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710)
러스트 [RUST]-710
동작감지 센서와 생체 반응 센서가 동시에 소리를 높이는 와중, 기순이 김 양에게 소리쳤다.
[그거 떼어내지 말고 진동 통신기로 확인해야지!]아- 맞다.
근데 이미 뜯었는걸.
뭣보다 거미년들이 중간지대까지 기어들어 왔다는 거잖음.
그것도 쥐새끼들 감시망을 뚫고. 그걸 그냥 지나가는 건 그렇지 않음?
안 그럼?
반달처럼 휘어진 김 양의 눈웃음에 기순은 고개를 저었다.
기순이 뭐라고 입을 떼기도 전 김 양의 엑소슈트가 자리를 박찼다.
푸화아아악-
엑소슈트 전신이 불타오르며 다리에 엉겨 붙은 거미줄이 오그라들었다.
접착력을 잃고 오그라들었지만, 제법 버티는 거미줄.
내열성이 있다는 이야기.
확실히 마크 2가 보낸 영상과 일치했다.
‘그건 그렇다 치고. 거미줄을 이따위로 친 년은 어디에 있을까? 근처에 나무도 없는데 말이지.’
한번 싹 불태운 언덕과 평야는 검은색 잿더미와 먼지가 뒤엉킨 거미줄만 희끗희끗 뭉쳐 보였다.
‘땅에 거미줄을 치는 년이라.’
김 양은 어쩐지 그 답을 알 듯했다.
[지금 바닥에 거미줄 깐 거. 땅거미 같음.] [땅거미라고?]지금처럼 넓은 공터에 땅거미가 깔릴 정도라면 미국에서 땅거미가 번성했어야 했는데, 기순은 미국에 땅거미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 없었다.
친위대는 김 양이 뚫어 놓은 불길을 바짝 뒤따랐다.
[스탑! 멈춰!]땅거미 년들이 함정을 팠다면, 옆에서 튀어나올 게 뻔했으니 길게 늘어선 진형은 좋지 않았다.
[다이아몬드 대형으로!] [진형을 중심으로 사방 화염방사!]네이팜 불꽃이 사방을 휩쓸었다. 단백질 타는 냄새와 함께 땅바닥에 위장한 거미줄이 싹 걷히자 땅거미 특유의 벙커 입구가 보였다.
[이게 뭡니까?] [?] [!]거미줄을 엮어, 마치 문짝처럼 만든 흔적.
[땅거미네 대문.]김 양이 보고도 모르겠느냐는 듯 무심하게 답했다.
화르르르륵
돌과 흙. 잿더미를 두껍게 붙인 거미줄은 네이팜 불꽃에도 나름 잘 버텼다.
[불꽃 유지. 수류탄 투척 준비.] [수류탄 투적 준비 끝.] [뚜껑 열리면 바로 까 넣어.] [예이-썰.] [알겠습니다.] [1~2초 기다렸다가 던져.] [예입-] [쫀 새끼 없지.] [제임스 새끼 또 쫄았네 쫄았어.] [닥쳐!] [저번처럼 수류탄 쥐고 흔들지 말자.] [닥치라고!]친위대원들이 수류탄을 깐 채, 뚜껑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이거 이상한데?’
기순은 땅거미가 만든 굴의 크기를 보곤 당혹스러웠다.
어린 시절 즐겨봤던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 땅거미류는 대부분 동아시아 지역에서 서식하고 있으며, 이렇게 입구를 막는 땅거미는 그렇게 흔한 종이 아니었다.
한국에서도 멸종 위기 동물로 지정됐다고 하고,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종이었다. 기억대로라면 분명히 그랬다.
게다가 김 양과 친위대원들이 조질 준비하는 거미집 그 자체도 문제였다.
‘저게 가능한가?’
신성 왕국의 네이팜은 단순한 네이팜이 아니었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개량한 네이팜이었다.
그 화력은 실로 엄청나서 최소 1,300~1,400도에 달하는 초고온으로 타올랐다. 말 그대로 철근을 녹이고 콘크리트까지 태울 정도의 고화력.
그런데 고작 돌조각, 흙더미, 잿가루를 반죽하고 거미줄로 엮은 거미집이 이렇게까지 네이팜 불꽃을 버틴다고?
네이팜의 열기가 뚜껑 안으로 들어갔는지, 뚜껑이 살짝 열리는 순간.
팅! 티딩- 수류탄 클립이 튀는 소리.
동시에 수십 개의 핀이 허공으로 튕겼다.
[파이어 인 더 홀!] (Fire in the hole!)1초- 2초- 3초-
이 미친 인간들이 정말.
[던져. 던지라고.]기순은 비상소화기를 꺼내 든 채, 친위대의 병신 짓 뒤로 접근했다.
