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793)
러스트 [RUST]-793
끝없이 펼쳐진 과수원에 압도당한 까치들이 멍한 눈빛으로 날아올랐다.
파다닥-
부드득-
아파트 5층 높이까지 날았는데도, 과수원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까아아? (이거 실화냐?)
까아악? (꿈은 아니지?)
폴짝 날아서 한 바퀴 돌면 끝이었던 과수원도 엄청나게 큰 과수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게 과수원?
까치마을 촌장 까치는 엄청난 과수원의 규모에 공포심마저 느꼈다. 동네 까치만으로는 과수원 귀퉁이도 관리하기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
퍼득- 퍼득- 날개를 힘차게 퍼덕이는 것으로 정신을 가다듬은 촌장 까치가 길게 소리쳤다.
까아아아아아- (일단 다들 모여봐.)
촌장 까치의 소집에 사방팔방으로 유체 이탈하던 까치들이 정신을 차렸다.
여기가 정말 우리 마을이랍니까?
그려. 그리 약속하고 온 거니까.
그건 그런데.
일단 깃털부터 꽂아야겠지.
먼저 해야 할 건 영역 설정.
까치는 텃새, 영역 구분이 확실한 새. 그러니까 여기 과수원은 우리 것이라는 영역 설정이 먼저였다.
근데 여기 전부가 우리 영역이라고?
이거 관리하려면 알을 많이 낳아야겠는데?
근데 지금 겨울이잖아. 알 낳을 때가 아닌걸.
괜찮아. 괜찮아.
여기 인간들이 집 좋은 거로 준다고 했고, 날 풀릴 때까지 먹이도 넉넉하게 준다고 했어.
겨울에 뭔 할 일이 있겠는가? 다들 봤지? 우리 영역.
그거 관리하려면 열심히 알부터 낳자고.
까마귀들이 알을 낳지 않아, 데려온 한국산 까치들이 열심히 숫자를 늘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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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지나 순식간에 수은주가 영하로 떨어질 무렵.
까악? (저 새끼들은 뭐지?)
인간들이 관리하지 않아 자연스럽게 열린 과일들이 그대로 방치됐던 과수원. 작년에 한 바퀴 돌며 과일 서리를 했던 곳으로 놀러 온 까마귀들의 눈에 어쩐지 기분 나쁜 새가 눈에 들어왔다.
덩치는 비슷하거나 조금 작은 놈들인데, 울음소리가 비슷하게 생긴 놈들이 까마귀를 보자마자 발작적으로 발광하기 시작했다.
까아아아악! (까마귀다아아악!)
까악? 까아악! (어디여? 어느 쪽이여?)
건물에서 우르르 몰려나온 까치들이 기분 좋게 시원해진 과일을 쪼고 있는 까마귀들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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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을 보고받은 기순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까마귀와 까치가 패싸움했다는 겁니까?”
[예. 다행히도 죽은 건 없었지만, 부상만 30마리가 넘을 정도로 과격한 싸움이었습니다.]“아니, 까마귀들이 과수원에는 왜 갔답니까?”
[작년에도 겨울 전에 버려진 과수원에 가서 과일을 먹었었다고.]길고 긴 혹한의 겨울, 마른 과일만 먹기 전에 시원한 과일을 먹으려고 했다는 이야기에 기순이 가슴을 두들겼다.
“그렇다고 200km가 넘게 날아갔다고요?”
[예. 재작년과 작년에 버려진 과수원인지라 올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그런데 까치들이 다짜고짜 공격해, 반격했을 뿐이라며.
[양아치 까치에게 과수원을 넘기느니 차라리 자기들이 관리하겠다고. 과수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일단. 까마귀들에게 전부 까치가 과수원을 맡기로 했다고 알리죠. 그리고 까치들에게 까마귀들은 같은 편이라고 알리고요.”
데려오면서 분명히 까마귀들은 같은 편이라고 교육했었는데, 왜 지랄이란 말인가?
[까치들 주장으로는 까마귀들이 떼로 몰려와 도둑질했다고···.]“아니. 농사를 시작도 하지 않았으면서 자연적으로 열린 과일 먹었다고 도둑질이라니.”
기순이 어이없어하자, 중재하러 나간 병사가 설명했다.
[과수원을 양도했으면, 거기서 나온 과일도 같이 양도한 것 아니냐는 데요.]“······.”
이것들이.
그렇지 않아도 이민자들 때문에 복잡한데, 까치와 까마귀가 말썽이었다.
어떻게 할까?
기순이 고민하는데 여기저기서 긴급 보고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까치들이 동료를 죽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까치들이 까마귀가 어린 까치를 납치, 살해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까치와 까마귀 실종사건입니다.] [상대방이 범인(?)이라면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기순은 바로 왕님에게 연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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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 왕국의 행정부는 갑작스럽게 늘어난 업무량 처리로 비상에 빠졌다. 긴 겨울을 대비하는 것도 상당한 행정력이 필요한데, 정말 200만이 넘는 이주자들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4개월이라는 준비 기간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200만이 넘는 이주민을 신성 왕국 전역에 분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상현실로 충분히 교육해서 큰 문제는 없을 거예요.”
