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756)
러스트 [RUST]-756
회식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김 양의 분노도 컸다.
2년 넘도록 먹지 못한 흑돼지와 한우 아닌가?
다시는 먹을 수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가 다시 먹게 됐는데.
숯까지 전부 준비했고 이제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는걸, 거기에 초를 쳐?
‘뭐하는 새끼들인데 급하게 내려오는 걸까?’
뒈지려고.
응.
그냥 뒈지려고 하는 놈들이라니. 용서할 수 없었다.
김 양은 바로 전용 노심 아머를 장비하고 제트팩까지 챙겼다.
[어디 가십니까?] [오늘 고기 회식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작업 후딱 끝내겠습니다.]그녀가 완전 무장을 하고 나오자, 호위로 붙어 있던 친위대원과 부장 역할을 하는 애가 다들 긴장했다.
다른 회식도 아니고 고기 회식인데 완전 무장을 하고 나오다니 얼마나 불길한 행동이란 말인가.
[일없음. 회식은 조금 늦어져도 할 거니까. 그리 알고.]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디 가시는 겁니까?]서울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이는 군용차량이 이쪽으로 접근할 확률이 높아, 왕님이 정리하려고 하는 데 도우러 간다고 설명하는 김 양이었다.
[왕님 ‘살’ 맞고 다들 뒈지려고 했는데 애들 데려가면 무슨 일이 생길지 알고. 애들은 여기 작업하던 거 마무리나 잘하라고 해.]그래도 김 양의 근거리 호위를 맡은 친위대원 둘은 끝까지 그녀를 따라가겠다고 했다. 김 양도 그것까지는 말리지 않았다.
[혹시라도 식인귀들이 게릴라처럼 치고 빠질 수 있으니까. 까마귀 정찰 꼼꼼하게 시키고.]회식은 좀 늦어도 하니까. 기다려.
부관에게 거점 지휘권을 맡긴 김 양이 마루가 있는 곳을 향해 날아올랐다.
‧
시속 100km는 될법한 속도로 내달리는 군용차량이 길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이거 좋지 않아. 좋지 않아. 느낌이 좋지 않다고.”
“주둥아리 좀 닥쳐.”
느낌이 좋은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나? 불길하다고 염병을 떠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인디언 기우제 올리는 것도 아니고.
“이번에는 진짜야. 진짜라고. 이렇게 불길한 적은 처음이야.”
“거기. 입 다물어.”
유독 덩치가 크고 근육질인 남자가 동굴 저음 목소리로 경고하자, 불길하다고 중얼거리던 사내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
“······.”
잠시 뒤 스피커에서 딱딱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현재 상황을 전달한다.]차량 한쪽에 설치된 모니터에 지도가 떠오르며 적이 있으리라 예상되는 범위가 붉게 표시되기 시작했다. 그리곤 쭉쭉 뻗어 나가던 화살표가 중간에 뚝 부러지는 모습이 떠올랐다.
[동탄 지역을 담당하고 있는 초인부대와 연락이 끊겼다.]지원하러 내려간 특수기동대 한 부대도 같이 실종됐고. 경기 북서부를 장악한 비둘기떼도 우두머리를 잃고 흩어졌다는 정보가 공개됐다.
심각한 내용임에도 무덤덤한 병사들. 오직 한 사람만이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브리핑이 이어졌다.
[···능력자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하고···.]반정부적인 성향을 지녔다고 평가받은 능력자들은 목줄을 채워 형벌부대처럼 굴리고 있었기에 그쪽부터 소진하라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적의 규모와 세력이 강하다면 적과 정전 협정을 맺도록.]팟-
모니터가 꺼지자, 여기저기서 작은 욕설이 터졌다. 뭔가 있어 보였지만 알맹이 하나 없는 브리핑이었다.
목줄 채운 능력자들부터 밀어 넣어서 간을 봐라. 된다 싶으면 전부 달려들어 쓸어버리고, 놈들이 세다 싶으면 정전하고 와라.
이 무슨 어이없는 소리란 말인가?
적들이 약하면 지역 관리하는 애들과 지원 부대로 내려간 애들이 세트로 증발했을까?
마찬가지로 적들이 약한데 15만이 넘는 비둘기들이 와해(瓦解)됐을까?
위기사태, 비상사태라며 한다는 짓이 반정부 능력자를 처분하는 기회로 삼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파벌끼리 견제하기 바쁘고 공적을 차지하겠다며 기 싸움이나 하는 모습.
이게 불안하지 않으면 뭐가 불안한 거란 말인가?
솔직히 처음부터 불안했다.
그래서 어떡하든 빠지려고 했건만. 매번 느낌이 좋지 않다고 했던 것이 찍혔기 때문인지 강제로 차출된 남자가 이를 꽉 다물었다.
“다들 들었지? 제일 강한 사람이 지휘권을 갖는다. 불만 없지?”
