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795)
러스트 [RUST]-795
드론 카메라가 가려져 있다?
거미를 조종하는 능력자가 생각난 마루였다.
리치먼드(Richmond)에서 거미들을 조종하던 능력자들.
‘한 놈도 아니고 여럿이었지.’
놈들은 지능이 높은 거미를 조종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인간의 전술을 배운 거미는 상당히 까다로웠다.
‘지금도. 그렇다면 거미를 조종할 수 있는 놈이 어디에 있을까?’
마루는 HUD(Head-Up Display)에 떠오른 지도를 확대했다. 성층권 비행선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한 지도엔 폐허가 된 마을과 주택이 선명했다.
‘인근 마을과 농가는 아니야.’
작년과 재작년에 쥐와 개미 사태로 농지 주변은 완전히 황폐해졌다.
그 뒤 제국에 편입됐고, 뉴욕 시궁쥐 사태를 도운 것을 계기로 다시 신성 왕국에 넘어오면서, 아직 복구되지 않았다.
마루는 바로 기순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흠. 간호사처럼 거미와 대화할 수 있는 능력자 또는 거미를 조종할 수 있는 능력자가 있다는 소리야?]“그래.”
단호한 마루의 대답에 기순의 실눈이 길게 가늘어졌다. 능력 각성자 가운데 거미와 의사소통할 수 있다는 사람은 없었는데···. 기존에 있던 용병들도 마찬가지였고.
그렇다면 외부에서 들어왔다는 뜻이거나, 새로 능력을 각성했으면서 신고하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신성 왕국을 신뢰하지 않고 거미를 이용해 신성 왕국을 흔들려는 사람이라는 뜻. 거미가 많이 퍼졌다면 개인이 아니라 집단일 수도 있고.
[알았다. 몬트리올(Montréal)과 퀘벡(Quebec)에서 과수원 방향으로 돌아다닌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 볼게.]“위험하게 생포하려고 하지 마. 잡을 거면 몸통을 노려라. 머리통만 있으면 정보 추출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할게. 근데 거미가 여기까지 왔다는 건 도시에도 침투했을 수 있지 않나? 몬트리올을 시작으로 다른 도시들도 전부 확인하는 게 좋을 듯싶다. 그리고 우리만 확인할 건 아닌 거 같아.]“덴 브라운 아재?”
신성 왕국까지 날아온 거미들이 더 가까이 있는 제국을 그냥 지나칠 리 없을 터.
시궁쥐가 있었다면 모를까. 시궁쥐를 쓸어버린 뉴욕의 하수도는 거미들이 세력을 키우기 충분한 공간이었다.
[그쪽도 농장 규모가 크고, 뉴욕을 비롯한 도시들 하수도가 텅 비었잖아. 우리가 쥐새끼들 쓸어버린지라 하수도가 텅 비어있을 거고.]“제국에는 네가 알려주도록 해.”
[···그래. 아오.]기순에게 일거리를 듬뿍 안겨준 마루의 HUD에 거미의 흔적을 찾았다는 보고가 떠올랐다. 성층권 다목적 비행선과 블랙 드레이크호로 교차 검증한 정보였다.
“거미 새끼들 흔적 찾았다. 너도 수고해라.”
[오케이. 다른 건 몰라도, 성층권 비행선 정보는 어느 정도 까야 할지 몰라. 아니. 나중을 생각하면 그 정도 정보는 까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괜찮겠냐?]인공위성을 대체하는 성층권 무인 비행선이라면 존재 여부만으로도 고급 정보에 속했다. 덴 브라운 아재도 알고는 있으리라.
그걸 공식적으로 까겠다는 건, 성층권 비행선을 협상 카드로 쓰겠다는 이야기였다.
‘기순이 녀석. 뭔 협상을 할 생각인지.’
제국과 협상할 땐 전권을 주겠다고 했었으니, 알아서 하겠지.
“상관없어.”
[오케이. 그럼 알아서 한다?]알아서 해도 된다는 다짐을 받은 기순이 바로 제국에 비상통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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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은 전심전력으로 해상도시를 건설하고 있었다. 메가 플로트를 기초로 한 해상도시가 뉴욕 앞바다에 서서히 윤곽이 잡히고 있었다.
고작 1년 조금 넘은 시점에 기초를 만든 것은 대단한 일이었지만, 내부적인 문제가 많았다. 뉴욕을 재건하자고 하는 세력은 여론을 이용해 끝없이 덴 브라운 총통을 흔들었던 것.
