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808)
러스트 [RUST]-808
마루는 핵 수류탄을 뽑아 들며 생각했다.
놈들이 이게 핵 수류탄이라는 걸 알까?
검은 촉수에 잡아먹히고 있는 포로들과 개미들은 신성 왕국의 핵 수류탄을 본 적 없었다. 그러니 패스.
문제가 되는 것은 군복을 입은 포로였다. 제국의 군인이니 신성 왕국에서 보병용 핵무기를 만들었다는 정보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수류탄 형태의 핵무기라는 건 정보에 없을 거다.’
재블린 형태의 소형 미사일 탄두라면 모를까. 다만 개미들의 반응이 걸렸다. 놈들은 장난치듯 짓누르고 압박하고 있었다.
핵 수류탄이 뭔지 모른 채 장난치듯 이쪽으로 민다면?
방어막이 있다고 하더라도 위험했다. 아무리 작고 귀여워도 핵은 핵. 300m~400m 반경을 날려버리는 폭탄이었으니까.
순식간에 떠오르는 여러 생각.
주저하게 하는 모든 잡념을 단호하게 잘라내는 마루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간다.’
눈 한 번 깜박할 사이에 결정한 그가 핵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았다.
장난치듯 압박한다는 것은 언제든 더 강한 힘으로 짓누르려 할지도 모른다는 뜻. 그렇다면 지금 놈들이 방심하고 있을 때 끝을 봐야 했다.
[제트팩 준비.] [제트팩 가동 준비 완료.]팅-
핵 수류탄의 안전핀이 허공으로 튕겼다.
[벙커! 벙커 뒤로 이동해!] [자동 기동 시작합니다. 벙커 뒤로 엄폐합니다.]염력에 짓눌리고 있던 마루의 노심 기체가 굉음을 토했다.
순식간에 올라간 출력!
마루의 기체가 개미들의 염력을 뿌리치고 날아올랐다.
???
!!!!!
뜬금없이 이런 식으로 염력을 뿌리치고 날아오를지는 몰랐는지, 허겁지겁 노심 기체를 겨냥해 더듬이를 내뻗는 개미들은 마루가 떨군 핵 수류탄을 놓치고 말았다.
[벙커 뒤로 엄폐했습니다. 핵 수류탄 폭발합니다. 셋. 둘. 하나.]강력한 충격파와 함께 뜨거운 불꽃이 사방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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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 뒤에 몸을 숨겨 직격을 피했고 방어막으로 보호하고 있음에도, 핵 수류탄의 위력을 전부 해소하지 못했다.
[방어막 ···89.67% 손상. ···93.51% 손상됐습니다. 방어막 복구까지 587초, 방어막 해제 후 재생성까지는 620초가 소요됩니다.] [방어막 손상이 심각합니다. 방어막 복구까지 교전을 피하시길 권고합니다.]마루는 보조 인공지능의 권고와 흐릿하게 깜박거리며 깨져가는 방어막을 전부 무시한 채 몸을 일으켰다.
다다다닥-
핵 수류탄 폭발 여파로 공간을 가득 채운 열기와 먼지.
그 죽음의 흔적을 뚫고 달리는 마루를 향해 쏟아지는 선명한 살의.
오싹오싹
두근두근
심장을 죄여오는 감각에 마루가 이를 드러냈다.
핵 수류탄 한 방 처먹더니 개미 새끼들 살의가 터진 듯했다.
‘이쪽.’
시야가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센서가 먹통이더라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을 향한 선명한 살의가 이정표가 됐다.
뭉쳐있는 살기를 향해 달려든 마루.
??
!!!
염력으로 몸을 보호하기엔 한계가 있었는지, 몇 마리가 노릇하게 구워진 형상. 아마도 힘이 없는 놈이나 약한 놈을 방패로 사용한 것 같았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간 마루가 창을 휘둘렀다. 이클립스 창날이 개미들의 머리를 추수하는 낫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다다다다-다다닥-
모여있던 개미들의 더듬이가 우악스럽게 잘리는 것과 동시에 사방을 휘젓던 염력이 사라졌다.
