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752)
러스트 [RUST]-752
요란한 굉음과 함께 골프 클럽하우스 옥상에 먼지가 피어올랐다.
여기서 이렇게 뺑뺑이 치고 있는 건.
‘전부 백정 탓.’
김 양은 속으로 욕했다.
그냥 대놓고 욕했다가, 충성 충만한 인공지능들이 마루 욕했다고 삐질지 몰랐으니까. 인공지능이 화내는 건 딱 하나, 마루를 헐뜯었을 때뿐이었다.
그러니까. 그렇다.
전부 백정 때문이다.
그녀야 늘 하던 대로 백정 드립을 했었는데, 그걸 들은 엑소슈트 보조 인공지능이 정색했다. 무슨 사람처럼 감정적으로 변하는 게 신기해서 몇 번 장난 쳤지만, 인공지능에 있어 마루는 장난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존재라는 것만 깨달을 수 있었다.
말이 보조 인공지능이지 애들이 작심하고 물 먹이려고 하면 답이 없었다. 당연히 인공지능이 있는 곳에서는 마루 욕을 자제하게 됐다.
HUD에 떠오른 실시간 상황을 살피던 김 양이 살짝 끄덕였다.
‘그나마 다행.’
신성 왕국에서 만든 까마귀 전용 고폭탄이거나 작은 핵이었으면, 클럽 하우스 옥상이 통째로 박살 나다 못해 건물이 통째로 무너졌을 텐데, 비둘기들이 들고 있는 건 고작 세열(細裂) 수류탄.
세열 수류탄은 대인 저지력은 좋았지만, 파괴력은 그냥저냥. 벙커는 고사하고 철근 콘크리트로 다져진 옥상을 부수기에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다는 건 비둘기의 폭격은 눈속임이고 진짜는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식인귀들이겠지.
[정신 똑바로 차려. 기껏해야 세열 수류탄임. 하늘은 눈속임이고 진짜는 식인귀다. 놈들 접근하지 못하게 제압 사격해!] [옛!] [알겠습니다.] [식인귀에게 신경 쓰다가 등신처럼 비둘기에게 납치되지 말고!] [옙!] [넷!]김 양의 경고에 옥상이 화답했다.
[대장님 말씀 다 들었나? 비둘기에게 낚이는 병신은 없겠지?] [옛!] [넵!]모두가 단단히 대비한 사이, 세열 수류탄 폭격이 폭풍이 그쳤다.
[대기.]비둘기가 폭격할 수 있다는 건, 머리를 쓸 수 있다는 소리. 최소한 작전을 펼칠 정도의 지능은 된다는 뜻.
[온다.]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오른 사이로 비둘기들의 육탄 강하가 시작됐다. 15만 마리의 비둘기가 거대한 뱀처럼 옥상을 집어삼켰다.
유명한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휩쓸어가는 비둘기떼. 날갯짓 소리, 부리와 발톱으로 쪼고 긁는 소리 그리고 조금씩 갉아지는 벙커가 내는 힘겨운 소리까지.
그 모든 소리를 뒤로 김 양의 시선은 HUD(head up display)에 고정되어있었다. 그녀의 전용 코일건이 노심 에너지를 집어삼키곤 윙윙 재촉했다.
화면에 드러난 식인귀. 좌우 지그재그로 뛰며 총알을 회피하는 모습. 때로는 박자를 주다, 순간적으로 엇박자로 뛰어 친위대를 농락하고 있었다.
김 양은 방아쇠에 얹은 손가락 끝에 리듬을 담았다.
둘둘 하나. 딴딴 따안.
재그재그 지그
하나둘셋. 따안딴딱
지그재그 후 전진 가속
놈의 현란한 움직임에 따라 친위대원들의 총구가 춤췄다. 농락하는 듯 서서히 거리를 좁히는 식인귀의 도발에도 김 양은 차분히 놈의 스텝을 노렸다.
둘둘둘. 딴딴딴
둘둘셋둘. 딴딴딱딴
둘둘— 딴딴–
그리고.
따안.
[하나.]‘십새끼- 뒈지셈!’
김 양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겼다.
투위이잉-
재그재그- 지그로 회피 기동하는 식인귀의 머리통을 향해 탄환이 쏘아졌다. 마하 4에 육박하는 총알은 발사와 함께 공기의 마찰로 붉게 달아올라.
파아아악-
레이저처럼 붉은 궤적을 만들며 식인귀의 머리를 지웠다. 그리곤 김 양의 독무대가 시작됐다.
튀이이잉-
김 양 전용 코일건의 독특한 소리와 동시에 통통 점프하며 움직이는 식인귀 하나가 점프한 자세 그대로 머리를 잃었다.
퍼그어억-
‘게임처럼 움직이면 못 맞출 줄 알았나?’
병신.
김 양의 날카로운 시선이 다음 타겟을 살폈다.
‘저건 다른 애들이 막겠고.’
