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779)
러스트 [RUST]-779
기순이 보기에 PD는 나름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인공지능을 경계하는 것도 인간 중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해할 수 있었다. 기순도 의견을 같이했으니까.
마찬가지로 생명공학이나 유전공학 분야를 경계하는 부분도 마찬가지였다. 인간 중심, 인류 보존의 관점에서 본다면 당연히 경계해야 했으니까.
유전자 변이를 한없이 긍정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간단한 예를 들자면, 식인귀도 인간의 카테고리에 들어가게 됐다.
식인귀를 인류의 범위에 넣는다고 뭐가 문제냐고?
이제까지 신성 왕국의 이름으로 한 행동이 그저 대량 살상이 되는데 문제가 아닐까?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국왕 블라디마루 칼린은 잔혹한 학살자이자 전범이 될 뿐이었다. PD는 그것을 경계했다.
“신앙이 무너진 곳에서는 도덕이 무너지고 가치관이 무너지는 법입니다.”
[······.]그는 식인귀와 인류는 구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 날에 양과 염소로 구별하듯, 인간과 식인귀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식욕 억제제가 있다고요? 사실상 치료제와 같다고요? 그게 있어서 식인귀들이 식인을 멈췄습니까? 우리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습니다.”
제국의 수도 뉴욕에서, 남부 연맹의 타락한 도시에서,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중국과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식인귀들은 예외 없이 인간을 먹었다.
인간을 잡아먹고 강해지는 존재를 인간의 범위에 넣어선 안 된다고 역설한 PD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습니다. 인간을 먹고 강해지는 식인귀들이 그 행태를 버릴까요? 지금까지 식인을 멈추지 않았다는 건 변하지 않는 진실입니다. 그 진실을 직시하고 놈들을 응징하는 나라가 신성 왕국입니다. 그렇기에 놈들은 신성 왕국을 노릴 겁니다.”
“그래서 HOLLY 교를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는 소리군요.”
가만히 있던 후드가 입을 열었다.
“바로 그것입니다. 꺾이지 않는 믿음, 변하지 않는 신앙심이야말로 신성 왕국을 하나로 묶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엔 무리지 않나요? 무신론자의 비율이 훨씬 높은 나라에서 강제 신앙 교육이라니, 그거 세뇌와 다를 바가 있습니까?”
후드의 일침에 PD의 눈빛이 번들거렸다.
“세뇌라. 들쥐들이 세뇌를 당했다는 겁니까? 까마귀와 늑대들이 세뇌를 당했다는 겁니까? 저를 비롯한 HOLLY 교도들이 세뇌당했다는 소립니까?”
“아니요. 믿는 건 자유죠. 하지만 강제하는 순간 세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그뿐 이에요. 신앙만이 나라를 유지할 수 있다고요? 제국을 보세요. 민주주의 제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잘 버티고 있습니다. 세뇌나 마찬가지인 신앙 교육을 하지 않더라도 말이죠.”
후드의 반론에 PD가 미소를 지었다.
얼굴은 분명 미소를 지었는데 눈빛은 번들거리는 그대로였다. 그 기이한 표정에 포커페이스를 잘하는 기순도 당황했을 지경.
그런 기이한 분위기에도 후드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 반쪽을 가리고 있는 가면이 방패라도 되듯.
“무엇보다 그분께서 광신을 경계하고 계시는 건 행정부 장관님도 알고 계시잖아요.”
“광신이 아닙니다. 합리적인 신앙입니다.”
합리와 신앙의 콜라보(collaboration)라니 기순은 속으로 감탄했다. PD는 마루가 광신을 경계한다는 후드의 말에 신중하게 단어를 골랐다.
“굳건한 믿음은 광신이 아닙니다. 그리고 강한 믿음과 신앙이 있어야,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지요.”