!!!
!!!
더듬이를 잃고 뜨거운 열기에 노출된 개미들이 우왕좌왕하더니 한곳으로 뭉쳤다. 마루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흐압.
이클립스를 수평으로 수직으로 긋자, 창대 거리만큼 길어진 사거리에 닿은 개미들의 전신이 토막 나기 시작했다.
찍-
▬▬▬▬—
염력만 있는 게 아니었다. 사각에서 쏜 회심의 개미산을 초인적인 반응으로 회피한 마루, 빙글 회전하며 꽁지를 내밀어 개미산을 쏜 개미가 반 토막 났다.
치이이익-
[방어막 소멸. 재기동까지 620초가 걸립니다.]쯧-
개미산은 총알처럼 한 덩어리가 아니었다. 발사되는 순간 액체가 산탄처럼 사방으로 튀었다. 살의를 느껴 피한다고 피했는데도 몇 방울 튀는 건 어쩔 수 없었고 방어막은 그걸 버티지 못했다.
우우우우우웅-
유달리 변이 괴물의 산에 약한 이클립스가 잘게 진동했다.
그 진동을 느꼈는지, 사방에서 살의가 집중됐다. 갑작스럽게 수백, 수천으로 불어난 살의.
‘밖에 있던 놈들까지 들어오기 시작한 건가?’
핵 수류탄이 터진 여파 때문인지, 지휘부 역할을 하는 개미들이 무력화됐기 때문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개미 특유의 기계 같은 정밀함을 잃은 개미들이 알현실 안으로 밀려왔다.
팅-
푸쉬시시시식—–!
나주연이 새로 만든 살충제, 특제 독가스 탄이 밀고 들어오는 개미들을 뒤덮었다. 가스탄에 맞자마자 배를 까뒤집고 죽어가는 개미들.
어찌나 독한지. 가스탄이 터진 곳을 지나가거나 가스탄에 맞고 죽은 개미와 몸을 비빈 개미도 덩달아 죽어가는 모습.
신형 독가스탄과 마루의 조합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독가스에 죽지 않더라도 살아남은 개미를 기다리는 것은 마루의 창이었다.
순식간에 쌓이는 개미들의 사체.
그리고 그만큼 조금씩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개미들의 군세. 어차피 버린 상황인지라 마루는 고민 없이 독가스 탄을 추가로 터트렸다.
팅-
푸쉬시시시식—–!
통로 중앙으로 날아간 독가스 탄이 사방으로 독가스를 뿌려댔다. 바닥, 천장, 벽을 타고 입체적으로 기어오던 개미들이 우수수 죽어 나갔다.
삽시간에 죽은 개미로 막힌 통로.
안으로 진입하려고 죽은 개미를 치우려 하다 죽고, 그 죽은 개미를 치우려고 물면 다시 죽는 죽음의 연쇄를 지켜보던 마루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쓸만한 살충제를 만들라고 했더니 대체 뭘 만든 거야?’
종말의 세상.
변이 바이러스가 모든 것을 오염시킨 세상에서 뚜렷한 것은 오직 하나.
인과관계였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고. 좋은 것이 있으면 나쁜 것이 반드시 존재하는 세상.
식인귀든 흡혈귀든 뛰어난 신체 능력과 지배력이 생기면서 인간을 먹어야 한다는 약점이 생겼다.
다양한 능력을 각성한 능력자들은 아이를 낳기 힘들어졌다.
변이를 일으킨 쥐들은 그 폭발적인 성장력으로 인해 동족상잔, 동족포식이라는 결과가 따랐다.
그렇다면 개미들은 어떤 대가를 치렀을까?
억 단위가 넘어간 대가는 아마도 굶주림과 자멸이리라.
