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765)
러스트 [RUST]-765
마루는 허겁지겁 뛰쳐나온 식인귀들을 바라봤다.
‘이것들 이상한데?’
입고 있는 옷도 그렇고 벙커에서 나온 걸 보면 고위급 식인귀임이 분명한데, 은신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북미에서 싸웠던 상위 개체는 지배력을 레이더처럼 이용하는 놈도 있었고, 엄청나게 예민한 감각으로 은신의 위화감을 간파했었는데. 이것들은 뭔가 모자라 보였다.
‘한국에서는 미국처럼 생존 경쟁이 치열하지 않아서 그런가?’
미국은 총기 자유화의 나라, 변이 괴수도 급이 달랐다. 멧돼지만 하더라도 호그질라였고 동네 돌아다니는 갯과 동물도 기본이 코요테와 늑대였으니까.
그러니 빈둥빈둥 기존에 있던 권력을 기반으로 먹어서 지배력 높인 식인귀라서 실전에 약할 수도 있었다.
상대가 일반인이거나 약한 능력자면 모를까 동급의 식인귀와 싸우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건 사실이니까.
‘감각이 흐트러졌나?’
너무 치열하게 싸운 나머지 감각에 이상이 왔을 수도 있겠다. 바싹 긴장하다가 긴장이 확 풀리면서 감각이 둔해지기도 하니까.
‘상관없지.’
오히려 좋았다. 이렇게 가까이 접근해도 알아채지 못한다면 한 번에 싹 쓸어버릴 수 있을 터. 기회가 왔을 때 쓸어버려야 했다.
풀잎 스치는 소리마저 숨죽이는 발걸음이 이어졌다.
신형 리퍼 슈트는 은신 기능이 더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주변 소음을 이용해 발걸음 소리마저 감출 수 있어 말 그대로 무소음.
이클립스를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선 놈들의 몸에서는 피 냄새가 진동했다. 확실히 곁에서 보니 여기저기 심한 상처를 입은 식인귀들이 많았다.
대부분 어딘가 뜯기고 찢긴 상처가 있었지만, 피는 거의 다 멎었고 새살이 돋는 모습이 드러났다. 이 무서울 정도의 회복력이 식인귀들 스스로 신인류라 부르는 이유 중 하나였다.
식인만 할 수 있다면 이런 질병에 거의 면역일 뿐 아니라 고속 회복 능력까지 있으니, 지금처럼 종말의 세계에서는 생존에 적합한 능력이었다.
식인만 할 수 있으면 강해지고, 식인만 할 수 있으면 지배력을 높일 수 있었다.
‘그래 식인을 할 수 있다면 말이지.’
마루가 살의를 품는 순간. 근처에 있는 놈들의 몸이 경직됐다.
갑자기 굳어버린 몸.
얼어붙은 혓바닥과 눈꺼풀.
눈동자도 굴리지 못할 정도의 끔찍한 마비가 풀리기도 전 무언가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이 든 그들이었다.
신경까지 굳었는지 아프다는 감각은 없었다.
그저 빙글거리며 시야가 돈다는 것과 자기 옆에 있던 동료들의 목에 머리가 없었다는 것이 이상했을 뿐.
툭- 투두둑-
한 걸음 내디디며 칼질하자, 서 있는 그대로 우수수 떨어지는 머리통들.
등 뒤에서 아주 미세하게 각도를 줘서 썰었기에, 전부 등 쪽으로 떨어졌다.
“좋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이번에 끝을 봅시다.”
?
“반대입니까? 허- 허어어억–”
고개를 든 대표가 풀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소리 없이 뒤에선 마루가 대표의 양팔을 절단했다.
끄악!
두 팔이 잘린 채, 연어처럼 펄떡 뛰어오른 대표. 마루는 공중에 떠오른 남자의 두 다리를 허벅지 중간쯤에서 잘라버린 뒤 몸통을 걷어찼다.
머리와 몸통만 남은 식인귀가 퍽 소리를 내며 날아가 소나무에 부딪혀 튕겼다.
끄억-끄억-
숨을 쉴 수 없다며 뻐끔뻐끔 대던 식인귀가 살려달라며 애원했다.
앓는 소리를 내는 놈의 머리통을 지긋하게 내리밟은 마루가 나지막하게 경고했다.
