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744)
러스트 [RUST]-744
한국군을 데려올 명분은 충분했다.
일단 기초군사훈련을 할 필요도 없었고 주특기 교육도 나름 잘 된 편이었기에 전투 수행 능력도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건 그 열악한 환경에서도 제 몫을 하는 사람들이 다수였기 때문이었다. 혹자는 군캉스라고 말하고 누구는 군기가 빠졌다고 해도. 세계를 기준으로 했을 때 한국군의 전투 수행능력 정도면 중상위 이상이었다.
여기에 실전 경험과 제대로 된 장비를 갖춰준다면 충분히 강군이 될 자질이 있었다. 물론 마루는 그런 군사적인 측면만 생각해서 결정한 건 아니었다.
“100만에서 최대 200만까지 생각하고 있다.”
[뭐? 100만에서 200만? 그건 너무 많지 않아?]신성 왕국 인구가 398만이었다. 여기서 200만을 더한다면 사실상 절반에 가까운 인구를 한국인으로 채우겠다는 건데.
[전부 군인으로 채우려고? 군인이 200만 빠진다면 한국은 그냥 망할 거다.]“전부 군인은 아니고. 우선은 군인을 시작으로 나이 제한 기술 제한을 걸고 모집해보려고.”
기순의 가느다란 실눈이 길게 늘어졌다.
[너 아직도 그 선거 생각하고 있는 거냐? 한국 사람들 데려와서 문화적인 부분 희석하고, 한국인들이라면 대표를 한국 사람을 뽑으려고 할 테니까 그걸 노리는 거냐?]“콕 집어서 노린 건 아니고. 서로 좋자고 하는 일이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는 지금 백인계열이 너무 강세야. 그쪽 문화도 너무 강하고. 어느 정도 완충할 필요가 있어.”
[완충이 아니라 갈등이 더 커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해봤고? 인구 절반에 가까운 숫자가 늘어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지.]“지금이라면 갈등보다 화합할 수 있다고 본다. 아직 절대 방어시스템이 작동하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선택권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앞으로 어떻게 되겠냐? 극단적인 상황이지만, 내가 죽고 난 뒤에는 어떻게 될까?”
기순의 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내가 살아있을 때야 인공지능들도 괜찮고 쥐나 까마귀, 늑대들도 그렇게 지나가겠지만, 내가 죽고 난 뒤에는?”
[그래서 선거를 해야겠다?]“좋든 싫든 속았든 나를 믿고 따라온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과 그 후손들은? 내가 귀찮은 거 싫어하는 거 알지? 아무리 귀찮아도 최소한 대비는 하고 놀든 쉬든 해야 하지 않겠냐?”
[그 방법이 선거다?]“너와 PD 생각은 알았어. 김 양의 이야기도 생각해봤고. 일단 내가 힘이 있는 동안은 귀찮아도 내가 관리하는 게 잡음이 없겠더라. 거기까지는 인정해. 그런데, 내 사후. 혹시라도 내가 치명상을 입어서 의식 불명 상태가 됐을 때 문제가 터지면? 선거를 통한 플랜 B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국군, 한국인 이민도 그때를 대비해서 하겠다는 거고?]“그건 겸사겸사고. 말했다시피 한국군은 현재 신성 왕국 상황에서 좋은 선택지니까. 애초에 귀환병 10만 넘게 흡수한 이유도 그래서였잖냐. 당장 병력을 뽑아야 할 상황이었는데 귀환병 흡수해서 한숨 돌린 건 사실이고. 지금 한국군과 한국인 이민도 당시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거. 작심했는데.
기순은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하는 걸 보고 깨달았다. 마루는 회의를 통해서가 아닌, 직권으로 한국군과 한국인 이주를 결정하려고 했다.
신성 왕국의 국왕이니까 그렇게 한다고 말릴 사람은 없지만, 그런 방식은 정말 위급한 상황에서 쓰는 게 좋았다.