대규모로 인간을 공격하지 않았던 것을 떠올려 보면, 개미 제국의 이번 공격은 전쟁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신성 왕국은 통째로 먹어봐야 400만. 개미 제국이 통수를 쳤어도 부족했겠네.’
한국에서 200만을 데려와서 600만이지, 신성 왕국은 고작 400만이었다. 그것도 그 넓은 영토를 통틀어서.
개미들이 공격해 먹으면 제국 본진에 가져오기도 전에 그 자리에서 소모해야 할 정도나 될까 싶은 인구.
개미 제국을 유지할 정도로 먹이를 챙기려면 그만큼 덩치 큰 먹이가 필요했을 터. 그렇게 공격할 목표가 정해졌고 그게 인간 제국이었겠지.
마루는 더듬이가 잘려 방향 감각을 잃고 버둥거리는 개미의 목을 쳤다. 목이 잘렸음에도 턱을 움직여 마루를 공격하려는 개미 대가리.
‘개미용 정보 추출기라도 만들어 보라고 해야겠어.’
이 새끼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끄릭- 키릭-
지금 같은 행동을 보면 더 그랬다. 알현실로 들어오는 유일한 통로에 독가스 탄을 터트렸으니 그곳으로 들어오는 개미들은 그냥 뒈졌다.
그런데도 계속 밀고 들어오는 개미들. 독가스에 죽은 개미를 끌어내려다 죽고. 빈 공간으로 몸을 밀어 넣다가 죽고.
개미는 멍청하지 않았다. 죽음을 알면서도 계속 밀고 들어오는 이유가 있을 텐데.
‘독가스가 있다는 걸 알 텐데도 꾸역꾸역 들어와서 죽는 건 대체···.’
설마?
죽고. 죽어서. 죽어 나가던 개미들 가운데 한 마리가 기어코 개미시체로 막힌 통로를 뚫고 기어들어 왔다.
[씨발. 설마 이거.]실시간으로 내성 있는 개체를 찾으려는 건가?
아니면 실시간으로 내성을 만들려고 그러는 거?
죽음의 위기가 닥치면 능력을 개화할 확률이 증가했다. 개미들도 그렇다고 치면, 독 내성이라는 능력을 개화한 개미가 나올지도 몰랐다.
지금처럼.
독가스 퍼진 통로를 뚫고 들어온 개미는 술에 취하기라도 한 것처럼 비척거렸으나, 점점 걷는 것이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마루는 그 개미를 향해 가볍게 창을 찔렀다.
깡-
힘을 빼고 찌르기도 했지만, 놈의 갑각질은 일반 개미보다 더 단단했다. 실시간으로 껍질의 강도가 변한 것.
찍-
동시에 배를 다리 사이로 내밀며 개미산으로 반격하는 개미. 반사신경이 다른 일반 개미보다 월등히 빨랐다.
‘능력을 각성했군.’
개미산을 피한 마루가 그대로 창을 던졌다. 쏜살같이 쏘아진 창을 앞다리와 더듬이로 내려친 개미의 옆에 식칼처럼 생긴 단검을 든 마루가 다가섰다.
결을 보는 감각.
도축한 동물들의 결을 보는 감각.
잘라야 할 부분을 느끼는 마루 특유의 감각이 개미를 훑고 지나갔다.
서걱.
앞다리 관절이 잘리는 순간, 반사적으로 꽁지를 내밀어 개미산을 쏘기도 전에 배와 가슴이 분리됐다.
개미는 개미산을 쏠 수 있는 꽁지가 잘려버린 것을 몰랐는지. 잘리지 않은 앞다리 한쪽과 더듬이로 마루를 견제하려고 했지만, 의미 없었다.
부극- 서걱-
더듬이 한 쌍과 견제하려 뻗은 앞다리가 얌전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순식간에 머리와 몸통에 달린 다리 넷만 남은 개미.
공포라는 건 모르는 개미가 무엇을 느꼈는지 뒤로 물러서려고 했다. 그리고 그제야 자기 몸에서 개미산을 쏠 수 있는 배가 잘렸다는 걸 알아챈 개미가 몸을 뒤집었다.