순식간에 전면을 살핀 그녀가 샤샤샥- 바퀴벌레처럼 바싹 땅에 붙어 움직이는 식인귀를 찾아냈다. 식인귀는 낮은 포복이 성공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더럽게.’
포복할 때 허겁지겁 빨리 움직이면 어디가 솟는 줄 아는가?
엉덩이였다.
거침없이 방아쇠를 당긴 김 양.
크릭-
그녀의 HUD엔 양쪽 엉덩이 사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식인귀가 고통을 참지 못하고 몸을 뒤트는 장면이 떠올랐다.
끄아아악!!!
투위이이잉-
비명을 꿰뚫는 묵직한 탄환이 항문과 그곳을 동시에 잃은 식인귀의 고통을 덜어줬다. 삽시간에 6~7마리의 식인귀를 처리하자, 식인귀들은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이쪽은 아니야!”
“여긴 아니라고!”
“뒤로 가-”
“옆으로 빠져.”
“양옆으로 가라니까!”
“저격수다!”
김 양이 있는 곳으로는 얼씬도 하지 않는 놈들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다른 곳으로 식인귀들이 몰렸다.
[2시 적들이 몰려옵니다!] [7시 지원이 필요합니다!] [자동 포탑. 자동 포탑 탄약 떨어집니다!] [보급! 보급 빨리!] [양손으로 쏴!]친위대는 김 양의 명령대로 죽이는 것보다 놈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탄막을 형성했다. 맞추려고 쏘는 것이 아니라 면을 제압하듯 총을 쐈기에, 놈들도 함부로 접근할 수 없었다.
[다들 잘하고 있어. 조금만 더 힘내.]김 양이 친위대를 치하했다. 동시에 HUD에 까마귀들의 보고가 올라왔다.
까아아악! (자주포 제압 완료!)
까악까아악. (항복한 적 마취로 재움.)
까아악-깍깍? (능력자가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요?)
‘능력자?’
까마귀들이 자주포를 공격할 때의 영상이 구석에 떠올랐다.
어떤 능력인지는 모르겠지만, 까마귀들이 노리고 있다는 걸 알아챈 사람이 있었다. 맨 앞에 가던 자주포 승무원 가운데 하나겠지.
누군지 몰랐기에 김 양은 빠른 결정을 내렸다.
[그쪽으로 착륙선 보낼 테니까. 선두에 있던 애들 전부 끌고 올라가.]깍! (알겠습니다.)
[6시 식인귀 움직임이 변했습니다.] [12시와 3시도 뒤로 빠지고 있습니다.]피우우우우-
높은 소리와 함께 81mm 박격포탄이 건물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고작 81mm이다. 쪼는 건 아니겠지?] [쪼는 새끼 없습니다!] [히이하!] [후우아!]김 양은 쉴새 없이 방아쇠를 당기며 HUD에 떠오른 다양한 정보를 정리했다.
까마귀가 자주포 처리 확인.
능력자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병사들 통째로 납치.
접근하는 식인귀 밀어내는 데 성공.
적들이 부랴부랴 가져온 81mm로 똥을 던지지만 피해 없고.
‘문제는 15만 마리 닭둘기인데.’
옥상의 상황이 좋지 않았다.
신성 왕국의 신기술로 만든 벙커가 조금씩 뜯기고 있었다. 155mm 탄으로 두들겨 맞아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고. 주력전차의 120mm 포탄에도 견디는 조립식 벙커였지만, 변이 괴수가 가진 특유의 발톱에는 조금씩 뜯어지고 있었다.
닭둘기 한 마리가 스치고 지나가면서 벙커의 외벽을 1g 뜯는 데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15만 마리가 스치고 지나가면 150,000g이었다. 그러니까 150kg.
[네이팜 수류탄 까!] [네이팜 수류탄 투척준비!] [투척준비 완료!] [옥상에 던져!] [네이팜으로 불붙이면 옥상 무너집니다!]1,300도에서 1,500도까지 올라가는 네이팜이 옥상을 불태우면 옥상을 이루는 구조체가 약해져 무너진다는 이야기.
[상관없다. 옥상에 불 지르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옛!] [옥상에 불 지르라신다!]삐익-
긴급 신호가 떠오르며 새로운 정보가 떠올랐다. 성층권 정찰 비행선에서 보내온 정보. 120mm 자주 박격포 차량이 대규모로 이동하는 영상이 떠올랐다.
삐익-
이동식 현무 미사일 발사대가 좌표를 남쪽으로 강제적으로 고정하면서 생기는 신호가 잡혔다는 정보도 떠올랐다.
삐익-
그리고 천무 다연장 로켓포 18문이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정보가 동시에 겹쳤다.
이··· 이거 뭐임? 갑자기 왜 발작임?
120mm 자주 박격포도 모자라 갑자기 현무에 천무라고?
김 양의 동공이 흔들리는 찰라, 보조 인공지능이 엄숙한 톤으로 선언했다.
[그분께서 도착하셨습니다.]어? 지금?
김 양은 자기도 모르게 하늘을 봤다.
