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777)
러스트 [RUST]-777
검은 구름이 동그란 도넛 모양으로 변해 벙커를 중심으로 빙빙 돌았다.
[저거 최소한 10만 마리는 될 것 같은데 자신 있음?] [잠시만 기다리세요.]김 양의 재촉을 잠재운 간호사가 다시금 두 손을 모으며 외쳤다.
[우리 이야기를 해봐요. 대표. 대표로 한 분 내려오시겠어요?]거대한 헤일로처럼 빙글빙글 돌던 까마귀 무리가 소란스러워졌다.
까아아악? (쟤 지금 우리말 한 거지?)
까악? 까아악? (아닌데? 그냥 인간 소리 낸 거 같은데?)
까으옥? (난 인간 소리 모르는데?)
까마귀들이 쑥떡이기 시작했다.
이상하네. 저 인간 암컷.
어쩐지 계속 눈이 가고 뭔지 모르게 포근한 느낌도 들고.
대표랑 이야기하겠다는데 누가 갈까?
두목 다음에는 내가 서열 2위지.
지랄을 떠세요.
뭐 지랄? 뒈질래?
그래 새끼야.
그렇지 않아도 꼬았는데 잘됐다.
동그랗게 원형을 이뤘던 대형이 불룩불룩 말미잘 모양으로 됐다가 성게 모양 불가사리 모양으로 울퉁불퉁 변하더니 갑자기, 동그랗게 뭉쳤다.
까아아악! (십새끼 조져!)
까악!까악! (개새끼 쪼아!)
그렇지 않아도 억지로 유지됐던 대형이 무너지면서 졸지에 패싸움이 벌어진 까마귀들. 처음에는 몸싸움 정도로 시작한 까마귀들의 싸움이 점점 피를 보기 시작했다.
김 양이 다시 봤다는 듯 간호사를 칭찬했다.
역시 저 가슴은 음흉한 것이었다. 응.
[1호기 잘했어.]갑작스러운 김 양의 칭찬에 발을 동동 구르던 간호사의 고개가 삐그덕 돌아갔다.
[에? 에에에엣-]그거 진짜 아닌데.
[쟤들 싸우는 동안 지나가자. 은신 로브 작동하고 빠져나간다.]까마귀의 핏방울이 쏟아지는 곳을 피해 빙 돌아서 가는데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비쩍 마른 남자가 까마귀들에게 뭐라 외치는 소리.
김 양이 한 형사를 돌아보자, 한 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남자가 조류와 의사소통 가능하다는 능력자라는 소리. 그녀의 눈빛이 먹잇감을 보는 암사자처럼 변했다.
끼융-
몸을 낮춘 엑소슈트의 관절에서 작은 소리가 났지만, 상황이 워낙 개판인지라 까마귀들의 신경은 전부 패싸움에 있었다.
“···지금 싸우면 안 됩니다. 지금은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닙니다!”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목소리가 맛이 간 남자가 필사적으로 외쳤지만, 공중에서 울려 퍼지는 까마귀 울음소리와 날갯짓 소리에 파묻혀 버렸다.
“한시라도 빨리 가서 도와야 합니다. 조약을 어길 생각입니까? 까마귀 왕의 명령을 어길 생각입니까!”
김 양의 귀가 쫑긋했다.
까마귀 왕이라니 울산에 까마귀들 왕이 있다는 소린가?
끼융- 끼융-
비쩍 마른 사내의 바로 뒤에 접근했음에도 그는 김 양의 접근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심지어 그를 호위하고 있는 까마귀의 시선도 전부 하늘에서 펼쳐지는 패싸움을 향해 있었다.
둘을 향해 기습적으로 손을 뻗는 그녀.
쿠득-
큽-
한 손으로 호위하는 까마귀의 목을 붙잡아 꺾고 다른 손으로는 남자의 목을 꽉 움켜쥔 김 양이 은신 로브 안쪽으로 사내를 끌고 들어왔다.
