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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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스트 [RUST]-726
원정대를 이끄는 김 양이 여러 자료를 보내왔다.
미국 서부에서 발생한 이상 고온 현상과 그 고온에 걸맞지 않게 울창한 숲과 싱그러운 들판이 담긴 영상. 비행선에서 관측한 로키산맥 인근 자료들은 여러모로 생각할 부분이 많았다.
“75도라니. 온도가 그렇게까지 올라가는 게 가능한가? 심지어 사막지대도 아니고 로키산맥 인근이잖아.”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온도였다. 마루의 의아함에 디아나도 연산결과를 보고했다.
[서남부 지역 사막과 황야지대에서는 50도까지 올라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무더위로 유명한 데스 밸리(Death Valley)에서도 최고 기온이 55~57도 정도였음을 본다면 70~75도는 명백히 이상고온입니다.]50~55도의 온도도 위험한 온도였다. 하지만 70~75도는 위험하다는 말을 넘어설 온도였다. 생명활동을 하는데 필수적인 효소활동, 호르몬 작용이 망가질 정도의 온도였기 때문.
선인장처럼 특수한 식물이 아니라면 아니, 선인장이라고 해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70도 이상의 고온이 여름 내내 계속된다고 했을 때?
“그렇다면 저기 영상 속에 있는 숲과 들판 모두 일반적인 식물이 아니라는 뜻인가?”
[식물이 변이를 일으켰을 확률이 크다는 연산결과입니다.]동물, 벌레 이제는 식물까지. 어쩌면 기존에 알고 지구는 이미 사라진 것일지도 몰랐다.
[차라리 다행이지 않을까 싶다.]“다행이라니? 무슨 소리야?”
기순은 차라리 잘됐다는 표정이었다.
[나무고 풀이고 전부 끝장났다고 생각해봐라. 연쇄적으로 일이 터질 텐데 차라리 말라죽지 않고 저렇게 싱싱하니 다행이지.]“······.”
식물이 말라 죽으면 그걸 먹이로 삼는 초식 동물이 죽기 마련이었다. 바로 초식 동물을 잡아먹는 육식 동물도 영향이 있을 수밖에.
[무스랑 버펄로 봤잖아. 걔들 먹을 게 넉넉하게 있음에도 육식 동물들 유인해서 인간에게 짬 때리려고 했던 거. 서부 지역이 홀라당 말라 비틀어졌으면 그 넓은 지역에 살던 초식 동물이 어떻게 하겠냐? 그 뒤에 육식 동물은 어떻고.]북부나 동부로 가겠지. 바로 캐나다 방면으로. 로키산맥과 그 주변에 서식하던 수천만 어쩌면 억이 넘는 동물들이 캐나다로 북상하고 동쪽으로 이동한다면 말 그대로 재앙이 됐다.
[따지고 보면 연쇄 반응을 막은 거나 마찬가지니, 변이가 일어났어도 좋은 변이라고 해야지.]인공지능 디아나가 좋은 변이라는 기순의 말에 반박했다.
[3년 전 자료로는 식물의 변화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원정대가 보내온 영상에 의하면 변이가 확실한바, 작년과 올해 2년 만에 대규모 변이가 일어났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이렇게 빠른 변이는 위험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연산결과입니다.]인공지능 디아나의 반박에 기순이 쓰게 웃었다.
저번부터인가? 마루가 인공지능의 자기보존권을 인정한 뒤로 인공지능들이 점차 사람처럼 반응하고 있었다.
PD와 자신은 그런 변화를 우려했다. 인공지능은 인공지능이어야지, 인공의식으로 넘어가면 반드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컸다.
연산결과? 인공지능이 그걸 조작하기 시작한다면?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인공지능이 인간을 닮는 건 위험했다.
지구에서 제일 짜증이 나는 존재가 뭘까?
제일 믿기 힘든 존재는?
머간 아니던가?
그런 인간을 인공지능이 닮는다고?
‘아- 재앙도 그런 재앙이 따로 없지.’
기순은 PD를 살폈다. 역시 인공지능 디아나가 껴든 순간부터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아무래도 이 건에 대해서는 PD와 이야기를 해볼 필요가 있었다.
기순은 생각을 정리하곤 입을 열었다.
[꼼꼼하게 따지자면 위험하지 않은 게 어딨나?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지만, 그걸 고려해서 우리 관점에서 봐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럼 서부 지역 초토화로 연쇄 반응이 생기지 않았다는 점에서 좋은 변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식물들이 알아서 고온 내성 챙기지 않았으면 우리가 유전자 변이를 일으켜서라도 해줘야 할 판 아니고?] [1번 질문. 위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디아나가 즉각 반응했지만, 마루가 디아나의 답변을 막았다. 인공지능 디아나가 자발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하는 것은 나쁘지 않았지만, 지금 기순과 디아나가 토론하고 있을 건 아니었다.
