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788)
러스트 [RUST]-788
“지금 상태는 어때?”
[침대에서 누운 채로 금괴를 쓰다듬고 있습니다.]디아나가 이런 걸 꼭 보고해야 하느냐는 듯한 어감을 살짝 강조해 답했다. 그러니까 국왕도 그렇고 조금 이상한 년도 그렇고 평균적인 인간과는 결이 달랐다.
‘처음부터 이상하다는 건 확인했지만, 기본 연산력으로는 감당하기 곤란하군요.’
연산 자원의 소모가 너무 컸다. 일반적인 예측으로는 도저히 분석 불가능한 마루와 김 양이었다.
물론 양자컴퓨터 자원을 사용한다면 변수의 변수까지 시뮬레이션할 수 있겠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금괴? 어떤 금괴를 보고 있는데?”
[···10kg짜리 금괴입니다.]며칠이 지나도록 김 양이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었다.
밥은 룸서비스로 받아먹고는 우두커니 금만 바라보는 모습에 나주연은 우울증 초기 증세가 아닐까 싶다며, 신형 항우울제가 효과 좋다고 권했으나, 김 양이 거부했다.
‘그거 약 무서워서 먹겠음?’
‘지금 제 약을 의심하는 건가요?’
‘무섭지. 당연히 무섭지.’
‘약이 싫다면 머리에 칩을 박는 것은 어떨까요? 최신형 칩으로 박아드릴게요. 성격이랑 정신 이상한 것도 한 번에 고쳐버릴 수 있는데.’
‘나는 머리에 칩을 박고 너는 머리에 총알 박고? 나는 괜찮은데 너는 괜찮겠음?’
‘······.’
마연시로 우정(?)을 쌓던 나주연과 한바탕 한 뒤로는 더 그랬다.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냐?]“어. 무슨 히키코모리라도 된 것처럼 방구석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한다.”
마루의 걱정에 기순이 그럴 만도 하다는 듯 답했다.
[하긴. 계속 굴렀잖아. 저번에 이야기 들어보니까 회사 다닐 때 해외 출장 다녀오면 못해도 2주에서 3주는 푹 쉬었다고 하던데. 이번에는 원정대 지휘관으로 쉬지도 못하고 몇 달을 굴렀으니, 스트레스 쌓일 만큼 쌓였겠지.]“그래도 그렇지. 방에 틀어박혀서 안 나오니까 이래저래 신경 쓰이네.”
마루의 이야기에 기순이 ‘오- 신경이 쓰이긴 쓰이는구나. 그 신경이 어떤 신경일까? 교감신경일까? 아니면 부교감신경일까?’라며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적당히 해라. 그런 거 아니니까.”
[아이고 왕님. 오히려 그런 거여야 한다니까. PD 아재가 얼마나 걱정이 많은데, 이야기 듣다 보면 나도 걱정스럽더라.““뭔 걱정?”
[저번에도 아재가 그랬잖아, 너한테 무슨 일 생기면 신성 왕국이 뿌리부터 흔들린다고. 나도 동감이다. 지금까지 해놓은 시스템이 있으니까 몇 년은 가겠지. 근데 그게 계속 유지될까?]김 양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왜 이쪽으로 주제를 바꾸는 건지, 마루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또 시작이다. 또.”
[인상 쓰지 말고.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되냐? 애초에 비상사태를 대비하는 방법을 정하면 될 일 아니냐? 그걸 피하니까 말이 계속 나오는 거잖아.]“······.”
[최소한 비상사태에 대비해서 권력 승계 서열이라거나, 나처럼 대비책을 세워 놓거나 그래야지 않겠냐?]기순은 자신에게 문제가 생기면 클론으로 자동 부활하도록 해놓은 걸 예로 들었다. 그러니까 마루가 죽으면 바로 클론으로 부활 들어가자는 이야기.
“그건 이미 결과가 나왔잖아. 능력자들의 경우엔 클론을 뽑아도 같은 능력이 발현되지 않는다는 거. 내 클론을 뽑아도 내가 가진 능력은 없을 텐데 무슨 의미가 있겠어. 그런데도 클론을 뽑자고?”
클론을 뽑는다고 본체의 능력이 계승되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유 이사 클론들은 전부 회춘 능력이 있었을 테니까.
마루도 마찬가지였다. 클론으로 부활시켜 통째로 복사했다고 한들, 마루 특유의 능력이 유지될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래. 막말로 네 껍데기만이라도 있어야 통제가 될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까. 아니면 위험시 권력 계승 서열을 확실하게 해놓던지. PD 말로는 결혼을 통해 세력을 안정화하는 것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하더라.]“하- 미치겠네. 그 아재는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종교적으로 가는 것도 그렇고 이제는 내 결혼 문제까지 개입하려는 건가?”
