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803)
러스트 [RUST]-803
겨울은 벌레에게 불리한 계절이었다.
아무리 변이를 일으킨 곤충이라고 하더라도 생물학적 특성상 겨울에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
생명력이 강한 바퀴벌레도 움직임을 멈출 정도의 혹한이 이어지자, 거미와 개미도 겨울나기에 들어갔다.
변이 괴물 거미는 불침번을 빼곤 겨울잠에 빠졌고 개미들은 저장해 둔 먹이를 먹으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여기에서 문제가 생겼다.
신성 왕국 공사장에 동원된 개미들은 먹이를 급료로 받았고, 풍부한 먹이를 비축할 수 있게 된 개미 무리는 숫자를 늘릴 수 있게 됐다.
이에 반해 신성 왕국의 공사장과 멀리 떨어진 개미 군집은 무리를 유지하는 것도 벅찬 실정. 혹한의 겨울이 시작되기 전 충분한 먹이를 확보하지 못한 개미 군집에서는 상부에 먹이 지원을 요청했고 개미 제국에서는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이는 신성 왕국 주변에 있는 개미 무리에게 비축한 먹이를 나눠 먹으라는 명령으로 이어졌고, 무리를 풍족하게 먹이고 있던 개미 왕국에서 강한 반발이 일어났다.
[에- 또- 그래서 52곳이 반발하고 있어요.]“52곳?”
신성 왕국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먹이를 받아간 개미 왕국만 무려 58곳이었다.
그 가운데 6곳만 개미 제국의 명령에 따라 최소한의 먹이를 제외한 여유분을 위로 보냈고. 나머지 52개 개미 왕국이 반발하고 있다는 것.
간호사의 이야기에 기순의 가느다란 실눈이 살짝 씰룩였다.
[개미들이 정치에 눈을 뜬 것 같네.]“우리 때문에 정치에 눈을 뜬 건 아니야. 걔들 진작부터 정치적이었어.”
마루와 처음 협상한 개미 여왕을 생각해 보면 진작 정치질하고 있다고 봐야 했다. 협상이라는 걸 한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행위였기 때문이었다.
신성 왕국과 전쟁하기보다 공생을 선택한 개미 제국의 판단도 마찬가지. 개미 제국이 개미 왕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랬다.
[문제는 버지니아 잔당이 그걸 놓치지 않을 것 같다는 건데.]기순의 말대로, 김 양과 간호사가 간 개미 왕국의 행동이 이상했다. 아무래도 버지니아 잔당이 그 무리를 구슬렸을 가능성을 배제하긴 힘들었다.
[이상했다니까. 진짜임. 앞에서 거미들이 몰려들고 있는데 제일 안전한 곳에 있던 여왕개미가 갑자기 공격받고 있다면서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음.] [에- 페로몬 번역기가 번역한 것을 보면 분명히 공격받고 있다고 했어요.]“여왕이 급습당할 가능성이 있나?”
[개미둥지의 구조를 보면, 마냥 쉽지는 않아도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정보를 담당하는 후드가 간호사가 보내온 정보를 기초로 개미둥지의 3D 구조도를 화면에 띄웠다.
먹이 저장공간 건너편에 놓인 여왕의 방은 일반적인 개미들과는 달랐다. 변이를 일으켜 머리가 좋아진 개미들은 산란실, 여왕의 방, 알현실. 그리고 육아 공간을 구별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당연히 알을 돌보는 개미가 있었고, 각 방을 청소하고 관리하는 개미가 언제나 상주하고 있었다. 말이 청소하는 개미지 사실상 여왕개미의 호위대 겸 시녀 역할을 하는 개미였다.
[중요한 것은 거미가 땅을 파고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설령 산란실을 뚫고 들어갔다고 한들, 그 이상 전진하기는 불가능했다. 그건 알현실이나 여왕의 방, 보육실도 마찬가지.
[만약 땅거미들이 개미둥지까지 땅을 파고들었다면, 진동에 민감한 개미들이 미리 발견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맞음. 나도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 것임.]후드의 설명에 김 양이 맞장구쳤다. 그러니까 개미들이 김 양과 친위대를 안쪽으로 부른 건 어떻게 생각해도 이상하다는 분석.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야겠네.]기순이 최악을 언급했다. 친 신성 왕국 성향의 개미 왕국, 무리를 제외하면 믿을 수 없다는 이야기. 더해서 개미 제국의 분열까지.
혹한의 겨울이 지나면 신성 왕국을 공격하는 개미 왕국이 생기지 않는다고 장담하기 힘들었다.
“이번 겨울을 최대한 이용해야겠어.”
[먼저 치고 갈 생각이냐?]“그래. 최소한 근방에 있는 놈들은 전부 확인해야겠어.”
정치를 안다는 건 배신할 수 있다는 뜻일 터. 이번 기회를 통해 개미들도 거를 생각인 마루였다.
‧
‧
‧
마루는 즉각 미시간주(州)에 있는 개미 왕국부터 확인하기 시작했다.
기순과 간호사 그리고 에리카를 대동한 사절단이었다. 개미산에 대응할 수 있는 특수 장갑을 장착한 소대 병력과 함께였다.
