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753)
러스트 [RUST]-753
남산 지하.
과거와 현재의 시설이 뒤엉켜 있는 벙커엔 행정병과 통신병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통신장애 신고.] [동탄 분당 방면 통신이 교란되고 있습니다.] [비둘기들이 퍼지면서 발생한 생체 EMP(electromagnetic pulse)가 원인으로 보입니다.] [천무 다연장포 피격!] [적 확인. 까마귀.] [반복합니다. 천무 다연장포 까마귀의 공습에 피격!] [정보 확인.] [까마귀들이 천무 다연장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빌어먹을 비호(대공포)는 뭘 하고 있어!”
“긴급 비상 훈련으로 출동시켰기 때문에 함께 출동하지 않았습니다.”
쾅!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용인이다. 용인! 동탄이 엎어지면 코앞이고 분당이 자주포 사정거리 안에 들어가는 용인이라고!”
[······.] [······.]“그런 용인에 정체불명의 무장단체가 거점을 마련했는데 모르고 있었다고? 까마귀들이 비호 부대를 습격한 뒤에 뒷북이나 치고 있다고? 너흰 뭐하는 새끼들이야!”
사실만 따진다면 그랬다. 현재 신성 왕국이 점령한 용인 골프장에서 대포를 쏜다면 강남, 서초, 송파를 모조리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었지만, 분당까지만 언급하는 장군이었다.
155mm K9 자주포가 아닌, 105mm만으로도 분당을 가뿐하게 날려 버릴 수 있는 거리. 그런데도 강남 위협설이 제기되지 못하도록 딱 분당으로 정리하는 장군의 호통은 참으로 별다운 발언이었다.
“천무 다연장포를 까마귀가 공격하다니.”
“세력이 있는 까마귀들은 전부 울산과 창원으로 보내지 않았습니까?”
“울산이나 창원의 까마귀들이 배신했다는 건가?”
“그건 아닐 겁니다.”
“지금 상황으로는 확신할 수 없지요.”
“배신이냐 아니냐도 문제지만, 까마귀 서식지인 창원에서 보고가 끊겼다는 게 문제입니다.”
“만약 창원 지방에 있던 까마귀들이 배신했다면 무려 7만이나 되는 까마귀들이 남부 지방을 휩쓸게 된다는 말입니다. 당장 비상경계 태세에 들어가야 합니다.”
“창원 까마귀는 괜찮습니다. 울산에 21만 마리가 있는데 뭐가 걱정입니까? 둘 다 동시에 배신하는 게 아니라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여기저기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을 중재한 장군이 주의를 환기했다.
“어느 지역의 어떤 까마귀가 왜 군을 공격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지금은 어떻게 대응할지가 중요하지요.”
“맞습니다. 수도권 북부지역 제공권은 비둘기들이 장악하기로 했는데. 그게 무너졌으니 다른 조류들이 공백을 채운다면 골치 아파질 겁니다.”
대표적으로 까치와 황조롱이, 붉은배새매와 참매, 부엉이와 올빼미들이 그랬다.
까치를 제외하면 거의 단독 행동을 하거나 암수 한 쌍으로 먹이 활동을 하던 새들이었는데, 변이 바이러스의 영향을 받은 뒤부터는 많이 달라졌다.
몇 마리에서 수십 마리까지 부대를 이뤄 다니기도 했고 마을과 도시를 대놓고 습격하기도 했다. 그래서 대안으로 내세운 것이 비둘기였다.
비둘기와의 협정으로 비둘기들은 풍부한 먹이(?)와 인간의 도움으로 숫자를 늘렸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15만이 넘는 단일 세력을 유지하게 됐다.
압도적인 숫자의 폭력과 커진 덩치로 육식 조류들을 DMZ와 강원 산간으로 몰아내고 제공권을 장악했는데 그런 비둘기떼를 보냈더니 대참사가 벌어진 것이었다.
“경기 북부를 쥐고 있어야 할 비둘기떼가 졸지에 용인, 동탄, 분당에 흩어졌으니.”
“비둘기 우두머리에게서 연락이 끊긴 걸 보면 뿔뿔이 흩어졌다는 소린데··· 다시 모으려면 오래 걸릴 겁니다.”
“······.”
“······.”
수백에서 수천 단위로 흩어진 비둘기들이 벌일 사건을 생각하면 골치가 아팠다. 당장 몇천씩 몰려다니면서 전선과 유선 통신망 건드려 버리면 똥 되는 건 이쪽.
심지어 크기도 거위와 비슷한 덩치인지라. 그런 놈들이 송전탑에 몇 마리 앉기라도 하면 정전은 확정이었다.
“닭둘기 새끼들 허겁지겁 먹어대서 등치만 불리더니.”
“비둘기 숫자가 15만이 넘는 세력이었습니다. 단일 세력으로는 울산 까마귀 다음이었는데 무너졌다니.”
“숫자도 숫자지만, 한 마리 한 마리가 일반병 분대 화력과 맞먹는 것들인데.”
