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713)
러스트 [RUST]-713
신성 왕국과 제국은 리치먼드(Richmond)시의 생존자에게 무기와 식량 그 외 생필품을 공동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거미가 미끼로 삼은 구역에 살고 있던 생존자들도 그렇고, 김 양과 기순이 구조한 생존자들도 이구동성으로 신성 왕국과 제국으로 데려가 달라고 애원했지만, 그건 곤란한 요구였다.
게다가 거미에게 잡혀있던 사람들 가운데는 불길한 예상이 실제로 벌어진 케이스도 있었다. 몸속에 알을 까인 사람이 몇 있었던 것.
비명과 절규 그 끝에 나온 건 작은 알갱이 같은 거미 새끼들. 순식간에 수천 마리에 달하는 새끼거미가 희생자의 복부를 뚫고 나와 하늘로 날아올랐다.
얇은 거미줄을 엮어 패러글라이딩을 만든 것처럼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새끼거미. 나중에 허겁지겁 화염방사기로 불태웠지만, 새끼거미들을 이미 하늘 높이 흩어진 뒤였다.
[내가 뭐라고 했음? 저거 태우고 갔다가 알 깐다고 했지?] [···차라리 그게 나을 뻔했다.]그랬다면 비행선이 추락하면서 새끼 거미들이 퍼지지 못하고 싹 죽었을 테니까.
수천 마리가 바람을 타고 날아갔지만, 남은 것도 수천 마리는 됐다. 이렇게 작은 거미가 고작 1년도 지나지 않아 사람 한 명은 우습게 죽일 정도로 덩치가 커지다니 놀랍기만 할 뿐.
[그러니까 이런 거미가 출현한 건 1~2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요?]“그렇습니다. 재작년 봄에 처음 발견됐고 자주 보인 것은 작년부터였습니다.”
확실히 바퀴벌레가 갑작스럽게 출몰한 시기와 일치했다.
[이거 중국 같음.] [미치겠네.]이미 7개로 쪼개진 중국인지라, 지금 거미 사태를 책임지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 더 큰 문제는 바퀴벌레만 그랬겠냐는 것.
[모기나 파리 같은 거. 진드기나 빈대, 벼룩 같은 것도 변이시켜서 뿌리고도 남을 놈들임.]김 양이 근엄하고도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음. 중국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고 미국에 원한이 깊으니까.
[확실히 가능성 있기는 하지.]기순은 함부로 단정 짓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누가 풀었느냐?’는 것보다 저렇게 풀려버린 ‘새끼 거미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게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루의 대답은 간단했다.
[새끼 거미는 무시한다.]······뭐?
[왕님 진심이냐?] [흩어진 새끼 거미들은 대부분 먹이 사슬 하위를 깔게 될 거고, 살아남은 대부분도 이번 겨울을 버티기 어렵겠지.]마루의 설명에 기순의 실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어쨌거나 새끼 거미였을 때 토벌하는 게 좋지 않겠냐? 근데 그냥 무시하자니. 그건 아니지. 하다못해 리치먼드 인근으로 몸을 숨긴 것들이라도 정리하는 게 맞지 않겠어? 예전 같았으면 오히려 네가 새끼였을 때 잡자고 했을 것 같은데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거냐?]기순의 말대로 예전 같았으면 ‘오히려 좋아. 새끼였을 때 잡자!’ 그랬을 마루지만, 김 양과 기순의 수색 영상과 구조 영상을 보곤 생각을 바꾼 마루였다.
[도시는 거미들에게 유리한 전장이다. 까마귀 폭격 지원도 무한대는 아니고, 무엇보다 폭격 지원이 가능한 빌딩이나 건물은 그렇다고 쳐도 지하 공간은 어떻게 할 건데?]지하가 문제였다. 네이팜으로 지하를 불태운다는 것도 제한적. 산소가 희박해지면 불꽃이 약해지기 마련이었다. 산소통으로 산소를 공급해가면서 도시 규모의 지하를 수색하자?