[파이어 인 더 홀!] [파이어 인 더 홀!]작게 열린 뚜껑 안쪽으로 네이팜 수류탄이 울컥울컥 빨려 들어갔다. 3초나 쥐고 있다 던졌던 것이 효과적이었는지, 땅거미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폭발음과 함께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꽃은 무자비하게 거미집을 불사르기 시작했다.
[대기. 조준.]푸화아아아악!
뚜껑이 폭발하듯 열리자, 산소가 공급된 화염이 순간적으로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그 치솟는 불길이 만든 틈을 타, 전신이 불꽃에 휩싸인 땅거미들이 튀어나왔다.
[쏴!]괴수 부산물이 섞인 특수탄이 땅거미의 껍질을 사정없이 두들겼다.
튕기고. 박히고. 꿰뚫는 총탄.
온몸에 불이 붙은 채 집중 사격에 당한 땅거미들이 필사적으로 탈출하려고 했지만, 김 양과 친위대는 단 한 마리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화망(火網)을 펼쳤다.
잿더미와 총성, 시뻘건 불꽃과 검은 연기가 들판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용했던 들판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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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렁울렁 살아있는 것처럼 들썩이기 시작하는 들판과 언덕.
삑-삑-삑—삑삑삑삑–
삐이이이이이이익—-
김 양의 HUD가 순식간에 붉은색 점으로 뒤덮이다, 뚝 HUD 화면이 끊겼다. 숫자가 미친 듯이 늘었든지 아니면 전자기기에 간섭할 정도로 강한 변이 거미가 있든지.
‘최고 존엄도 없는데 저건 무리.’
순식간에 견적을 뽑은 그녀가 외쳤다.
[후퇴!]언제 챙겼는지도 모르게 두 손 묵직하게 챙긴 친위대원들이 벌써 저 멀리 튀고 있는 김 양의 뒤를 따랐다.
[와씨 대장님 뒤도 안 돌아보는 것 보소.] [아- 돌아봤다.] [지금 들고 뛰는 거 무조건 꼭 챙기라는데?] [쩝- 여기서 먹고 끝내려고 했는데.] [제임스는 또 쫄았냐?] [닥쳐!]낄낄낄 똥꼬가 빠지게 도망치는 친위대원들을 인도하는 건 김 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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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는 김 양과 기순이 올린 보고서를 확인했다.
‘들판과 언덕이 통째로 움직이는 것 같았음.’
‘까마귀 폭격대와 블랙 드레이크호의 공중 지원이 필요함.’
‘제일 확실한 방법은 수소 폭탄으로 리치먼드(Richmond)까지 한꺼번에 날려버리는 것임.’
그러니까 대규모 융단 폭격을 하거나 핵으로 쓸어버리자는 김 양이었다. 현재 신성 왕국이 보유한 수소 폭탄은 2발이니, 최악의 상황이라면 1발 정도 쓸 수 있겠지만···.
쓰는 순간 뉴포트뉴스 조선소에서 건조하고 있는 신형 항공모함과 전체 개보수 중인 2함대가 통째로 고철이 된다고 봐야 했다.
‘리치먼드와 중간지대를 한꺼번에 수소 폭탄으로 날려버릴 위치면, 뉴포트뉴스 조선소와 인근까지 EMP(Electro-Magnetic Pulse, 전자기 펄스) 범위 안쪽에 들어간다.’
김 양도 그쯤은 알 텐데. 땅거미가 그렇게 위협적으로 느껴졌나? 어쨌거나 땅거미 샘플을 보냈다고 하니, 그것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흠=
마루의 눈동자가 기순이 보낸 파일로 향했다. 기순은 들판과 언덕이 움직인 것 자체를 의심하고 있었다.
‘···숫자가 적은 건 아니야. 하지만 센서가 오류를 일으킬 정도로 많을까?’
‘내가 보기엔 놈들의 허세 같았다.’
‘내가 알기에는 땅거미 자체가 그렇게 많이 생기기 어려워. 땅거미로만 들판과 언덕을 가득 메웠다고? 아무리 봐도 수상해.’
기순은 땅거미 자체가 미국에서 흔한 동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디아나. 기순의 생각이 맞나?”
[전술 카메라에 녹화된 자료를 바탕으로 검색한 결과, 극동아시아 방면에 서식하는 땅거미 종류가 맞습니다.]한국, 중국, 일본, 대만에 서식하는 종이라는 디아나의 대답에 마루의 감이 찝찝해졌다.
“그러니까 북미에 없던 종류라는 거지?”
[검색 결과, 그렇습니다.]자생하는 종이 아니라면 누군가 미국으로 가져왔다는 소리였다.
그것도 대량으로.
산성 쥐가 정찰한 결과만 봐도 그랬다.
‘확실히 숫자가 너무 많아.’
그쪽은 땅거미가 아닌 일반 거미였지만, 리치먼드시(市)의 절반가량을 포위하고 사냥할 정도면 숫자가 십만 단위는 있다고 봐야 했다.