“무엇보다···. 용인으로 보낸 부하들과 동시에 연결이 끊겼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급자들을 제법 보냈는데, 어느 순간 순식간에 연결이 끊겨버렸다. 있을 수 없는 일.
“아랫것··· 큼- 흠- 문제 있는 자들을 보냈으니,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길 수도 있지요.”
“정체 모를 무장단체가 용인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지역 토박이들과 연계가 없다면 지금까지 숨어있을 수 없었을 테니까요.”
“용인 지역 토박이라고요? 그 토박이들이 누구 라인입니까? 예?”
“이번에 정권을 잡은 라인이겠지요. 그쪽으로 전부 바뀌지 않았습니까?”
긴급회의가 시끄러워졌다. 토론의 주제와 책임 소재가 지역별 라인을 타고 나누어졌고, 나중에는 정치세력별로 쪼개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예전과는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은 이미 모두 특권계층이 됐다는 것. 그리고 어렵사리 만든 특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언제든 한뜻으로 뭉칠 수 있었다.
“다들 그만합시다. 나중에 시시비비를 가려도 되는 문제 아닙니까?”
“······.”
“······.”
지금은 뭉쳐야 할 때라는 걸 그들은 알고 있었다. 정부와 계엄 사령부는 통제력을 확보하기 위해, 기습적으로 중앙은행 발행 전자 화폐로 전환하는 것을 추진.
사람들의 목줄을 움켜쥐는 데 성공했지만, 여기는 전통적으로 집단행동 잘하기로 소문난 한국이었다.
그래서 혹시라도 뭉치지 못하게 젊은 남자들을 전부 징집해 뺑뺑이 돌렸고 무장 저항 단체가 생기지 못하게 이중삼중으로 감시, 통제하고 있었는데.
기어코 정체불명의 무장단체가 나타나고야 말았다. 그것도 상당한 화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지역 주민과 연계된 것으로 짐작되는 무장단체가.
“우리 애들이 당했을 정도라면···.”
“능력자일 겁니다.”
어지간한 능력자들은 전부 파악해 가족들을 인질로 잡고 제어하고 있었다. 확보하지 못한 능력자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놈들이 이렇게까지 강력한 능력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조류를 조종하는 능력자가 함께 있다고 봐야겠군요.”
까마귀나 비둘기를 조종해 이쪽을 공격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새를 조종하는 능력자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지금 상황과 맞아떨어지기도 했다.
잠시 조용해진 회의장.
침묵을 뚫고 계엄 사령관이 입을 열었다.
“능력자들을 무조건 잡아야겠군.”
“현상금을 걸면 될 겁니다.”
“어차피 모든 물품을 관리되고 있으니 데이터 쪼가리를 던져 준다고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테니까요.”
“숨어있는 능력자들은 그렇게 찾는다고 치고 당장 용인에 있는 놈들은 어떻게 할 건가?”
천무 다연장포가 공격받았다. 그리고 K9 자주포 18문도 파괴됐고. 현무로 정밀 타격했으면 좋았겠지만, 인공위성은 먹통.
새를 조종할 수 있는 능력자가 저쪽에 있다면, GPS 신호를 발신할 수 있는 풍선이나 정찰 드론도 격추될 게 뻔했다.
“비둘기들이 흩어진 게 큽니다.”
“일단 현무 발사는 중지하도록 하고, 120mm 비격 박격포와 105mm 자주포(K105A1)를 최대한 활용해 보도록 합시다.”
“지금 장난하는 겁니까? 새대가리들이 저쪽에 붙어서 제공권을 잃었는데 비격 박격포와 105 미리 자주포를 보내자? 제정신입니까?”
“능력자들과 비호 대공포를 붙여 주면 될 겁니다.”
“적의 숫자도 파악하지 못한 상황인데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까마귀가 만단 위로 설치고 있다면 비호로 버티는 건 불가능했다.
분위기가 싸늘하게 변했다.
“그러면 어쩌자는 겁니까?”
“중급을 주력으로 상급까지 넣어서 보내야지 않겠습니까?”
한쪽만 인력을 잃으면 안 되니, 계파별로 공평하게.
“지휘권은?”
“제일 강한 자에게 있어야지. 그래야 잡음이 없겠고.”
“···그렇게 합시다.”
“좋소.”
“그럽시다.”
“동의합니다.”
남산 어느 자락.
땅속에서 솟아나기라도 한 것처럼 튀어나온 군용차량 여러 대가 남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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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빛 낙하물이 떨어지는 소리는 길게 이어졌다.
4km~5km 상공에서부터 클럽하우스 근처까지 마루와 충돌한 흔적이 우박처럼 쏟아졌다.
철푸덕
쿠드득
—–
퍼드득—-
구구구구구구-
날개가 기형적으로 비틀린 비둘기가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지만, 부러진 날개는 힘을 받지 못했다.
그 주변으로 다리가 부러진 놈과 목이 덜렁거리며 전신을 부르르 떠는 것까지 뒤섞여 있었다. 그렇게 죽어가는 비둘기들의 눈동자에 담긴 것은 공포와 절망뿐.
