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810)
러스트 [RUST]-810
다시 한 번 울리는 팅- 클립 튀는 소리.
번쩍-
처음 떨어뜨린 섬광탄이 폭발하며 강력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일반 섬광탄이 0.1초 단위의 빛을 폭사하고 끝이었다면 기술 특이점을 뚫은 신성 왕국의 섬광탄은 0.1초의 반짝임을 무려 30회 넘게 계속했다.
무려 3초가 넘는 시간 동안 사이키 조명 수백 배에 달하는 강력한 빛이 알현실의 어둑함을 녹여버렸다.
■■■■ ■■■■ !!!!
평생 보지 못한 빛을 처음 접한 괴물의 찌꺼기가 고통을 견디지 못해 울부짖었다. 고통으로 가득한 정신파가 주변을 헤집었지만, 마루를 막을 수는 없었다.
첫 번째가 섬광 폭음탄이었다면 두 번째로 떨어진 것은 최루탄. 특이점에 달한 기술력으로 만든 최루탄은 호흡기, 점막뿐만 아니라 피부로도 흡수되는 흉악한 물건이었다.
차라리 독가스였다면 세포가 죽어버리니 빠른 대응과 진화가 이뤄졌을 텐데, 최루탄은 세포가 죽지 않았다. 그저 끔찍한 고통만 있을 뿐.
그 끔찍한 고통에도 검은 점액질은 파편 조각을 버리지 못했다. 이것이야말로 힘의 원천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곳은 죽음으로 가는 자리. 마루가 찌르고 들어간 창이 검은 점액질과 파편을 동시에 꿰뚫었다.
이클립스로 된 창날이 검은 점액질을 푸딩처럼 잘랐고, 강한 반발력을 내뿜는 파편을 파고들었다.
두우우우우웅—–
이클립스로 찔렀는데 꼭 보신각종을 친 듯한 공명음이 공간에 울려 퍼졌다.
우우우우웅웅——
종소리 속에 절규가 섞인 듯한 울림. 마루는 창대를 비틀어 헤집었다. 스푼이 푸딩을 헤집은 것처럼 검은 점액질이 힘없이 부스러져 떨어지며, 속살이 드러났다.
제단의 파편. 이제껏 봤던 것 가운데 가장 커 보이는 파편이 이클립스가 헤집는 대로 이리저리 부서지고 있었다.
이클립스의 진동.
제단의 파편이 내는 진동.
점액질이 죽어가면서 내뿜는 뇌파의 진동이 겹치고 섞이고 얽혀 어둑한 공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듯한 소리.
저 멀리 깊은 곳에서 고양이가 갓난아기 소리로 울어대는 소리.
그리고···
두근두근두근
심장이 발작적으로 경고하기 시작했다.
마루는 비틀었던 창날을 그대로 뉘어 횡으로 그었다.
파가가가각-
투우우우웅-
파편이 잘리며 검은 점액질까지 상/하로 썰려 나가나 싶더니, 어떤 힘인지 알 수 없는 힘으로 다시 하나로 들러붙기 시작하는 파편과 점액질.
씨발.
수평으로 그었던 그대로 이클립스에 원심력을 더한 마루가 사선으로 파편과 검은 점액질을 잘랐다.
▬▬▬▬▬▬▬▬▬▬▬▬▬▬▬▬
수직으로 잘린 것을 붙이던 힘이 사선으로 분리되는 파편과 점액질까지 다시 붙이려고 했다. 마루는 그걸 그냥 두지 않았다.
으아아아아앗!
사선으로 자른 것을 수직으로 잘랐다.
▬▬▬▬▬▬▬▬▬▬▬▬▬▬▬▬
상하로 나뉜 것을 붙이고 있던 곳. 그 자리를 똑같이 썰어, 다시 상하로 절단하고 반대쪽에 사선으로 이클립스를 먹여 열십자와 엑스자 모양으로 8조각으로 해체해 버리는 마루.
두근두근두근-두근
아직이다.
아직이야.
8조각으로 나눴는데도 다시 복구하고 있어.
어쩌지?
어떻게 해야.
마루는 본능적으로 허리춤에 손을 댔다.
작은 핵 수류탄이 손에 잡혔다.
저기 벌어지고 있는 힘의 중심에 핵 수류탄을 박아 넣는다면?
손가락이 자연스럽게 안전핀으로 향했다.
그 순간 다시 발작하듯 뛰기 시작하는 심장.
두근두근두근두근두든-
핵 수류탄을 꽂아 넣자는 생각과 동시에 찡하게 쥐어짜는 심장의 고통. 그리고 그 알싸한 통증 끝에 번뜩 떠오른 생각.
‘도쿄에 수소폭탄을 떨궜다가···.’
싱크홀이 열린 것이 떠올랐다.
아무리 작아도 핵은 핵.
도쿄에 열린 싱크홀처럼 큰 게 열리지는 않겠지만, 분명 작은 구멍 정도는 열리겠지.
마루는 바로 옆에 있는 네이팜 수류탄을 꺼내 들었다.
두근거렸던 심장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잔잔하게 변한 것을 확인한 그가 네이팜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았다.