[···그게 네 생각이라면 지지할게. 단지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직권으로 결정하지 말고. 최소한 회의 형식이라고 갖춰서 다른 사람들에게 네 생각을 알렸으면 한다. 다들 너를 믿고 여기까지 와준 사람들이잖아.]“···알았다.”
[선거를 통한 플랜 B도 그래. 나를 비롯한 사람들 누구도 네가 왕인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어. 그런 말도 있지 않냐? ‘왕좌에 앉는 자,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는 이야기. 네가 원해서 앉은 왕좌가 아니고 네 생각과 다른 의견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모두의 중심을 잡는 건 왕인 너여야 사실은 변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네가 말했듯 좋든 싫든 어땠든 너를 믿고 따라온 사람들과 그 후손을 생각한다면.]“···그래.”
기순의 가느다란 실눈이 휘어졌다.
[새끼. 권력 이양하고 선거 반대했다고 꽁했던 거냐?]“지랄.”
[왕님 삐지셔서 이민 문제는 호다닥 직권 해버림 하려고 했쪄염?]“뒤진다.”
‧
‧
‧
1만 마리의 창원 까마귀들이 머리를 박고 있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7천 마리의 까마귀들도 같이 머리를 박고 있었다.
“흐응- 누구 마음대로 모병하고 지랄이셈?”
김 양이 나긋한 목소리로 머리 박은 까마귀의 뒤통수를 보며 말했다.
까. 까아악. (그. 그저 나라를 위한 마음으로.)
“에-또. 나라를 위한 마음으로 했다고 해요.”
긴급 파견된 간호사가 까마귀의 말을 전했다.
“나라를 위한 마음은 좋은데 어째서 날 무시한 걸까?”
응.
내가 위대한 옆자리고 서열 2위인데.
날 무시하고 이민이고 나발이고 새대가리 년들이 마음대로 설친 거였음? 날 무시하는 게 나라를 위한 것임?
진짜?
까. 까아아악. (그. 그럴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김 양이 흐릿한 눈으로 까마귀들을 바라봤다.
이년들 마루가 저번에 한번 거하게 잡은 뒤에 됐다 싶어, 좋게좋게 해주니까 위아래 모르고 똥을 싸고 있는 것 같은데?
곁에서 지켜보던 간호사가 침을 꿀꺽 삼켰다. 요즘 많이 착해져서 그렇지 김 양은 본래 총부터 나가던 여자였다.
초기엔 후드도 총 맞아 죽을 뻔했었고. 그리고 호시탐탐 자기를 노려보는 흐린 눈빛이 있었다.
간호사는 두 손을 꼭 모아 신성한 그분을 떠올렸다.
그녀가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자세를 취하자, 웅장한 가슴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주변이 포근해지는 듯한 환상이 펼쳐졌다.
쯧-
김 양이 혀를 찼다.
“1호기 그거 스톱.”
“네? 그냥. 기도하는 건데요?”
“그래도 일단 스톱. 할 거면 저기 들어가서 안 보이는 데서 해.”
“아. 네.”
큼. 흠. 험.
주변에서 들리는 헛기침 소리에 김 양의 흐릿한 시선이 돌아가자. 다들 열심히 뭔가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병장에서 빼곡하게 머리를 박고 있는 까마귀들을 바라보던 그녀가 손에 들고 있는 작은 핵 수류탄을 살짝 던졌다가 받았기를 반복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안전장치가 있다지만 그냥 수류탄도 아니고 핵 수류탄이었다. 그냥 수류탄도 장난치지 못할 텐데, 태연하게 핵 수류탄을 던졌다가 받는 그녀의 모습은 괴이하기까지 했다.
머리를 막은 채 눈동자만 굴려서 김 양이 하는 짓을 본 창원 까마귀들은 깃털이 쭈뼛 솟는 느낌이었다. 저 작은 게 하나 터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직접 봤기에 돌아버릴 것 같았다.