[조용.]꾸드드드득- 조금씩 뭉개지는 머리뼈.
몸통만 남은 식인귀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
‧
‧
포위망 형성하라는 마루의 통신에 냉큼 내려온 김 양이 바로 몸통만 남은 식인귀부터 챙겼다.
[이건 위로 올려서 바로 정보 뽑겠음. 그리고 야행성 맹금류들이 전부 도망치던데 무슨 일 있었음?] [무슨 일은‧··· 저쪽에 모여있길래 한 번에 치웠더니, 살기가 좀 샜었나?]흐응-
살기라는 말에 어쩐지 빙글빙글한 표정을 짓는 김 양. 나주연의 이야기대로라면 살짝 흘린 살기만으로도 맹금류가 도망칠 정도라는 의미였다.
[무슨 표정이 그러냐?] [아니. 응. 아님. 새들 다 도망쳤으니까 드론 써도 되겠네?] [그렇지.] [알겠음. 그리고 이왕 이렇게 된 거 EMP를 쓰는 건···. 아님. 잠깐 그것도 좋지 않을까 해서.]마루의 표정이 살짝 굳자마자 바로 꼬리를 내리는 김 양이었다.
[거기 에코는 3시 방향으로 가고. 드론 쓸 수 있으니까 정찰 드론 빽빽하게 띄워.]남산을 겹겹이 에워싸는 포위망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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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직-
거침없는 발길질에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는 의자가 허공에 흩날렸다.
콰앙!
그것만으로는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단단한 벽을 내리치는 사내가 욕설을 뱉었다.
“빌어먹을 새끼들.”
남산 벙커가 완전히 초토화됐다.
여기저기 불꽃이 타올랐고 환풍기가 돌아가는 소리, 스프링클러에서 쏟아지는 물소리가 뒤섞여 마치 침몰하는 배 같은 분위기.
“비상 통신기도 모조리 박살 났어.”
“수리병도 그렇고 일반 병사들도 대부분 전투 불능 상태야.”
“그 새끼들 추격해야 해. 지금 처리하지 못하면 놈들이 분명 부대를 장악한다.”
“우리가 추적할 걸 알고 매복하고 있으면?”
“능력자 새끼들을 앞세워야지.”
“무선 통신망과 통신기, 비상 전화까지 모조리 박살 내고 도망친 놈들이 그것들을 그냥 뒀을까?”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가봅시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어차피 가봐야 할 것 아닙니까?”
그렇게 내려간 능력자들 숙소.
여기저기 조각난 고깃덩이와 뿌려진 혈흔은 목줄이 폭발한 흔적이었다.
“이것 봐. 그 새끼들 능력자들 죽이고 간 거.”
상위 개체만 따진다면 천명 안팎이었다.
하위 개체를 전부 합해도 2만이 넘기 힘들었다. 2만으로 4천만에 육박하는 숫자를 통제하려면 신인류 한 사람이 2천 명을 관리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사실상 불가능한 수치.
인구를 하향 조정해 3천5백만 언저리로 잡는다고 가정해도 마찬가지였다. 신인류 한 명이 일반인 1천7백50명이 넘는 숫자를 통제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으니 불가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신인류가 일반인을 통제할 방법이 필요했다.
‘경제부터 시작하지.’
‘부동산이 좋겠군.’
소수로 절대다수를 통제하는 걸 성공한 원인이 뭘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인구 대부분을 수도권과 대도시에 몰아넣는 데 성공한 것이 컸다. 그것도 억지로 강제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수도권과 대도시로 가도록 유도한 게 좋았다.
대중매체를 총동원해서 ‘미래에는 수도권, 대도시만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시작으로 ‘상급 부동산은 건국 이래 상승 불패였다.’며 부추겼다.
1천만이 넘는 고령자를 치워버리고 생긴 빈집을 이용해, 지방에 있는 젊은 사람들이 수도권과 대도시로 옮겨가도록 유도했다.
그렇게 부동산에 모든 가용 자산이 몰리도록 유도한 후, 경제를 망가뜨렸다. 부동산에 모든 자산이 몰린 상황에서 부동산 폭락은 사실상 전 자산이 폭락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혼란한 상황에서 CBDC(중앙은행 발행 전자 화폐)을 발행했고, 시민들은 그에 저항할 겨를도 없이 경제권을 정부와 계엄 사령부에 넘겨 줄 수밖에 없었다.
