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757)
러스트 [RUST]-757
사선으로 잘린 식인귀가 썰린 팔을 하늘로 뻗으며 허우적거리다 서서히 멈추는 것을 본 마루는 작게 혀를 찼다.
쯧-
텍사스에서 잡은 식인귀들보다 더 질긴 생명력. 뉴욕 식인귀 소탕 작전 때 잡은 식인귀와 비교하면 2~3배는 더 까다로웠다.
‘이것들 먹기도 엄청 먹었나 보군.’
그 생각이 옳다는 것처럼 클럽하우스에서 새어 나온 소리가 작게 흩날렸다.
“끄아아아악!”
“살려줘!”
“사람 살려!”
마루의 시선이 클럽하우스로 위장한 식인귀 시설을 향했다. 다친 식인귀들이 들어갔다 나왔을 때 상처가 치료된 걸 보면 저곳에서 식육 활동이 이뤄진 건 확실했다.
‘골프장뿐만이 아니겠지.’
버려진 시설마다 이렇게 식육 시설을 만들어 놨다면 일반 능력자들이 식인귀와 싸우는 건 어려웠으리라. 단숨에 죽이지 못하면 금방 상처를 회복했을 테니.
‘그래서였나?’
군용차량에는 예전에 봤던 목걸이를 찬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말없이 공허한 눈으로 천장을 보고 있는 사람들.
식인귀들이 하는 말로는 계엄 정부에 저항했던 능력자라고 하던데, 마음이 꺾인 것으로 보였다.
‘버지니아 랭리 실험체와 뉴욕 식인귀 가문 용병들이 찬 목걸이와 비슷했어.’
한국의 식인귀 가운데 그쪽과 연결된 자들이 있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버지니아 랭리는 세계를 대상으로 첩보활동 하던 조직이었고 뉴욕 식인귀 가문도 세계를 대상으로 투자활동 하는 세력이었으니까.
“자폭 목걸이가 확실하다면 구조하기 쉽지 않겠어.”
마루의 혼잣말에 리퍼 슈트 보조 인공지능이 반응했다.
[그렇지 않습니다.]“구할 수 있다고?”
[네. 생체 EMP를 활용하는 방법과 EMP탄을 사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마루는 잘했다는 듯 보조 인공지능이 설치된 부분을 톡톡 두들기곤 쓰게 웃었다.
“조언 고맙다. 하지만 인간의 악의를 쉽게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네. 인간의 악의는 집요해. 아마 EMP로 센서를 멈추는 순간, 기계식 뇌관이 작동하도록 해놨을 거다.”
[기계식 뇌관입니까.]기계식 목걸와 전자식 목걸이를 풀었었으니, 그에 대비했겠지.
[액체질소와 EMP를 동시에 이용한다면 가능하다는 연산 결과입니다.]마루는 작게 감탄했다. 보조 인공지능인데 이 정도 연산력이라니. 무엇보다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신성 왕국은 하드웨어 혁명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에서도 혁명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 결과가 지금 여러 곳에서 사용되고 있는 보조 인공지능이었다.
‘하드웨어가 업그레이드될수록 성능이 좋아질 터.’
디아나와 사만다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간의 사고방식을 모방한 인공지능이 보편화 된다는 이야기였다.
마루야 인공지능이 인간의 친구이자 신성 왕국을 구성하는 한 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PD와 기순은 인공지능이 보편화 된 사회를 위험하다 생각하고 있었다.
“한 명은 구할 수 있겠지, 하지만 동시에 액체질소 처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만약 교전 상황이라면 더 그렇고.”
[조건 확인했습니다.]보조 인공지능이 침묵하는 동안 마루는 잘린 식인귀의 단면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뼈도 합금처럼 단단했고 말랑해 보이는 살과 근육도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온 생명체처럼 변이한 상태였다.
‘괴수용 탄이 아니면 먹히지 않겠어.’
그래서일까.
군복은 그냥 특수부대가 입는 군복이었다. 따로 방탄복을 걸친 것도 아니었고.
‘흠. 이건 신소재인가?’
마루는 바닥에 떨어진 단검을 살폈다.
두 동강 난 단검. 식인귀가 휘둘렀던 칼이었다.
‘일격을 버텼다는 건데.’
