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79)
러스트 [RUST]-79
광학 망토를 걷어 내리자, 작은 얼굴이 보였다. 그러니까 이름이 뭐였더라.
살짝 위를 봤다. 콕핏에서 아래를 향해 발터 P22를 겨누고 있는 김 양이 보였다. 백업은 제대로 됐고, 주변에 다른 낌새는 없었다. 어두운 밤이라 얼굴색이 잘 보이지 않았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달빛으로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창백했다.
당장 기순이랑 김 양을 고치려면 그 핑크빛 약이 필요했지만, 그걸 티 내면 좋지 않았다. 그럼 강하게 나가야지. 태연하게 ‘네가 왜 여깄어?’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각자 갈 길 가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
왜 대답이 없냐고 노려보자, 대답 대신 풀썩-옆으로 쓰러지는 경호원. 그 조그만 몸통에 작살이 박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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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가 중간에 깼음에도 간호사는 빠릿빠릿했다.
“에. 이게. 어- 작살 뽑으려면 중간을 잘라야 하겠는데요?”
지금 의문형이었나? 마루의 눈을 슬쩍 피하는 간호사였다. 알루미늄 합금으로 보이는 작살을 자르려면 그라인더든 원형 톱이든 필요했다. 다행히 엔진실 공구함에 그라인더가 있어 그걸로 작살을 잘라냈다.
작살을 뽑아내자 피가 퓩! 하고 솟았다. ‘출혈! 출혈!’ 간호사가 콩 튀듯 튀기 시작했다.
“진정해요. 진정하고.”
“출혈. 혈관이요. 지혈. 지혈이.”
빠릿빠릿했던 간호사가 사색이 돼서 허둥지둥했다. 그러니까 작살이 영 좋지 않은 곳을 뚫었는데, 작살을 잘라 뽑으면서 출혈이 생겨 지혈이 어렵다는 소리였다. 그럼 위험하다는 소린데.
“환자 의식부터 찾을 수 있게 할 순 없나요?”
“아뇨. 피를 많이 흘려서. 당장은 힘들어요.”
경호원의 목덜미와 팔목을 살폈다. 목덜미에는 아무것도 없고, 팔목에는 팔찌가 있었다. 가죽끈을 엮어 만든 팔찌에는 작게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이름은 하츠네 아야코, 혈액형은 A형. 먼저 의식부터 찾게 해야 했다. 그럼 샬롯 사장인지 대역인지가 어딨는지 위치가 나올 거다. 일단 가면 비상시 쓸 약이 있겠지, 그럼 기순이부터 치료하고.
출혈을 잡겠다고 작살 구멍을 거즈로 압박하면서 지혈제를 뿌리고 있는 간호사. 근데 급하면 그냥 순간접착제로 틀어막으면 되는 거 아닌가? 마루는 공구함에서 초강력 순간접착제를 가져와 뿌렸다..
간호사가 말리고 어쩌고 할 시간도 주지 않고 휙- 뒤집어서는 관통된 부위에도 뿌렸다. 순간접착제가 순식간에 엉겨 붙어 출혈이 멈췄다.
에? 하는 얼굴의 간호사.
“출혈은 일단 멈췄죠? 이 사람 혈액형 A형인데.”
밖에서 경계하고 있는 김 양에게 묻자, A형이라고 했다. 마루는 간호사를 봤다.
“저 A형이요.”
김 양과 간호사에게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로 뽑은 피로 수혈이 시작됐다. 그렇게 동쪽 하늘이 서서히 환해질 무렵. 경호원이 정신을 차렸다.
“그래서, 당신이 왜 여기 있습니까?”
샬롯에서 장비 올려주고, 내부공사 마무리했으니, 위치추적기 같은 걸 붙이기 쉬웠을 것이다. 설령 붙이지 않았더라도, 샬롯 그룹 정도라면 위치정보 정도는 확인할 수 있을 테니 배의 대략적인 위치는 파악할 수 있었을 터.
“······.”
“······.”
대답이 느리네, 머리 굴리는 건 싫은데. 이럴까 저럴까 고민하던 찰나 경호원이 바싹 마른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전기를 꺼놓고 있지 않았습니까. 무전을 해도 연락을 받지 않아서.”
“······.”
아-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 계속 시끄럽게 해대서 무전기를 끄고 다녔다. 그래서 어쩌라고?
“무전기가 꺼져있든 아니든 당신이 여기에 있는 이유로는 부족한데? 찢어져서 각자 움직이는 거로 하지 않았었나? 그러기로 한 거 아니었어?”
