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789)
러스트 [RUST]-789
간호사, 오노 나나에의 심장은 콩닥거렸다.
여러 차례는 아니었지만, 그녀 또한 마루 연애 시뮬레이션(마연시)를 경험해 본 적이 있었다.
‘두 사람이 먼저 데이트했다고 해도, 별일은 없었을 거야.’
그래서 김 양과 나주연이 고기와 연구에 만족하는 이유도 대충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순했지 멍청한 건 아니었으니까.
‘잘못 짚으면 그걸로 위험해질 테니까.’
나주연은 지뢰를 자주 밟아 게임 오버가 빨랐고. 김 양은 지뢰는 잘 피했지만, 관계 진전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은 ‘음-’ 콩닥콩닥 심장이 터질 듯 뛰는 바람에 잠시 숨을 고른 간호사가 ‘으싸-’ 주먹을 움켜쥐고 일어섰다.
마지막에 했던 마연시에서 김 양과 나주연, 후드의 눈치가 보여 끝까지 가지 않았지만···. 빨갛게 홍조가 든 간호사의 얼굴엔 결전의 의지가 떠올랐다.
‧
승부를 보겠다는 결연한 간호사라고 했어도, 마루가 본 그녀는 잘 익은 홍시가 퐁-하고 터지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어디 아픈 건 아니지?”
“후에에엣- 아니요. 아니요. 괜찮아요. 진짜 정말 괜찮아요.”
뭔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마치 도둑이 들킨 것처럼 펄쩍 뛰는 모습. 마루는 그런 간호사의 행동에 ‘내가 그렇게 부담스러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기순이가 말 한 대로 불만이나 욕구를 어느 정도 해소해 줘야 할 필요성이 있는 건 사실이었기에, 간호사가 가진 욕망이 무엇일지 생각해 본 마루였다.
‘김 양은 고기와 금으로 급한 불은 껐고 나주연은 이번 DNA 치료와 전뇌 연구 허가로 됐으니까.’
간호사가 좋아하는 건 뭘까?
동물들이랑 이야기하는 거?
새로운 동물 친구를 찾아봐야 할까?
최근 강제 합류한 까치들은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면서 농사 구역에 자본주의 인간의 접근을 거부하고 있었다.
김 양이 억지로 붙잡고 이주를 밀어붙였던지라 까치들도 불만이 많을 터,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간호사가 가면 까치들도 좋고 간호사도 새로운 동물 친구가 생기니 좋겠지.
그렇게 간호사를 데리고 까치 마을로 가려고 하자, 기순의 통신이 들어왔다.
[지금 어디 가는 거냐?]“어딜 가긴···. 근데 지금 나 감시하고 있는 거냐?”
[감시는 얼어 죽을. 너님이 왕님이거든요. 왕이 어디로 가면 호위가 따라가야지 그냥 있겠냐?]“언제부터 호위했다고.”
신성 왕국에서야 이중삼중으로 안전하니 그렇다고 쳐도, 한국에서는 호위하는 게 당연했다.
[언제부터 호위하긴, 왕님이 단독 작전할 때 빼고는 멀찍이서 호위하고 있었거든. 김 양이랑 친위대가 뭐라고 생각한 거냐?]“······.”
[그리고 지금 어디로 가는 거냐? 그쪽으로 가면 시골인데. 너 설마 까치 마을에 가는 건 아니겠지?]“······.”
마루의 침묵에 기순이 탄식했다.
[아니··· 너는 어째.] [하- 진짜-] [아- 정말-] [혹시···. 간호사 데려가서 새로운 동물 친구들과 만나게 해줘야지. 이딴 생각은 아니겠지?]“······.”
묵비권 행사에 기순이 버럭 했다.
[간호사 힘주고 나온 거 몰라? 데이트한다고 기대하고 있는데, 기껏 데리고 나가서 까치 마을가서 일 떠넘긴다고? 실화냐?]“일을 떠넘기는 게 아니라.”
[갈!!!]통렬하게 외친 기순이 진정하곤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고 보면 중학교 때까지야 인기가 많았던 마루였지만, 마루네 집안이 망한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실 소년 가장이나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장학금 받고 대학에 진학했어도, 형편이 좋지 않은 건 똑같았다. 빠른 군대와 전역 그리고 월드 축산에 입사해 야근에 특근에 주말까지 전부 뺑뺑이 돌았었으니, 사실상 여자와 엮일 시간 자체가 없었다.
주변에 있는 여자라고 해봐야 여동생 나루, 모친 오 여사. 그리고 약혼녀 나주연. 여자랑 놀 줄 모른다고 할 게 아니었다.