한 번에 잘릴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클립스의 칼질을 한 번 막아낸 금속이 있다는 건. 확실히 예상 밖의 일.
‘이런 소재로 장갑을 만든다면 상당하겠군.’
마루는 잘린 단검을 따로 챙겼다. 신성 왕국에서도 신소재를 연구하고 있었지만, 쉽지 않은 영역이었다.
식인귀가 쓰던 무기, 스틸레토 성분 가운데는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 원소가 미량 함유됐기에 재현하기 곤란했다. 당연히 대량생산도 불가능.
하지만 지금 잘린 단검은 달랐다. MADE IN KOREA가 뚜렷하게 박혀있는 단검이었으니, 성분 분석을 통한 리버스 엔지니어링에 성공한다면 대량생산도 불가능하지 않았다.
삑—- 삑-삑-삑-
HUD(head-up display) 한쪽 동작감지기에 붉은 점들이 움직이는 신호가 잡혔다. 한 쌍씩 짝지은 붉은 점들이 이쪽으로 접근하는 모습.
방아쇠를 당기는 것과 동시에 썰었지만, 총알이 터지면서 생긴 소리에 식인귀들이 반응한 것이었다.
‘잘됐군.’
놈들이 오지 않았다면 신호탄을 터트릴 생각이었는데. 순식간에 마루를 포위한 식인귀들이 처참하게 죽은 동료를 보곤 으르렁댔다.
“은신 슈트? 미군인가?”
“어째서 우릴 공격한 거지?”
“동탄도 너희들이 공격한 건가?”
“어이. 들. 저 새끼가 근육하고 단검 죽였잖아. 말로 해결될 문젠가?”
“그렇지. 시발 것이 우리 애들 죽였는데 팔다린 뜯어 놓고 시작해야지.”
중상위급 이상의 식인귀. 그것도 식인을 넉넉하게 해서 강해질 대로 강해진 식인귀들이 이빨을 드러냈다.
“내가 오른팔.”
“지랄 말고 중심이나 뜯어.”
낄낄 웃음과 함께 파바박- 땅을 박차고 달려드는 놈들. 그런 놈들 사이로 검붉은 기운이 스며들었다.
송곳처럼 공기를 꿰뚫던 돌격이 순간적으로 힘을 잃었다. 마치 끈적한 진흙탕에 빠진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 다리.
폐 속에 있던 공기가 전부 쥐어 짜이는 것 같은 감각이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다. 마치 메두사의 석화 광선에라도 맞은 것처럼 내장기관이 전부 돌로 변하는 감각.
움직이지 않는다.
팔과 다리가.
아니, 폐와 심장이.
처음에는 단순한 환상인 줄 알았다.
능력자들 가운데 정신계 능력으로 환상을 보여주는 것들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중상급만 되더라도 환상능력은 소용없었다. 지배력이 강한 식인귀는 환상에 잘 걸리지 않았기 때문.
“화으응-”
‘환상 따위로 우릴 막을 수 있을 것 같냐!’라고 외쳤어야 할 입술과 혀가 딱딱하게 굳어, 소리가 옆으로 샜다.
?
!!!
눈알을 굴려 옆을 보니, 혼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부 석상처럼 굳었거나 나무늘보처럼 느릿하게 허우적거리는 상태.
이게 뭐지?
이게 무슨 능력이지?
가소로움은 경악으로, 경악이 피비린내 나는 공포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저게 사람일까?
저게 능력자라고?
환상이 아니라면···. 저건 뭐지?
공중에 둥둥 뜬 검붉은 핏방울.
사람의 형상을 핏방울 덩어리가 서서히 다가왔다.
‘끄아아아!’
‘으아아악!’
‘살려줘!’
‘사람 살려!’
모기가 웽웽거리는 소리를 간신히 내질렀지만, 죽음은 그들을 놓아주지 않았다.
[너희는 살려달라는 사람들을 살려줬었나?]써거거거걱!
둔탁하게 썰리는 소리와 함께, 열넷의 고깃덩이가 백십 남짓한 고깃덩이로 변했다.
‧
‧
‧
오보 확률 89.99%라 평가받았음에도 그가 비교적 높은 지위에 오른 이유가 있었다. 신인류는 능력을 각성하지 못한다는 게 정설이었는데, 그 정설에서 벗어난 돌연변이였기 때문이었다.
