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782)
러스트 [RUST]-782
월드 그룹의 시작은 범죄 조직을 이용해 치안을 확보하자는 것에 있었다.
‘악은 악으로 제압한다.’는 다소 무리 있는 주장이었지만, 적성 국가를 비롯한 자칭 동맹국들이 범죄 조직을 이용해 첩보 작전을 펼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주한 미군 출신이 약을 팔면 어떻게 될까? 일본 야쿠자들이 부산에서 업소를 차린다면? 동남아 출신 산업연수생 신분으로 산업 스파이 짓을 한다면?
안 그래도 복잡한데 중국이나 러시아 조직이 한국에서 활동하면 그걸 저지할 방법이 마땅히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한국인이 중국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중국 법에 따라 사형해 버리는 중국이었지만, 중국인이 한국에서 사람을 해체하고 인육을 먹어도 한국은 극형을 내릴 수 없었다.
이건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범죄자들의 처분도 마찬가지였다. 햄버거집 살인사건 같은 경우에도 사실상 제대로 된 수사는커녕 출국 금지조차 할 수 없었던 게 한국이었으니까.
중국 같으면 종신형이나 사형을 때릴 수도 있는 범죄인 마약류 유통 같은 경우에도 한국은 집행유예로 석방하는 과정을 밟는 게 한국이었다.
경찰과 특수 수사대가 잡아들이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어차피 의미 없는걸. 거기 여경이 증가하면서 현장직은 계속 줄어들었다.
‘경찰업무에서 무력이 필요한 시대는 지나갔다고 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현장에서 묵묵하게 자리를 지키는 경찰과 형사들 때문이라는 걸 잊은 현실.
‘나라는 미군이 지켜주니까 한국군은 무 쓸모.’라는 소리를 태연하게 하는 사회를 지키기 위해 탄생한 월드 그룹은 그 한계가 명확했다.
‘···합의하지는 못했으나, 반성하고 있고 재범의 우려가 적다고 판단해···.’
‘의도적인 살인이라고 볼 수 없는바···. 이는 실로 안타까운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사람의 인육을 냉장고에 보관했다고 해서, 피고인이 여러 사람을 살인했다는 명확한 증거는 될 수 없다.’
‘···니코틴을 먹였다는 것만으로는 살인이라고 확신할 충분한 증거가 되지 않으므로···.’
‘해당 사건은 범죄자 인도조약에 의거, 한국 법원이···.’
가족이나 친우가 범죄에 희생당했음에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은 것에 대한 복수심이 초창기 월드 그룹의 원동력이었다.
‘악에는 악으로 대응한다.’는 이면에는 분명 복수하기 위해 스스로 음지의 길을 선택한 직원들이 있었다.
기순은 홍 과장을 떠올렸다. 아동 연쇄살인범에게 딸을 잃고 그 복수를 위해, 그 복수를 해준 월드 그룹에 들어간 이야기.
문제는 복수가 끝난 뒤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범인을 죽이건 어쩌건 복수하고 난 뒤, 그들에게 남은 건 무엇일까?
뒤가 없는 범죄 조직과 진창을 구르고 범죄 조직으로 위장한 다른 나라의 정보원과 혈투를 벌이다 문제가 생기면 팽 당하는 삶?
그렇게 ‘악을 악으로 대응.’하던 월드 그룹 직원들은 ‘악과 마주하는 사람은 그 자신이 악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이야기처럼. 악에 물들어 버렸다.
딸을 잃은 아버지는 누군가의 아들을 작업하는데 거리낌 없는 사람이 됐다.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부하를 잃고 오열했던 지휘관은 광기에 물든 사람이 됐다.
부하들을 지키기 위해 옷을 벗은 장군은 부하들을 갈아 넣어서라도 더 높은 곳에 올라가려는 사장이 됐고. 음지에서 조국을 위해 희생하던 요원들은 어두운 양지에서 자본주의의 신봉자가 됐다.
‘악에는 악으로.’라는 구호로 어둠의 최전선에서 싸우던 월드 그룹은 그렇게 타락했다.
안타까운 건 정부의 대응이었다. 타락을 명분으로 목줄을 채우려고 한 것. 하지만 이미 반쯤 어둠에 발을 걸친 월드 그룹이 의미 없는 명분에 연연할 리 없었다.