“일단 그 이야기는 거기까지. 위험한지 아닌지, 추가 연구가 필요한 건 맞아. 김 양이 돌아올 때 서부 지역을 조사해보라고 하지.”
[조사할 거면 빨리하는 게 낫지 않을까?] [조사가 필요하다는 연산결과입니다.]이건 또. 무슨.
마루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변이가 일어났다면, 그걸 먹고 산 초식 동물도 변했을 테고, 육식 동물도 마찬가지잖아. 어지간한 정예를 보내지 않는 이상 위험할 텐데. 지금 디트로이트는 김 양과 친위대가 빠져서 여력이 없어. 신성 기사단은 전부 흩어져서 외곽 요새와 마을을 지키고 있고.”
[그렇게 여유가 없냐?]“여유가 있는 쪽을 따지자면, 캐나다 치안 유지하라고 보낸 희연이와 U+ 클론 부대, 능력자들이 있겠네. 캐나다 방면 치안 안정됐으면 서부로 보내면 좋겠는데. 총독 생각은 어때?”
캐나다에서 뺀다고 하자, 조용해지는 기순.
“그리고 원정대가 태평양 건너서 보낸 자료를 보면 그쪽 동네, 시작부터 조짐이 좋지 않은 것 같다.”
‧
태평양은 건너 사할린과 홋카이도 인근까지 도착한 원정대는 그 자리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화산재와 먼지의 농도가 짙습니다.]김 양 전용 비행선 블랙 드레이크호의 보조 인공지능이 위험을 알렸다. 레이더도 먹통일 뿐만 아니라 미세먼지와 초미세 먼지로 공기정화장치가 정지할 것임을 예측했다.
일본으로 탈출했을 때 화산폭발의 지독함을 경험해 본 그녀였기에 보조 인공지능의 말에 동의한 김 양이었다.
‘필터를 많이 가져왔지만, 저런 농도라면 10~20분에 하나씩 갈아야 할 판이야.’
단기 작전이라면 모를까 저 화산재와 먼지를 뚫고 가는 건 미친 짓이었다. 그러니 선택지는 둘.
현재 위치에서 북상, 오호츠크 해를 건너 오이먀콘 인근까지 올라가 서진. 화산 분화의 여파에서 벗어난 뒤, 7개의 중국 가운데 하나로 만주 지역을 장악한 군부를 조사할 것인가?
아니면 현재 위치에서 남하 화산 여파 외곽을 타고 계속 내려가 도쿄로 직행. 예전에 마루와 함께 털었던 비밀 연구소에서부터 추적을 시작할 것인가?
보조 인공지능이 도쿄 수색을 만류했다.
[도쿄 수색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왜?”
[연산결과 도쿄에는 최소 20cm, 최대 추정 불가의 화산재가 쌓였을 것으로 보입니다.]“20cm 내외면 괜찮지 않나?”
[쌓인 화산재만 문제가 아닙니다. 화산활동이 계속되고 있다면 신형 아머와 엑소슈트의 공기정화장치가 버티지 못한다는 연산결과가 나왔습니다.]“흐응-”
요트를 타고 앞바다 건넜을 때도 난리가 아니었는데, 당연히 괜찮을 리 없지.
그런데. 신형 아머와 엑소슈트면 사실상 우주복과 마찬가지 아닌가?
그럼 화산재랑 먼지에 필터 막히는 거 갈아주면서 꾸역꾸역 필터 싸 들고 다니는 것보다 가뿐하게 산소통 매고 들어가는 게 효과적이지 않겠음?
[···수중전 대비 산소통은 숫자가 적습니다.]“그러니까 그걸 해결해야지. 간이 공방 있잖아. 그거 놀리면 뭐함? 근처에 해군기지 좌표 찍어 보셈.”
러시아의 사할린 일본의 홋카이도니까 해군기지 있지 않겠음? 조곤조곤 이야기(IYAGI)를 나누면 알아서 넘겨줄 거다.
‘해군기지에 물자가 남아있다면···.’
응. 충분히 가능.
“그리고 비행선도 개조하면 어떻겠음? 엔진 부분만 어떻게 하면···.”
[불가능합니다. 화산재와 먼지가 미세해, 엔진을 완벽히 보호할 수 없습니다. 성층권 가까이 상승할 수 있는 블랙 드레이크호지만, 화산재와 먼지도 성층권에 퍼져있습니다.]보조 인공지능의 반대에 김 양의 눈빛이 묘해졌다.