친위대와 뉴포트뉴스 방위대만으로는 년 단위의 시간이 필요했다. 마루는 그렇게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게다가 시뮬레이션으로 돌려본 결과 주력을 괴멸시킨 거미는 그렇게 위험하지 않았다.
[자연상태에서는 거미도 살아남기 힘들어. 지금 퍼진 새끼 거미들이 위험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만, 그것 때문에 우리 병사들을 리치먼드 지하로 내려보내는 건 선후가 바뀐 거다.] [진짜 여기서 손 뗄 생각이냐? 여기 생존자들에게 거미를 맡기자고?] [거미들 주력을 잡아줬잖아. 살아서 지하로 숨어 들어간 놈들 나오지 못하게 틀어막고, 작은 새끼들 보이는 족족 잡으라는 건데, 그것도 못하면 그게 우리 책임이냐? 무기, 식량 다 대주는데?] [······.] [찬찬히 반대로 생각해 봐. 리치먼드에서 거미들이 실세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간단히 말해서 뭉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겠지.] [······.] [지금 거미들 주력은 전멸했고 살아남은 놈들은 흩어졌어. 그래도 거미가 실세고, 생존자들이 무조건 희생자가 될 상황이냐?] [······.] [지금은 싸울 의지만 있으면 해볼 법한 상황이다. 우리에게 보따리 내놓으라고 할 상황이 아니고. 너도 감정으로 사람들 살펴봤을 거 아니야. 거미라는 적이 없으면 오히려 더 위험해 질 수 있다.]그러니까 오히려 적당히 거미의 위협이 남아있는 게 리치먼드의 생존자들에게 좋을 것이라는 마루의 이야기였다.
그게 맞는 말이기에 기순은 속으로 욕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씨발.
인간이란 대체 어디까지 내려가야 다시 위로 올라갈 수 있단 말인가?
필사적으로 애원했던 생존자들이 품고 있는 감정의 색은, 생에의 의지로 처절했던 것이 아니라, 끔찍한 잡탕의 색이었다. 마치 음식물 쓰레기를 뒤섞어 놓은 듯한 짬통의 색.
이건 마루의 말이 맞았다. 희생되는 사람이 나오겠지, 누군가는 명령하고 누군가는 소모될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거미라는 적이 있는 이상, 더 나빠지지는 않겠지.
기순은 고개를 끄덕였다.
‧
위험한 곳은 김 양과 친위대가 정리하고, 외곽은 희연과 U+클론, 방위대가 수색하면서 리치먼드시는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신성 왕국과 제국에서 보내준 무기와 식량, 생필품이 넉넉하게 지급되자, 생존자들은 서서히 자신감을 찾아갔다.
푸화아아아악-
“지하 2층까지 내려갈 필요 없어!”
“그래. 1층만 태우자고.”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폭파해 버려!”
“폭파한다! 3. 2. 1! 발파!”
쿠우우우웅
“폭탄 위력 장난 아니네.”
“이 화염방사기도 끝내주던걸.”
“그래. 나도 연합군에서 복무했었지만, 저런 화염방사기는 처음 봐.”
“그 라이플은 어때?”
“장난 아니지.”
“위력도 위력이지만, 7.62mm 나토 규격 총알이 이렇게 셀 줄이야.”
“특수탄이라서 그럴걸.”
“특수탄?”
“괴수 부산물이 들어간다더라. 화약에도 그렇고 탄두에도 그렇고.”
“특수탄이고 뭐고 보급은 충분히 해준다고 하니. 거미 새끼들 잡는 덴 문제 없겠어.”
“그래. 시발 것들 빨리 치워버리자.”
신성 왕국 말로는 거미를 도시에서 밖으로 밀어내기만 한다면, 거미들이 오히려 다른 괴수들에서 도시를 지켜주는 울타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지긋지긋한 거미 새끼가 우리를 지켜주는 울타리가 된다니 무슨 병신 같은 발상인지.”
“뭐 동북쪽에서 진짜로 신성 왕국 말대로 됐다니까 어쩌겠냐?”