겉으로는 폐허가 된 제국의 수도를 재건하자는 이야기였지만, 실질적으로는 해상도시의 지분을 나눠달라는 요구였다.
여기에 제국의 임시 수도가 된 보스턴에서는 ‘임시’를 떼어버리고 보스턴이 제국의 새로운 수도로 정해지는 걸 원했다.
“또 시위인가?”
“예. 시내 중심부는 군대가 대기하고 있어서 대규모 무장 폭동이 생기지는 않았지만, 외곽 쪽에서는 좀도둑과 강도들이 넘치고 있습니다.”
“해상도시에 입주하는 주민들은 제한을 둬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전과가 있다면 철저하게 걸러야 합니다.”
“특정 사상에 빠진 자들과 종교에 심취한 자들도 빼야 합니다.”
특정 사상에는 공산주의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 그리고 페미니즘(女性主義, feminism)이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변이 바이러스 사태 이후, 생존을 위해 필요에 따른 분배가 시행됐다. 혹한의 겨울을 버티기 위해서 필수적인 식료품이 지원됐고. 방한 장비와 난방용품, 전기 요금 보조 같은 것이 이뤄졌던 것.
정상적인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면 혹한의 겨울에는 방한 장비와 난방용품의 가격이 치솟더라도 수요 공급에 맡겨야 했고 전기 요금 같은 난방비 증가도 감내해야 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면 영하 40~50도를 넘나드는 맹추위를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뛰쳐나왔을 터.
사회 안정과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지원과 분배는 필요한 일이었지만, 그것이 공산주의에 대한 요구로 이어졌다는 게 문제였다.
이는 정치적 올바름과 페미니즘도 마찬가지였다. 정치적 올바름과 페미니즘이 현재 제국의 위기에 도움이 될까?
PC 주의자들은 새로운 제국의 중심은 정치적 올바름이 바로 세워진 선도 도시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고.
페미니즘 진영에서도 새로운 제국의 중심은 여성이 안전한 도시, 여성에 대한 존중이 있는 도시, 여성 친화적인 도시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교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종말론자, 사탄숭배자를 비롯한 각 종교의 원리주의자들에게 있어 해상도시는 그들만의 성지가 되기에 충분한 도시였다.
“심판의 때. 노아의 방주가 재현된 것입니다.”
“위선을 벗어버린 도시. 진정한 욕망의 도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알라 후 아르바크.”
“HOLLY의 은혜로 만들어진 도시에 어찌 HOLLY 교가 빠질 수 있습니까.”
사상과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게 미국의 정신이라지만, 이런 분란을 해상도시까지 가져가야 할까?
물론 이런 논쟁을 분란이라고 보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쪽도 있었다.
어떤 경우에라도 사상과 종교의 자유는 지켜 져야 하며, 문제를 배제하는 방법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제국은 미합중국의 유산을 지키고 발전시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정치적 올바름은 민주주의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태도입니다.”
“PC 사상가를 해상도시에 뽑지 않는다고요?”
“제국이 차별을 정당화한다는 뜻입니까?”
“페미니즘 운동가를 배제하겠다니요.”
“여성에 대한 차별입니다.”
어쨌거나 언론‧집회의 자유를 유지‧보장하고 있는 제국이었기에 순식간에 엉망으로 변했다.
“임시 수도 보스턴을 정식으로 수도로 삼으면 어떤가?”
덴 브라운이 절묘하게 화제를 돌렸다.
보스턴을 제국의 수도로 정해, 공산주의를 숨긴 분배론자들, PC주의, 페미니즘에 다양한 종교인들까지 전부 밀어 넣어 버리자는 속셈이었다.
덴 브라운의 생각을 알아챈 자들이 나왔지만, 보스턴을 제국의 수도로 정하게 된다면 해상도시의 ‘안전’을 위해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들을 ‘제한’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이야기에 반대할 명분이 약해지는 건 사실이었다.
제국의 수도라는 상징을 보스턴에 넘겨버리면 해상도시는 말 그대로 시범도시, 신도시가 될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신성 왕국 캐나다 총독이 핫라인으로 연락해왔습니다.]“따로 받지.”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지?’
신성 왕국에서 직통전화를 하면 언제나 문제였다.
