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766)
러스트 [RUST]-766
검술이 아니라 칼질로 유명한 존재.
은신 기능이 있는 슈트를 활용한 기습.
마주한 인간을 마비시키고 심지어 심장 마비로 죽일 수도 있다는 정체불명의 소문까지.
이 세 조건을 동시에 갖춘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블라디마루 칼린. 어째서냐!”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듯 내뱉는 순간, 스틸레토를 막고 있는 이클립스가 살짝 기울어졌다.
마루의 경동맥을 노렸던 스틸레토가 이클립스 칼날의 경사면을 타고 쑥 미끄러져 빠졌다.
끄릭
허공으로 펼쳐진 스틸레토가 빙글- 역수로 쥐어지며 마루의 쇄골(鎖骨) 사이를 노렸다. 이클립스가 내려 찍히는 스틸레토로 향하자, 대표의 눈동자엔 언뜻 희열이 차올랐다.
오른손의 스틸레토가 시선을 붙잡는 동안, 대표의 왼손은 암살자처럼 마루의 늑골 사이를 노린 것.
제단의 파편을 연구해 만든 무기.
스틸레토.
장갑차도 뚫어버리는 관통력이니, 리퍼 슈트의 가냘픈 방어력으로는 결단코 막을 수 없으리라.
‘폐와 심장을 한 번에 뚫어주···.’
퍽!
생각이 툭 끊기며 끔찍한 고통이 하복부를 타고 올라왔다.
흐억!
순간 끊긴 호흡.
하반신에서 올라오는 끔찍한 통증.
승리의 기쁨이 뾰족한 고통으로 변해 버렸다.
휙- 휙-
반사적으로 양손의 스틸레토를 휘두르며 마루의 접근을 막으려고 했지만, 고통으로 무뎌진 칼질은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다.
‘조금만···.’
약간의 시간.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몇 초만 있다면, 특유의 재생력으로 충격을 이겨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은 오산이었다.
마치 펜싱의 찌르기처럼 명치를 노리는 것을 막기 위해 스틸레토로 이클립스의 칼끝을 흘리려는 찰나, 꺾이는 무릎.
마루가 찬 로우킥이 제대로 박힌 것.
휘청휘청 중심이 흔들리자, 그대로 눈을 향한 찌르기가 들어왔다. 대표는 이를 악물고 눈을 향한 찌르기를 막았다.
동시에 다시 로우킥.
뒤로 물러나려고 하자, 따라붙은 마루가 사선 베기를 쳐올렸다.
크읏-
대표는 강렬한 베기를 회피하려 옆으로 빠졌다.
칼질의 범위에서 벗어나려고 왼쪽으로 도는 것을 노리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들어가는 마루의 왼쪽 로우킥.
뻐억-
잠시 다리가 멈춘 사이에 이번에는 오른쪽 로우킥.
오른쪽을 때리는 척하면서 진짜는 왼쪽을 노리겠지 했지만, 오른쪽 로우킥.
이제는 정말 왼쪽이겠지. 그걸 비웃듯 다시 오른쪽 로우킥.
로우킥.
로우킥.
하복부에서 느껴지던 통증이 줄어든 만큼, 양쪽 다리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더 커졌다. 허벅지 근육과 인대가 터지고 재생을 반복해도 마루의 집요한 공격엔 소용없었다.
휘청-
개가 다친 다리를 말아 들고 절뚝거리듯. 한쪽 다리를 절뚝이던 대표가 처절하게 고함쳤다.
“왜냐?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와서 이러는 건가!”
[그건 내가 물어야 할 거 같은데 말이지.]왜 나라를 인육 공장으로 만들었는지 그리고.
[그 스틸레토. 어디서 났지?]“······.”
[대답하지 않아도 돼. 어차피 알게 될 테니까.]성큼 다가서는 마루의 발걸음에 놈의 시선이 아래로 흔들렸다.
또 로우킥이냐? 계속 당할 줄 알고?
그놈의 로우킥. 때려봐라. 네놈의 발목을 잘라주마.
모든 집중력이 마루의 다리를 향한 순간, 잘린 건 스틸레토를 쥐고 있던 그의 두 손목이었다.
끄아아아악!
이어진 묵직한 로우킥이 식인귀의 무릎 관절을 비틀어 꺾어버렸다. 관절이 꺾이는 소리와 동시에 풀썩 쓰러진 놈의 머리통이 딱 걷어차기 좋은 위치로 내려왔다.
그래서 사커킥-
둔탁하게 꺾이는 느낌과 함께 놈의 목이 반쯤 돌아갔지만, 고위급 식인귀가 목 좀 꺾였다고 뒈질 일은 없을 터. 죽었다고 해도 머리통은···. 깨지지 않았으니까 됐고.
마루는 고개를 좌우로 스트레칭하면서, 김 양에게 통신을 보냈다.