오히려 여성에 대한 포비아(phobia, 공포증 또는 혐오증) 같은 게 생기지 않은 걸 칭찬해야 할 상황.
[···계획이 따로 없으면. 하- 분당, 동탄 넘어가지 말고 그 근처 카페부터 가라. 그쪽에 제법 유명한 베이커리 카페가 있는 것 같으니까. 그쪽 아니면 브런치···.]“카페는 밥 먹고 가는 게 아니고?”
[아. 좀-]기순이 발작했다.
‧
간호사는 조수석에 앉아 물을 마셨다. 그분이 친히 운전하시는 자동차를 타다니. 이건 마연시에서 경험하지 못한 이벤트.
‘어. 어디로 가는 거죠.’
모르는 척 고속도로 옆을 보자 휙휙 지나가는 모텔과 호텔들.
후- 후에-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물을 마시곤. 또 물을 마셨다. 차가운 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 뜨겁게 달아오른 위와 심장을 식히는 느낌 끝에 아슬아슬하게 차오르는 감각.
‘어. 어디까지 가는 거죠?’
힐끗- 옆을 쳐다보니 심각한 표정으로 통화하는 마루의 옆모습이 보였다.
“카페는 밥 먹고 가는 게 아니고?”
카페?
밥 먹고 간다고?
아직 점심시간은 아닌데.
어쩐지 바싹바싹 입이 말라 다시 물을 마시는 간호사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물을 많이 마셨다는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저. 언제쯤 도착하나요.”
“조금만 가면 돼. 어디 불편해?”
“아. 아니요. 후-”
어쩐지 이리저리 몸을 꼬는 간호사였다. 그렇지 않아도 빨갛게 달아오른 간호사의 얼굴인지라, 마루는 고개를 끄덕이곤 운전을 계속했다.
‘기순이가 유명한 집을 알려주긴 한 거 같은데.’
유명한 브런치 카페라는데 진입하는 도로가 번잡했다. 설상가상으로 접촉사고가 났는지, 앞에서 꽉 틀어막힌 상황.
간호사는 이제 식은땀이 솟기 시작했다.
‘아- 아아아-’
오줌 마렵다고 화장실 가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부끄러웠다.
참는 것도 한계라서 간접적으로 표현했는데 마루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간호사는 그쪽의 긴장감과 이쪽의 긴장감이 합쳐져 미칠 것 같았다.
브런치 카페가 목적지라는 소리를 들었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데, 그 짧은 거리가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입은 바싹바싹 마르고 심장은 쿵쿵 뛰고 그곳은 찰랑찰랑 넘칠 것 같고, 온몸에서 송송 땀방울이 나는 것을 모를 정도로 간호사는 절박했다.
“괜찮아. 어디 아픈 건 아니야?”
훅 들어온 마루의 목소리에 간호사의 눈동자가 옆으로 돌았다. 그리고 스윽- 볼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손수건의 감촉.
?
마루가 손수건으로 그녀의 식은땀을 닦아주고 있었다. 따뜻한 손길. 걱정이 가득한 눈빛과 표정. 그 참을 수 없는 상냥함에 간호사의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
영혼까지 끌어당겨 참고 있던 긴장감이 풀어지는 순간.
후- 후에에에엥—-
이상한 소리를 낸 간호사가 차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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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112만 명이 넘는 신생아 가운데 37만 명이 DNA 시술과 전뇌 수술을 받고 현장에 투입됐다.
[지방군에게 휴가를 주고, 그 자리를 대체하는 건 어떨까? 저번에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지방군의 불만이 커서 그것부터 잡아야 할 것 같아.]마루가 생각하기에도 지방군이 통째로 일본 난민 세력에 합류한 것은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정신계 능력이나 지배력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전부 넘어간 것은 문제가 있었다.
“흠- 일단 가족들과 만나는 시간을 주자는 거네. 걱정하지 않게.”
[그래. 휴가를 쓰면 불만이 좀 가라앉겠지.]“그리고 재생부대가 한국군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할 생각이고.”
[그건 겸사겸사 혹시 모르니까.]“음흉하기는. 그렇게 하자.”
[내가 뭘 했다고 음흉이냐?]휴가 지원을 핑계로 지방군에 신성 왕국 재생부대를 넣자는 건데, 그게 음흉한 게 아니면 뭐가 음흉할까. 마루는 결백하다고 주장하는 기순을 보고 픽- 웃었다.
[저기-]두 사람의 티키타카 사이에 나주연이 끼어들었다.
[재생부대는 바로 군사 작전에 투입하기보다 간단한 업무부터 보도록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혹시 모르니까 그게 좋겠다.]기순도 나주연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렇게 가칭 재생부대는 지방군이 담당하던 농업을 맡았지만, 나중에는 인천의 중국 난민과 부산의 일본 난민들과의 무력 분쟁에 투입됐다.