식인귀 토벌도 그렇고 뉴포트뉴스 조선소 문제나, 뉴욕의 지하를 장악한 시궁쥐 사태 등. 하나하나가 주옥같았다.
덴 브라운 총통은 자리를 옮겨 전화를 받았다.
“전화 받았네. 본론만 빠르게 이야기하지. 무슨 일인가?”
[리치먼드에서 발견한 괴물 거미 때문입니다.]현재 제국 북부, 캐나다 지역과 국경이 닿은 곳에 괴물 거미가 등장했다는 이야기를 전하는 기순이었다.
[···리치먼드에 있던 성체는 대부분 정리했지만, 새끼 거미들이 바람을 타고 퍼진 것 같습니다. 관련 자료를 보내드릴 테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방역에 신경 쓰라는 말이었다.
“······.”
벌컥벌컥
차가운 홍차를 위장에 때려 부은 덴 브라운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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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직-
이클립스가 손바닥 반 만한 크기의 거미를 두 쪽으로 쪼개는 소리. 여자 주먹보다도 작은 크기의 거미였지만, 그 단단함은 비상식적이었다.
“리치먼드에서 잡았던 거미보다 껍질이 더 단단하다. 총보다 화염 방사기가 더 효과적으로 보이니까 친위대 무장을 바꿔.”
[알겠음.]김 양과 친위대가 주력 무기를 화염 방사기로 바꾸자, 까치들이 과수원이 죽는다며 애원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거미와 거미줄을 동시에 제일 빨리 제거하려면 화염 방사기가 제격이었기 때문이었다.
쿠직- 쿠직-
배를 까뒤집고 죽은 거미들이 밟히는 소리가 마루의 발걸음마다 이어졌다. 개월로 따진다면 고작 6~7개월 만에 손바닥 반 만한 거미가 됐다는 건, 유전자 조작을 받은 게 분명했다.
마루의 예측이 옳다는 연구 분석 결과가 나왔다. 리치먼드에서 잡은 거미 분석에 이어, 캐나다 과수원 주변에서 포획한 거미의 분석이 비교‧대조 정리됐다.
[땅거미와 깡충거미 갑각질 모두 리치먼드에서 채집한 샘플 거미보다 더 단단해요.]마루의 손맛대로였다.
[불에 대한 내성도 최소한 10% 정도 더 강해졌고요. 힘과 민첩, 내구성, 체력 등 비교항목 대부분에서 8%~10%가량 좋아졌어요.]“강해진 형질이 그대로 유전되는 건가? 아니면 계속해서 더 강해지는 건가?”
[시뮬레이션 결과 형질이 유전되는 건 거의 확실해요. 하지만 매 세대가 지날수록 강해지는지는 확실하지 않아요.]“약점은 불인가?”
[네. 불도 불이지만, 저온에 약한 것으로 확인됐어요.]“이번 겨울을 버티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인가?”
[그건 확실하지 않지만, 영하 20~25도 구간에서 작은 충격으로도 껍질이 손상됐어요.]“개미와는 다르군.”
[개미들은 겨울에도 강한 것으로 나왔어요.]‘겨울에 개미라.’
쿠직- 쿠직-
마루의 발걸음을 잠시라도 붙들기 위해 수백 마리의 거미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었지만, 살기의 권역을 뚫지 못하고 땅바닥 얼룩으로 변했다.
몸으로 막지 못하자, 거미줄을 뿜어내는 거미들.
푸슈슈슈슛—
천라지망(天羅地網)처럼 퍼진 거미줄이 마루를 덮쳤지만, 동그랗게 퍼진 방어막에 무효화 됐다.
이어진 강력한 폭발.
쾅- 콰아아아앙!
새끼 거미들은 필사적이었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수류탄과 크레모아까지 터트렸어도 마루 전용 기체의 방어막을 뚫기엔 부족했다.
마루는 격세지감을 느꼈다.
예전 같았으면 이클립스를 가로로 막니, 기울여서 흘려보내니 그랬겠지.
두근거리는 감각에 의지해 뭣 빠지게 이리 뛰고 저리 뛰었을 테고···.
이제는 아니었다.
마루의 여유로운 발걸음이 기어코 땅거미들이 운집한 토굴에 닿았다.
콰지지직-
굴을 덮은 뚜껑을 자르자, 거지 몰골을 한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방아쇠를 당겼다.
흐이이이익!!!