생산 가능 인구를 수도권과 대도시에 밀집시키고 가임 여성도 밀집시켜 관리하면서 한국은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다른 말로 신인류가 지배하는 사회질서, 권력구조를 정착됐다.
모든 지배층이 그렇듯, 그들 사이에도 파벌에 따라 갈등이 있고 최고 권력을 차지하려는 경쟁이 있었지만, 어느 정도 선이 있었다.
···지금까지는.
“카아아악- 퉤엣- 씨발- 그 새끼들이 부대 장악해서 먼저 치면 우리 애들만 죽는다고.”
모든 허울을 벗어던진 듯한 말투.
“지배력으로 경고하려고 해도 통하지 않아.”
“간섭 현상인가?”
상위 개체, 고위급 식인귀들이 죽고 죽이는 와중에 발산한 지배력이 서로 상쇄됐다.
“놈들을 추격해야 해야 해.”
“이렇게까지 하고 간 걸 보면. 놓치면 두고두고 후환이 된다.”
“난 근처에 살아남은 부하들이 없어.”
“이쪽도.”
상위 개체가 죽을 위기에 처하면 인근의 하위 개체들이 목숨을 걸고 달려들기 마련이라 깔끔한 싸움은 불가능했다.
죽고 죽이는 사투 속에 하위 개체들이 갈려 나간 결과. 이제는 상위 개체고 고위급이고 할 거 없이 직접 몸을 움직여야 했다.
“추격한다. 우리가 우세할 때 놈들을 잡아야 해.”
“젠장. 차라리 놈들이 매복하고 도망치지 않기를 바라야겠어.”
놈들이 북한산 벙커로 가서, 이쪽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주장한다면 또 개판이 될 터.
“그럴 리는 없을 거다.”
“그래. 지금 상황을 북한산 애들이 눈치챈다면, 양쪽 모두 제거하려고 할 테니.”
“그럴 정신이 있는 새끼들이었으면 이 지랄을 냈을까?”
“······.”
“······.”
“······.”
“추격하자.”
“조를 나누는 게 좋겠군.”
각개격파는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놈들은 상처 입은 채로 허겁지겁 도망쳤으니, 상처야 특유의 재생력으로 낫는다지만 그만큼 에너지가 소모됐을 테니, 다시 붙는다면 이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3개 조로 나누도록 하지.”
“무리하지 말고 도망치지 못하게 발목만 붙잡고 있자고.”
놈들을 잡아 죽이고 인근 부대를 직접 통제해야 했다. 그래야 북한산을 견제할 수 있었다.
‘뜬금없이 이렇게 개판이 되다니.’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면서도 그 속에 숨겨진 건 탐심.
‘이번 혼란만 극복한다면···.’
속내를 감춘 추격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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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
[3시, 5시, 9시 방향에서 적들이 발견됐습니다.] [알겠음.] [드론. 목표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통제가 불안정해집니다.] [위치 파악만 하고 드론 회수해.]드론으로 쓸어버리면 편했을 텐데, 그럴 수 없었다.
‘식인귀 놈들 무슨 생체 EMP(electromagnetic pulse)라도 흘리고 다니는 건가?’
[지배력에 주의. 정신파 차단 장치 확인!]김 양이 주의시켰다.
[정신파 차단 장치 확인.] [이상 무.] [이상 없습니다.] [적의 숫자가 다릅니다.]숫자가 제일 많은 쪽이 9시였다. 제일 적은 쪽은 3시.
[숫자가 많은 쪽을 맡아. 적은 쪽은 내가 가지.]조를 나눌 땐 일반적으로 비슷한 급으로 조를 나누기 마련이었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전투력 총합이 비슷한 급으로 나눴겠지.
그렇다면 소수로 움직이는 쪽에 강한 전투력을 가진 개체가 있다는 이야기. 마루가 제일 숫자가 적은 3시 방향으로 갔다.
[5시 방향은 유인 견제. 숫자가 많은 9시부터 정리한다.] [옛!] [5시 유인 견제. 9시 소탕. 카피]포위하고 있던 원정대가 순식간에 자리를 잡았다.
[병아리 새끼들아! 엉덩이 들고 뛰어.] [보조 인공지능이 표시한 것부터 확인하라고!] [앞을 봐라. 옆은 전우를 믿어.] [각자 맡은 자리에서 맡겨진 일을 하면 된다.] [전진.]그렇게 식인귀들과 원정대가 마주쳤다.