[하악- 하악-] [아직도 숨이 찹니다.]죽음을 겪은 신병들이 반쯤 풀린 눈으로 허우적댔다.
[지랄하지 말고 똑바로 걸어.] [저 새끼 뭐라고 주절거리는 것이냐? 숨이 찬다고?] [숨통 트였으면서도 저러는 거야?] [애 새끼들이 전부 빠졌네. 빠졌어.] [동작 보정, 인공지능이 엑소슈트로 다 해주는 데 뭔 씹.] [저 새끼들 수동으로 돌려 버릴까?] [그러다 진짜 뒈진다.] [어쩌겠냐. 계속 굴려야지.]정신적인 충격이 깊은 상처가 되지 않게 하려면 무조건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게 좋았다. 힘들어 죽도록 굴리다 보면, 잠깐 심정지 됐던 건 그냥 그럴 법한 일로 느껴질 터.
[정지. 지금부터 비둘기들을 작업한다.]그렇게 굴리기 위해 살기에 넋이 나간 신병들을 모조리 끌고 나온 선임병들이었다. 작업의 내용은 확인사살과 도축이었다.
[확인사살 말씀이십니까?] [그래. 저기 보면 아직도 펄떡이는 것들 있잖아. 저런 거 죽이는 거다.]지금은 죽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혹여라도 주변 비둘기 먹고 상처를 치료하고 추가 변이를 일으킨다면 어떻게 될지 몰랐다. 그러니 깔끔하게 정리하는 게 최고.
[죽이고. 목을 자르고 내장을 뺀 뒤, 깃털과 솜털을 분류해서 뽑아.]비둘기 솜털은 이번 겨울을 나는 데 도움이 많이 되리라. 고기도 그렇고. 선임들은 신병들에게 주의할 사항을 전달하고 반복했다.
신병들의 귀에 피딱지가 앉도록 잔소리를 반복했지만 다들 알고 있었다. 아무리 반복해도 트롤 짓거리하는 고문관이 나올 것이라는 것쯤은.
[펄떡거리는 놈에게 가까지 가지 말고 멀리서 쏴.] [살아있다 싶으면 일단 쏘고 봐라.] [하악- 학- 옛!] [숨 계속 쉬고 빠딱빠딱 움직여라.] [눈치 살살 보고 지랄하는 새끼는 보조 인공지능 꺼버린다.] [힘들다고 적당히 설렁설렁하는 새끼는 걸리기만 해. 수동으로 움직이게 할 테니까 적당히 해봐. 알았지?] [학- 학- 아닙니다!] [안 이긴 뭐가 안이야. 안 인지 밖 인지 두고 보겠어.] [학- 학- 열심히 하겠습니다.]칼질로 죽은 비둘기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대부분 살기의 권역에 들어가 심장 마비로 죽은 것들이 대부분.
푸드덕
퍼드득
구우우우! (으아아아!)
구우웃! (살려줘!)
신병들의 엑소슈트가 밀밭을 수확하는 농부처럼 비둘기들의 목을 수확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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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양과 정예 대원들이 모였다.
[한 마리도 놓치면 안 됨. 하읍- 다들 움직일 수 있지?]가까이 접근한 식인귀 대부분을 잡았지만, 놓친 놈들이 없는 건 아니었다.
[옛! 하아- 하악.] [후욱- 끄떡없습니다. 후우-]끄떡없긴.
김 양이 흔들리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마루가 쏘아내는 살기 범위는 그렇게 커진 것 같지는 않았다.
문제는 살기의 밀도.
‘진짜로 전부 뒈질뻔했어.’
미리 쓴 강심제만도 3번째 최신 버전이었다. 거기에 전투보조제까지 섞었으니 허무하게 죽을 일은 없겠지 했었는데 이게 웬걸.
그녀의 반응이 늦었으면 떼 몰살 뜰 뻔했다.
‘살기에 익숙해지긴.’
김 양은 진저리치듯 고개를 흔들고는 부대를 나눴다.
[다시 반복하지만, 놓치는 놈. 절대 없어야 함. 알겠나?] [옛!] [넵!]호흡을 충분히 고른 정예부대원들이 삼삼오오 팀을 이뤄 나서자, 어쩐지 바짝 군기가 잡힌 까마귀들이 수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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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대가 정리하는 동안, 마루는 리퍼 슈트로 갈아입곤 역추적을 시작하고 있었다. 목표는 원정대 거점을 찾아낸 것으로 보이는 한 형사.
그 정도로 추적에 능숙한 사람이라면 식인귀들 추적하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
일렁이는 그림자가 동탄 방면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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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전멸했다는 말입니까?
한 형사는 갑작스럽게 걸려온 윗선의 전화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집행자는 신인류라 불리는 초인들로만 이뤄진 조직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전멸했다고?
[그래. 전멸했네.]“······.”
[자네의 예측대로 놈들은 용인에 있는 버려진 골프장에 있었네. 아마도 함정을 파고 있었겠지.]“······.”
[그걸 탓하려는 건 아니야. 다만 자네가 놈들의 정체를 살펴봤으면 좋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