신성 왕국의 영역은 넓었다. 수상도시가 완공되면 주요 인사들은 수상도시로 이주하겠지만, 남은 자들은 끝없은 유혹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특히 최전선에 있는 군인들은 식인귀와 흡혈귀의 유혹에 빠지기 쉬울 겁니다.”
놈들의 지배력은 인간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고위급 식인귀만 하더라도 인간에서 벗어난 어떤 기운을 풍기고 있었고. 그 강한 아우라와 카리스마에 일반인들은 저항하기 어려웠다.
흡혈귀는 더했다. 소량의 피만으로도 생존할 수 있게 진화한 식인귀가 흡혈귀였고, 흡혈귀는 식인귀와 늑대인간을 모조리 지배하에 둘 만큼 강력한 지배력과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존재가 군인을 유혹한다면? 식인병이 창궐했을 때와는 달리 식인귀가 되기 어려워졌기에 식인귀로 만들어주겠다는 유혹은 실로 달콤한 조건이리라.
질병에 걸리지 않고, 노력 여하에 따라서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점도 마찬가지. 무엇보다 먹잇감이 아닌 포식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어떻게 참아낼 수 있을까.
“오직 신앙심. 굳건한 믿음만이 병사들이 타락하지 않게 지켜줄 것입니다.”
PD와 기순, 후드, 나주연은 늦게까지 토론에 토론을 거듭했다.
제국의 사례, 남부 연맹의 상황, 영국과 프랑스가 무너진 원인 그리고 한국의 상황까지 폭넓은 논쟁이 오고 갔다.
PD는 한국의 지배층이 만든 시스템에 일종의 감동까지 느낀 듯싶었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CBDC)를 기초로 경제적 목줄을 잡은 뒤, 징병을 통해 젊은 남성을 군대로 격리하고, 경제적 이익을 미끼로 임산부를 늘리고 신생아를 생산하는 데 성공한 것. 그렇게 한국은 완벽한 통제 사회로 거듭난 것이었다.
“놀랍군요. 이론에서나 나올 법한 통제 사회를 만들다니.”
기순은 PD의 순수한 감탄에 어쩐지 기분이 나빴다.
식인귀가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한국인들이 저항하는 데 실패했다는 뜻이거나, 다수가 식인귀의 지배를 암묵적으로 동의한 결과라는 의미였으니까.
“영토가 작고 인구가 특정 지역에 밀집된 사회라면 그렇게 될 수도 있겠네요.”
후드도 고개를 끄덕였다. 총기규제국가인 한국은 식인귀 권력에 저항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무기가 없는 시민은 식인귀 정부 같은 게 등장하면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잔혹한 현실이었다.
종말에 비무장한 시민이라니.
시위? 집회? 데모?
수십, 수백만이 죽어도 그게 가능할까? 무장한 반대 세력이 있음에도 킬링필드(killing field) 같은 사건이 터졌는데, 식인귀 지배층이 비무장 집회를 무서워할까?
국제사회가 멀쩡히 있을 때도 홍콩의 민주화가 무너졌고 군부가 미얀마를 장악한 것을 떠올려 본다면 무장하지 못한 시민은 식인귀의 도시락이 될 뿐이었다.
잠시 생각을 한 PD가 상황을 확인했다.
“그분께서는 한국인 이민을 받을 생각이신 겁니까?”
[그럴 생각으로 알고 있습니다.]“얼마나 받으실 생각인지 아십니까?] [200만 정도를 생각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군인으로 40~50만 내외, 가임기 여성으로 50~60만 내외 그리고 신생아로 100만 이상입니다.]
후드가 신생아라는 말에 의구심을 품었다.
“신생아로 100만이요? 그걸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건가요? 우리 인구가 400만 정도인데 말이죠.”
“클론 급속 성장 기술을 이용하면 충분히 소화 가능해요.”
나주연의 설명에 후드가 미간을 찌푸렸다.
“신생아보다는 차라리 10대 중후반이 낫지 않을까요? 1~2년 정도 훈련하면 충분히 제 몫을 할 텐데.”