경동맥이 졸린 남자가 잠시 몸부림쳤지만 그뿐. 목이 으스러져 죽은 까마귀 사체만 남아 차갑게 식어갔다.
‧
‧
‧
늑대인간과 괴물 멧돼지가 사이좋게 머리가 잘린 풍경. 조그맣게 솟아오른 언덕은 토막이 난 고깃덩이로 이뤄져 있었다.
시체 조각에서 흘러나온 피로 바닥이 흥건해야 했건만, 수분기 하나 없는 바닥은 기괴하기까지 했다.
“끄으으윽- 모른다.”
유리 대령이 피눈물을 흘리며 외쳤다. 팔다리가 모두 잘려 몸통만 남았음에도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블라디보스토크에 병력이 얼마나 있는지, 무장 상태가 어떤지 모른다? 대령이? 뭐 알아볼 방법은 많으니까. 상관없기는 한데.]지휘하는 것도 그렇고 죽음을 앞에 뒀음에도 꺾이지 않는 마음도 그렇고 식인귀만 아니었다면 바로 스카웃 했을 정도로 마루의 마음에 든 대령이었다.
신성 왕국에는 현장 지휘관이 너무 부족했다. 캐나다 지역 북부 괴수 전선에는 로이 스턴이 막고 있었다.
그나마 로이 스턴이 있으니까 망정이지 그마저 없었다면 김 양이 캐나다 북부를 틀어막아야 할 뻔했다.
‘그래서 2함대가 중요했는데 말이야.’
함대인지라 영관급 장교들이 제법 많았다. 거기서 지휘능력이 괜찮은 장교를 적당히 뽑는다면 될 일이었는데, 버지니아 랭리 새끼들 때문에 날아가 버렸던 기억이 떠오른 마루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김 양의 지휘가 많이 좋아진 건 사실이지만, 유리 대령과 비교하면 손색이 있었다. 전장을 읽고 대응하는 건 김 양도 나쁘지 않았지만, 상황을 예측해서 병력을 전개하는 것은 유리 대령이 압도적이었기 때문.
오래간만에 보는 인재라서 그런지 그냥 처분하기에는 너무 아쉬운 마루였다. 그렇다고 사람을 먹어댄 식인귀에게 면죄부를 줄 수도 없었고.
[가상현실에 넣으면 어떨까요?]나주연이 의견을 제시했다.
[가상현실?] [제니아 로든과 잭 니스 박사가 연구한 방법이라면, 포로의 인격을 프로그램에 이식하는 게 가능할 것 같아요.]후드와 뇌둥둥 박사가 추진했던 가상세계로의 이전 기술이 그것.
[그러니까 가상현실 속에 유리 대령을 넣어, 그 안에서 조교 역할을 하게 만들자?] [네. 어차피 가상현실에서 신병 훈련도 했었으니 문제가 될 건 없다고 생각해요.]마루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그 기술을 이용한다면 협력을 거부하는 유리 대령도 자연스럽게 도울 수밖에 없겠지. 유리 대령이 협력을 거부한다고 하더라도 일단 NPC로 만들어 버리면 통제하는 건 쉬운 일이었으니까.
[죽은 사람은 데이터 손실이 일어나서, 아무래도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그쪽 분야의 전문가인 후드가 말했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 뇌에 특이한 반응이 일어났다. 그렇게 반응을 일으킨 뇌는 가상세계에 넣는다고 해도 그 전과 똑같은 인격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잭 니스 박사는 가상세계의 신이 되고자 했다. 가상세계가 현실을 대체한다면, 그 가상세계를 통제하는 존재는 신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신이 되기 위해 현실을 파괴하고, 현실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가상현실로 이주시키려고 했었다.
가상현실에 들어온 사람들을 세뇌해 다시 현실로 보내면 현실도 박사가 지배할 수 있게 됐다. 가상현실의 신이 현실에서도 신이 되는 것이었다.
뇌둥둥 박사는 그걸 숨긴 채 말했다. 종말이 끝날 때까지. 개인의 DNA를 보관하고 개인의 인격을 가상세계에 저장하자고.