[이거 꼭 나까지 불러야 했냐?] [개미 여왕의 감정을 알아야 하니까.]캐나다 총독 업무로 바쁜데 이렇게 빠져야 해서 좀 부담스러운 기순이었다.
하지만 마루는 기순이 필요했다. 원거리에서 대상의 감정을 읽는다는 건 상당히 효과적인 능력이기도 했거니와. 동물이나 곤충, 최근에는 변이를 일으킨 식물의 감정까지 읽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었다.
바퀴벌레와 쥐의 심상을 읽기 버거워했던 에리카였다.
[그럼 에리카는 왜 데려가는 건데?] [입구나 여왕개미의 알현실에 우리 말고 다른 인간의 잔류사념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으니까.]마루의 답변에 기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아닌 다른 인간이라면···. 버지니아 잔당일 가능성이 있겠네.] [그래. 이번에 놈들의 흔적을 잡으면 바로 때려잡지 않고 진득하게 추적하고 제대로 덫을 놀 생각이다.]버지니아 잔당 놈들이 기억주입 앰풀로 자가복제하든 아니면 클론으로 복제하든 연구시설이 있어야 했다.
[거점을 찾으려고?] [기반 시설은 있어야 할 테니까.]놈들을 끝장내려면 그 시설부터 없애야 한다는 게 마루의 판단이었다.
[개미둥지로 들어가는 건 위험하지 않겠냐?] [신형 터널 굴착 기계(TBM : Tunnel boring machine)까지 준비했으니까 걱정하지 마라.]다들 노심 아머로 무장하고 있었다. 개미들이 함정을 파서 묻어버린다고 해도, 신형 터널 굴착 기계가 순식간에 구조할 수 있었다.
소대 단위 병력이라고 하지만, 개미산을 방어할 수 있는 장갑으로 무장한 병력이니만큼 마루 일행이 탈출할 때까지 충분히 시간을 벌 수 있을 테고.
[이렇게까지 준비한 걸 보면 혹시 그래서?] [···그건 아니고.]기분이 찝찝해서 이런저런 준비를 한 게 아니냐는 기순의 말에 마루가 말을 아꼈다. 아무리 좋은 감각이라고 해도 위기 감지, 위기 경고일 뿐이었으니까.
마루는 이번 순행을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
이클립스를 사용하기 힘든 개미굴을 상정해 이제껏 확보한 스틸레토와 대검을 녹여 정육 스타일 단검을 만들었다. 좁은 공간에서도 잘 다룰 수 있는 칼을 만든 것.
준비한 것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이클립스의 손잡이에 연결하는 봉을 만들어, 이클립스를 창처럼 쓸 수 있게 했다.
보통 상황에서는 이클립스를 쓰고 좁은 공간에서는 정육용 단검. 넓은 곳에서 다수를 상대할 때는 창을 쓸 수 있게 준비한 마루였다.
개미나 거미처럼 다수와 싸울 때를 대비한 무장이었다. 다양한 상황을 상정한 전투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는 마루를 본 김 양이 한마디 했다.
‘복잡하게 그러지 말고 그냥 쏘면 되는 거 아님?’
‘개미가 천 마리면 총알 천 발을 들고 들어가야 하는데? 그게 되겠냐?’
‘어. 음- 그냥 살! 해버리면 되지 않음?’
‘놈들이 소모전을 걸면? 살기도 정신력과 체력을 소모한다고.’
개미고 거미고 만만한 놈들이 아니었다. 근방에 있는 개미들은 친 신성 왕국 파라고 하더라도 준비는 철저할수록 좋았다.
‘응- 근데 왜 난 안 데려감?’
약속한 데이트는 어째서 안 해주고? 하는 눈빛을 보내는 김 양이었다.
‘우리가 계속 놈들의 휴민트를 잡고 있잖아. 계속 심어 놓은 휴민트가 잡히는 걸 놈들이 그냥 두고 보고 있지는 않을 거다. 분명히 내가 나간 틈을 타서 뭔가를 하려고 하겠지.’
‘흐으응- 그걸 잡으란 말임?’
‘그래.’
마루가 너만 믿는다는 듯 말하자, 김 양이 고양이처럼 대답했다.
‘알겠음. 나만 믿고 잘 다녀 오. 오. 세에···. 엠.’
뭔가 반응이 오묘한 김 양이 떠오른 마루였다.
[김 양이 요즘 이상한데. 혹시 너랑 PD가 바람 넣었냐?] [바람은 무슨 바람. 김 양이 어떤 앤데 내가 바람을 넣고 말고 할 게 있겠냐?] [그럼 간호사는?] [아니. 갑자기 왜?]마루는 지금도 뒤통수가 간질간질할 정도로 뜨뜻한 시선을 보내는 간호사 때문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아니면 됐다.]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우리 왕님도 까치랑 까마귀 좀 본받았으면 좋겠다.] [지랄은. 너님이나 하세요.] [지금처럼 뺑뺑이나 돌리지 말고 그러든지.]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에, 처음으로 연이 닿은 개미 왕국에 도착한 마루 일행이었다.
