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794)
러스트 [RUST]-794
투명한 실에는 끈적임이 없었다.
서리가 내려서 인지 눈에 잘 띄지도 않았고. 그래서인지 마루를 비롯한 친위대원들도 바닥에 깔린 투명한 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저벅- 저벅-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찝찝함이 올라는 느낌에 마루는 주변을 살폈다. 아무리 봐도 그냥 전형적인 북미 스타일 과수원.
현재 위치는 세인트-로렌스 강(Saint Lawrence River) 남쪽, 그러니까 제국 북쪽 캐나다 지역이었기에 까치와 까마귀가 실종된 이유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남부 연맹 식인귀들이 아무런 흔적도 없이 여기까지 왔을 가능성도 없는데.’
제국이 갑자기 수작을 부렸을 리도 없었고, 그렇게 해서 얻을 이익도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혹시 뭔가 놓치고 있는 걸까?
생명의 위협이 느껴지는 위기감도 아니고 은근히 계속되는 찜찜함에 마루는 왔던 길을 다시 되짚었다.
그래서 마루는 볼 수 있었다. 서리가 내린 발자국에 밟힌 투명한 실의 흔적을.
‘이건 뭐지?’
쪼그려 앉은 마루가 이클립스 칼집으로 쿡- 투명한 실을 눌렀다.
티이이이잉—-
접착력은 없지만 상당한 탄성과 강도가 느껴지는 투명한 실. 접착력을 제외하면 리치먼드(Richmond)에서 봤던 거미줄과 상당히 유사한 실이었다.
“이거 거미줄인가?”
[잘 모르겠습니다.]점성이 있다면 거미줄이 확실하겠지만, 끈적임이 없어 단정 짓긴 힘들었다. 거미 말고 실을 뽑는 곤충이 없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실을 뽑도록 변이를 일으킨 곤충일까?’
마루는 길게 늘어진 실을 따라 이동했다. 과수원 외곽 방향으로 길게 이어진 실이 하나둘씩 엮이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곤충의 실이 아니야.’
서서히 이리저리 얽히기 시작한 실은 분명 리치먼드에서 봤었던 거미줄이었다. 그러니까 땅거미 줄과 비슷한 패턴이었던 것.
“모두 정지. 후퇴한다.”
친위대원들을 먼저 뒤로 뺀 마루가 전술 카메라 영상을 블라디 아크 타워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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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퇴한 친위대는 바로 간호사와 사이코메트리 에리카를 호위해 디트로이트로 돌아갔고, 김 양과 친위대는 완전무장한 채, 블랙 드레이크호를 타고 왔다.
[리치먼드에 있던 거미임? 그거 확실함?]거미가 어떻게 여기에 있지?
제국 영토를 건너서 갑자기 캐나다에 등장한다는 게 가능한가?
그것도 디트로이트 남부, 오하이오주(州)나, 인디애나주(州)라면 모를까 갑자기 몬트리올과 퀘벡 남쪽 캐나다 과수원에 등장하는 건 뭐란 말인가?
“확실하다.”
인공지능 디아나와 곤충 전문 연구진이 분석한 자료를 보면 충분히 가능했다. 거미들은 바람을 이용할 뿐만 아니라, 지구 자기장을 이용한 비행을 할 수 있다고.
[지구 자기장을 이용해 날 수 있다고? 거미가?]“그래. 리치먼드에서 봤던 거대한 기구 비슷한 거. 그게 거미들이 만든 비행체라고 본다면 가능하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왔다.”
김 양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세상에 맙소사.
거미가 거미줄로 비행체를 만든 것도 황당한데 지구 자기장을 이용한 비행체라니.
[그거 우리가 싹 태워버리지 않았었음?]“놓쳤거나,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먼저 뜬 게 있었거나.”
성층권 감시 비행선으로 과수원과 주변 지역을 확인하기 시작했고, 6척밖에 없는 블랙 드레이크호급 비행선도 전부 동원됐다.
“드론으로 과수원 지역 전체를 확인해.”
거미가 모여있다면 생체 EMP 효과로 드론이 떨어지겠지. 반대로 거미 놈들이 생체 EMP를 역이용해서 유인 작전을 쓸 수도 있겠고.
“까치들과 같이 가면 드론이 떨어져도 놈들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거다.”
마루는 드론과 까치를 붙였다.
‘거미줄을 건드렸으니, 거미들도 이쪽이 움직이는 걸 알고 있겠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제 곧 혹한이 시작될 터, 놈들이 사방으로 퍼져봐야 얼어 죽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작은 핵을 써서라도 뿌리 뽑자.”
작은 핵을 쓰자는 말과 동시에 까치들이 마루의 발아래 머리를 조아렸다.
까아아악! (아니 되옵니다!)
까아아악!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작은 핵이라도 핵.
그걸 아낌없이 쓴다면 과수원은 어떻게 하느냐는 애원이 울려 퍼졌다.