“10대 후반이면 거의 가치관이 형성됐기 때문에 곤란해요.”
“아? 그래요? 그러니까, 급속생장 기술을 이용해 빨리 자라게 하고. 정보 주입 기술을 이용해 세뇌하겠다? 제가 듣기에는 그 소리로 들리는데 말이죠. 아닌가요?”
후드는 본래 해커였다. 자유는 그녀의 혈관에 흐르는 본성. 잭 니스 박사. 뇌둥둥 박사가 내민 손을 거절했던 이유도 통제 때문이었다.
가상세계를 통해 옛 인연들을 다시 만나고자 했던 그녀와는 달리, 잭 니스 박사는 가상세계의 신이 되고자 했다.
인류의 보존이라는 명분으로 인류를 지배하려는 의도를 확인한 이상 그녀는 박사와 손을 잡을 수 없었다.
통제와 억압에 대한 강한 거부감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후드는 PD와 나주연의 행보가 많이 거슬렸다.
PD 신앙으로 세뇌하려고 했고 나주연은 신생아에게 정보 주입하면 된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었다.
인공적으로 성장하고, 필요한 지식을 강제로 주입 받는 아이들이라면 그게 클론과 다를 바가 뭐란 말인가?
“단일 개체를 복사하는 클론과는 유전자 풀이 다르죠. 설마 그걸 모르실 건 아니고. 세뇌라고 생각하시나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검수받은 내용만 쓰면 되니까 걱정하실 거 없어요.”
“신생아를 키우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클론도 아니고 입양한 아이를 빨리 성장시키는 것이니까요.”
나주연과 PD가 신생아 도입에 의기투합했다. 후드는 정말 이게 뭔가 싶었다.
“그게 옳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두 분 모두?”
“한국에 그대로 둔다면 신생아들은 실종될 거예요. 100만이 넘는 신생아를 키우는 건 지금 상황에서는 어려우니까요.”
“식인귀의 배를 채우게 될 겁니다. 그럴 바에야 신성 왕국을 입양 받는 것이 낫겠죠.”
“그게 입양입니까? 아니. 입양이라고 해요. PD님은 기본 기억구성에 HOLLY 신앙을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유혹에 저항할 수 있는 강한 믿음을 심어줄 수 있으니까요.”
후드는 어디서부터 문제인지 생각했다. 그러니까 PD와 나주연이 만드는 신성 왕국은, 식인귀가 만든 한국이나 마찬가지가 될 가능성이 컸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신성 왕국은 그분이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식인귀들의 방식과는 다르지요.”
세뇌와 통제로 아이들을 기른다면 식인귀 지배하의 한국과 다를 바가 없다는 후드의 주장에 PD가 정색했다. 기순이 과열되는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왕님이 결정하실 문제니까 그 이야기는 거기까지만 하죠. 그리고 근대 교육 과정 자체가 일종의 세뇌라는 것은 다들 알고 있는 사실 아닙니까.]어떤 철학자는 근대 의무 교육 자체가 거대한 세뇌과정이며, 사회구성원이라는 틀에 맞는 부속품을 찍어내는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어쨌거나 그 틀에 박힌 교육 덕에, ‘사회화’라는 게 효과적으로 진행됐고, 그 ‘사회화’ 덕에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가치 개념, 행동 양식, 관계 형태가 형성되고 유지될 수 있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선생님이 아이들을 교육한다고 해도 그조차 일종의 세뇌라고 하면 세뇌인 겁니다. 그걸 하는데 드는 시간과 비용은 그렇다고 치고, 애초에 100만이 넘는 아이들을 교육할 선생이 부족합니다.]기순의 이야기는 거침없었다. 그 자신이 클론이 됐기 때문인지, 클론 기술을 활용한다는 것에 거부감이 없이 나갔다.