양산형 엑소슈트로 무장한 재생부대는 막강한 전투력을 뽐냈다.
보조 인공지능이 HUD에 정보를 띄우는 방식이 아닌, 말 그대로 모든 정보가 뇌 속에 직접 전달되는 방식은 확실히 효과적이었다.
드론이 정찰한 영상이 직접 전달됐고 다양한 센서로 파악한 정보도 바로 인식할 수 있었으니, 그만큼 대응과 반응이 빨랐다.
심지어 그 대응마저 전자칩에 내장된 대응 방식과 결합한 행동인지라, 행동하는데 일말의 주저함이 없었다.
특수부대의 훈련과정에 주저함을 없애는 훈련이 따로 있을 정도로 쉽지 않은 게 주저함이었다.
“놀랍군.”
[그러게.]마루와 기순이 놀랄 정도였다.
거기에 정신계 능력과 지배력에 저항력이 있었다.
[전뇌화의 영향으로 보여요.] [정신계 능력과 지배력에 면역 판정이라. 확실히 예상보다 더 괜찮은 것 같네.]전부 좋지만은 않았다.
칩에 내장된 정보에는 없는 일이 터진다거나, 처음 접하는 상황에서는 임기응변이 약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무엇보다 제일 큰 단점은 EMP(ElectroMagnetic Pulse)에 취약하다는 점이었다. 네트워크에 직접 연결되는 방식인지라, 해킹에도 취약했고.
그 부분만 뺀다면 재생부대의 전투력은 일반 부대보다 더 뛰어났다. 이는 총선거를 앞에 둔 새내기 정치인들 사이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양성하는 군대가 가능하다는 이야깁니다.] [심지어 쿠데타의 걱정도 없는 군대입니다.]머리에 박은 칩을 이용해 통제할 수 있으니, 쿠데타나 명령 불복종 따위는 없는 군대였다.
장애 판별이 난 아이를 치료해 제대로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게 하다니, 논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신성 왕국과 협정을 체결해, 의료 기술을 도입하겠습니다.] [장애가 없는 나라. 노산의 공포가 없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약물 중독, 알콜 중독, 도박 중독 없는 깨끗한 나라! 이룩하겠습니다.]기술 이전을 한다는 소리도 없었는데 정치인들은 너도나도 신성 왕국의 기술을 받아들여 어떻게 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제정신들이 아니네. 누구 마음대로 그러겠다는 거야?”
[그나마 우리와 좋게 지내자고 하는 쪽이 낫지. 대놓고 우리를 배제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더라.]기순의 말에 마루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배제? 지금 같은 상황에서 우리랑 갈라서겠다고?”
[우리를 싫어하는 쪽의 표를 확 끌어당기겠다는 소리라서 뭐.]신성 왕국은 식인귀 정부가 추진했던 업무를 대부분 유지했다. 다만 한가지 손을 본 것이 있다면, 임산부를 집중적으로 지원했던 정책을 변경했다.
최소 50%에서 최대 80%에 달했던 할인율을 낮춰 50% 할인으로 고정했고, 그렇게 해서 생긴 재원을 모아, 군 보급의 질과 양을 높였다.
[신성 왕국은 약속을 어겼습니다. 새로 구성된 정부에 모든 것을 맡긴다고 했으면서 보십시오. 군을 장악하기 위해 하는 행동을.] [신성 왕국이 112만 명이 넘는 신생아를 전부 데려가겠다고 한 것을 막아야 합니다.] [임산부에 대한 지원을 줄이고 군에 예산을 돌린 신성 왕국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선거가 가까워질수록 무리수가 넘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총선거가 이뤄졌다. 신성 왕국의 기술력을 이용한 선거였다. 본인인증을 통한 자택 선거. 결과는 친 신성 왕국 정치인과 반 신성 왕국 정치인이 거의 절반에 가까운 비율로 당선됐다.
[신성 왕국과 함께 미래를 대비하자는 것이 시민들의 뜻입니다.] [신성 왕국이 헤집어 놓은 질서를 복구하고 굴종적인 관계가 아닌, 당당한 관계를 새로 정립하라는 국민의 목소리였습니다.]양측은 서로 자신들의 승리라고 주장했지만, 신성 왕국은 따로 논평하지 않았다. 오직 신생아 입양과 한국군에서 이민 신청자를 받고 바로 실어나르기 시작했다.
“상관없어. 처음에 했던 약속대로 하는 거니까.”
식인귀를 배제한 선거가 끝났지만, 현실은 변한 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