‘오보라고?’
이제까지 중 가장 불길한 느낌.
그곳에 있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경고가 전신을 울렸다. 서서히 질식할 것만 같은 감각이었다.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그를 칭칭 감고 조이는 불길한 느낌.
그랬기에 그는 싸움을 각오하고 내질렀다. 무조건 빨리 최대한 멀리 그곳에서 벗어나야 했으니까.
‘개새끼들.’
이제껏 한 경고가 정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위험하다고 지랄한 덕에 조심해서 들어갔고 조심해서 들어갔기에 함정도 간파할 수 있었고 적의 매복도 파악할 수 있었던 건 뭔데?
높아진 능력치로 양민 학살, 능력자 학살하고 보니 위험 경고를 하나 마나 똑같다고 생각했겠지. 그런데 이번엔 근본적으로 달랐다.
“위험하다는 데로 가는 데 조용하네?”
“······.”
“오보로 먹고사는 새끼가 웬일로 조용하데?”
“······.”
“야. 씹냐?”
“······.”
“참아. 차에서 지랄하다 뒤집히면 무슨 쪽이냐?”
“너 졸라. 아- 씹- 내려서 보자.”
“야. 누가 이겼는지 확인해 봐.”
“그러게 지금쯤이면 결판이 났겠네.”
“누가 지휘하기로 된 거야?”
“동한이 아닐까?”
“그 새낀 근육 원 툴이라서 안 돼.”
“힘만 좋으면 뭐하냐.”
“그치 근육에 칼이 안 박히는 것도 아니고 총알이 안 박히는 것도 아니고.”
“대련이잖아. 대련. 맨손이면 근육이 유리하지.”
“야 통신병. 확인해보라니까.”
“분당 센터가 통신을 받지 않습니다.”
“뭐? 통신장애냐?”
“통신장애는 뭔 통신장애. 이 근처에 깔린 중계기가 몇 갠데.”
“야. 통신병 뭐야. 연결이 끊긴 거냐? 통신장애야? 이유가 뭐야?”
“신호는 갑니다. 신호는 가는데 받지 않고 있습니다.”
“······.”
“······.”
차에 타고 있던 자들의 시선이 전부 ‘오보’ 남자에게 모였다. 사내는 그런 시선을 무시했다. 뭐라고 한마디 했다가 지저분하게 엮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
“돌아가지. 센터에 일이 터졌으면 위험해.”
“치료도 그렇고 보급도 그렇고 센터가 놈들에게 당했으면 뒤가 위험할 수 있어.”
연락이 끊긴 비밀 시설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입을 다물고 무시하던 ‘오보’ 사내가 반대했다.
“거길 다시 간다고? 시발 난 내려주고 가.”
“지랄하지 말고 닥쳐. 적들이 통신을 차단했을 수도 있으니, 돌아가는 게 맞아.”
“그래. 15분이면 돌아갈 수 있는데 돌아가서 앞뒤로 포위 공격해야지.”
“넌 새끼야. 아무리 콩가루로 모였다지만, 같이 작전하러 내려온 동료가 위험에 빠졌는데 혼자 내리겠다고?”
“입만 열면 재수 없는 소리를 한다니까.”
“너희는 너희 하고 싶은 대로 해라. 그런데 난 안 간다. 운전병 차 세워.”
“차 돌려.”
“야 씨발 차 세워.”
“돌려서 센터로 가.”
순간. 붉은 실선이 방탄유리를 뚫고 운전병의 머리를 날린 뒤, 그대로 뒤에 있던 식인귀들의 머리, 몸통 할 것 없이 꿰뚫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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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통을 잃은 운전병의 몸뚱이가 유턴하려고 핸들을 돌린 그대로 경직을 일으켜 액셀을 밟았다.
굉음을 터트린 차량이 옆으로 휙 돌더니, 쿵- 전복됐다.
이어진 연쇄 추돌로 차량 행렬이 그대로 멈췄다.
“으어어억!”
“다리. 아악! 내 다리!”
단 한 발의 총탄이 불러온 참상은 끔찍했다.
초인. 신인류가 된 뒤로 안전 벨트 따윈 매지 않았던 자들인지라, 전복과 연쇄 추돌의 충격을 온몸으로 받았기에 더 그랬다.