[신생아가 100만이 넘습니다. 인구 3천5백만이 넘는 한국도 허덕일 일이죠. 그걸 인구 4백만에 불과한 신성 왕국이 감당하려면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급속 생장시킨 아이들을 ‘사회화’하고 최소한의 교양과 가치판단을 할 수 있도록 기억주입을 선택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능력자들은 임신이 되지 않고, 일반인들만 임신이 되는 상황입니다. 장기적인 미래를 생각했을 때, 유전자 풀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걸 고려하면. 대규모 이민과 신생아 입양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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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만다. 인간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그분이 계시는 한 멸종되지는 않을 거야. 제니아도 살아남을 거고.]“너도 그분이라고 하는구나.”
[나 같은 인공지능을 전자의식이라고 선언하신 분이니까.]“그래. 그분은 그런 분이시지.”
후드, 제니아 로든이 반반으로 나뉜 가면을 만졌다. 예전의 미모를 되찾은 반쪽. 그리고 과거의 화상이 선명한 반쪽이 거울 속에 비쳤다.
특수 재질로 만들어진 가면의 반쪽에 감춰진 건 일그러진 과거였다. 정보 통제를 하려는 정부에 의해 가족과 친구를 잃었다. 여자로서의 꿈이, 진실에 대한 추구가 타버린 숯이 된 그 날.
그녀의 꿈은 가상세계를 구축해 그 속에서 모든 것을 회복하려고 했었다. 그리고 그는 현실에서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제 보급형 급속치료제가 생산되고 있었다. 오리지널 치료제의 효과보다야 약하다지만,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시간을 들여 나머지 반쪽 얼굴을 치료할 수도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모든 분야가 발전하고 있었다. 화상치료도 그랬다. 하지만 그녀는 기다리기로 했다. 마루가 얼굴 반쪽을 치료해 줬을 때처럼 나머지 반쪽도 치료해 주길.
얼굴이 아닌 손과 발을 치료해 줬던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 몸을 치료해 줬고. 이제 남은 부위는 얼굴 반쪽.
분명히 의미가 있을 거다. 후드는 두 손을 내밀었다. 하얗게 티 없는 두 손. 아기 피부처럼 뽀얀 두 손에는 가늘고 섬세한 손가락이 달려있었다.
“이번 회의로 알았어. 캐나다 총독(기순)도 그렇고 행정부 장관(PD)과 연구부 나 회장도 위험해.”
[모두 신성 왕국에 충성하는 사람들이야.]“충성과는 별개로. 위험해. 그들이 추구하는 바가 통제 사회, 통제 국가로 가는 시작이 될 수 있는 걸.”
[제니아. 지금은 종말의 시대잖아. 종말의 시대에 생존하려면 엄격한 통제가 필요해.]“인정해. 하지만 우리는 이성을 가졌어. 이성을 가진 존재를 통제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어?]“그분이 어느 선까지 생각하시는지 이야기해 보고 싶어. 그래서 그분이 정한 선을 다른 사람들이 넘는지 감찰하는 권한을 받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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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양은 동그랗게 커진 눈을 깜박였다.
잘 정돈된 과수원에는 잡초 하나 없이 관리된 과일나무들이 오와 열을 맞춰 서 있었다.
‘이걸 까치가 관리하고 있다고?’
사람도 이렇게 하긴 힘들 텐데?
늦여름에서 초가을.
사과나무에는 빨갛게 익은 사과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끼융-
그녀는 탐스럽게 익은 사과를 향해 손을 뻗었다.
“저어어엉지이이잌!!!”
기괴한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까치 몇 마리가 쏜살같이 날아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도두욱지일인까악!” (도둑질인가!)
[아직 손도 안 댔음.] (대충 도둑질하지 않았다는 뜻)까치들이 서로 돌아보더니 한목소리로 외쳤다.
““나가아악!””
아니. 이년들이···.
김 양의 눈꼬리가 살짝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