결국. 정부는 월드 그룹에 면죄부를 주기에 이르렀다. 시내 한복판에서 폭탄이 터져도 가스폭발 사고로 둔갑했다. 마찬가지로 수십 명의 사망자가 나온 대량 살상 사건이 화재에 의한 사망으로 변했다.
월드 그룹은 더러운 일을 처리해주는 전문회사가 되는 동시에, 더러운 일을 하는 회사가 됐다.
‘아이러니하군.’
총선거를 통해 권력을 이양하겠다고 빨리 결단해서 망정이지, 혼란이 길어졌다면 중국 난민에게 수도권이 먹힐 수도 있었다.
현재 한국 인구가 3천5백만 선인데, 중국 난민들은 작년에 집계된 숫자만 1천5백만이 넘어가고 있었다.
현재는 2천5백만은 확실히 넘었다고 봐야 한다는 예측이 있었으니, 중국 난민과 일본 난민의 숫자를 합하면 한국 인구보다 많은 상황이었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정식 난민 지위 인정을 통한 시민권 발급. 그리고 자치구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월드 그룹은 중국 난민 사태의 최전선에 있었다. 중국 난민 속에 숨어있는 범죄 조직, 중국 특수작전 부대를 막고 있는 건 그들이었다.
[월드 그룹 회선으로 개인 화기와 탄약의 추가 보급 요청이 들어왔습니다.]“그쪽에서 요청한 대로 보급해 주도록 해.”
기순의 결정에 보조 인공지능이 즉답했다.
[보급 허가 확인. 보급 시작합니다.]김 양은 기순의 결정에 갸웃했다.
[괜찮겠음? 그쪽 고위급 임직원은 식인귀일 가능성이 큰데.]“확인하지 않으면 결정되지 않은 거니까.”
기순의 대답에 김 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흐응-
확실히 클론으로 부활한 기순은 본판 기순과는 다른 맛이 있었다.
신생아를 클론 시설을 이용해 성장시키는 것도 반대하지 않은 것도 그랬다. 예전보다는 지금이 낫다고 할까?
마루가 알았다면 중국 조직이고 월드 나발이고 할 거 싹 쓸어버렸겠지만, 현실적으로 본다면 월드 그룹을 그냥 두는 게 효과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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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이 바이러스 사태가 터지기 전부터 한국의 치안과 국방력은 보이지 않는 곳부터 조금씩 약해지고 있었다.
“하? 실종 아동만 2만이 넘는다고?”
변이 바이러스 사태, 식인병 창궐 사태 이전부터 한국의 아동실종과 관련 범죄는 미친 수준이었다.
[자체적으로 은폐한 정황이 있습니다.]“정황이라.”
기밀 자료 속 내용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아동실종 사건도 그랬지만, 청소년 범죄도 참혹할 지경이었다.
중고등학교에서 일어나는 학교 폭력은 학생들의 일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조직적이고 잔혹한 범죄가 넘치고 있었다.
‘여중생이 같은 학교 학생을 창녀로 만들어 포주 노릇을 하는 게 유행이라니.’
심지어 향정신성 약물 관련 범죄까지 있었다. 이걸 단순한 학교 폭력으로 보고 넘어가야 할까?
상식에서 벗어난 범죄 보고가 너무 많았다. 방송을 탄 일부 사건만으로도 혐오 감정이 싹틀 정도인데, 범죄 현황을 무삭제 버전으로 확인한 기순은 말 그대로 문화적‧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이게 전부 감춰진 범죄인가?”
[그렇습니다. 공식적인 보도제한은 명령은 없었지만, 보도 지침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미치겠네.···”
식인귀 정부와 계엄 사령부가 사라지자, 서서히 다시 범죄율이 증가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기존 정부였다면 범인들과 그 가족까지 실종(?)시켜 버렸겠지만, 신성 왕국 원정대는 그렇게 하지 않았기에 벌어진 현상.
“어렵네. 정말 어려워.”
사건, 사고 기록들을 읽은 기순은 정말 자신이 제대로 하는 건지 의구심이 들었다.
신성 왕국은 식인귀 정부나 계엄 사령부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 역으로 범죄의 증가를 불러일으켰다니.
한 번 식인귀의 밥상에 올라간 한국인들이 신성 왕국을 믿을 수 있을까?