까마귀는 땀샘이 없는지라 긴장하고 더우면 부리를 벌려서 열기를 식혀야 했다. 머리를 박은 채 부리를 열고 급하게 숨을 쉬다 보니, 핑 돌면서 기절하는 까마귀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이것들이 빠져서. 사람들 사냥할 때는 좋다고 설치더니. 기절하면 끝?”
까악! (아닙니다!)
“지켜보겠음. 그리고 애들 교육 똑바로 해. 사람에게 함부로 부리 댔다가는 어떻게 되는지. 알았어?”
까악! (알겠습니다.)
“알아서 교육하도록 해. 이상한 소리 들리면 알지?”
깍!
7천 마리의 까마귀들이 1만 정도 되는 창원 까마귀들을 인도해 산으로 날아갔다.
‧
‧
‧
창원을 포위하고 있는 병력은 전부 합해 1만이 조금 넘었다. 이 가운데 이민 절차를 통과한 병력은 모두 2천가량.
떨어진 데 앙심을 품은 사람들이 사령부에 신고하려고 했지만, 유선 통신망은 까마귀와 드론이 차단했고.
무선 통신망은 창원에 작은 핵을 떨구면서 귀엽게 터진 EMP가 싹 쓸어 버렸기에 신고할 방법이 없었다.
굳이 신고하려면 걸어서 가야 하는데 사방에 군기 잡힌 까마귀들과 드론이 날아다니는 걸 피해서 갈 정도의 능력자는 없었다.
김 양은 모병 현황을 보곤 작게 인상 썼다. 전부 고추밭이었기 때문.
“여자들은? 여자들은 지원하지 않았어?”
[예. 여성 지원자들은 군 복무 항목에서 지원을 포기했습니다.]“왜? 그거 나중에 딴소리 나오지 않게 남녀구분 없이 똑같이 굴린다고 했잖아.”
[그.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김 양의 눈빛이 흐릿해졌다.
“캐나다 쪽에 여자가 많다지만, 저번에 귀환병들 이어주고 난 뒤에는 성비가 어느 정도 조정됐다고 하니까. 여기서 한 번에 몇천씩 실어 나르면 성비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어.”
괜찮은 여자들은 이미 귀환병 애들이 싹 데려갔고 남은 사람들은 인성이든 뭐든 조금 애매한 여자들인데 그렇게 엮게 두긴 좀 그랬다.
“어차피 이 동네 20~30대 연애 비율, 결혼비율 낮잖아. 적당히 나이 맞춰서 가면 되니까 인근 도시나 마을까지 잘 살펴봐.”
[주변에는 젊은 여자가 정말 적습니다.]창원 인근이라고 해봐야 김해, 진주, 거제였다. 나이 있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20대 중반 이하의 여자들은 상당이 적었다.
변이 바이러스 사태가 심각해졌었을 때, 수도권과 대도시 중심으로 오진 그룹의 치료제가 우선 배급됐을 뿐만 아니라, 바이러스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된 뒤에도 일자리가 제대로 굴러간 곳은 수도권과 대도시 쪽이었다.
지방 도시들은 농업과 관련된 업종 외에는 말라가기 시작했으니, 젊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자들도 전부 대도시와 수도권으로 올라가 버린 것.
“여자도 그렇지만 군인이 아닌, 젊은 사람 자체가 없다고?”
[그렇습니다. 중국과의 전쟁 이후에는 더 그렇다고 합니다.]변이 바이러스 사태가 터진 뒤 이촌향도(離村向都) 현상이 뚜렷해졌다고 한다.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혹시라도 도시로 가지 않은 젊은이가 있다면 마을이나 동네 공노비처럼 부려지기 시작했다고. 견디다 못한 젊은이들이 밤에 대도시로 도망치기까지 했다는 이야기.