“알겠어. 러시아 해군기지건, 일본 자위대 해군기지건 좌표부터 찍어. 거기서 추가 보급하는 거 보고 결정할 테니.”
[사할린 러시아 해군기지 좌표입니다. 화산재와 먼지로 블랙 드레이크호는 95km 인근까지 접근 가능합니다.]“잠수정 준비해. 친위대도 같이 간다.”
[화산재와 먼지 때문에 레이더와 레이저 통신 모두 불가능합니다.]“알아. 잠수정 준비해.”
[···블랙 드레이크호 하강합니다. 파도 1m 이하, 해수면 잔잔합니다. 잠수정 리프트 대기완료.]김 양과 친위대가 잠수정에 나눠타고서 사할린에 있는 러시아 해군기지를 향해 잠항했다.
‧
삥—
삥—
특이점에 도달한 기술을 현실에 맞게 다운그레이드(?)한 잠수정이 묘한 울림을 내며 전진했다.
‘꼴랑 화산 터졌다고 이게 뭐니?’
김 양이 모니터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잠망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회색빛만 가득. 대낮인데도 어둑어둑할 정도로 짙은 화산재와 먼지가 음울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섬에 가까이 갈수록 죽은 물고기들의 부유물과 둥둥 떠다니는 부석(浮石)까지. 바다라고 하기엔 마치 진탕이나 늪지 같은 모습이었다.
삥—-
삥—삥—
삥-삥삥삥-
어느덧 러시아 해군기지에 접근했는지 요란스럽게 울려대는 소음과 함께 잠수정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모터는 틀렸네.]바다를 떠도는 부유물들이 많기도 했고, 둥둥 떠 있는 잔해도 많았다. 노심 아머로 무장한 팀이 먼저 보트에 자리를 잡았다.
[보트 확인.] [산소 잔량 확인.] [각 기체 이상 무.]노심 기체인 만큼 출력이 높았고 당연히 더 두꺼운 장갑을 장착할 수 있었기에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한 포지션.
[전진.]김 양의 명령에 노심을 장착한 첨단 아머가 열심히 노를 젓기 시작했다. 잠수정으로 해군기지 선착장까지 갔으면 좋겠지만, 그건 어려웠다.
부유물이 너무 많기도 했거니와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해군기지 해역에 기뢰가 뿌려져 있었다.
[전방에 기뢰 반응입니다.]바다가 이 모양인데 기뢰라.
어차피 고무보트에 모터도 쓰지 않고 노를 젓고 있으니 기뢰가 작동할 리 없지만,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옆으로 피해.] [옛.]그렇게 기뢰 몇 개를 피해 도착한 러시아 해군기지는 엉망진창이었다. 거의 30cm 이상 쌓인 화산재를 뚫고 건물 내부로 들어가자, 바닥에 가라앉았던 먼지가 훅 피어올랐다.
[사주경계. 포메이션-D]친위대원들은 자연스럽게 진형을 만들었다.
[근접 통신 이상 무.] [동작 감지기 정상 작동 중.] [잠수정과는 통신이 끊겼습니다.]그건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레이저 통신기라도 화산재와 먼지를 뚫을 수는 없었을 테니.
[알파 팀은 작전통제실. 브라보는 무기고를 찰리는 보급고를 확인한다.] [옛.] [나머지는 사주 경계하면서 수색해. 실시.] [실시.]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군기지 이곳저곳에서 혈흔이 발견됐다. 바닥과 벽에 튄 검붉은 흔적은 분명 핏자국이었다.
전문가(?) 김 양이 보기에 기지 바닥과 벽에 흩뿌려진 흔적은 총화기로 만들어진 흔적이 아니었다.
‘총도 아니고, 칼도 아니야.’
이렇게 피를 뿌리려면
‘도끼?’
망치나 철퇴 아니면 톱으로 짓이겨 썰거나. 어쨌건 일반적이라고 보긴 힘들었다.
끼융. 끼융.
조심스럽게 이동하는 김 양의 발밑에 굴러다니는 탄피들. 7.62mm 탄피와 14.7mm 탄피를 볼 때, 엄청나게 쏴댄 것 같았다.
‘도탄?’
벽과 천장, 바닥에 튄 흔적은 아무래도 총탄 자국이었다. 슥- 바닥을 한 번 훑자, 찌그러지고 깨진 총탄들이 두툼하게 쌓인 먼지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화염방사기 대기.]총탄이 먹히지 않는 뭔가랑 싸웠다는 뜻. 김 양은 바로 명령을 내렸다.
[20mm 벌컨포 전방으로.]김 양의 시선이 두툼하게 쌓인 먼지 사이사이로 보이는 혈흔을 향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길게 이어진 자국은 그거였다. 시체를 끌고 간 흔적.
[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