팅-
튀는 클립 소리와 함께 특유의 발걸음이 시작됐다.
한 번에 12m~15m에 달하는 이동 거리. 아무런 가속 없이 내디딤 만으로 시작하는 압도적인 가속력에 노심 아머의 관절이 한계에 달랬다.
끼이이이- 끼기긱-
8조각으로 쪼개진 조각을 끈적이는 검은 유기체가 필사적으로 이어 붙이려고 했고. 그 중앙 찢어진 틈에서 새어 나오기 시작한 불길한 힘이 조각한 조각과 검은 유기체를 재생하기 시작했다.
!!!
‘오. 오지 마!’
‘안돼!’
‘멈춰!’
‘잠깐.’
‘잠깐만.’
섬광탄과 최루탄에 감각을 잃어버린 검은 유기체가 마루의 돌격을 감지했을 땐, 마루의 손에 들린 네이팜 수류탄이 찢어진 틈에 때려 박힌 뒤였다.
퍽-
조그맣게 벌어진 입에 통째로 두툼한 소시지를 밀어 넣듯이 네이팜 수류탄이 박혔다. 퍽- 손으로 때려 박고 발로 재차 박차 거리를 벌린 마루.
퍼어어어엉-
화르르르륵-
순간적으로 3,000도가 넘는 초고온이 검은 유기체를 불태웠다. 포로들과 개미를 방패 삼아 버텼던 검은 유기체는 중심에서부터 피어나는 불꽃을 견딜 수 없었다.
‘끄아아아아악!’
‘아아안—’
‘아아-너어어!’
조각난 파편의 중심.
찢어진 공간을 유지하던 검은 점액질이 오그라들기 시작하는 모습.
마루는 그 찢어진 공간을 향해 이클립스를 푹 찔렀다.
푸우우욱—-
‘머. 멈춰!’
‘제발.’
‘그만해.’
‘아아아아악!’
처음과는 달리 무언가에 닿은 듯한 감촉.
그건 기괴한 감각이었다. 노심 아머를 입고 있었으니 두툼한 기계 손을 타고 감각이 전해질 리 만무했지만, 마루는 분명 감촉을 느꼈다.
단단한 껍질을 뚫자 속에 들어있는 미끄덩거리는 감촉. 그 찝찝한 감촉이 이클립스와 창대를 타고 올라왔다.
위험하다기보다 지랄 같다는 쪽으로 변한 감각에 마루는 이클립스를 더 깊이 밀어 넣었다.
■■■■■■■■■■■■■■■■
처음에는 뚫기도 벅찼던 이클립스가 무언가를 파고들고 있었다.
아니···.
파고들고 있는 게 아니었다.
———파먹기 시작했다.
뿌득- 꾸득- 으적-
창대를 타고 올라오는 기묘한 감각.
‘이클립스 이 새끼.’
저번에는 피 처먹고 셀프 수리하더니.
이번에는 뭘 처먹고 있는 거야.
그렇다고 틈새에 찔러 넣은 이클립스를 빼는 건 아니었다.
검은 점액질이 목숨을 걸고 벌어진 틈을 유지하려고 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좋은 건 아닐 터.
위험하다면 감각이 경고했을 테니, 이클립스가 하는 짓이 찜찜하기는 해도 위험한 건 아니라는 이야기겠지.
마루는 벌어진 공간의 틈 속으로 이클립스를 더 밀어 넣었다. 물 만난 고기처럼 펄떡이며 안으로 파고 들어가는 이클립스.
우우우우웅-
창대를 타고 느껴지는 이클립스의 진동이 더 강해졌다.
‘음?’
검은 점액질은 꺼지지 않는 네이팜 불꽃에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들었고. 찢어진 틈새에서 흘러나오던 힘은 이클립스의 먹방에 먹혀버렸는지 점차 사그라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쿠직-
찢어졌던 틈새에 유리창에 금 가듯. 쭉 금이 갔다.
‘뭐? 금이 간다고?’
찢어진 틈새라면 허공이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 그런 허공에 금이 가? 무슨 이런.
크지지직-
틈새에 그어졌던 얇은 금이 점차 굵직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마루는 손잡이 끝까지 밀어 넣었던 이클립스를 다시 뽑았다. 이대로 금이 가서 깨져버린다면 어떻게 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만 먹고 나와라.]마루가 뒤로 뽑기 시작하자, 창대가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낚싯대처럼 휘청거리고 펄떡거리는 창대를 꼭 붙잡은 마루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이게 미쳤나.’
창대 끝에 달린 이클립스가 나오지 않겠다는 듯 진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노심 아머를 장비하지 않았더라면 창대를 놓쳤을 정도로 펄떡이는 이클립스.
[나와-]▫▫▫▫▫▫▫▫▫▫▫▫▫▫▫▫
[그만하고 나오라고!]!!!!!!!!!!
마루는 노심 기체의 최고출력으로 이클립스를 빼냈다.
핫도그에 박힌 소시지처럼 뿍- 빠져나오자, 강한 진동파가 칼날을 타고 튀었다.
???
창대 끝에 달린 이클립스의 모습이 변해 있었다.