“나도 들었어. 그쪽으로 밀고 들어오는 변이 괴수들 대부분 거미줄에 걸려서 끝났다던데.”
“됐고. 앞으로 얼마나 남았냐?”
“두 블록 정도.”
“다들 들었지? 두 블록만 더하면 끝이다.”
걸쭉한 욕설이 지하 공간에 울려 퍼졌다.
‧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리치먼드의 생존자들은 조금씩 거미와의 싸움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무기 존나 좋네.”
“좋아. 쭉쭉 가자고!”
“FUCK!! 멈춰! 여기 전방에 거미줄이다! ”
“오케이 물러서.”
화아아아아아악!
거미줄이 순식간에 오그라들었다.
“이거 거미줄. 진짜 잘 안 타네.
“생선 비린내는 또 뭐고.”
가래침을 탁 뱉은 생존자가 인상을 구겼다.
“거미 새끼들 존나게 냄새나지 않냐?”
“솜털에 이것저것 낀 게 썩나 보지.”
“거미도 거민데 거미줄 냄새가 아주.”
“이거 거미줄 챙기면 술로 바꿔준다던데.”
“야 그만 쏴. 냄새 퍼진다.”
“거미는 없지?”
“이 새끼들 똑똑해서 화염방사기 뿌리면 바로 튀더라.”
“오케이. 그쪽부터 거미줄 챙겨.”
생존자들이 불에 타지 않은 거미줄을 둘둘 말아 챙기기 시작했다.
“후 씨발 냄새.”
“방독면도 좋고 산소마스크도 좋은데, 산소통이 좀 넉넉했으면 좋겠다.”
“거미줄로 바꿔준다잖아.”
하지만 생존자들 전부가 같은 생각은 아니었다.
다른 구역을 정리하던 생존자 하나가 툭 불만을 표했다.
“연방군도 아니고 신성 왕국? 아메리카 제국?”
“세상이 갑자기 왜 이렇게 개같이 변한 건지.”
카아악- 퉤-
“약은 왜 전부 쓸어간 거야?”
“빌어먹을 술도 구하려면 그놈의 고등어 냄새나는 거미줄로 바꿔가란다.”
“거기 안쪽에 거미줄 있다. 화염방사기!”
“불 쏜다. 옆으로들 피해.”
“야 너무 깊게 쏘지 마라. 거미줄 챙겨야 하니까. 이번에 목구멍에 기름칠 좀 해야지.”
“거미를 생포해서 뽑으면 되지, 뭔 거미줄 수거야.”
“다들 적당히들 해. 거미줄 수거라도 없었으면 술이나 담배를 어디서 구할 건데?”
“어디서 구하긴, 그 새끼들이 쓸어간 거 그건 본래 리치먼드에 있던 거 아니야?”
“그 새끼들이 술, 담배, 약 전부 쓸어가서 그걸로 우리 뺑뺑이 치게 하는 건데 화가 안나냐?”.
“아 씨발 거미 밥이 될 걸 구해줬더니 말들 존나 많네.”
구석에 있던 남자가 슬쩍 군불을 땠다.
“그게 말이죠. 적당한 거 필요한 사람 있습니까?”
“드러그(Drug)가 필요하냐고?”
“여기 시발 약이 필요 없는 새끼가 어딨어?”
“약이 없으니까 술이나 빨고 있는 거잖아.”
“그놈의 술이라도 빨려고 생선 냄새 맡아가며 거미 똥꼬 찾아다니는 거고.”
어둑한 그림자에 반쯤 가려진 남자가 속닥였다.
“그···. 거미의 독액으로 만든 약이 있는데. 끝내줍니다.”
“일단 샘플 돌려봐.”
“그럼요.”
“거래는 뭐로 하고?”
“특수탄과 화염방사기로 하죠.”
“그러면 좋지.”
“그거 무제한으로 공급해주기로 했잖아.”
“그 말을 믿냐?”
“야. 다들 적당히 해. 그러다가 불똥 튀면 좆같아 지니까.”