“작은 핵을 쓰지 않고 잡으려면 너희들의 희생이 클지도 모르는데 상관없나?”
상관없다며, 과수원을 안전하게 지키고 싶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까치들.
[다들 알도 낳고 한 것 같으니까. 그냥 원하는 데로 해줘도 될 것 같기는 함.]어쩐지 ‘알’에 악센트를 강하게 준 김 양이 까치들이 원하는 데로 해주자고 했다. 귀여운 핵을 쓰겠다며 난리 칠 줄 알았는데 의외인지라, 마루가 무슨 의도냐는 눈빛을 보냈다.
‘의도 없음. 진짜임.’
‘귀여운 핵을 안 쓰겠다고?’
‘안 써도 잡을 수 있으면 괜찮음. 정말임.’
‘······.’
‘까치들이 죽어도 알은 까고 죽는 거니까. 걔들도 원한이 남지 않을 거고. 남은 알들은 부화기 돌리면 되잖음. 그뿐임.’
‘······.’
김 양의 눈빛에 마루가 작은 핵 사용을 취소했다.
“좋아. 핵 사용은 일단 보류하지. 까치들이 전력 공백을 채우도록.”
까아아악! (감사합니다!)
까악까악!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
까치와 드론을 이용한 정밀 수색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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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참 곤란하네.’
총독부가 있는 오타와(Ottawa)보다 몬트리올(Montréal)에 더 오래 있는 느낌. 오타와는 그나마 영어권 감각이라면 몬트리올과 퀘벡은 확실히 프랑스적인 느낌이 더 강한지라 확실히 받는 스트레스가 달랐다.
캐나다와 미국도 그렇고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도 인종차별이 없다고 하지만, 기순이 겪는 그 뭣 같은 느낌은 정말 이루 형용하기 힘들었다.
감정을 시각으로 변환시켜 볼 수 있는 능력에 익숙해지면서, 시각화된 감정 해석 능력도 점차 좋아졌다.
붉은색으로 떠오른 감정도 단순히 하나의 감정만 있는 게 아니었다. 분노도 붉은색이고 애정도 붉은색이고 살의도 붉은색 살의와 검은색 살의로 나뉘었다.
그렇게 감정을 자세히 알게 될수록 인간관계를 맺기 쉽지 않았다. 총독이라는 걸 알면서도 보내는 그 감정들.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 때문에 기순의 신경은 조금씩 날카로워졌다. 클론으로 부활했기 때문이 아니라, 일상에서 겪는 감정적 소모 때문에 인간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고 있는지도 몰랐다.
‘어이가 없군. 총독이라는 걸 알면서도 모른척하는 건가?’
다시 영업을 시작한 유명한 프랑스 식당에서는 기순을 줄 세웠다. 예약했음에도 대기를 시키더니 자리도 화장실 근처 구석 자리를 줬다. 심지어 빈자리가 많았음에도.
변이 사태가 터지기 전, 유명한 미국 뉴투버가 파리에서 유명한 식당을 전세 냈는데, 식당에서 구석진 자리로 줬다는 방송을 했던 게 떠오른 기순이었다.
그런데 여기는 파리도 아니었고 기순은 뉴투버가 아니었으며, 심지어 비서실을 통해 예약했음에도 이런 식이었다.
“개새키들이 어디서 지라리야. 지배잉 나어라고 해!”
(개새끼들이 어디서 지랄이야 지배인 나오라고 해!)
전방에서 뺑뺑이 치다 간만에 프랑스 코스 요리 먹는다고 좋아했던 희연이 분개했다. 그건 기순을 호위하고 있는 나루즈도 마찬가지였다.
“뒤집어엎을까요?”
“그냥 폭파해 버리죠.”
“오라버닝에게 연락하면 어떨까요?”
“그린 순이 바보같이 착한 순이라서 이러는 겁니다.”
나루의 얼굴을 한 호위 넷이 하나같이 분개했다.
[폐하께서 중요한 정보를 보내셨습니다.]보조 인공지능이 어쩐지 엄숙한 톤으로 마루의 소식을 전했다. 이제 막 자리에 앉았는데 말이다.
“바로 올려줘.”
[자료 전송했습니다.]기순은 스마트폰으로 전송된 자료를 확인했다. 까치와 까마귀들 싸움인 줄 알았는데, 거미가 끼었다는 이야기에 희연과 나루즈가 의욕을 불태웠다.
저번에 리치먼드에서 마루와 김 양이 싸우는 동안 자기들은 캐나다 북부에서 변이 괴수들과 드잡이질하고 있었다.
“수새근 내가 할래.” (수색은 내가 할래.)
몸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발음은 거의 교정된 희연이 거미 수색에 자원했다.
“어머.”
“어마.”
“몇 명 없으면서 수색이 되겠어요?”
“그린 순 호위나 하시죠. 수색은 우리가 할 테니까요.”
나루즈 넷이 희연을 견제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지막으로 본 지 벌써 반년이 넘었다.