“불만 있는 사람은 지금 말해.”
“제일 센 놈이 지휘권을 갖는데 무슨 불만이 있겠어.”
“그런데 누가 강한지 어떻게 알지?”
“토너먼트라도 하자는 소린가?”
“병신 같은 소리는 하지 말자. 내려가는 도중에 토너먼트를 하자고?”
“그럼 어쩌자는 건데?”
“실적으로 따지면 될 것 아닌가?”
“실적? 지랄하고 있네. 쥐새끼 백 마리 잡은 걸, 변이 괴수 백 마리 잡았다고 퉁 친 실적?”
“우람한 팔뚝 크기로 변한 쥐니까 변이 괴수라면 괴수긴 한데. 큽-”
“고작 쥐 잡은 게 실적이라···.”
“다들 왜 그러냐. 실적은 실적이지. 후훕-”
“따지고 보면 그것도 실적이고 업적이긴 해.”
낄낄 놀리는 분위기에도 실적으로 지휘권을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내의 얼굴엔 부끄러움이나 수치심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여의도와 한강 공원에서 쥐떼가 번식해도 그렇게 웃을 수 있을 거 같나?”
반정부 능력자들이 끌려가 죽는 곳은 강원도 괴수 전선이나 서쪽 중국 난민 폭동 진압 때가 아니었다.
버려진 빌딩 지하, 대형 하수도 그리고 홍수 대비 배수시설 안에서는 매일 혈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 사실이 알려지지 않고 있었을 뿐.
“아- 그냥 시원하게 한 판 붙죠.”
“다들 저 새끼보다는 내가 세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근육 돼지가 목소리 내리까는 게 좆-같았는데 찬성.”
“오늘 말 나온 김에 쥐잡이 새끼 실적 좀 보자.”
“이러지들 맙시다. 다들 사춘기 애들도 아니고. 사회생활도 했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람들이 왜들 이럽니까?”
“그래서 한 판 붙자고 하는 거 아니야. 이러다가 뭣 되면 당신이 책임질 건가?”
“책임 소재를 명확하게 하려면 제대로 서열을 잡아야 할 거 아니야.”
“이 상황에서 계급장 내밀면서 돌격하라고 하면 총대 메고 뒈질 건가?”
“능력 좆도 없는 새끼가 이래라저래라 하면 할 사람?”
“에이 씨발. 그래 하자. 해. 다들 좀 쑤시잖아.”
단일 세력이었다면 지배력을 이용한 수직적 통제가 가능했겠지만, 이곳에 모인 자들은 각 계파에서 차출된 자들이었다.
군대에서도 옆 부대로 가면 아저씨인데, 이들은 전부 중급 이상의 식인귀. 다른 계파의 상급이 지배력이랍시고 강제하기도 쉽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상급이랍시고 능력도 없는 새끼가 지휘하겠다는 걸 지켜볼 자들도 아니었고. 그런 시대도 아니었다.
체재가 잡힌 뒤부터는 제대로 된 싸움이 없었다. 계엄 초기에야 각성자들이 일방적인 독재와 횡포라며 저항했었지만, 전부 때려잡은 것도 벌써 2~3년 전 일.
지금처럼 먹음직스러운 일거리가 언제 또 생길지 몰랐다.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몸 좀 푼다고 생각하면 될 일.
“여기 근처에 시설이 있으니까 이왕 말이 나온 거 시원하게 한 번 붙읍시다.”
“죽고 죽이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분당을 지날 무렵 서열부터 정리하자는 의견이 대세가 됐다. 일렬로 달리던 군용차량이 방향을 꺾어 분당과 동탄 사이에 있는 골프 클럽으로 향했다.
구구구국!!
퍽!
비둘기 한 마리가 냅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는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저거 술 먹었나?”
“음주 비행이야?”
“시발 비둘기 새끼들 팔자 좋네.”
“꼬리 내리고 도망쳤다더니 술 처먹고 지랄하고 있었네.”
그렇게 도로 여기저기 머리가 깨진 비둘기 사체와 금이 간 전봇대, 찌그러진 가로등이 있었다.
“이. 이봐. 진짜 위험해. 이번엔 진짜라고. 저기 비둘기 죽은 걸 보라고.”
“아. 씹.”
“넌 그냥 부전 패(不戰敗)해라.
“비둘기들이 대가리 박고 죽었으니 위험하다? 청계천 물고기 떼죽음은 불길하지 않았고?”
폭염으로 수온이 올라가면서 청계천에 살고 있던 물고기들이 떼죽음 당했다. 그때는 입 다물고 있다가 지금은 불길하다고? 불안하다고 말한 사내는 다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겉으로 보기엔 전형적인 클럽하우스였지만, 내부는 특수 시설과 장비로 가득한 곳에 들어간 식인귀들이 제비뽑기를 시작했다.
“오래 시간 끌 거 없지 않나?”