200만 가운데 100만은 신생아를 급속 생장시키고 기억을 주입한 인력이었다. 대략 16~17살 정도의 나이로 급속 생장시켰고 필수 지식도 넣었기에 큰 무리가 없었다.
문제가 되는 쪽은 나머지 100만이었다.
20~30대 초반 병사들로 20만 그리고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여성들이 80만이었다. 80만 여성들은 한국 여성도 있었고 일본과 중국, 대만 난민 여자들을 합한 숫자였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한국군으로 50만을 채우고, 한국 여성으로 50만을 채워 100만을 만들려고 했지만, 한국 정부에서는 그 정도 병력이 한 번에 빠지는 건 어렵다고 해, 20만으로 조정했던 것.
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인으로만 80만을 데려가는 것은 한국의 성비가 무너졌기에, 난민들에게서 지원을 받았다.
여초로 기울어진 난민 캠프의 성비를 조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난민 캠프에서 신생아를 생산할 조짐이 보였기 때문에 그것을 미리 막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한국, 중국, 일본, 대만 여자들이 신성 왕국으로 이민 왔다. 여자가 80만이 늘어 가임기 성비 불균형이 한 번에 해소되는 것은 좋았지만, 적응 교육이 문제였다.
“문제가 없긴 왜 없음? 골 빈 년들이 왕창 늘었는데.”
“가상현실을 통해 한국과 신성 왕국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충분히 배웠을 거예요.”
“필요한 정보를 그냥 쑤셔 넣었어야지. 그래도 될까 말까인데, 시뮬레이션 게임 하듯이 놀러 다닌 걸 경험이라고 하는 년들이 뭘 하겠음?”
김 양이 가상현실에서 경험한 걸 그대로 올린 SNS를 모니터에 띄웠다.
#신성 왕국에서의 새로운 삶, #왕국의 수도, #캐나다의 대자연, #힐링, #토론토의 카페 등. 해외여행 온 듯한 해시태그가 넘쳐있었다.
“이것들 초장부터 잡지 않으면, 분명히 문제 생김. 한둘도 아니고 몇십만이 SNS로 분탕질 시작하면 분위기 망가지는 건 순식간이지. 시뮬레이션으로 병영 생활이나, 극한 생존 굴려서 정신 차리게 해야 함.”
“수도권과 대도시 인프라가 살아있는 한국에서 신성 왕국으로 넘어온 거잖아요. 낯선 환경에 온 여자들에게 먼저 보여줘야 할 건 신성 왕국이 한국보다 좋은 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자발적으로 잘 섞일 테니까요.”
겁주고 윽박지르는 것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효과적이라는 나주연의 설명에 김 양이 고개를 저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였다.
한 번 높아진 눈은 어지간해서는 내려가지 못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
그 실망을 누구에게 풀겠나?
자기 자신? 아니면 주변 사람? 이민 온 신성 왕국?
자고로 춥고 배고프고 해봐야, 등 따시고 배부른 게 행복이라는 걸 깨닫기 마련이니.
“편하고 좋은 것만 시뮬레이션 돌리다가, 실제 현실이 냉혹하다는 걸 접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음? 우울증약 달고 살면서 문제 일으키지 않겠음? 지금이라도 제대로 정신 차리게 해야지 아니면 두고두고 문제 생길지 모름.”
김 양의 주장에 마루가 동의했다. 옛날 나루를 떠올려 보면 가슴이 답답했다. 그와 비슷한 스타일의 여자들이 몇십만 단위가 들어온다면 그건 아니었다.
“김 양 말이 맞아. 지금까지 밝은 쪽을 보여줬다면, 이제는 어두운 부분도 알아야겠지. 전부가 디트로이트에 살 순 없고, 모두가 수상도시로 갈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신성 왕국은 남녀평등이었다.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 그렇기에 시민이 되려면 군역을 감당해야 했다.
군대에 가지 않는 것도 개인의 선택이지만. 군역을 하지 않으면 선거권에 제한이 있고 거주에도 제한이 있었다. 향후 수상도시를 비롯한 신도시에는 입주가 제한되는 것.
신성 왕국의 겉모습인 화려한 인프라와 풍족한 생활, 완벽한 치안 뒤에는 이러한 규칙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PD도 고개를 끄덕였다. 신성 왕국에 대한 규칙에는 HOLLY 교의 믿음도 있었으니, 신앙 교육도 필수였다.
“그래도 80만 명 가운데 절반만 모병에 응한다고 해도, 병력 부족 문제는 확실히 해소될 것 같군요.”