오라버닝.
그분.
진심으로 친해지고 싶은 존재.
왕님.
마루가 근방에 있었다.
거미를 수색하면서 은근슬쩍 마주칠 수 있는 거리.
혹시 아는가?
저번처럼 또 시간을 내주실지.
그러니 나루즈는 이번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네트워크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도 직접 알려드리고 싶고.”
“지금까지 잘했으니 포상이 있어야겠죠?”
“직접 그분을 뵙고 이야기하고 싶은 일들이 많은데.”
“수색 작전으로 포상을 대신 하겠다는데 거절하지는 않겠죠?”
기순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것 같았다. 마치 수색 작전에 투입되는 걸 기정사실로 하려는 모습에, 아동용 좌석에 앉은 희연이 빽 소리 질렀다.
“머가! 누구 마은대로!” (뭐가! 누구 마음대로!)
흥분해 다시 혀짧은 소리를 낸 희연은 나루즈의 행태에 분노했다. 그녀가 분노하자, 정신적으로 연결된 유 이사 클론들이 옆 테이블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들 그만해. 다 수색에 보내줄 테니.”
“그러믄 호위는 누가 하고.”
희연이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자리를 비웠다가 기순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그 후폭풍은 어떡하라고. 천 명이 넘는 나루즈 가운데 몇 명 남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가? 원본 나루의 인성이 여기서 드러나는 것 같았다.
그건 희연을 바라보는 나루즈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U+ 클론 부대의 숫자는 고작 10명 내외. 그마저도 본체인 마크2가 멀리 떨어지면 링크 감도도 떨어지는 편.
당장 쪽수도 부족하고, 이제 일교차도 심해져서 애새끼 상태인 본체를 관리하는 것도 힘들 테니, 호위나 하면 될걸. 꼭 사서 일을 복잡하게 하는 애새끼였다.
“현실을 알면 좋을 텐데. 미친 여자가 원본이라서 그런데 현실을 모르네.”
“요즘 이 동네 분위기가 이상한 것 같은데 호위 줄이면 위험하지 않을까?”
“그린 순. 감정 파악 능력이 있으니까 이상한 놈들 먼저 파악할 수 있잖아.”
“그러게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
“미친놈이 괜히 미친놈이겠어. 지금 여기 식당에서 하는 짓만 봐도 제정신 아닌걸.”
“테러범이랑 편 먹는 놈이라도 생기면 위험하지. 요즘 까마귀들도 집중하지 못하는 것 같고.”
까치들과의 갈등이 커지면서 까마귀들의 신경이 날카로웠다. 집중해서 순찰돌지 못하는 게 뻔히 보일 지경.
“까마귀도 그렇고 까치도 정신교육 받아야 해.”
“맞아. 왕님이 제대로 잡으셨어야 해.”
나루즈의 호들갑에 기순이 턱짓으로 한 여자를 가리켰다.
“알았다. 알았어. 너희들 전부 수색 보내도 난 저쪽이 있으니까 괜찮아.”
기순의 신호가 향한 곳에는 한쪽 팔이 금속으로 이뤄진 여자가 식당 출입구 근처에 서 있었다. 언제든 뽑을 수 있도록 검집을 쥐고 있는 모습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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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수색에는 희연이와 U+ 클론들 그리고 나루즈를 중심으로 보냈어.]기순의 말에 마루가 괜찮겠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이쪽에는 에릴린도 있고, 몬트리올엔 각성한 용병들도 많잖아.]칼잡이 여자와 능력자들이라면 비상사태에 대비할 수 있다고 말하는 기순이었다.
“농경지뿐만 아니라 도시도 수색해야 할 텐데. 리치먼드 영상 봤잖아. 거미들이 도시에 자리 잡은 거.”
[도시 수색은 이곳 지리에 익숙한 용병을 먼저 보내지 뭐.]일단 흔적을 찾는 게 우선이었다.
“규모가 크다 싶으면 병력부터 밀어 넣지 말고, 나한테 말해.”
[알았다. 그렇게 할게.]폐쇄 공간이 많은 곳에서는 살기를 이용해 죽이면서 가는 게 효과적이었다.
[까아아악! (거미다아악!)]까치의 비명과 동시에 통신이 뚝 끊기는 소리.
“거미를 찾았다. 그쪽도 조심해. 까치가 단숨에 제압당한 것 같아.”
[그래. 너도 조심해라.]마루의 HUD에 마지막으로 까치의 신호가 잡힌 곳이 떠올랐다. 반대쪽을 수색하던 김 양이 바로 통신했다.
[이쪽도 거미줄이 많음. 나는 계속 여길 수색하겠음.]“그래. 깊이 들어가지 말고. 거미줄 정리해가면서 가라.] [알겠음.]
다다다닥-
순식간에 마지막으로 신호가 온 장소에 도착한 마루.
사방에 흩어진 깃털과 부서진 드론의 잔해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이것들 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