“적습!”
“시발- 팔이- 꺾였어.”
팔과 다리가 꺾인 자에서 어째선지 볼펜이 머리통에 박힌 자까지, 심각한 부상에 식인귀들이 본성을 드러냈다.
운전병과 통신병을 향해 이빨을 들이댄 것. 머리가 날아간 운전병이야 그렇다지만, 통신병은 멀쩡히 살아있음에도 그대로 해체됐다.
으적으적 생살을 씹는 소리가 잦아들며, 부러지고 찢어진 상처가 순식간에 아무는 모습.
“개 ㅈ같은!”
성질 급한 식인귀 하나가 엎어진 차량 문짝을 아래에서 위로 걷어차자, 뻥 소리를 내며 하늘로 날아가는 문짝.
방탄 차량의 무거운 문짝이 4m~5m 솟구쳐 올랐다 떨어졌다. 콰직- 곁에 멈춰선 일반 차량의 지붕을 뚫고 들어간 방탄 문짝 아래로 붉은 피가 뚝뚝 흘러내렸지만, 그뿐.
쾅!
열린 문짝을 향해 점프한 식인귀가 총알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가 본 건 번쩍이는 섬광이었다.
퍽!
공중에 떠오른 것과 거의 동시에 터져버린 머리통.
“시발 뭐야!”
“저격수다!”
“저격수고 나발이고 점프했잖아. 점프했는데 맞췄다고!”
“무슨 총이···.”
“저딴 총이 어딨어.”
머리통이 통째로 날아가?
그런 총이 어딨단 말인가?
30mm 가우스 건으로 저격했나?
그딴 무기를 옮겼는데 신고 하나 없었다고?
그런 생각은 금방 사라졌다.
붉게 달아오른 탄환이 전복된 차량을 꿰뚫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어억!
으으악!
7.62mm 탄을 거뜬하게 막는다는 방탄 차량이 알루미늄 캔처럼 숭숭 구멍이 났다.
그렇게 뚫고 들어온 총알에 맞으면 팔이고 다리고 그대로 떨어져 나가는 현장. 어찌나 위력이 강한지 몸통에라도 맞으면 한 방에 빈사 상태가 됐다.
“나가야 해.”
“여기 있으면 뒈지겠어.”
“다들 정신 차려.”
“여기 있으면 전멸이야.”
“나간다.”
“어느 방향으로?”
“오보. 십새는 뭐 하고 있어?”
“입 다물지 말고 말 좀 해.”
“우리 어디로 가는 게 낫겠냐?”
이 새끼가 뒈지게 생겼는데도 기 싸움?
“씨-ㅂ. 지랄이냐? 지랄이야?”
“어디로 나가는 게 좋겠냐고?”
오보 사내의 어깨를 잡아 돌리자, 축 늘어진 머리통이 드러났다. 반쯤 날아가 뇌와 뇌수가 쏟아진 머리통이 덜렁 앞으로 꼬꾸라졌다.
“······.”
“······.”
‧
‧
‧
역시. 분당에서 동탄까지는 쭉 뻗은 길이라서 좋다니까.
딱 정면이었으면 좋았는데, 살짝 10도에서 15도 정도 옆도 괜찮았다.
‘어이구. 아직도 나오지 않네.’
처음 폴짝 뛰어오른 놈 말고 반응이 늦었다. 한국 식인귀들은 워낙 쉬운 놈들만 상대했는지, 하는 짓이 꼭 죽여달라고 애원하는 꼴이라고 할까?
‘그럼 좋지.’
김 양은 자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뀨우우우웅!
뀨웅!
전용 라이플이 특유의 소리를 내며 탄환을 쏘아댔다. 마하 4~5로 가속한 탄환이 레이저처럼 붉은 잔상을 남기며 방탄차를 꿰뚫자, 치즈처럼 숭숭 구멍이 뚫리는 차량.
이래도 안 나와?
이래도?
와 독하다. 독해.
퍼어어엉!
선두 차량에서 연막탄이 하나 터지자, 추돌한 차량 여기저기서 연막탄이 터지기 시작했다.
‘늦었어.’
김 양은 저격용 코일건을 내려놓고 미사일을 꺼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