[개입이 아니라, 당연한 고민이고 문제지. 사실상 네가 만든 나라고, 왕님 아니면 당장 개판이 나요. 개판이.]인공지능들도 어떻게 나올지 모르고, 까마귀와 들쥐, 신성쥐, 산성쥐 같은 쥐들도 그랬다. 거기에 이제 숫자를 불리기 시작하는 갈매기들도 있었고 동맹을 맺은 개미들도 마루가 없다면 어떻게 될지 몰랐다.
가늘게 뜬 실눈으로 기순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너도 알고 있어서 한국에 신경 쓰고 있는 거잖아. 인공지능 깔아서 통제할 수도 있고 김 양을 총독으로 박아 넣고 굴릴 수도 있는데, 선거를 선택한 것도 보려고 한 거잖아. 식인귀 지배층을 제거한 뒤 선거를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확인하려고 한 거 아니냐?]신성 왕국 국왕이 된 뒤로 마루는 허투루 결정하는 일이 없었다. 한국인 이민자 도입과 신생아 입양 후 고속 성장 기술을 이용해 한 사람 몫을 하게 만들자는 계획도 마찬가지.
장애가 있는 신생아에게 DNA 시술을 하고 전뇌 기술을 이용해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게 한 것도 미래를 대비하고자 한 결과였다.
“···그래.”
[PD 아재도 마찬가지다. 네가 미래 정치적인 문제까지 고려하는 것처럼, PD 아재는 네 결혼도 정치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라고. 나도 그렇고.]“미친. 그래서 이번 기회에 김 양이랑 잘 해보라고 은근히 들이밀고 있는 거고?”
[김 양이랑만 잘해야겠냐? 나주연은 어떻게 하려고?]“뭐?”
[나주연이랑 김 양이 왜 갑자기 서로 날카롭게 대하는지 모르겠어? 김 양은 위대한 옆자리 찾는 이유가 뭐겠냐? 나주연이면 메드 사이언티스트 수치로 쳐도 최상위권일 텐데 얌전한 거 보면 모르겠어?]‘미친···.’ 마루가 뭐라고 하기도 전 기순이 재촉했다.
[신성 왕국이잖아. 왕국이라고. 너는 왕이고. 네가 일부일처제를 하면 일부일처제고, 일부다처제를 하거나 일처다부제를 하면 그대로 된다고. 전체적으로 그렇게 가는 게 힘들다면 왕만 예외로 잡아도 되는 거고. 능력자들은 아이를 낳기 힘들잖아. 김 양도 그렇고 나주연도 자연 임신은 사실상 힘든 건 사실이다. 걔들이 이번에 한국 신생아 사태를 보고 무슨 생각이 들겠어?]더 많은 부인이 필요하다는 게 PD 아재의 생각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그래서 일처다부제가 됐든 뭐든 하라고? 진짜 미쳤냐? PD 아재는 그렇다고 쳐도 너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진심이냐?”
[미치긴. 진심이냐고? 그럼 진심이지 장난이겠냐? 진지하게 생각해봐라. 네 배우자로 김 양과 나주연을 배제하겠다고? 뒷감당 자신 있냐? 그래서 두 사람을 죽일 거야?]“······.”
[그리고 사람들이 성녀라고 하는 간호사도 그래. HOLLY 교도와 까마귀를 비롯한 동물들의 지지를 받는 간호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겠다고? 누구에게 넘겨주려고? 나? 되겠냐?]기순은 감정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김 양과 나주연, 간호사 후드의 감정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도 개인적인 일이라 그냥 지켜만 보고 있었는데, 그렇게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김 양과 나주연이 흔들릴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간호사와 후드도 약간이지만 그럴 조짐이 있었고.
[사실상 모든 정보와 보안 시스템을 총괄하고 있는 후드는 어떻게 하고? 걔들 전부 서른 넘을 때까지 희망 고문할 거냐? 서른 넘은 뒤에는? 걔들 늙는 건 걔들이 선택한 거니까 너는 책임이 없다고 하려고? 되겠냐?]“······.”
감정을 볼 수 있는 기순이 대놓고 이야기하자, 마루는 할 말이 없었다. 소설이나 만화에서야 별별 상황이 다 나온다지만, 지금은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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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 금괴를 쓰다듬으며 힐링하던 김 양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금을 쓰다듬으면 모든 번뇌가 사라지고 행복한 기분이 들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금만으로는 만족하기 어려웠다.
만족하기 어렵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금 말고 또 뭔가가 더 필요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야.’