“이 새끼들은 뭐야?”
“엑소슈트?”
“엎드려!”
튜듀듀듀듀듀-
투두두두두둑-
항복도 경고도 대화도 없었다.
보자마자 방아쇠를 당기는 원정대. 식인귀들은 당혹스러웠다.
“엑소슈트면 미군이잖아.”
“사격 중지! 우리는 적이 아니다!”
“이쪽은 대한민국군 장교다.”
“이봐. 사격 중지하고 신분을 확인하라고.”
식인귀들이 대화를 요청했지만, 원정대가 그걸 받아줄 리 만무했다.
“놈들과 먼저 만났나?”
“아니. 어쩌면 이 새끼들 동탄에 있는 그놈들일 수도 있어.”
“그놈들은 아냐.”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나타난 적들이었지만, 하늘로 이동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새떼를 뚫고 하늘로 다니긴 불가능한 일. 그럼 저놈들은 어떻게 왔을까?
“잡아 보면 알겠지.”
“지배력 상쇄가 일어나지 않게 다들 진정해.”
맹렬하게 총격을 가하는 원정대를 향해 지배력을 발산하는 식인귀였다. 같은 신인류라면 지배력을 행사하고 일반인에게는 정신계 능력처럼 작용하는 능력이었다.
고위급이 된 지금은 미약하지만, EMP처럼 전자기기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엑소슈트 조종사든 엑소슈트 그 자체든 무력화시킬 수 있으리라.
“?”
“지배력이 먹히지 않는다고?”
“엑소슈트를 조종하는 놈들이 전부 신인류란 말인가?”
“아니야. 지배력이 상쇄되는 느낌이 없었어.”
“그것보다 엑소슈트가 고장 나야 하는 것 아니야?”
“······.”
그건 재앙이었다. 그들의 무기로는 엑소슈트의 장갑을 뚫지 못했고, 접근전을 유도하면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화망을 구성해 밀어내고 조여가는 원정대.
코일건의 화력이 어찌나 지랄 같은지, 단면이 불로 지진 것처럼 화상을 입었기에, 환부를 나이프로 긁어내야 회복됐다.
그것도 몇 번. 사과 껍질을 벗기든 서서히 벗기고 갉아내는 원정대의 포위 공격에 제일 숫자가 많았던 9시 그룹이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김 양의 지휘 아래 이어진 질척한 포위 공격은 놈들의 도주도 저항도 허락하지 않았다.
[9시 정리 완료. 5시 상황 보고.] [5시 유인 성공했습니다. 현재 교전 중.]HUD(head-up display)로 교전 상황을 확인한 그녀는 바로 움직였다. 5시 식인귀의 뒤를 노린 것.
김 양이 9시와 5시에 있는 것들을 잡는 동안, 마루는 3시에 있는 최고위급 식인귀와 마주했다.
숫자는 모두 넷.
놈들은 다이아몬드 진형을 이루고 이동 중이었다. 제법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놈들을 따라가니 감각이 조금씩 예민해졌다.
‘저놈들 때문에 도망친 거였네.’
일전에 잡은 놈들이 도망친 이유가 저것들을 이기지 못해서였으리라. 마루의 그림자가 깊고도 은밀하게 다이아몬드 진형 후방을 따라잡았다.
“산개! 후방에 뭔가 있다!”
마루의 이클립스가 휘둘러지는 것과 동시에 선두가 외쳤다.
어딜-
뭉클 피어오르는 살기.
사방으로 흩어지려던 식인귀들이 석상(石像)이라도 된 것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시작된 죽음.
하나.
맨 뒤에 있던 식인귀의 목이 잘렸다.
둘.
오른쪽으로 도망치던 자세 그대로 굳은 놈이 대각선으로 토막 났다.
그리고 왼쪽에 있는 놈을 향해 이클립스가 떨어졌다.
셋—
섬뜩한 느낌.
왼쪽 살인귀를 향하던 이클립스가 제비처럼 방향을 틀었다.
티이이잉!
마루의 경동맥을 노린 스틸레토가 이클립스와 얽히며 비명을 질렀다.
끼드드득
끼이이익—-
어느새 마비를 푼 선두가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