투다다다다닥-
웅우우웅-
총소리와 방어막이 울리는 소리가 뒤섞인 끝에 남은 것은 빈 방아쇠를 당기는 소리뿐이었다.
804화
“…선배님은 격구 선수로서 자존심도 없습니까! 그런 타락한 금화를 냉큼 받아들이시다니!”
“!?”
생각치도 못한 후배의 비난에 카르넬라는 당황했다.
“뭐… 뭐? 잠깐. 후원 받는 게 격구 선수로서의 자존심하고 무슨 상관이야? 타락한 금화는 무슨 소리고? 금화도 타락이 있나?”
“됐습니다. 선배님은 아무것도 모르십니다!”
“잠깐만, 후배! 돌아와! 무슨 소리인지는 말해주고 가라고! 돌아와!”
평소 선량하고 성실했던 후배가 화를 내고 뛰쳐나가자 카르넬라는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자존심 있는 격구 선수는 금화를 받으면 안 되는 거였나??
* * *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이한은 결심했다.
흥겹고 즐거운 클럽 주간이고 뭐고 다 필요 없었다.
‘데스 나이트들을 부르겠다!’
기대했던 선배들은 클럽 주간이 충격과 공포의 마법범죄자 토벌전으로 바뀌는 데에 크게 실망하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한도 살아야 할 것 아닌가.
처음에는 그냥 회피하고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인타렌달스의 수완을 보니 그게 아니었다.
저 말도 안 되는 후원 규모와 속도를 보라.
이 상태로 하루 지나면 를 만들어서 이한을 찾아다닐 수도 있었다.
‘지팡이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금화가 지팡이보다 강할 줄이야.’
-그게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클젠베르그 경.
-정말 놀라운 일이군!
“위대하신 죽음의 기사 여러분!”
마침 저 멀리서 순찰을 돌고 있는 데스 나이트들이 보이자 이한은 재빨리 달려나갔다.
-흑마법 학파에 후원하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심지어 클럽 주간이지 않나? 클럽도 아닌 학파에 후원을 하다니.
-제국이 넓은 만큼 별난 사람들도 많은 것 아니겠습니까.
-하긴 옛날에는 흑마법 학파도 꽤 융성하고 인기가 좋았었네.
-정말이십니까? 상상도 가지 않는군요!
“……”
이한은 데스 나이트들의 대화에 경악했다.
그러는 사이 데스 나이트들은 이한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후ㄱ…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학생 아닌가!
-후ㄱ… 워다나즈 님!
데스 나이트들은 이한이 모르는 사이 ‘후ㄱ’로 시작하는 특이한 인사말을 앞에 붙였다.
해골 교장의 부하 사이에서 도는 이상한 유행에 대해 물어볼 시간이 없었던 만큼 이한은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지금 큰일이 났습니다! 당장 다른 기사분들을 불러 모아서 학교를 포위해야…”
강하게 말하던 이한은 멈칫했다.
방금 들었던 데스 나이트들의 대화가 다시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 궁금한 게 있습니다만.”
-방금 큰일이 났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큰일이긴 한데 더 큰일도 있어서… 궁금한 게, 이런 상황에서는 혹시 어떻게 될까요?”
이한은 오늘 있었던 일들을 최대한 돌려서 설명했다.
수상한 마법범죄자가 제국 대귀족 가문의 선조를 부활시켰다. 부활한 선조는 가문의 은닉 재산을 유용해 마법사들을 후원했다. 이 사실이 발각될 경우 그 후원된 재산은 어떻게 되는가?
-?
-??
데스 나이트들은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의문을 품었다.
-이한 학생. 언데드 상태로 일으키는 게 아니라 멀쩡한 상태로 부활시키는 건 일반적으로 불가능하다네.
-그리고 그렇게 부활한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마법사들을 후원한답니까? 심지어 수상한 마법범죄자가 부활시켰는데요?
“…아, 그냥 좀 상상해주십시오!”
이한은 화를 냈다.
다른 학생이었다면 바로 징벌방에 끌고 갔을 테지만 데스 나이트들은 찔끔하며 물러섰다.
일단 이한은 평범한 징벌방에 끌고 가봤자 별 의미가 없을 뿐더러, 기사의 양심을 생각해봤을 때 저런 불쌍한 마법사를 징벌방에 끌고 가는 건 지나치게 불명예스러운 일이었다.
