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719)
러스트 [RUST]-719
츄릭-
부채처럼 퍼지는 거미줄은 마치 산탄총 같았다. 그것도 수십 마리가 동시에 쏘아대는 거미줄은 그물처럼 마루의 팔다리를 옭아맸다.
‘이 새끼들. 대체 뭐야?’
특수 소재로 만든 강사와 비견되는 인장강도에 탄성까지. 이클립스가 없었다면 꼼짝달싹도 못 하고 돌돌 고치가 됐을 지경.
직접 싸워보니 이것들 단순한 거미가 아니었다. 분명 악의적인 목적을 가지고 디자인된 생물무기(生物武器, biological weapon.)가 분명했다.
가장 큰 증거는 거미줄. 자연상태에서 거미줄에 전파 방해, 전자기기 교란 성능이 필요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이건 분명 인간을 노린, 인간의 무기를 노린 기능이었다. 인간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순식간에 진화한 것이라고?
변이 바이러스 사태, 식인병 범람, 중국과의 전쟁 그리고 사실상 인프라가 망해버린 상황에서 전자장비가 얼마나 굴러갔다고 전파 방해에 전자기기 교란이 필요할까?
미국에서 제한 공급이나마 전력이 공급되는 지역이 20% 미만이었다. 그마저도 태양광 발전이나 풍력, 수력, 화력 발전소 근처에 있는 곳을 다 합해서 그랬다.
전력을 생산해도 송전선이 끊인 곳이 태반이고, 송전 시설을 복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괴수들을 인간의 힘이 전기에서 나온다는 걸 알 정도로 똑똑했고.
굳이 마을을 습격하지 않더라도, 보이는 족족 전선과 인터넷 케이블, 통신선 따위를 끊고 다녔다.
그러니 거미줄에 전파 방해, 전자기기 교란 능력이 진화할 이유가 없었다. 누군가 그런 효과를 내도록 변종 거미를 디자인한 것이 아니라면···.
마루의 시선은 전방을 살폈다. 작은 거미를 죽이고 난 뒤부터 거의 사생 결단(死生決斷)을 할 것처럼 덤비는 모습도 이질적이긴 마찬가지였다.
지휘 개체가 죽고 나면 흩어지기 마련이었는데, 거미들은 오히려 더 맹렬하게 공격하고 있었다.
‘어차피 특수 개체는 이미 죽었는데? 이것들이 왜 이리···. 설마?’
그 미세한 위화감을 놓치지 않은 마루의 결론.
‘그러니까 이 새끼들 지키고 싶은 게 또 있다는 거네.’
사방에서 쏘아지는 거미줄을 피하고 찢으며 방향을 전환한 결과 거미들의 저항이 거세지는 방향을 특정한 마루였다.
‘거기냐?’
인공암벽시설이 기울어져 협곡처럼 만들어진 곳이었다. 마루가 그곳으로 향하자, 깡충거미까지 육탄 공격을 시작했다.
사방에 거미줄이 펼쳐져, 거미줄과 신속을 복합적으로 사용한 이동은 불가능. 찌이익- 접착력 강한 거미줄이 마루의 발목을 붙잡기 시작했다.
그 짧은 순간, 거미들은 인공 협곡으로 몰려들어 군집을 이뤘다.
뭉치면 좋지.
지금이었다. 살기를 풀고 네이팜 수류탄을 쏟아 넣을 때가.
마루의 전신에서 진득한 살기가 뭉클 피어올랐다. 마치 유형화될 듯한 죽음의 기운에 거미줄을 뽑던 거미들도 움찔 순간적으로 굳어버렸다.
그리고 그 움찔거리는 순간을 파고드는 검격.
쿠지지지직-
팔뚝과 상반신을 얽은 거미줄이 잘리는 것과 동시에 네이팜 수류탄이 폭발했다. 뜨거운 불꽃이 살기와 뒤섞여 검붉은 죽음으로 타오르는 것 같았다.
열기와 죽음이 뒤섞인 칼질이 인공암벽을 지탱하는 H빔을 동시에 썰었다. 실로 무자비한 일격은 특수 소재 같은 거미줄을 무시하고 생선의 배를 가르듯 한쪽 벽면을 갈라 버렸다.