“비상시에 연락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근데 그것도 연결되지 않더군요.”
비상시는 무슨 비상시. 나중에 받은 위치 어쩌고랑 무전기도 그냥 객실에 던져 넣고 잊고 있었다. 그걸 왜 들고 다니나? 그래서 결론은 비상시라 연락을 했는데, 이쪽에서 받지 않으니 쪼르르 달려왔다는 소리.
“보다시피 이쪽도 비상시라서 연락받고 자시고 할 겨를이 없었어. 갈매기가 지랄이더니 바다도 개판이었고.”
경호원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쪽은 뭣 때문에 이 꼴이 났는지 정보가 좀 있고? 갈매기들은 왜 그런데?”
“바이러스가 동물에게도 감염된다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바이러스 창궐 사태 초기, 아파트 단지에서 개나 고양이를 밖으로 던지는 영상이 있었다. 동물들을 막 죽이는 영상. 사태가 처음 터진 나라에서는 바이러스에 대해 뭔가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렇게 대응했겠지, 그리고 지금은 그 바이러스가 변이된 상황.
“변이된 바이러스도 동물에게 전염된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동물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구체적인 것은 불분명하지만, 공격성이 극도로 강해진다는 건 확실합니다.”
확실히 갈매기들이 했던 짓을 떠올려보면 그랬다.
“도쿄만 인근에 있는 배들이 전부 표류하고 있는 이유는 뭐지? 화물선부터 대형 여객선까지 전부 한 번에 문제가 생길 수는 없을 텐데?”
“원인을 알 수는 없지만 강력한 전자기장이 터진 것은 아닌지··· 쿨럭, 그렇게.”
간호사가 경호원에게 물을 먹였다.
“그만요. 이제 막 의식을 차렸는데, 지금 환자는 안정을 취해야 해요.”
경호원인데 이 정도는 괜찮지 않나? 쩝- 이제 좀 뭔 일이 벌어졌는지 정보를 얻나 했더니, 마루가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경호원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전기. 비상용 무전기를···.”
어차피 호텔 샬롯 사장인지 대역인지를 찾기는 찾아야 할 상황이었다. 기순이와 김 양을 치료하는데 그 핑크 약보다 더 확실한 건 없으니까.
선실로 내려가 비상용 무전기라고 받았던 걸 작동시켰다.
[치지직··· 치직.] [삐이이이- 삑..] [치치–치오.스.]먹통인데?
비상 무전기가 먹통이라는 말에, 좋지 않았던 경호원의 얼굴색이 더 나빠졌다.
비상 위치추적기인지 발신기인지도 있었지만, 그것도 거리 밖이라 표시가 되지 않았다. 천상, 경호원이 어느 쪽에서 왔는지 대략적인 방향을 알면 그쪽으로 가, 전파가 연결되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배신당했습니다.”
일부는 배신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규슈지역 지부 전체가 배신할 거라 예상하긴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규슈는 부산과 가까운 지역이었다. 샬롯 호텔과 규슈와의 경제적 연계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1년 가까이 경제적인 문제가 있었기는 하지만···. 지부 전체가 한통속으로 배신할 줄은···.”
“그래서 결국 덫에 제 발로 들어갔다는 겁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크흡- 허- 배신자가 있을 거라 예상했기 때문에 경로를 숨기고 이동했습니다.”
“그런데요? 또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까?”
이동 경로를 극비로 했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 아닌가?
“화산 연쇄 폭발로 전용기나 헬기를 이용하는 경로가 끊겨, 바다를 이용하는 방법밖에 남지 않아서. 크- 비상 연락망을 갖춘 항구에서 배를 갈아타고 출발했는데···.”
배에 탄 인원 가운데 부산에서 배를 몰고 온 직원을 제외한 전부가 한마음 한뜻으로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
“배 위에서 난전이 벌어졌고, 이 배의 위치가 가까운 곳에 있어서 무전을 보냈는데 받지 않아서 직접 오게 됐다. 이런 이야기입니까?”
경호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고무보트 타고 올라온 놈들은 경호원을 추적해서 온 놈들이라는 소리고. 경호원이 작살 맞고 여기까지 왔을 상황이라면···
“이미 늦은 것 같습니다만.”
배신을 한 사람들이 사장이든 대역이든 살려둘 이유가 없어 보였다. 아쉬웠다. 그 핑크빛 약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어려워 보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높은 소리를 내곤 숨을 색색 몰아쉬는 경호원이었다. 간호사가 경호원은 진정시켰다. 여차하면 진정제인지 수면제인지를 꽂을 자세였다.