-그럴 경우 제국법에 따라 그 재산은 몰수되어서 원래 가문으로 돌아가지 않겠나?
“어째서입니까? 가문의 선조한테도 권한이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보면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한 번 죽은 이상 재산의 소유권은 넘어간 것이나 마찬가지야. 사실 옛날 고대 왕국 시절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지. 심지어 반란까지 일어났고 말이야. 흐음. 황제 폐하께서도 그 일들을 아시기에 제국법에 확실히 명문화시킨 게 아닐까?
“……”
이한은 쓸데없이 유능하고 박식한 제국 황제를 속으로 욕했다.
법에 빈틈도 좀 있어야 사람 사는 정이 있지 뭐 저리 철저하단 말인가.
-그래서 이건 왜 물어본 건가? 잠깐. 혹시…
데스 나이트, 클젠베르그 경은 이한을 알겠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아닙니다.”
-…귀족 가문의 옛 선조를 부활시켜서 재산을 갈취하려는 거군!
“그건 정말 확실히 아닙니다.”
-아닌가?
클젠베르그 경은 매우 머쓱해했다.
당연히 이것 말고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이한은 깊게 갈등했다.
‘지금 기사들을 불러 모으면…’
이한의 머릿속에 디레트 선배가 금화 주머니를 뺏기고 엉엉 우는 상상이 스치고 지나갔다.
물론 디레트는 금화 주머니를 뺏긴다고 엉엉 우는 사람은 절대 아니었지만(오히려 이한이 그런 사람에 가까웠다), 지금 이한 옆에는 후배의 모욕적인 상상에 분노할 디레트가 없었다.
“위대하신 죽음의 기사 여러분.”
-참고로 주인님께서 저희를 그렇게 부르실 때는, 무언가 힘들고 어려운 일을 시키실 때 주로 그렇게 부르십니다.
“…죽음의 기사 여러분.”
이한은 바로 말을 바꿨다.
과연 오래 산 기사들답게 돌려서 지적하는 솜씨가 보통 매서운 게 아니었다.
“지금부터 제가 들려드릴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명예를 걸고 비밀을 지켜주실 수 있으십니까?”
-…!
-!!
데스 나이트들의 눈빛이 심각해졌다.
후계자가 저렇게 말할 정도면 꽤나 심각한 사안 아니겠는가.
-주인님을 공격하는 일입니까?
“아닙니다.”
이한은 대답하고서 멈칫했다.
‘맞나? 어떻게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을지도.’
-사실 주인님을 공격하는 일이어도 됩니다. 그냥 해본 질문이었거든요. 명예를 걸고 비밀을 지켜드리겠습니다.
-나 또한 명예를 지키겠네.
데스 나이트들은 너무나도 선선히 약속해줬다. 이한이 오히려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괜찮겠습니까?”
-이한 학생처럼 불쌍한 사람을 돕는 건 기사로서의 의무잖나.
-저도 동의합니다.
“……”
이한은 기사도에 사람이 상처입을수도 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래도 이런 도움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이한은 침착하게 오늘 있었던 공포스러운 일화를 설명했다.
-……
-……
그리고 데스 나이트들도 똑같이 기겁했다.
감히 예상하지 못한 집념이었던 것이다.
-신이시여, 무슨 저런 방법을?
-역시 주인님의 찌꺼기답게 보통이 아닙니다.
-민폐도 보통이 아니군그래.
“저. 듣고 계십니까? 금화는 내버려두고 어떻게 수습할 방법이 없을까요? 하다못해 흑마법 학파 후원 금화만이라도.”
-이한 학생. 학생의 마음은 아주 잘 이해했네.
-워다나즈 님. 저도 이해했습니다. 애초에 달카드 가문이 이 금화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도의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죠. 선조의 재산 아닙니까. 선조가 죽었다고 후손이 재산을 멋대로 써도 된다? 감히! 건방지고 무례한 놈들!
후배 데스 나이트가 분기탱천해서 외치자 클젠베르그 경이 속삭였다.
-자네가 이해하게. 후손이 재산을 탕진해버렸거든.
“아, 예…”
-좋아. 일을 키우지 말고 조용히 수습하세.
백전노장 기사들의 든든한 협력에 이한은 울컥했다.
요즘 모습도 안 보이는 해골 교장과 달리, 역시 이 기사들이 에인로가드를 지탱하는 기둥이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 * *
푹푹푹!