!!!
마루는 회칼 나이프에 묻은 개미 체액을 슥- 닦곤 허벅지에 다시 찼다.
‘이건 산 채로 가져가야겠어.’
잘린 단면에 지혈제를 발라 체액이 빠지지 않게 한 마루가 벙커를 열었다.
[뭐야? 핵 수류탄 쓴 거냐? 대놓고 그걸 쓴 거야? 괜찮냐?] [괜찮다. 안에는 이상 없고?] [이상 없지. 화구에 직격만 하지 않으면 어느 정도 버티는 사양이잖아.] [일단 나와라.]핵 수류탄의 열기에 반쯤은 녹아버린 벙커에서 기순과 간호사, 에리카가 나왔다. 핵 수류탄이 터진 여파로 짙었던 먼지가 어느새 많이 사라져있었다.
[핵 수류탄 터져서 먼지가 많으니까 조심···.] [응? 뭐라고?]마루가 말을 바꿨다.
[아니. 어디서 개미가 나올지 모르니까 조심해.] [오케이.]고작 몇 분 만에 짙은 먼지가 빠지고 있었다.
‘이건 환기 시스템이 있다는 건데.’
개미 기술이 장난이 아니었다.
인간의 기술이라고 해도 밀폐된 알현실에서 핵 수류탄이 터져 생긴 먼지를 빨아들이려면 시간 단위가 걸렸을 터.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5분도 지나지 않아 눈에 띄게 먼지를 치웠다는 건 놀라웠다. 마루가 주변을 살피는 동안 벙커 밖으로 나온 기순은 말을 잇지 못했다.
[와-나 씨··· 진짜-]개판이네.
기순은 완전히 쓸려버린 알현실을 보곤 할 말을 잃었다.
고작 몇 분이었다. 벙커에 들어간 지 길어 봐야 3분에서 5분이 지났을 뿐인데, 난리도 이런 난리가 아니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개미 조각은 마루가 칼질한 흔적이겠지.
거기에 타죽은 개미.
독가스에 당했는지 배를 내놓고 뒤집은 채 거품 물고 있는 개미까지 그냥 완전히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핵 수류탄은 안 쓴다며? 혹시 싶어 가져가는 거라더니 바로 핵 수류탄부터 까?’
마루쉑- 김 양과 죽이 잘 맞는 이유가 있었다.
그 와중에 서걱- 크직- 소리가 나는 곳을 돌아보니 마루가 확인 사살하는 모습이 보였다.
[독가스는 내성 생길지 몰라서 안 쓴다며. 살기로 조진다고 하지 않았어?]살려달라는 듯 더듬이를 흔들어대는 개미의 머리통을 쪼갠 마루가 어깨를 한 번 빙빙 돌며 답했다.
[그런 거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입구는 어떻게 막았는데? 문도 없는데.]마루가 어깨를 으쓱하자, 알현실 입구를 향했던 기순이 빽 소리 질렀다.
마루의 말에 기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알현실에서 이 지랄이 났으니 개미 제국과는 끝났다고 봐야 했다.
개미 제국과 끝났으면?
여기 오기 전에 여차하면 폭격한다고 했던 게 떠오른 기순이었다.
[폭격하려고?] [다른 방법이 없어. 여기 시설 봐라. 그냥 대충 변이 개미가 아니야.] [······.] [최소한 여기 개미들을 한 번 크게 잡아야지 그냥 두면 감당하기 어려워.] [내 말이 그거다. 감당하기 어려운 놈들인데 끝까지 가면 서로 부담스럽잖아. 거미도 남았고. 이렇게 쓴맛 보여줬으니. 다시 협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기순의 말도 일리가 없는 건 아니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마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협상하자.] [오케이 잘 생각했다.] [일단 한 번 싹- 쓸어버리고 나서. 살아남은 놈들과 하자. 협상.]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