종말이 끝나고 지구가 정화된 뒤, 저장했던 DNA로 신체를 복구하고 가상현실로 보존한 인격을 넣으면 인류가 부활하는 게 아니냐고.
그 기술은 기순의 부활에 응용됐고, 신성 왕국의 클론 기술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국토안보국 시절 만들었던 유 이사 클론이 가진 문제도 가상현실을 통해 어느 정도 교정할 수 있었고.
제국에서 만든 나루의 클론들 그러니까 나루즈의 분열문제도 가상현실을 통해 어느 정도 조율할 수 있었다.
[가상현실에 넣도록 하지. 특수부대 쪽은 죽었지만, 가상현실에서 부활시켜보도록 해.] [알겠어요.] [네.]마루는 고민 끝에 유리 대령과 러시아 특수부대를 가상현실로 보낼 것을 결정했다.
[까마귀랑 대화하는 남자 잡았음.]뒤이어, 김 양에게서 통신이 들어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음. 여기 까마귀들 미쳤는데 어떡함?]까마귀들이 미쳤다고?
김 양이 보내온 영상에는 10만은 됨직한 까마귀들이 서로 패싸움하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패싸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과격한데요?] [패싸움에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서로 죽고 죽이기까지 하고 있음.]김 양이 보낸 영상을 한참 분석하던 나주연이 말했다.
[간섭과 충돌 때문일 가능성이 있어 보이네요.] [간섭? 충돌?]그게 뭔 소리임?
[식인귀의 지배력을 연구한 자료에, 식인귀들이 서로 싸웠을 때 일어나는 현상을 분석한 일이 있었어요.]상위 개체끼리 싸운다고 하자, 그럼 상위 개체가 지배하고 있는 하위 개체들도 영향을 받는다는 가설이었다.
[지배력은 지배하는 숫자가 줄어들수록 강해져요. 두 집단이 싸워 한쪽이 우세하게 되면, 숫자가 줄어든 쪽은 지배력이 남게 되고, 남은 지배력으로 상대방의 하위 개체를 지배하려고 하겠죠.]뉴욕의 밤거리를 장악하고 있던 범죄 집단이 식인귀가 됐을 때 벌어진 일이었다. 지배력에서 벗어난 개체 가운데 상위 개체가 나오게 되고, 상위 개체가 된 하위 개체가 독립하려고 했던 이야기.
당연히 본래 두목은 떨어져 나간 놈을 잡아 죽이려고 했고, 그렇게 둘이 싸우면서 생긴 현상이 그것이었다. 세력 차이가 확연히 남에도 쉽게 잡아 죽이지 못한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바로 지배력이 가진 성질 때문. 부하를 잃으면 잃을수록 지배력에 여유가 생기고, 적의 하위 개체에 간섭할 가능성이 점차 커진다는 역설.
그래서 초기, 부하들을 죄다 식인귀로 만들던 범죄 집단이 식인귀가 되는 부하들을 늘리지 않은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그럼 양쪽에서 지배력에 맞게 된 애가 미친다는 것임?]김 양의 시선이 옆에 있는 간호사를 향했다.
그러니까 비쩍 마른 남자와 소통하고 있던 까마귀들인데 거기에 흉악한 가슴이 등판해서 호소하자, 까마귀들이 미쳤다는 거?
[오노 나나에 씨가 가진 의사소통 능력이 지배력과는 다르지만, 비슷한 능력이 겹쳐서 생긴 반동 때문에 까마귀들이 이상행동을 하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에요.]나주연의 설명에 김 양의 눈빛이 스산해졌다.
[그럼 저기 소통 능력자 죽이면. 간섭? 반동? 그런 거 없어지면서, 미쳐 날뛰는 까마귀를 간호사가 관리할 수 있게 된다는 거네?]전신이 꽁꽁 묶인 비쩍 마른 사내가 김 양의 말을 듣곤 애벌레처럼 몸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으읍- 읍- 으으읍-’
[가설대로라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겠죠.]그런 나주연의 대답에 간호사가 말했다.