[3시 정리 끝났다. 뒤처리할 인원이 필요하니까 이쪽으로 보내도록.] [9시도 다 치웠음. 5시 잡으려고 했는데, 5시 놈들이 눈치챘는지 이동 중. 그쪽으로 가고 있음.]흠-
[오케이. 내가 잡을 테니, 이쪽으로 가까이 오지 말고. 떨어져서 포위만 해.] [알겠음.]그렇지 않아도 살기 출력 조절이 힘들어서 연습이 필요했는데 잘됐네. 고위급 식인귀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겠지.
마루는 김 양과 원정대에게 접근하지 말라고 다시 한 번 주의 준 뒤, 발걸음을 옮겼다. 도망치는 놈들이 3시 방향으로 북상했기에 마루는 남하했다.
!!!
???
그리곤 금방 놈들과 마주쳤다.
‧
‧
‧
뻣뻣하게 굳어버린 식인귀들이 소리를 냈다.
그건 작은 절규 같았고 어쩌면 처절하기까지 한 비명이었다.
끄어-어—어-
어우어어어억-
차라리 큰 비명이었으면 이렇게까지 이질적이거나 무섭지 않았을 텐데 그게 아니었다.
무언가가 머릿속과 내장이 갉아먹는 것처럼 발버둥 치지도 못한 채, 천식 환자 숨소리 같은 비명을 지르는 모습은 그 자체로 끔찍했다.
“······.”
“······.”
“······.”
그렇게 길고 긴 비명이 허무하게 사그라든 뒤, 남은 것은 서서히 식어가는 고깃덩이뿐.
“시. 씨. 시발.”
“저게 뭐야.”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몸이 굳고 거품을 물곤 죽어버린 동료의 모습.
“도. 도망쳐.”
“방금 못 봤어? 등을 보이는 사람부터 노렸잖아.”
“도망치는 놈부터 공격한 거다.”
“도망칠 수 없어. 놈이 더 빨라.”
그러니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야 정상인데, 그들은 보고 있었다. 분명히 무언가 일렁이는 것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카메라에는 찍히지 않아.”
“그럼 저 일렁이는 거는 뭐야?”
끔찍하게 동료를 죽인 무엇이, 일렁거리는 그림자 속에 몸을 감춘 채 그들을 향해 다가섰다.
“온다. 이쪽으로 온다고.”
“진정해.”
“씨발. 말로만 떠들지 말고 어떻게 해봐.”
“뭘 어떻게 해. 네가 해라.”
맨 처음 저걸 마주쳤을 때는 다들 여유가 있었다. 저건 하나뿐이었고 은신 기능도 고장 났는지 일렁거림이 뻔히 보였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일렁임은 은신 기능이 고장 나 생긴 게 아니었다. 놈이 일부러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게 존재감이었을까?’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저게 뭐든 저쪽은 하나, 이쪽은 10명이 넘는 상황. 당연히 도시락(?)이 자기 발로 왔다고 반겼지만, 결과는 끔찍했다.
수적인 우위는 의미 없었다. 자신들이 일반인과 능력자들을 가지고 놀았던 것처럼 그림자 속에 숨겨진 저건, 그들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괴. 괴물···.”
괴물이라는 소리에 서서히 다가서던 일렁임이 제자리에 멈췄다. 나지막하게 흘러나온 목소리.
[괴물은 무슨. 얌전히 엎드리면 두 다리는 그냥 붙여 두지.]기계음이 섞여서 그런지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이질적인 목소리에 한 사람이 두려움을 떨쳐내듯 발악했다.
“다. 닥쳐! 다리? 엎드리지 않으면 다리를 자르겠다고?”
“어디 해봐! 시발.”
“한 번 해보라고!”
“이 빌어먹을 괴물 새끼야!”
필살의 각오인지 패닉에 빠졌기 때문일지 모를 함성이 터져 나왔다.
“전부 동시에 붙어!”
“씨바아아알!”
“가자아아!”
“죽여!”
두려움과 분노가 화학작용을 일으켜 불타올랐다.
날 길이 30cm는 될 법한 대검을 왼손에, 45구경 데저트 이글(Desert Eagle)을 오른손에 들고 있었다. 멀리서 총을 쏴봐야 이클립스로 쳐내는 걸 봤기에 하는 행동.
“어차피 지금 잡지 못하면 전부 죽어!”
“붙어. 붙어.”
“바짝 붙어!”
“먼저 가지 마. 동시에.”
최대한 붙어 난전(亂戰)을 유도하려는 행동이었지만, 이미 공포에 잠식됐기 때문인지 제대로 된 판단이 아니었다.
10명이 넘었을 때도 일방적으로 도륙당했는데, 고작 몇 명이 죽자고 달려드는 것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는 것만도 못한 생각.
순식간에 5m 안쪽으로 접근한 식인귀들이 일제히 마루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누가 쏘라는 말을 하지 않았어도, 그들의 뇌리에 동시에 ‘쏴!’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누구는 머리를 누구는 심장을 노린 채 방아쇠를 당기려는 찰나. 일렁이는 그림자 속에서 뭉클 피어오르는 무언가가 보이는 듯했다.