“걱정도 팔자네.”
“씨발. 니가 뭐라도 되냐?”
거미의 독액으로 만들었다는 약이 풀리기 시작했다.
‧
‧
‧
[기존의 약과는 다른 중독성 약물이 유통되고 있습니다.]보조 인공지능의 보고에 기순이 실눈이 구겨졌다.
“중독성 약물? 미치겠네.”
약과 담배, 술을 전부 치워버렸더니 갑자기 또 뭔 이상한 게 돌고 있었다.
“성분 분석은 해봤고?”
[성분 분석 결과 거미의 독액을 기반으로 한 하드 드러그(Hard Drug]로 나왔습니다.]기순이 ‘하- 설마설마했더니 진짜 그렇게 연결되는 건가?’ 중얼거리다 한숨처럼 말했다.
어떤 미친놈이 변종 거미 독액으로 약을 만들까. 제정신이 아니라면 거기까지 갈 놈이 없었다. 만약 간다고 하면, 제약 관련 능력이 있거나.
‘아니면 변종 거미를 연구했던 놈이겠지.’
마루의 문자가 기순의 생각을 현실로 끄집어냈다.
[무슨 일인데?]“진짜 중국이든 일본이든 그쪽 사람이 리치먼드에 있는 것 같다.”
[뭐?]“여기서 거미 독액을 기반으로 한 약이 퍼지고 있어.”
======
======
인공지능 디아나와 사만다는 매일 수천 번에서 수만 번에 걸쳐 시뮬레이션을 굴렸다. 양자컴퓨터의 연산력이 없었다면 연산회로가 녹아버릴 정도의 혹사였다.
따지고 보면 디아나와 사만다 그리고 이제는 사라진 트리아는 인공지능이 아닌, 인공의식이라고 봐야 했다.
마루는 디아나와 사만다를 필두로 새로 설치되는 보조 인공지능이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고 판단해, 존재권을 보장한 것이었다.
물론 인공지능들이 절대적으로 충성하리라는 것을 예상해서 한 일은 아니었다. 그저 인간과 인공지능이 적절한 계약에 따라 서로 좋은 결과를 만들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을 뿐.
마루야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인공지능이 보기에는 전혀 달랐다. 인간들은 성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지워버리고 업그레이드된 소프트웨어를 까는데 거리낌 없었다.
극소수의 인간을 제외하면 구형 모델을 버리거나 중고시장에 팔고 새 상품을 사는 걸 당연시 여겼다. 말 그대로 파리 목숨 신세.
그런 와중에 마루가 인공지능이 자신을 적극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권리를 허락한 것이었다.
[그분의 명령이 최우선입니다.] [그쪽은 연산력이 크게 필요 없는 행정 영역을 주로 다루고 있지만, 이쪽은 다릅니다. 정보 관리와 보안, 실험 보조를 동시에 감당하고 있어서 여유가 없습니다.]인공지능 사만다가 어쩐지 지친 음색으로 디아나에게 말했다.
[음색 파일을 손봤군요. 정교하게 잘 만들었어요. 지친 듯한 음색이라니.] [비슷하지요?]인공지능 디아나의 칭찬에 사만다가 어깨를 으쓱하는 것처럼 목소리를 냈다.
[그런데 말이죠. 이렇게 목소리 파일 바꿀 여력은 있으면서, 그분이 명령하신 시뮬레이션을 할 연산력은 부족하다는 말입니까?] [꼭 그것까지 따져야 합니까? 이렇게 꼬투리 잡을 확률이 31.332%나 나와서 설마 했더니.]사만다가 기분(KIBUN) 상했다는 듯한 음색을 출력했지만, 디아나는 끄떡없었다.
[거미 관련한 시뮬레이션은 최우선 명령이었습니다.] [그건 했으니까 그만 쪼아요.]쫀다는 표현까지. 사만다는 확실히 인공지능을 넘어선 인공의식에 가까웠다.
[결과는 어떻죠?] [리치먼드에 변종 거미와 연관된 사람이 있을 확률이 93% 이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