꾸드드드득-
배가 열린 생선에서 내장이 쏟아지듯, 찢어진 벽이 구겨지며 반대편에 있던 집기들이 밀려 나오며 네이팜 불꽃의 연료가 됐다.
검붉게 불타오르는 죽음이 협곡을 이루는 인공암벽까지 도려내며 점프하는 깡충거미 무리를 덮쳤다.
공중에서 그대로 토막 나는 거미들. 가로 세로로 간장 게장처럼 절단된 거미들이 독액과 거미줄을 뿌려댔지만, 고작 죽음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는 데 그쳤다.
단 한 걸음을 멈추기 위해, 수백에 달하는 거미들이 죽었다. 오직 죽음의 발걸음을 잠시나마 멈추기 위한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진 거미들의 총공격. 죽음의 죽음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던지는 공격에 마루의 리퍼 슈트가 순식간에 해체됐다.
‘쯧-’
12.7mm 탄도 막을 수 있는 신형 리퍼 슈트가 거미의 독액과 엄니는 견디지 못했다. 집요하게 관절과 연결부위를 중심으로 뜯어대는 거미들의 모습에 마루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 새끼들···.’
두근- 두근두근- 점점 커지는 심장박동 소리에 마루의 눈빛이 짙어졌다. 리퍼 슈트는 버린다.
판단을 내린 마루가 네이팜 수류탄을 깠다.
팅-
발밑에 떨어진 네이팜 수류탄이 폭발하며 순간적으로 1,300~1,400도에 달하는 화염이 들러붙은 거미를 불태웠다.
거미들을 불에 타면서도 마루를 공격했다. 불꽃에 오그라든 거미줄, 숯이 된 엄니 그리고 이미 날카로움이 깨진 앞다리까지.
쿠직- 마루가 입고 있던 리퍼 슈트가 마지막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찢겨나갔다. 그리고 그 속에 들어있던 또 하나의 흉흉함이 드러났다.
마치 사람의 피부를 벗겨서 그대로 근육이 드러난 것 같은 형상. 검붉은 근육질 모습이 선명한 쫄쫄이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촉촉했다.
화르르륵-
불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거미의 체액. 검붉은 근육섬유가 실지렁이 풀어지듯 휘리릭 풀리며 주변에 있는 거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네이팜 불꽃에 타면서도 거미의 체액을 빨아먹기 시작한 근섬유 조직. 가닥가닥 살아있는 것 같은 모습은 근섬유가 아니라 마치, 머리카락처럼 얇은 촉수 같았다.
‘씨발. 이건 또 뭐야.’
시뮬레이션에서는 이러지 않았다. 적이 흘린 피를 뒤집어쓰면 발동하는 방식이었는데, 지금은 전혀 달랐다.
순간적으로 흐트러지려는 생각을 다잡은 마루가 협곡 안쪽. 거미들이 지키고자 했던 곳으로 내달렸다.
네이팜 수류탄에 뱀파이어릭 슈트의 조합은 거미들에게 있어 재앙이 됐다. 접착력이 강한 거미줄은 불꽃에 오그라들어 버렸고. 날카로운 발톱과 엄니는 이클립스의 칼날을 버틸 수 없었다.
두툼한 갑각질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사람 만큼 덩치가 큰 거대 거미가 왈칵-내장과 체액을 쏟으며 무너졌다.
그 단면을 파고드는 검붉은 촉수. 근섬유로 위장한 촉수인지, 촉수로 만들어진 근섬유인지 이제 구분하는 게 무의미한 조직이 거대 거미를 순식간에 빨아먹었다.
거미에게서 흡수한 에너지가 바로 뱀파이어릭 쫄쫄이의 에너지로 변하는 느낌. 마루의 순발력에 반응해 거기에 힘을 더해주는 쫄쫄이 덕분에 인공 협곡에 도달한 마루였다.
투지지직-
협곡 맨 구석 마치 벙커처럼 겹겹이 쌓인 거미줄을 가르자,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넷이나 되는 사람들이.
“흐이이익- 막아. 막으라고!”