작년과 재작년 뉴포트뉴스 조선소를 재건하면서 주변을 살폈을 때까지만 해도 거미 문제는 없었다.
‘졸지에 십만 단위의 거미떼가 갑자기 리치먼드에 생겼다는 건데···.’
그건 아무리 봐도 자연적이지 않았다.
우선 자연적으로 변이를 일으켰다면, 시작부터 영역과 개체 수 조절이 있었을 거다. 거미는 대체로 영역 동물이었으니까.
게다가 거미는 단독 사냥을 하는 동물이었다. 단독 사냥하는 거미가 무리 사냥을 한다고? 아무리 봐도, 인간의 손을 탄 느낌.
대량으로 가져오지 않았다고 해도 대량으로 번식시킨 건 확실해 보였다
‘그렇다면 누가 그랬을까?’
마루의 뇌리에 떠오른 것은 중국이었다. 이미 변이 바퀴벌레를 살포한 전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퀴벌레를 뿌렸으니, 거미도 뿌렸을 가능성이 커.’
뉴욕과 서부 대도시에 바퀴벌레 테러를 했던 중국이라면 거미 테러도 불가능하지 않았다.
‘중국이 아니라면 일본과 연계된 비밀 실험실에서 유출됐을 가능성이 크겠지.’
버지니아 본사가 무너지면서 비밀 실험실 보안이 약해졌고, 자중지란이든 뭐건 문제가 생겨 변이 거미가 유출됐을 가능성이 컸다.
생각을 정리한 마루가 방침을 정했다.
“일단 수소 폭탄을 쓸 수 없습니다.”
핵을 쓰면 뉴포트뉴스 조선소에 쏟아부은 인적, 물적 자원이 고스란히 날아가 버릴 테니까.
“까마귀 폭격대를 총동원하고 블랙 드레이크급 비행선도 전부 동원해 융단 폭격하기로 하지요.”
대규모 융단 폭격이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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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연과 클론, 방어부대는 김 양과 기순, 친위대와 합동 전술회의를 시작했다.
“폐하는 오시지 않나요?”
“이런 일에까지 최고 존엄이 오게 하면 되겠어? 말해봐. 거미들이 지랄하는 동안 뭘 하고 있었어?”
희연이 입을 꾹 다물었다.
“대답 안 해? 여기 네가 관리하는 지역이지 않음?”
“······.”
길어지는 침묵에 김 양의 눈꼬리가 씰룩 움직였다.
마크 2 많이 컸네.
본체로 온 것도 아니고 링크해서 왔으면서 눈 똑바로 뜨고 쳐다보더니, 묻는 말에 대답하지도 않아?
‘기저귀 갈아가며 키워놨더니 오래간만에 봤다고···. 기어오르려고 하네.’
그래 간만에 기강 한 번 잡자.
김 양의 눈빛이 흐릿해지는 것을 본 기순이 말렸다.
[야. 이거 전부 마루한테 보고 들어간다고.]끼드드득- 고개를 돌린 김 양이 눈빛으로 말했다.
‘진짜임?’
‘그래.’
일단 대승적으로 넘어가기로 한 김 양이 상황판을 정리했다.
“까마귀 폭격대와 블랙 드레이크급 비행함대가 융단 폭격을 지원해 주기로 했다.”
목표는 뉴포트뉴스 인근까지 진출한 거미 세력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
“융단 폭격이 끝나는 즉시 방어부대와 U+ 클론들은 잔적을 소탕한다. 그동안 나와 친위대는 리치먼드를 수색한다.”
“생존자는 어떻게 하지요?”
이년이-
김 양의 눈꼬리가 살짝 위로 올라갔다.
“생존자 구조는 나중. 중앙에서 내려온 작전 목표를 수행하는 게 우선이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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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폭격대와 산성 갈매기 부대가 처음으로 합동 공격에 나섰다. 인근 숲에서 새떼들이 날아올랐지만, 까마귀와 산성 갈매기의 공격을 버틸 만한 새들은 많지 않았다.
까마귀와 산성 갈매기의 호위를 받아 중간지대 상공에 도착한 블랙 드레이크급 비행선에서 엄청난 양의 네이팜 폭탄이 투하되기 시작했다.
[리치먼드 방향에 있는 건 모조리 태워버려!]들판과 숲, 언덕이 통째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세상을 전부 태워버릴 것 같은 융단 폭격이 계속됐다. 업화(業火) 같은 네이팜 탄이 끝없이 떨어졌고, 불에 탄 숲이 다시 타서 검은 숯으로 변했다. 그렇게 땅과 하늘이 메케한 연기와 붉게 달궈진 열기로 가득 찼다.
그 틈을 탄 수색대가 리치먼드에 도착하자, 보조 인공지능이 보고했다.
[입구 빌딩 옥상에 백기가 올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