“진 놈들은 바로 현장으로 가기로 하지.”
토너먼트 결과 기다릴 거 없이 1라운드에서 진 사람들이 목줄 채운 능력자들 인솔해서 먼저 가라는 주장.
“재수 없는 새끼는 지금 먼저 보낼까?”
“그게 좋겠네.”
“오케이. 야. 제비뽑기할래 아니면, 그냥 갈래?”
“······.”
위험하다고 경고한 사내가 군소리 없이 차에 타자, 다들 비웃었다.
“저 새끼 언제 한 번 아구창을 돌려버리려고 했는데. 이걸 이렇게 피하네.”
“웃기는 새끼. 졸라 불안하다고 하더니, 여기서 한 판 붙는 것보다 가는 게 덜 불안했나 보지?”
낄낄. 웃던 자들이 제비뽑은 대로 2명씩 짝지어 흩어졌다. 조금 지나, 뭉개지고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작 5분 안쪽에 결판이 났는지. 팔이 뒤틀린 자, 머리 한쪽이 터진 사람, 안면이 함몰된 자들이 클럽하우스로 들어갔다. 식인귀가 아니었다면 전부 중상이었을 상처를 입은 자들이었다.
꺄아아아악!
으아앗 살려주세요!!
아아악!!
문을 열고 들어가고 나올 때마다 새 나오는 비명이 클럽하우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려줬다. 그리고 얼마 후, 상처가 멀쩡하게 회복한 패배 팀이 차에 탔다.
“시원하게 에어컨 켜 놓은 차에서 구경하니까 좋냐?”
“······.”
“왜 불안하다고 떠벌리지?”
“갑시다.”
“병신새끼. 불안하다고 할 때는 언제고 지금은 또 가자네.”
“졌으면 엄한 사람한테 지랄하지 말고 가자고.”
“뭐야 새끼야?”
“그러다 나한테도 지면 쪽팔려서 자살할 거냐?”
그제야 주변을 돌아본 사내가 이를 악물곤 고개를 돌렸다. 불안하다며 눈도 못 마주치던 새끼가 저러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패배팀을 태운 군용차량이 나가는 걸 지켜보던 승리한 식인귀들이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우리도 시작했으니까 끝을 봐야지.”
“당연한 이야길.”
누가 제일 강한가?
“공간을 더 넓게 쓰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골프장이니까 코스 하나씩 잡으면 되지 않겠어?”
근육질에 덩치 큰 남자가 제일 먼저 발걸음을 떼며 말했다.
“근육 돼지 목소리가 어떻다고? 뽑기고 뭐고 피할 거 없이 나랑 붙지.”
“오. 자신 있냐? 좋지.”
근육 돼지 목소리 내리까는 게 뭐 같다던 자가 건들거리며 덩치 큰 사내의 뒤를 따랐다. 제비뽑기도 없이 둘씩 짝지은 자들이 필드 곳곳으로 흩어졌다.
‧
푸욱-
두툼한 근육질 사이로 검붉은 칼날이 삐죽 삐져나왔다.
척추를 쪼개고 갑옷처럼 두툼한 근조직을 한 방에 꿰뚫은 칼날.
크억!
근육질 사내가 팔을 휘저으려고 했지만, 그보다 먼저 90도로 꺾이는 칼날. 그 끔찍한 고통에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토한 남자가 도망치려고 했지만, 이미 신경이 끊어진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너. 너. 누구···?”
서컥-
덩치 큰 남자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 둥실 떠오르는 머리통. 그 머리통이 땅바닥에 떨어지기도 전, 목이 잘린 근육 사내의 맞은편에 있던 상대가 자기 팔뚝을 한 움큼 물어뜯곤 텅 빈 곳을 향해 내뿜었다.
푸우웁!
짓이겨진 살점과 핏방울이 허공에 튀며, 흐릿한 잔상이 붉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씨발! 적이다!”
허리춤에 달린 나이프를 뽑은 남자가 몸을 낮추며 붉은 잔상을 향해 달려들며 외쳤다.
크지지직-
적이 휘두른 검붉은 칼날에 나이프가 반쯤 잘리는 모습. 특수 소재로 만든 나이프가 버티지 못하는 것을 본 사내가 재빨리 반대 손으로 총을 뽑아 붉은 잔상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팅-
나이프를 동강 낸 칼날이 그대로 권총을 토막 낸 뒤, 방향을 뒤틀었다.
방아쇠를 당긴 것과 권총이 조각나는 것. 그리고 팔뚝이 잘려버린 것이 동시에 이뤄졌다.
펑-
그의 팔을 자른 칼날이 제비처럼 옆으로 튀어 오르며 사선으로 조각나는 자신의 몸뚱이를 본 사내가 부들부들 잘린 팔을 앞으로 내밀며 마지막 숨을 토했다.
“너···.”
넌. 누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