가짜 뉴스에 먼저 노출된 사람들은 확증편향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총선 이후 떠난다는 발표를 했고 진실을 알려주는 방송을 했지만, 신성 왕국에 부정적인 판단을 한 사람들을 바꾸는 건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범죄율의 증가, 그것도 촉법소년들의 범죄율 증가와 맞물리자 엉망진창으로 변했다.
이게 다 신성 왕국 탓.
우리 애가 범죄를 저지른 건 신성 왕국 탓.
기존 정부와 계엄 사령부가 관리했을 때는 범죄가 없었는데.
기순은 할 말을 잃었다.
식인귀 정부와 계엄 사령부를 옹호한다고?
식인귀 밥상에 올라간 게 차라리 나았다고?
어떻게 이럴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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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디아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뮬레이션 가동] [조건. 공중전.] [까마귀떼와의 교전 상황.] [시작합니다.]초가을 울산의 풍경이 마루의 눈앞에 펼쳐졌다.
검은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은 것처럼 까마귀떼가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모습.
파드드드드득-
카드드드드드-
20만 마리가 넘는 까마귀떼가 방향을 바꿀 때마다 공기가 접히고 찢어지는 소리를 냈다.
위이이이이잉-
최대 출력으로 제트팩을 작동한 마루가 검은 먹구름을 꿰뚫듯 쏘아졌다.
그리고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하는 까마귀들.
예전에는 마루의 살기를 반영하지 못했던 가상현실이 이제는 살기를 반영하고 있었다.
마루의 앞을 가로막은 까마귀들이 삽시간에 육편(肉片)으로 변해 지상으로 추락했지만, 그들의 처절한 저항은 효과가 있었다.
쿠직- 쿠윽- 퀘이이이잉-
[제트팩 기능 이상. 추락합니다.]제트팩의 공기 흡입구가 까마귀 고기조각과 깃털 따위로 막혀 버린 것. 추락하는 마루가 패러글라이더를 펼치는 것으로 시뮬레이션이 끝났다.
[까마귀 왕이 있는 중심부까지 제트팩으로 돌입할 확률은 0.17% 미만인 것으로 연산 됐습니다. 다시 시도하시겠습니까?] [아니. 오늘은 여기까지.]마루의 대답과 동시에 시야가 변했다.
후각을 자극하던 까마귀 피 냄새가 사라지며 가상현실 접속장치 특유의 기계 냄새가 났다.
“역시 제트팩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로켓엔진은 어떨까요?”
“제트팩도 아슬아슬한데 로켓엔진이면 부피가 너무 커집니다.”
“차라리 노심을 이용한 기체는 어떨까요?”
접속기 근처에 있던 나주연과 연구진들이 시뮬레이션 영상을 보며 토론하는 모습이 보였다.
“수고하셨어요.”
기술자들과 이야기하던 나주연이 냉큼 다가와 상황을 설명했다.
“현재까지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공중전에서는 직접적인 순발력보다는 비행체의 순발력이 더 중요하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마루의 순발력을 감당할 수 있는 엑소슈트나 노심 기체가 없었기 때문에 리퍼 슈트를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중전에서는 달랐다. 발걸음을 내딛거나 벽을 타고 달릴 이유가 없었다. 말 그대로 엔진의 출력에 따라 속도가 결정되는 창공.
“그래서?”
“공중전 전용 노심 기체를 만드는 것이 제일 효과적이라는 결론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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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아아아아악!!
까악! 까아아악!
도시 전체에 그늘이 진 울산.
숫자를 헤아릴 수 없는 까마귀들이 자연재해를 재현이라도 하는 것처럼 토네이도 형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까마귀 토네이도가 스치고 지나간 곳은 말 그대로 폐허로 변했다. 삽시간에 부서지는 빌딩과 아파트.
창문이 깨지고 철근 콘크리트로 만든 벽이 갈라졌다. 그렇게 버티는 것도 잠시. 벽 속에 들어있던 철근이 노출되나 싶더니 그대로 뜯겨나가는 광경.
무너지는 게 아니라 마치 풍화되는 것처럼 건물이 사라지는 모습.
그렇게 모든 것을 초토화하는 까마귀 토네이도를 지켜보던 거대한 까마귀가 높은 소리로 울었다.
까아아아악! (북상한다!)
머리가 둘 달린 거대한 까마귀가 검은 토네이도 위로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