‧
처음으로 연이 닿은 개미 여왕은 마루 일행을 환대했다.
신성 왕국과의 거래로 혹한의 겨울을 대비하고도 남을 정도로 넉넉한 식량을 저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긍정적인 감정이다.] [에- 대화도 부드럽게 잘 되고 있어요.](제국. 명령. 부당.)
[제국에서 먹이를 분배하라는 명령이 부당하다고 하고 있어요.](신성 왕국. 동맹. 먹이. 공급. 가능?)
[신성 왕국과 동맹을 맺으면 안정적으로 식량을 공급받을 수 있는지 확답을 듣고 싶다고 해요.]처음으로 연이 닿은 개미 여왕 그러니까 1번 개미 왕국 여왕의 질문에 마루가 답했다.
[제국과 별도로 동맹을 맺겠다는 건가?](제국. 독립. 왕국. 연합.)
[에? 잠깐만요. 그게 정말이에요?] [무슨 일인데?]간호사가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대답했다.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미쳤나?]거미를 토벌에 힘을 빌리려고 했더니, 자기들 독립 전쟁. 그러니까 내전을 하겠다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게다가 개미 제국에 반대하는 개미 무리를 모조리 합해도 세력 비율이 잘해야 7:3에서 8:2였다. 그런데 독립 전쟁을 하겠다고?
[얘네들 우리를 엮으려고 하는 것 같은데?]기순의 생각과 마루의 생각이 일치했다.
인간들의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을 알아챈 여왕개미가 바로 대응했다.
(제국. 인간 제국. 공격. 먹이. 부족. 영토. 확보.)
[에에엣. 정말요? 개미 제국에서 먹이 부족으로 덴 브라운 총통의 제국을 공격하려고 한다는데요?]그냥 공격이 아니라 영토를 확보하려는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를 알린 개미 여왕이었다.
그 의미를 읽은 기순이 고개를 흔들었다.
[와- 세네. 세. 그러니까 개미 독립 내전이 터지지 않으면, 개미 제국이 덴 아재 쪽을 공격한다는 소리잖아.] [강심제 쓰고 뒤로 빠져.]마루의 말에 기순과 간호사, 에리카가 화들짝 놀랐다.
[어?] [에에?] [네?] [지금. 당장.]기순이 당혹스러워하는 간호사와 에리카를 데리고 개미 여왕의 알현실 밖으로 도망치듯 나갔다.
입구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근위대 개미들이 더듬이를 흔들며 무슨 일이 있느냐는 듯 물었다.
(무슨 일?)
[모르겠어요.]간호사가 페로몬 통역기로 근위대 개미들에게 대답하기도 전, 보조 인공지능이 강심제를 주사했다.
치익- 전투 자극제와 강심제가 섞인 신형 제제가 혈관을 타고 도는 것과 동시에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공포가 개미 여왕의 알현실 밖으로 흘러나왔다.
(공격?)
(배신?)
근위대 개미들이 주저앉은 기순과 간호사, 에리카를 향해 턱을 내밀다가, 여왕의 알현실로 몸들 돌렸다.
부르르르 떠는 더듬이. 끔찍한 죽음의 공포에 질린 근위대 개미였지만, 인간과는 달리 금방 공포를 뿌리치고 안으로 들어가는 개미들.
(여왕. 위험.)
(알현실로.)
근처에 있던 시녀 개미들을 시작으로 개미들이 줄을 이어 여왕의 알현실로 향했다.
그리고 처절한 페로몬이 사방으로 퍼졌다.
(그만.)
(들어오지 마.)
(멈춰.)
여왕개미의 페로몬이었다.
‧
기순과 간호사, 에리카를 알현실 밖으로 내보낸 마루가 그대로 살기를 풀었다.
[나랑 장난치냐? 날 이용하려고 해?](오해. 아님. 동맹.)
점점 짙어지는 죽음의 기운에 여왕개미가 힘겹게 더듬이를 움직였다.
(오해. 정보. 진실.)
[오해는 무슨 오해. 정보? 공격하려고 한다는 정보를 줬다고? 뒈지고 싶냐? 인간을 공격하겠다고? 그게 진실이라고? 웃기는 년이네. 모조리 죽고 싶은 거야?]몸을 납작 엎드린 여왕개미가 알현실로 들어오려는 근위대와 시녀들을 뒤로 물렸다. 그녀의 앞에 있는 건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존재였다.
근위병과 시녀들이 전부 몰려온다고 하더라도 죽음 그 자체가 움직이는 순간 자신은 죽었다. 아이들도 전부 죽었고.
(살고 싶음. 오해. 정보. 진실.)
개미 제국에서 독립하지 못한다면 덴 브라운의 제국을 침공할 때 무리를 동원할 수밖에 없고, 그렇다는 건 결국 죽는다는 뜻이었다.
개미 여왕은 필사적이었다.
죽음을 이용하고자 한 게 아니라는 뜻을 밝혔다.
[개미 제국의 중심부가 어디냐?]마루의 질문을 페로몬 번역기가 통역하자, 공포로 흔들리던 여왕개미의 더듬이가 쭈뼛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