16~17세로 성장시킨 아이들도 2~3년 동안 경험을 쌓으면 병력 자원이 됐고, 재생부대는 이미 훌륭한 병력이었다.
“이번 원정으로 병력과 인력 부족은 해소됐어. 이런 방식으로 대규모 인력 충원은 하지 않을 생각이니까. 이번에 들어온 인력을 최대한 잘 교육하고 통합했으면 해.”
“알겠어요. 시뮬레이션 과정에 반영하도록 할게요.”
“좋아. 그건 그렇고 간첩이나 조직원, 식인귀는 다 잡았지?”
“네.”
가상현실에 접속하면서 기억을 확인할 수 있으니, 간첩이나 조직원, 식인귀를 잡는 건 확실했다.
“사상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정신병 있는 애들도 걸러.”
“네. 그렇게 할게요. 그럼 그렇게 걸러진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요?”
김 양이 죽이거나 추방하는 건 아깝다고 말했다.
“전뇌화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떰? 식인귀도 전뇌화가 가능한지 궁금하기도 하고.”
후드와 PD가 조금 불편한 얼굴을 했지만, 대놓고 반대하지는 않았다. 그건 마루도 마찬가지였다.
마루의 침묵에 김 양이 설득했다.
“어차피 추방하거나 뇌둥둥 만드는 건 너무 아깝지 않음? 전뇌화 기술을 발전시키면 범죄자에게도 써먹을 수 있을 것 같고. 식인귀에게도 적용할 수 있게 된다면, 식인귀도 노동력으로 쓸 수 있게 되는 거 아님? 진지하게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확실히 위험한 작전에 군대를 동원하는 건 아까웠다. 간첩, 조직원, 식인귀를 써먹을 수 있다면 나쁘지 않았다.
“추진해 보도록 하지.”
“그렇게 할게요.”
마루의 결정에 나주연이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캐나다 총독이 영상 통화를 요청했습니다. 연결할까요?]“연결해.”
영상 속 기순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까마귀와 까치가 싸우고 있다. 말릴 사이도 없이 싸움이 커지고 있어. 까마귀는 까치가, 까치는 까마귀가 동료를 죽였다고 주장해서 중재가 어려워.]“내가 간다고 당장 싸움 멈추고 떨어지라고 해. 내가 갔는데 그러고 있으면 뒈진다고 경고해라.”
마루가 직접 온다는 이야기에 피 튀기며 싸우던 까치와 까마귀가 휴전했다.
까아아악! (너흰 다 죽었어!)
까아아악! (죽는 건 너희들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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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는 제일 처음 살조(?) 사건이 벌어졌다는 농장으로 향했다.
매끈한 마루 전용 비행선이 과수원 한쪽 공터에 착륙하자, 중재를 담방했던 병사가 바로 튀어나와 경례했다.
“어떻게 죽었다는 거지?”
경례를 받은 마루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 주검은 없었습니다.]“시체가 없다고?”
증거 인멸을 했다는 소린가? 까마귀와 까치 지능을 따져보면 완전 범죄를 노릴 법도 했다.
[예.]“시체가 없는데 죽었다고 했다?”
[옛! 까마귀들이 과수원에서 동료가 사라졌다고, 까치들이 죽였다며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그래서?”
[까치들 주장은 까마귀들의 습격 이후. 어린 까치들이 실종됐다며 싸움이 커졌습니다.]“양쪽 모두 시체는 없고?”
[넷.]마루는 간호사에게 양측 주장을 들으라고 한 뒤, 에리카에게 사이코메트리를 하라고 했다.
‘간호사에 에리카면 둘 가운데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알겠지.’
순식간에 추워진 날씨로 과일나무에 서리가 내려있었다. 하얗게 빛나는 과수원을 향해 발걸음을 떼는 마루.
잠시 뒤 ‘에에에엣. 진짜요?’, ‘에에에에엣! 정말요.’하는 간호사의 목소리가 배경음처럼 깔리기 시작했다.
[차량을 준비할까요?]“아니. 직접 걷지.”
넓고도 넓은 과수원.
비행기나 헬리콥터로 농약을 쳐야 할 정도 규모인지라, 호위하는 친위대원들이 차량을 이용하길 권했지만, 마루는 직접 걷기를 선택했다.
차를 타고 휙휙 지나가면 놓치는 부분이 있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찝찝해.’
제일 이상한 점은 시체가 없다는 점이었다. 머리가 좋은 까치나 까마귀였으니, 상대방을 죽이고 시체를 숨겼을 수도 있다는 사실.
‘죽이고 숨겼나? 그랬으면 감정을 볼 수 있는 기순이 알아차렸을 텐데. 에리카의 사이코메트리를 피할 수 없을 테고.’
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별다른 이야기가 없는 것을 보면, 까마귀와 까치가 거짓말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뜻이었다.
‘양측이 서로 죽였다고 믿고 있다는 건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저벅-저벅-
마루의 발걸음 사이로 투명한 실이 밟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