‘보이는 건 없는데, 보이는 것 같았다.’는 논리적 모순. 일렁거림도 카메라에 찍히지 않았는데, 그 일렁임을 찢고 피어오른 무언가도 마찬가지였다.
시각, 청각, 촉각, 후각 그리고 미각까지 모조리 일그러지고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공기가 아닌 끈적한 무언가가 폐로 차오르는 듯한 괴이함.
‘쏜다.’
‘쏴.’
‘쏘라고.’
‘방아쇠를 당겨.’
필사적으로 손가락을 움직이려 했지만, 손가락은 고사하고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제발.’
‘움직여.’
‘움직이라고.’
방아쇠만 당기면 되는데.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덜덜덜 떨리는 팔. 그 가늘게 떨리던 팔도 어느새 서서히 석상(石像)처럼 굳어버렸다.
오르락내리락 가쁜 숨을 몰아쉬던 폐가 움직임을 멈췄고, 필사적으로 저항하던 심장도 두근-쥐어짜듯 한 번 더 뛰고는 멈춰버렸다.
이제 움직일 수 있는 건 오직 눈알뿐. 슬쩍 눈알을 굴려 옆을 바라봤지만, 전부 마찬가지. 방아쇠를 당기는 걸 성공한 사람이 없었다.
이래서였구나. 이래서 갑자기 거품을 물고 죽어버린 거구나.
동료들이 왜 죽었는지 알아챘을 때는 이미 늦고 말았다. 이건 잡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무조건 피했어야 했고, 무조건 흩어져서 도망쳤어야 했다.
‘이 괴물이 3시 방향에서 내려왔다는 건.’
3시 방향으로 간 대표와 부대표가 모두 죽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본 마지막 모습. 일렁거림과 뒤섞인 그것과 눈을 마주친 식인귀가 비명처럼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
그렇게 일렁이는 그림자 주변에는 소리가 없었다.
죽음에는 소리가 없듯.
‧
‧
‧
널브러진 식인귀의 시체를 바라보는 마루의 표정은 조금 알쏭달쏭했다. 살기 조절을 한다고 했는데, 제대로 들어갔는지 불확실했기 때문이었다.
‘고위급 식인귀는 살기를 맞아도 회복이 빠른 데다,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다는 거네.’
움직일 수 있다는 거지. 고위급 식인귀 특유의 운동능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로우킥에 무너졌던 거고.
‘살기를 최대한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해야겠어.’
잠시 굳기만 해도 좋은데, 시간만 넉넉하다면 손가락 하나 까닥이지 않고 죽일 수도 있었다.
‘확실히 강해졌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살기가 많이 강해진 것 같았다. 강심제와 전투자극제 맞고도 심정지 당한 병사가 있었다고 하니. 살기가 강해진 것 확실했다.
고위급 식인귀를 살기를 쏴서 미치게 했고, 중‧하급도 살기에 쏘인 시간이 커지자, 자살이나 자해하기 시작했다.
지배력이 있는 식인귀가 이럴진대. 일반인이나 정신저항이 없는 능력자에겐 마루 자신이 진짜 죽음의 신이나 마찬가지였다.
‘쥐와 까마귀가 먼저 알아본 건가?’
어쨌거나 살기를 정리하는 건 여기까지.
다음으로는 이클립스였다.
일반적인 산과 염기에는 끄떡없던 이클립스가 변이 괴수들이 내뿜는 산성 타액과 분비물 공격에는 망가졌다. 그렇게 손상된 이클립스가 변이 괴수의 피와 살을 흡수하자 자가재생을 시작했었다.
그래서 마루는 확인했다.
쿡- 이클립스로 식인귀의 심장을 찌르자 느껴지는 미세한 감각.
대왕 쥐를 죽였을 때와 검은 촉수를 베었을 당시에 느껴졌던 비슷한 느낌이 다시 일어났다. 마치 이클립스가 뭔가를 흡수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시체는 모두 보존장치 넣어서 연구부로 보내.] [옛] [남산 벙커는?] [지금 화재 진압하고 있음. 아 그리고. 여기 능력자들 몇 명 살아있는데. 어떻게 함?] [어떡하긴. 치료가 필요하면 치료해줘. 아. 목에 걸린 목줄 벗길 수 있는지 확인하고. 혹시 모르니까 기폭장치가 있는지 꼼꼼하게 확인해.] [알겠음.]그리곤 기순에게 통신이 왔다.
[하- 여기 형사는 틀린 것 같다.]어떤 대화를 해도 불신의 감정이 뿌리 박혀있다는 이야기.
[네가 대량 살인마라는 소리를 하고 있어. 그래서 믿을 수 없다고.] [···틀린 말은 아니지.]마루는 담담했다.
[일단 그냥 둬.]추적에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속전속결이 답이었다.
[남산 벙커에서 놓친 식인귀는 없지?] [지금까지는 없었음.] [북한산 벙커도 바로 끝내자.]이번에는 벙커버스터로 튀어나오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