‧
‧
‧
무자비한 폭격이 개미 제국의 중심부를 불태웠다. 핵 벙커버스터가 뚫어놓은 구멍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폭탄들.
한 발 한 발이 자체 유도 기능과 생체 EMP 대응 가능한 시스템이 달린 폭탄들이 넓은 공간을 샅샅이 헤집고 때리기 시작했다.
개미 제국의 놀라운 건축 기술이 피해를 더 키웠다.
4km 지하. 초고온의 네이팜이 살라버린 공간. 그 깊이라면 산소 부족으로 불꽃이 약해져야 하건만, 개미 제국의 환기 시스템은 놀라웠다.
검은 연기는 어디론가 빠져나갔고 싱싱한 공기가 유입되어 네이팜 불길이 활활 유지됐다. 그걸 이용하기라도 하듯 신성 왕국의 폭격은 자비 없이 계속됐다.
끝없이 타오르는 겁화(劫火)가 개미 제국의 수도를 삼키기 시작했다.
[끝난 거냐?] [반쯤.]신기술로 범벅된 벙커를 이중으로 펼친 게 효과 있었는지, 기순과 간호사. 에리카는 검은 점액질이 뿜어낸 정신파나 기괴한 공간에서 흘러나온 기운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신성 왕국의 정신파 관련 차단 기술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뇌둥둥 박사, 자칭 유 이사 전생체 그리고 죠셉 마이어의 찌꺼기를 완벽하게 차단할 정도였다.
[정신은 어때? 뭔가 이상한 느낌은 없었고?] [무슨 정신? 혹시 정신계 관련된 문제가 있었냐? 개미들은 페로몬이라 정신계 능력은 아닐 텐데.] [개미 문제는 아니야. 아- 개미도 문제긴 하지만, 검은 촉수 때문에 골치 아픈 일이 있었거든.] [정신계 쪽이라면 난 괜찮은데.]기순이 돌아보자, 간호사와 에리카도 괜찮다고 했다.
[근데. 그 검은 촉수는 뭔데 여기저기 다 있냐?] [그러게나 말이다.]마루의 대답에 기순의 실눈이 가늘어졌다.
[이거 검은 촉수도 그렇고 여러모로 걸린다. 저번에는 심 누님까지 흡수해서 지랄했던 검은 촉수가 이번에는 개미랑 붙어먹었다는 소리잖아.] [아니. 그때 검은 촉수랑은 틀려. 하는 짓도 이번 건 좀 달랐다.]일본에서 봤던 놈과는 다르게, 미국 서부 심 회장을 흡수한 검은 촉수는 의태(擬態) 할 수 있는 놈들이었다.
일본에서 봤던 놈은 마구잡이로 흡수해 모양이 무너진 괴물이었고, 미국 서부에서 마주친 놈들은 흡수한 생명의 기억과 모습을 의태 했었다.
일본에서 마주한 검은 촉수와는 달리 의태 가능한 촉수였던 놈을 놓쳤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어쨌든. 이번 촉수는 많이 달랐다. 포로를 먹고 정보 추출하고, 추출한 정보를 개미에게 제공하는 방식으로 공생하고 있었다.
[확실한 건 확인해 봐야 알겠지만.] [확인한다고? 죽인 거 아니었어?] [핵 수류탄 열기를 포로랑 주변에 있던 개미들을 끌어와서 버텼더라. 네이팜으로 다시 구웠는데, 속에 완전히 구워지지 않은 조각이 남은 것 같아서.] [웬일이냐? 우리 왕님 그런 건 모조리 태워버렸잖아.] [이번에 보니까. 태운다고 될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럼 약점이라도 찾으려고? 위험하지 않을까?]예전 같았으면 싹 태워버렸을 마루였지만, 검은 촉수들의 약점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한두 번 정도야 우연이라고 쳐도, 검은 촉수 관련된 것과 마주친 것만 벌써 4번이었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그 4번 가운데 3번이 제단 혹은 제단의 파편과 관련된 일이었고. 이번만 해도 검은 촉수가 달라붙어 있던 건 파편이라고 하기엔 큰 덩어리였다.
[그래도 이대로 그냥 넘어가긴 위험해. 최소한 검은 촉수를 찾아내는 생체 탐지기라도 만들어야지, 죠셉 마이어 찌꺼기와 버지니아 랭리 새끼들이 의태(擬態) 하는 것도 그런데, 검은 촉수까지 그런다고 생각해 봐라.] [···그렇긴 하네. 듣고 보니 검은 촉수나 제단 관련된 건 버지니아든 다른 세력이든 인간과 연결됐다는 흔적이기도 하고.]두 사람이 제단과 검은 촉수, 틈새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데, 갑자기 간호사가 손을 번쩍 들었다.
여기저기 터져나간 알현실 벽 틈새로 밖을 보고 있던 그녀가 손을 들고 외쳤다.
[에에에엣! 항복했어요!] [항복?]간호사의 손에 들린 페로몬 번역기가 반짝였다.
[네. 항복했어요. 개미들이 항복했어요. 공격을 멈춰 달래요.]개미 제국이 항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