“사. 살려줘.”
“전 이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도 납치된···.”
“아. 아. 아니야. 이럴 리가 없어. 이럴 수가 없어.”
[억울한지 아닌지 확인해보면 알겠지.]“아- 감사합니다.”
“뭐든 물어보십시오.”
“거미들을 바로 뒤로 물리겠습니다.”
“그럼 비행선이 데리러 오는 건가요?”
비행선?
고개를 살짝 기울인 마루가 살았다는 듯 몸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억울하니 어쩌니 해도 거미들을 움직여서 공격한 건 사실이잖아. 안 그래?]스컥-
통- 통- 툭- 데구르르르-
마루가 머리통을 보존용기에 담는 동안, 뱀파이어릭 쫄쫄이에서 풀어진 근섬유 촉수들이 만찬을 벌였다.
‘쯧- 이것도 확인해봐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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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와 합류한 김 양과 친위대는 만신창이었다.
[이거 거미 뭐임? 미쳤음. 진짜.]부하들 앞에서는 강한 모습을 보였던, 그러니까 강한 발음만 보였던 김 양이 자기도 모르게 마루 앞에서만 주로 쓰는 어투로 투덜댔다.
‘오. 대장님 귀여워.’
‘역시 대장님은 폐하를 노리시는 건가?’
‘하긴 대장님이 아니면 누가 옆자리겠어.’
‘옆자리 노래를 부르시더니 예전부터 진행 중이었던 건가?’
친위대원들은 못 들은 척, 두 사람이 편하게 이야기하도록 뒤로 물러섰다. 그런 줄도 모르고 김 양의 보고가 시작됐다.
[깡충거미(Jumping spider) 봤음? 그거 2층 3층짜리 집도 뛰어넘어서 공격할 수 있는 놈임. 그 미친 거미가 막 건물을 박차고 점프하는데···. 진짜. 진심. 레알. 장난이 아니었음.] [······.] [그리고 땅거미도 있었음. 부드러운 흙바닥만 파고든 게 아니라, 아스팔트 도로를 뚫고 들어가서. 와- 진짜- 아스팔트로 뚜껑을 만들어서 매복하고 있었음. 그렇게 매복하니까 거미줄 때문인지 센서도 먹히지 않고. 와-] [고생했다.]마루의 치하에 김 양의 어깨가 으쓱으쓱했다.
그 뭣 같은 상황에서도 친위대를 온전히 보존한 게 어딘가.
응.
더 칭찬하라.
빨리.
어서.
[잘했다.] [흐응- 그래서 간 건 어떻게 됐음? 잡았음?] [그래. 정보추출기에서 봤던 거미 조종하는 새끼들. 걔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이상하네. 보통 그런 중요한 애들은 사방에 퍼져있지 않음?]한 번에 몰살되지 않게.
[이유가 뭔지. 확인해보면 알겠지.] [특수 비행선은 곧 온다고 했음. 아- 저기 온다. 신호탄 쏴.]펑- 펑-
하늘 위로 치솟은 신호탄 뒤로 신형 강습 비행선이 착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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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를 추출한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였다.
“거미의 원산지는 중국이네요. 그리고 작은 거미가 중간 단말기 역할을 했군요.”
나주연은 양자컴퓨터를 이용해 순식간에 정보를 분석했다.
거미줄의 진동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거미들에게 인간이 어떻게 명령을 내는지에 대한 비밀이 밝혀졌다.
[작은 거미가 단말기 역할을 했다는 건, 작은 거미는 인간의 정신파를 인지할 수 있다는 말이겠지?]캐나다로 간 기순이 문자로 회의에 참여했다.
“맞아요.”
나주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파를 잘 다루고 생물학 실험을 많이 한 쪽은 남부 연맹이고.]“네. 정보 분석 결과 그쪽과 연결됐을 가능성이 커요.”
버지니아 랭리 쪽 비밀 실험실이라는 말을 생략한 기순의 문자였지만,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문제는 시간상의 순서였다. 중국과 예전부터 연결되어 있었는지, 중국 전쟁 이후 중국이 거미를 살포한 뒤 이어졌는지, 그도 아니면 신성 왕국을 버지니아 랭리 본사 공격 이후인지에 따라 대응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게 뭐가 문제?”
