 함정으로 보여.”
생존자들이 횃불을 사용해 공격함에도 불이 꺼질 때까지 서서히 힘을 빼며 사냥하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살짝 고개를 끄덕인 마루가 대처 방법을 물었다.
“희연이는 중간지대 숲을 벌목하고 태워서 거미들이 남하하지 못하도록 했다는데 어떻게 생각해?”
“방어선 만들고 감시초소 올리면 병력이 부족하지 않겠음? 아- 맞다. 거기 산성 쥐랑 불꽃 쥐가 있었지. 걔들로 감시하면 되긴 하겠네.”
기순은 마루가 질문한 의도를 알아챘다. 똑똑한 거미라고 하니, 개미를 영입했던 것처럼 협상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개미와 거미는 완전히 달라서. 단순하게 방어선을 만든다고 해결될까 싶네.”
거미는 다른 곤충류와 다른 모습을 가진 생명체였다. 곤충이라면 가지고 있는 더듬이가 없고, 상부와 복부로 몸통을 이룬 몸체는 4쌍의 다리가 있었다.
머리, 가슴, 배로 구분되며 한 쌍의 더듬이 3쌍의 다리를 가진 곤충과 확연히 다른 모습. 기순이 다르다고 한 부분은 겉으로 드러난 모양뿐만이 아니었다.
“개미들은 여왕이든 공주든 위쪽이랑 이야기가 통하면 협상할 수 있지만, 거미는 그렇다는 보장이 없어 보이는데. 이게 지금 영상을 보면 또 미묘하거든.”
영상 속 거미들은 무리를 이뤄 생존자들과 싸우고 있었다.
“뭐가 미묘함?”
“거미가 무리 사냥한다는 점이 그렇지.”
쥐나 까마귀, 늑대에 개미까지 신성 왕국과 관계를 맺은 동물들은 변이를 일으키기 전부터 무리 사냥을 하거나 때에 따라서 무리 사냥을 했던 동물들이었다.
까마귀도 기본적으로는 단독 사냥을 하지만, 때에 따라 집단 사냥, 집단 공격을 하는 새였다.
그런데 거미는?
애초에 단독 사냥을 하는 생물이었다. 그런 거미가 무리 사냥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군집을 이뤄 집단 사냥한다는 건 의사소통이 된다는 뜻이었다.
개미는 페로몬, 쥐와 까마귀 늑대는 소리로 신호를 주고받았다.
그럼 거미는 어떻게 의사소통하지?
성대 구조도 없고 개미처럼 정교한 페로몬 시스템도 없고 더듬이로 신호를 주고받을 수 없는 거미가 어떻게 집단을 이룰 수 있을까?
디아나가 바로 궁금증을 풀어줬다.
[연구자료 검색 결과. 거미는 거미줄의 진동을 이용해 의사소통한다고 밝혀졌습니다.]마루의 시선이 잠시 간호사를 향했다가 기순에게로 옮겨졌다.
‘나나에를 보낸다고 해도 대화하긴 어려울 것 같네.’
진동으로 의사소통하니 간호사의 능력은 통하지 않는다고 봐야 했다. 그렇다면 기순은 어떨까? 최소한 적의가 있는지, 없는지. 그 정도 판단은 가능하지 않을까?
[희연이 보내온 샘플과 사체 분석이 진행 중입니다. 생포한 거미를 통해, 기본적인 거미줄 진동 신호체계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거미줄을 이용한 신호는 단방향이었다. 동시에 신호를 보내면 중간에 진동이 충돌해 의미가 사라질 테니 당연한 이야기.
“거미줄 진동 해석기와 진동 발생기를 최대한 빨리 만들도록. 만들고 나면···. 둘이서 다녀와.”
마루의 시선이 기순과 김 양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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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진짜. 이제 좀 쉬어야 하는 거 아님?]개미 제국과의 전쟁이 끝났으니 쉬엄쉬엄 가야도 되는 거 아님? 김 양의 얼굴은 부루퉁했다. 이것은 너무나 부당한 처사였다.
[어쩔 수 없지. 우리 왕님이 까라는데.]기순이 능글맞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걸 누가 모르나? 맞장구 좀 쳐달라는 이야기였지. 흥-
옆으로 휙 돌아가는 김 양의 고개를 본 기순이 흐릿하게 미소 지었다. 조금 위험한 여자기는 하지만 가끔 이런 모습을 보일 때면 긴장이 풀어지긴 했다.
[드론은 당분간 쓸 수 없고 까마귀 부대는 바쁘니까 이해해야지.] [······.]잔인한 봄은 여러모로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현재 제일 큰 문제는 새떼였다. 드론이고 비행선이고 날아다니는 게 있으면 그대로 달려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은 항공 노선이 간단했기에 별문제 없었다. 디트로이트와 뉴욕 노선 하나만 유지했으면 됐기에 까마귀들이 번갈아 호위하면 충분했다.
하지만 지금은 캐나다 방면에 있는 여러 도시와 정기운항이 필요한 상황.
토론토, 오타와, 몬트리올 그리고 퀘벡에서 최북단과 동쪽 해안가를 비롯해 뉴포트뉴스 조선소까지. 그렇지 않아도 정찰 업무가 늘어난 까마귀들이 비행선 호위까지 뛰어야 할 판이었다.
진작 특근수당에 야근수당, 출장수당과 보너스까지 챙겨주고 있었지만, 까마귀들은 워라벨을 선호하는 애들인지라, 항공지원이 빈약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까마귀 폭격대 지원을 부르려면 증거가 확실해야 하니까 말이지. 가서는 좀 참읍시다.] [······.]개미 제국과의 관계가 휴전에서 정전으로, 정전에서 사실상 동맹이나 마찬가지가 됐음에도 마루는 전쟁체계를 바꾸지 않았다. 그래서 거미들이 쓰고 있는 거미줄 진동 통신기의 개발이 순식간에 이뤄질 수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거미와 대화는 김 양이 했으면 합니다만.] [왜?] [나는 거미들 감정에 집중해야 하니까.] [······.]생포한 거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신호가 많지 않았기에 외교가 될지는 불분명했지만, 그래도 지휘 개체와 대화를 시도할 정도는 됐다.
찌익-
엑소슈트의 다리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거미줄.
?
[여긴 중간지역 아니었음?]마크 2년 빠져서!
김 양이 다리에 붙은 거미줄을 떼어내며 인상을 썼다.
삐—- 삑-삑-삑-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