“그건 또 무슨 얘기. 공노비? 부모들이 있을 텐데도 일을 시켰다는 소리?”
[저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보조 인공지능의 통역상 그렇다고 합니다.]도와 달라는 걸 무시할 수도 없고 또 누구는 도와주고 누구는 도와주지 않고 이렇게 되면 또 마을 분위기가 뒤숭숭해지고.
이게 차라리 하루 일당을 쳐주고 일을 시키면 문제가 아닌데, 애매하게 1시간, 1시간 30분 이렇게 돌려가면서 일을 시키면 진짜 지랄 맞은 상황이 됐다.
욕하자니 뻔히 일손 부족한 건 다 아는 일이었고, 1시간 일했다고 현장에서 현찰 1만 원, 2시간 일했다고 2만 원 주는 걸 받기도 그렇고 받지 않자니 짜증이고.
취업난으로 귀농하겠다고 내려온 손주들이 생고생하는 것을 본 조부모들도 차라리 수도권으로 가라고 했다는 보고에 김 양이 갸웃했다.
조부모? 그럼 이 근처 농촌에는 평균 연령 70은 넘는 노인들만 산다는 건데.
“그럼 농사는 누가 짓고?”
[군인을 동원해서 짓고 있었습니다.]“군인에게 농사를?”
아-
그래서 부대가 예상보다 규모가 컸었구나.
비닐하우스와 농지 근처에 군부대가 들어선 것도 이유가 있었고.
둔전도 아니고 군인을 동원해 경작이라니.
근데 군인들이 농사만 짓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러니까.
음···.
근데 전시 계엄령으로 전역 무기한 연기했다며?
어···.
진짜 놀라웠다(Amazing). 여러모로.
‧
‧
‧
까마귀들이 모집했을 때 응한 병사들은 얼마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까마귀가 태블릿 PC와 팸플릿 들고 와서 모병한다고 이민 가자고 하는데,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일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 소수지만 더러워서 뜬다고 덜컥 모병 이민 서류에 서명한 병사들이 있었다. 그건 행운이었다.
“어제 까마귀들이 보여준 모병 이민 서류에는 조건이 없었는데요?”
[조건 없는 이민이 어디 있겠습니까? 신성 왕국 군은 최첨단 장비를 사용하기 때문에 최소 지능 검사를 통과해야 합니다.]최소라고 하지만 무려 IQ 115를 제한(cut line)으로 잡은 신성 왕국 군이었다. 2020년 기준 한국의 평균 지능이 IQ 113이라기에 그보다 약간 이상을 기준으로 잡은 것.
아이큐 테스트를 시작으로 신체검사와 체력검사, 심지어 유전 검사를 통해 유전병이 있는 사람까지 걸러졌다.
“그··· 가족들은 어떻게 합니까?”
[현재 연락이 되는 가족들이 있습니까?]“아닙니다. 거의 1년 동안 연락이 되지 않아서.”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는 말씀이십니까?]“네. 혹시 신성 왕국 군에 들어가면 집에 연락할 수 있을까요?”
[현실적으로 당장은 어렵습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이민 모집도 한국 정부와 협의해 진행하는 일이 아닌지라. 그럼 이민 복부 절차 취소해 드릴까요?]“아닙니다. 가겠습니다.”
[추후 가족 문제로 군 복무(military service)를 수행하는 데 있어 문제가 생길 경우, 시민권이 취소될 뿐 아니라 추방될 수 있습니다.]일이 잘 풀린다면 가족들과 연락할 수 있고 조건만 맞는다면 가족을 초청하는 방식으로 신성 왕국으로 불러올 수 있겠지만,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일을 추진하는 신성 왕국 이민사업부였다.
“알겠습니다.”
[여기에 서명해 주시기 바랍니다.]슥-
태블릿 화면에 떠오른 전자 서명란이 채워지며, 또 한 명의 한국군 병사가 신성 왕국에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