[에에엣. 죽인다고요? 잠깐만요. 지배력이든 정신계 능력이든 범위가 있잖아요.] [무슨 소리임?] [에- 또- 서울에서 울산에 있는 까마귀와 소통할 수 있다면 저 사람이 울산까지 갈 이유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저도 그렇잖아요. 까마귀가 있는 곳에 가야 이야기를 할 수 있지, 멀리 떨어진 애들과는 이야기할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죽이지 말고 멀리 보내보자?]후딱 치워버리지 피곤하게 한다는 듯한 김 양의 목소리에 간호사가 용기를 쥐어짰다.
[그. 그래요. 능력자가 필요하다고 해서 잡으러 온 거 아니었나요?]간호사의 변호 아닌, 구명 호소에 비쩍 마른 남자가 흐느꼈다.
‘끄으으- 끄으-’
[닥치셈.]김 양의 일갈에 꺼억- 꺽- 울음을 참는 삐쩍 마른 남자였다.
[어떻게 하면 좋겠음? 아 그리고 울산에 까마귀들의 왕이 있다고 함. 여기 이 남자가 그 까마귀 왕과 협상해서 지원군으로 까마귀를 데려온 것 같음.]김 양의 이야기에 잠시 고민한 마루가 말했다.
[일단 남자는 거점으로 데려가. 거리가 멀어지면 패싸움하고 있는 까마귀들이 어떻게 되는지 확인해 보도록 하지.] [알겠음.]김 양은 바로 추적대를 두 팀으로 나눠 비쩍 마른 남자를 가지고 올라가라고 했다. 자동차를 타고 서서히 멀어지는 한 팀.
10만 마리의 패싸움은 실로 엄청났다. 죽은 까마귀만 1만이 넘었고 거의 전부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다. 중상을 입어 죽을 숫자만도 1만이 넘을 지경.
수북하게 쌓인 시체 사이로 날개가 꺾이고 내장이 드러난 까마귀들이 마지막 작은 숨을 몰아쉬는 모습.
그 참혹함 속에서도 꺼지지 않던 흥분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죽어라. 죽여라.
그래 죽어. 죽자.
싸우던 까마귀들이 서서히 소강상태로 들어섰다.
눈을 동그랗게 뜬 김 양이 간호사를 보며 말했다.
[정말 그런가 본데?] [에? 예···.] [그럼 빨리 쟤들 섭외해 봐.] [아니. 저는 그러니까.]지배력이 아니라니까요. 그냥 이야기하는 건데.
[알겠음. 그러니까 어서 해봄.]종용하는 김 양에 간호사는 좌불안석이었다.
눈을 질끈 감은 간호사가 지원을 요청했다.
[약. 약이 필요해요. 급속치료제와 지혈제가 필요해요. 수액도 필요하고요. 다들 많이 다쳤는데 치료부터 해야죠.] [알겠음.]김 양의 눈빛이 살짝 흐려졌지만, 간호사의 요청대로 보급을 신청한 김 양이었다.
간호사는 팔을 걷어붙이고 까마귀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까아아악! (인간 암컷 고맙다!)
까아아악- (포. 포근한 느낌이다-)
까악! (날개 날개가!)
끼융.
김 양이 바닥에 널브러진 까마귀 하나를 집어 들었다. 갑작스럽게 들어 올리자 상처가 벌어진 까마귀가 죽는다고 퍼덕였지만, 엑소슈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흐응- 그러니까.
철컥-철컥-철컥-
대뜸 의료용 호치키스로 봉합해 버리는 김 양.
끄아아아악-
비명 지르는 까마귀의 주둥이에 육포를 박아 넣어 강제 침묵시킨 김 양이, 까마귀의 상처에 연고를 바른 뒤, 백숙(?) 자세로 만들어 뉘었다.
순식간에 수북하게 쌓이는 백숙 자세 까마귀들.
에?
에에에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