데스 나이트들은 그림자 도약을 시전해 인타렌달스를 포위한 뒤 암흑의 검을 찔러넣어 어떤 짓도 할 수 없도록 봉인했다.
그런 다음 재빨리 아공간 마법이 걸린 자루에 쑤셔넣고 손짓했다.
-이동!
“……”
눈 깜박하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상대를 제압하는 솜씨에 이한은 경악했다.
만약 자신이 저 위치에 있었더라도 그대로 제압당했을 것 같았다.
기사가 마법사의 천적이란 말은 많이 들었지만, 하도 강력한 마법사들만 봐서 잊고 있었는데…
영지인 에인로가드의 힘을 받아 강화된 데스 나이트들은 마법사 상대로 극악한 힘을 발휘했다.
어떤 마법을 쓸 수 있던 간에 그보다 먼저 제압한다!
-이쪽 계단으로.
-후ㄱ, 워다나즈 학생.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면 됩니다.
-그 다음에는 여기 구덩이에 발을 푹 넣고!
이한은 데스 나이트들을 따라 본관 내 지름길을 이동하며 속으로 외웠다.
나중에 언젠가 쓸 일이 있을지도 몰랐다.
-첫 번째 방은 비어 있나?
-아닙니다. 죄수 있다는군요.
-두 번째 방, 세 번째 방은 찼을 테고.
-아! 일곱 번째 방이 비었다는군요. 잘 됐습니다!
“?”
이한이 의아해하자 친절한 데스 나이트 한 명이 설명해줬다.
-여긴 주인님께서 직접 설계한 심문실, 입니다. 뛰어난 마법사들은 일반적인 방에 가둬놓으면 탈출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괜히 들었다.’
설명을 들은 이한은 바로 후회했다.
일곱 번째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한은 순간적으로 강한 두통을 느꼈다.
복잡한 마법들이 너무 많은 탓에 정보 과부하가 걸린 것이다.
감각이 덜 예민한 마법사였다면 차라리 나았겠지만, 이런 부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날카로움을 가진 이한은 두통을 피할 수가 없었다.
‘큭…! 무슨 마법이…’
-꺼내라.
털썩!
자루에서 나온 인타렌달스가 바닥에 떨어졌다.
몸 곳곳에 암흑의 검이 꽂힌데다가 납치까지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인타렌달스의 표정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과연 험악한 고대 시절에 해골 교장을 섬겼던 사람다웠다. 데스 나이트들은 속으로 감탄했다.
-인타렌달스. 왜 이렇게 끌려온 지 아시오?
“잘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주인과 우리의 주인은 적이기 때문이오.
데스 나이트들은 해골 교장과 미친 분신의 관계를 설명해주고 인타렌달스가 잘못된 주인을 섬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타렌달스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쪽은 제 주인께서 본체가 아닌 분신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실 수 있습니까?”
-…어…
데스 나이트들은 멈칫했다.
그러게?
-훨씬 더 강하고 사악하시니까 이쪽이 본체지.
“그건 직접 비교해봐야 알 수 있을 텐데요.”
-그쪽은 주기적으로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사념체 같은 존재잖나.
“그렇다 하더라도 분신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이야기가 토론으로 흘러가자 이한은 클젠베르그 경에게 눈빛을 보냈다.
노련한 죽음의 기사는 부하들을 호통쳤다.
-쓸데없는 대답해주지 말게! 인타렌달스. 당신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오. 금화를 놓고 조용히 학교를 떠날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손에 죽을 것인가?
“이제 와서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죽더라도 이유를 알고 싶군요. 제가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과 접촉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까? 혹시 당신의 주인이 당신을 속이는 걸지도 모릅니다.”
-헛수작 부리지 말게.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이 당신과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으니까.
인타렌달스는 죽음의 기사가 하는 말을 믿지 않고 빙그레 미소지었다.
왕자의 시종장으로서 온갖 일들을 해낸 유능한 실무자답게 상대의 말 속에 숨은 빈틈을 찾아낸 것이다.
“거짓말이군요.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은 제가 온 사실을 모를 겁니다. 불운 때문에 계속 엇갈렸거든요.”
“…사실 제가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입니다.”
보다 못한 이한이 나서서 입을 열었다.
그 말에 인타렌달스는 오늘 처음으로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말,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럴 수가!”
오피러브
늑대훈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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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스트-79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