“그렇지 않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놈들도 본사도 약의 레시피를 원하고 있어서 바로 어떻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
메가 요트에는 자체적으로 생존 가능한 안전 객실이 있었다. 배가 침몰을 하더라도 분리되어 생존 가능한 구조였다. 그곳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버티고 있으니 당장 어떻게 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경호원이 거칠어진 숨을 내쉬며 뭐라고 더 말하려고 했지만, 간호사는 냉정하게 수면제를 꽂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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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에 지도를 펼쳐, 부유물로 이동하기 힘든 해역과 갈매기들이 날뛰었던 곳을 표시했다. 상당히 넓은 지역이 표시됐다.
경호원이 온 곳으로 추정되는 방향은 여기서 대략 8~10km가량 떨어진 곳. 육지에서는 4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사가미만 안쪽이었다.
배신한 자들의 숫자는 31명 거기에 부산에서 같이 온 직원들이 14명에 사장 대역, 경호원 2명 해서 17명이었다. 31명과 17명이 붙었으니 일반적이라면 절반은 줄였겠지만, 배신으로 기습당했다면 적들의 숫자가 많이 남았을 수 있었다.
마루는 이렇게 저렇게 스트레칭했다. 아직도 미세한 근육통이 남아있었다.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는 증거.
‘경호원을 따라 고무보트 타고 온 적이 2명. 2명이 줄었다고 해도 20명은 더 있다고 봐야 하겠어.’
사장인지 대역인지 구했다고 치고, 도쿄만은 배가 들어가기 힘든 상황인지라 육로로 간다면, 사가미만에서 요코하마와 가와사키를 거쳐 도쿄까지 대략 40km를 가야 했다.
왕복 80km 중간에 하루 쉰다고 하면 2일 문제가 생기면 3일. 이틀에서 삼일을 별일 없이 있을 수 있을까? 배를 정박하는 것은 위험했다. 근처에 있는 배들이 전부 운항 불가능 상태니 움직일 수 있는 배가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면 사람들이 꼬일 게 분명했다.
‘배는 좀 떨어진 바다에 정박하고 있는 게 맞아.’
밤바다가 지랄 같기는 해도, 사람들보다는 덜했다.
김 양은 마루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오른팔 깁스는 여전히 무겁고 불편했다.
“그래서, 나 혼자 갔다 온다. 치료제를 챙기자마자 바로 오겠지만 3일은 생각하고 있어야 해. 경호원이나 간호사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거야. 기순이도 마찬가지고.”
경계를 최우선으로 여차하면 더 먼 바다로 가는 것도 생각하고. 가는 김에 신분을 바꿀 수 있으면 좋겠지만, 어렵다고 생각하고 치료를 최우선으로 생각할 것이라고.
김 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부탁한다.”
마루는 단검과 글록 41을 챙겨 들고 고무보트를 내렸다. 느릿하게 노를 저어 멀어지는 모습을 본 김 양이 작게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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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해가 뜰 무렵 보트를 저어 거의 9시쯤이 될 무렵에서야 경호원이 말한 메가 요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늘에는 갈매기를 비롯한 새들이 없었다. 낮의 바다는 부유물이 둥둥 떠다니는 것을 제외하면 잔잔했다.
밤이면 모르겠는데 낮이라 메가 요트에 접근하기 쉽지 않았다. 수영해서 가면 좋겠지만, 밤에 그 꼴을 봤는데 수영하겠다고 들어갈 자신은 없었다.
거리가 얼마 안 남았으니까 모터를 쓸까? 뾰족한 방법이 없다면 속전속결이 답이었다.
부우우웅
낮은 모터음과 함께 고무보트가 내달리기 시작했다.
덜컹. 부유물에 튕겨 올라가는 고무보트. 가가가각하는 갈리는 소리가 모터에서 나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일직선 최단 코스로 메가 요트를 향했다.
작게 보였던 메가 요트가 팔뚝보다 크게 보일 때쯤 살기가 느껴졌다.
찌릿한 살기.
저격수?
보트에 납작 엎드리자 날카로운 파공음이 허공을 찢었다.
탕!
탕!
고무보트에 맞았지만, 바람이 급격하게 빠지거나 하지 않았다.
펑- 끼리리리릭
모터 스크류에 뭐가 걸렸는지 덜컥덜컥하는 것과 동시에, 모터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조금만.
조금만 더.
덜덜덜 떨어 대는 모터.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하는 바다.
메가 요트에서 저격총을 들고 있는 사내의 얼굴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