15만 마리의 비둘기떼가 거대한 뱀처럼 골프 클럽 하우스의 옥상 부분을 휘감는 모습. 여기저기 떨어지는 81mm 박격포탄이 클럽 하우스 중층과 하층을 두들겨대는 장면이 그녀의 눈동자를 가득 채웠다.
아—
하늘 저 멀리 아주 작은 점이 빠르게 하강하고 있었다.
[전원 강심제 투약!]HUD로 화면을 확대한 김 양이 바로 외쳤다.
[강심제 투약!] [심장 마비 대비해.] [죽고 싶지 않으면 정신 똑바로 차려라!] [이 악물어.] [숨 크게 들이쉬고 악물어!]지나가듯 한 번 경험해 본 선임병들이 신병들을 닦달했다.
쓰-하-
전투자극제와 섞인 강심제를 맞은 친위대원들 입에서 어딘가 익숙한 탄성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이어진 마루의 통신.
[지금 가고 있다. 준비해.] [준비 끝났음.]진작 준비하고 있었다니까.
응.
하늘 저 끝. 작은 점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저거 제트팩 너무 빠른 거 아니야?
음속에 가깝게 움직이는 거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점이 사라졌다.
너무 빨라 카메라 범위에서 벗어난 것.
거기서 더 가속했다고?
클럽하우스 옥상은 이정표라도 된 것처럼 검은 연기를 피워올리며 불타오르고 있었다.
불꽃을 피해 건물 외벽을 갉아가던 비둘기들이 제트팩 소리를 들었는지, 똬리를 튼 뱀이 머리를 드는 것처럼 하늘로 공격 방향을 바꿨다.
점점 가까워지는 굉음을 향해 치솟는 비둘기들은 입을 크게 벌린 독사가 사냥감을 물어뜯기라도 하듯 튀어 올랐다.
비둘기의 움직임이라고 볼 수 없는 비행. 15만이라는 비둘기 떼가 하나의 군체처럼 기동하는 모습은 소름 돋았다.
기이이이이이이잉——-
점이 서서히 커지며 선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
그게 착시현상이라는 걸 김 양은 알고 있었다. 알고 있음에도 점이 선으로, 선이 가늘고 긴 면으로 변하는 것만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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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적인 인지 부조화가 하나의 형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
김 양은 생각을 포기했다.
회색빛 푸르딩딩한 이무기가 하늘을 탐하고 그걸 단죄하는 칠흑의 칼날이 공중에서 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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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천둥처럼 연이어 울려 퍼졌다.
하늘에 구멍이 뚫리는 것 같은 충격이 땅까지 전해졌다.
[Oh—My—.] [HOLLY- S–.]보이지 않는 칼에 맞은 것처럼
쪼개진 푸른색과 회색빛이 흩날리기 시작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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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렇게
흘러내린 붉은 빗방울이
충격파로 생긴 동심원을 따라 흩어지고
흩날리다
깨져나갔다.
붉게 녹아내리는 창공.
[······.] [······.]탄성과 탄식조차 침묵으로 변하고
뜨겁게 달아오른 여름이 붉은 눈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죽음이었다.
‧
‧
‧
친위대의 감탄사가 숨통이 틀어막혀 질식하는 숨소리로 변하는 것은 순간이었다.
[끄으으읍- 수.수–] [수물. 수미어어어—] [심정지 확인.] [동공반응 있음.]보조 인공지능이 생명유지 프로토콜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긴급 상황인정.] [제세동기 가동합니다.] [충전. 작동.]투우우웅-
[맥박 소실.] [다시 작동합니다.]투우우웅-
여기저기 엎어진 엑소슈트와 노심 아머가 퉁퉁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대부분 처음 살기를 접한 신병들이었다.
한 번 접해본 선임병들도 쭈그리고 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는 게 전부였다.
퍽- 퍼퍼퍽-
철푸덕-
하늘에서 추락하는 비둘기들이 피떡이 되는 소리에도 원정대는 숨쉬기에 바빴다. 15만에 달하는 비둘기 가운데 만 단위가 한 번에 지워지는 건 충격을 넘어 공포에 가까웠다.
수직으로 내리꽂힌 죽음은 중력까지 죽여버린 것처럼 다시 치솟았다.
아래로 내려가면서 한 번,
다시 위로 올라가면서 한 번.
단 두 번의 휩쓸었을 뿐인데 비둘기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건 슬금슬금 거점으로 몰려오던 식인귀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딜.]퀴이이융
에이이융
김 양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도 도주하는 식인귀들의 사지를 뜯어내고 등판에 구멍을 뚫었다.
끄아아악!
커흑!
방아쇠를 당기던 김 양이 문득 생각했다. 숨쉬기가 너무 힘들었다.
‘아니 왜 아직도 이러는데.’
[우리 애들 다 죽겠음!]나도 죽겠음! 다 죽일 생각임!!!
김 양의 외침에 마루가 머쓱한 목소리로 답했다.
[···다들 잘 버티는 줄 알았지.]지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