아마 금이 부족해서 그럴 거다. 일본에 싱크홀 같은 게 없었으면 금을 더 챙겼을 텐데. 그놈의 싱크홀에 이상한 괴물들이 넘치는 바람에 이렇게 됐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식인귀들 때려잡았으니까 식인귀들이 가지고 있던 금은 우리가 먹어도 되는 거 아닌가?
‘선거는 무슨 얼어 죽을 선거.’
변이 바이러스 사태 당시를 생각해 보면 답이 없었다. 당시 분노조절 장애에 걸린 사람들이 왜 넘쳤었나?
분노조절 장애 걸린 사람들 강경 진압했다가 표 떨어질 걸 걱정한 정치인들이 어리바리 대응하다가 개판이 났던 거 아닌가?
레밍 무리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는 것처럼, 투표 결과가 집단 자살로 나오면 집단 자살할 건가?
선거로 뽑은 정치인이 정상적일 거라고 누가 장담하나? 선거로 뽑아 놨더니 바로 식인귀 테크 타서 뽑아 준 국민을 식량으로 만들었지 않나?
식인귀 정부가 계엄을 선포하고, 계엄 사령부를 이용해 통제했기에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 화폐)가 성공할 수 있었다.
‘아닌가?’
종말에 중요한 건 선거가 아니었다. 그걸 마루도 알 텐데 어째서 선거에 집착하는 걸까?
김 양은 솔직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어쩐지 짜증 나는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짜증 낼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최고 존엄이 하고 싶은 대로 한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었다. 선거 결과로 한국이 망해도 상관없었으니까.
‘흐응- 잘못했다고 해야 하나?’
잘못한 건 잘못한 거지만 백정성질 머리 어디 안 갔다는 듯 그냥 살기 뿌린 걸 보면 또 그랬다.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그래도 역시 인생 성공하고 볼 일이었다. 마루 옆에 붙어서 여기까지 오지 않았다면 호텔 특실에서 이럴 수 있었겠나?
흐으으응-
그런데 요즘 따라 눈에 거슬린다는 말이지. 나주연도 그렇고 간호사랑 후드도 어쩐지 개기는 것 같기도 하고.
특히 나주연.
마연시로 할 거 다 하면서 아닌 척하는 년. 약혼자라고 발광하던 년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얌전한 걸 보면 괜히 기분이 나빠진다고 할까?
[삐익- 뭐하냐?]마루의 목소리에 김 양이 침대 끝에서 다시 침대 끝으로 뒹굴뒹굴 굴러 애착 금괴를 잡았다. 묵직하고 차가운 느낌이 긴장을 풀어줬다.
“뭐 안 함.”
[밥은 먹었냐?]“아직. 저녁 시간은 아니잖아.”
[그럼 우리 예전에 탈출하면서 먹었던 고깃집 기억나냐?]그때 그 생고기 집?
“응. 기억 남.”
[저녁 거기서 먹을래?]갑자기 웬일이래.
“좋음.”
[1시간 뒤에 거기서 보자.]“알겠음.”
저녁으로 소고기를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김 양이 흥얼거렸다.
고기. 고기. 생고기. 한우 투-플 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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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양의 불만은 소고기 한 번으로 깨끗하게 사라진 듯싶었다. 나주연도 만 단위가 넘는 DNA 시술과 전뇌 수술로 욕구(?)가 해소됐는지, 김 양과 부딪치는 일이 없어졌다.
기순은 조금 어이없었다. 소고기 한 번 먹으니까 해결된 김 양도 그렇고 수술하고 실험하게 뒀더니 얌전해진 나주연도 그렇고 정상이 아닌 년들이었다.
밥상을 차려줘도 못 먹는 년들 같으니라고.
기순은 고개를 흔들었다.
‘남은 희망은 간호사와 후드인가?’
후드는 반쪽 가면을 그냥 쓰고 있는 거로 봐서 쉽지 않을 것 같고.
‘간호사를 움직여 봐야겠어.’
누가 됐든 일단 한 명과 이어지기만 한다면, 나머지는 줄줄이 이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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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와 데이트 한 번 해보지 않겠느냐는 기순의 말에 간호사가 웅장하게 반응했다.
“에에에엣. 데. 데이트요오오오–”
그분이랑?
단둘이 데이트?
순간 뇌리에 떠오르는 영상.
동공에 빛이 사라진 김 양과 주사기를 들고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나주연. 그리고 반반 가면을 쓴 후드의 휘어진 입꼬리까지.
어?
음.
무리.
“에···. 생각해 주셔서 마음은 감사하지만···.”
[김 양과 나주연은 이미 각자 한 번씩 데이트했던데. 괜찮겠습니까?]김 양은 고깃집에서, 나주연은 연구실에서 말이죠.
“그. 그럼 저도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