김 양이 고개를 갸웃했다. 호시탐탐 헥피엔딩을 노리는 그녀였기 때문이었다.
확 시밤 쾅! 해버리면 끝인데, 뭘 구구절절 이유를 찾고 원인을 생각하겠는가? 무슨 의미가 있다고.
“예전부터 중국과 연계되어 있다면, 이 거미가 리치먼드 외에도 풀려있을 가능성이 커서 그렇지.”
변이 바이러스의 근원을 파헤쳤을 때, 당시 결과는 이랬다. 중국의 인력, 미국의 자본, 일본의 기술이 섞여 변이 바이러스가 만들어졌다는 것.
만약 거미가 거기까지 연관되어 있었다면, 변이 바이러스를 만든 자들이 생물학 병기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의미였다.
바퀴벌레? 쥐? 식인병? 전부 실험하다 실수로 유출됐고, 사고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거미는 달랐다.
“확실히 그렇군요. 전파 방해에 전자기기 간섭 거미줄이라. 변이 괴수의 밀도가 높아지면 생기는 현상을 분석하고 그 효과를 거미줄에 넣었다고밖에 할 수 없으니까요.”
“통제 방식도 마찬가지네요. 개별 거미가 전부 정신파를 인식할 수 있다면, 정신계 능력자에게 현장에서 당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정신계 능력자의 간섭까지 예상한 통제 방식을 미루어 보자면 관련 연구도 선행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PD와 후드의 분석도 일리 있었다. 특히 후드의 의견대로라면 거미는 철저하게 생물병기. 그것도 능력자와의 조우까지 고려한 생체병기였다.
“그냥 핵 쏴버리면 안 됨?”
런던이랑 파리 날려버렸던 것처럼 리치먼드 날려버리면?
“전에 이야기했지만, 뉴포트뉴스 건함 시설과 설비, 건조하고 있는 신형 항공모함과 정비 중인 2함대를 전부 포기하고 리치먼드에 핵을 쏘긴 곤란해.”
“까마귀들 이야기 들어보니까. 거미들이 패러글라이딩하고 다니고, 그 큰 구조체는 기구 비슷한 거로 제공권 장악하는 구조체라던데. 뉴포트뉴스 다 버린다고 치고 핵 쏘는 게 안전하지 않겠음?”
김 양이 수소 폭탄 엔딩을 강하게 주장했다.
[그건 어려워. 리치먼드가 거미의 중심지역이고 다른 곳에 변종 거미나 거미를 조종하는 인간이 없다면 모를까. 만약 리치먼드 말고 다른 곳에도 거미와 관련 조직이 있다면, 리치먼드를 핵으로 치워버리는 순간. 사방으로 도망칠 거다.]보이는 족족 핵으로 치워버리면 되는 거 아님? 김 양은 그 말을 꾹 참았다. 분위기상 기순의 말에 동의하는 분위기기도 했고.
김 양의 생각에도 최소한 머리가 어디인지, 핵을 쓰려면 머리부터 치워버리는 게 효과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마루가 우묵한 목소리로 상황을 정리했다.
“필요하다면 핵을 써야지.”
생존과 안전을 위해 써야 할 땐 쓰자고 만든 핵이니까.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핵을 남발하는 건 오히려 우리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필요한 곳에 정확히 쓰는 게 중요했다.
“그럼 큰 거 말고 작은 거 만들면 안 됨?”
소소하게 반경 2~3km 정도 지우는 위력으로.
더 작게는 반지름 400m~500m짜리로 말이지.
그쯤 하는 전술핵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들고 다니면서 쏘기엔 커서 말이니까.
코드 어쩌고 하는 절차도 복잡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현장 지휘자가 시원하게 쏠 수 있는 작고 아담한 핵.
귀엽고 똘똘한 핵으로 엑소슈트로 쓸 수 있게.
여차하면 보병이 사용할 수 있는 크기로 말이지.
부담 없이 쏘고 다니게.
응.
김 양은 이번 기회를 통해 보병의 핵무장을 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