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816)
러스트 [RUST]-816
마루의 칼질은 단호했다.
끄드드드-
공주, 여왕 할 것 없이 모조리 더듬이를 잘라버린 것. 뉴클립스에 더듬이를 잃어버린 공주, 여왕개미들은 말 그대로 무력화됐다.
방향 감각과 균형 감각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페로몬으로 의사소통하는 능력까지 거의 사라지고 만 것.
(협약. 어김. 배신. 인간. 폭력.)
(인간. 공격. 인간. 전쟁. 원함.)
(통증. 통증. 괴로움. 그만. 멈춤)
누가 뭐라고 하든. 접대니, 대접이니 하면서 마루를 페로몬으로 조종하려고 했을 때부터 상황은 끝나 버렸다.
(오해. 없다. 목적. 대접.)
(인간. 교미. 좋다. 대접.)
[이 새끼들이. 대접? 그게 대접? 날 엿 먹이려고 했으면서 뭐가 어째?]어디서 아닌 척 오리발을 내밀어. 마루의 칼질은 평등했다. 걸리는 족족 더듬이를 잘라버리자, 몇몇 개체들이 개미산을 뿌리며 저항했지만, 노심 아머의 방어막을 뚫을 순 없었다.
회심의 개미산이 방어막에 가로막힌 것을 본 개미들이 그 비싸고 고귀한 몸뚱이로 육박전을 벌였지만, 십만 단위를 썰어댄 마루를 감당하기란 불가능했다.
예전에는 날렵하게 회피하고 일격을 먹이는 방법이었다면, 지금은 우직하게 방어막과 장갑을 믿고 뚫고 들어가 휩쓰는 방식을 사용하는 마루였다.
그리고 지금. 마루의 그런 돌격 전법은 개미들에게 있어 쥐약이었다.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으면서 일방적으로 갈리고 썰리는 판이었으니까.
(인간. 아니다. 인간. 아니다.)
(협정. 위반. 괴물. 인간. 아니다.)
[지랄하네. 더듬이 내놔!]마루는 손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어지간하면 더듬이를 잘랐지만 여차하면 그냥 대가리를 통째로 갈아버렸다.
페로몬 번역기가 괴로움, 고통, 절망, 애원을 번갈아 출력하자, 번역기를 꺼버린 마루. 어차피 말로 해결할 상황은 진작 넘어버렸다.
순식간에 백 단위가 넘어가는 상위 개체들이 무력화됐다. 근위대 개미와 은신 개미, 시녀 개미들이 필사적으로 달려들어 갈갈이가 된 것까지 합하면 순식간에 수천 단위를 토막 내 버린 것.
이제는 마루가 접근하기만 해도 우르르 도망치기 시작한 개미들이었다.
우당탕.
허우적허우적.
자기들끼리 의사소통이 엉망이 된 개미들은 공주고 여왕이고 시녀들이고 할 것 없이 뒤엉켜 버둥거리다 패닉에 빠져 주변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루는 백여 마리가 훌쩍 넘는 개미들을 굴비 엮듯 엮기 시작했다.
더듬이를 자른 자리에 낚싯바늘처럼 휘어진 바늘을 꽂아 넣고 엮은 것이었다. 더듬이 잘린 자리가 예민해서인지, 더듬이를 자른 곳을 바늘로 꿰자 자지러지는 개미들.
휙-
바늘로 꿴 가느다란 줄을 잡아당기는 대로, 백 단위의 개미들이 우르르 딸려오는 모습. 반질반질 윤기 흐르던 갑질은 더듬이가 잘린 상처에서 흐르는 체액으로 더러워졌다.
[누가 제일 우두머리지?]페로몬 번역기를 켠 마루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개미들에게 물었다.
(고통. 고통. 통증. 인간. 아니다.)
(협약. 파기. 인간. 신용. 없다. 인간. 아니다.)
[허튼 소리하지 말고. 누가 최고 책임자야?]마루가 진짜 우두머리, 최고 결정권자 개미를 찾은 도중 생체 로봇의 경고가 들어왔다.
삑삑삑삑—- 삐이이이익-
폭격 전에 뿌렸던 소형 중계기와 생체 로봇의 링크가 연결되며 개미 제국 중심부 교전 상황이 들어왔다.
개미 토벌대와 개미들의 전투 양상이었다. 개미들의 숫자가 압도적이었지만, 생화학전 특수부대의 위력이 너무 강했다.
그들이 뿌리는 독가스에 개미들은 속절없이 죽어 나갔고. 접근전 대신 개미산을 쏘며 원거리 전으로 유도하려고 했지만, 그것은 공기와 물, 염력을 다루는 능력자들로 인해 막혔다.
강력한 개미산이 토벌대를 향해 뿌려졌지만, 공기 능력자가 공기를 이용해 방어막을 만들었고, 개미산을 이용한 함정을 바닥에 파도 대지 능력자와 물 능력자가 바닥에 깔린 함정을 파악해 없앴다.
마지막으로 날개미들이 공중에서 습격했지만, 염력 능력자와 공기 능력자의 방어를 뚫지 못했다. 토벌대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개미를 학살하며 들어오는 모습은 실로 대단했다.
‘너무 욕심을 부리는 것 같은데?’
엄청난 숫자의 개미들을 죽였다고 해도 고작 몇만 단위. 그에 반해 그들을 포위하고 있는 개미들은 천만은 족히 넘었다.
독가스를 얼마나 가져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축차적으로 달려드는 개미들을 전부 죽이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무엇보다 죽지 않은 개미들이 뒤로 빠지고 있다는 점이 위험했다. 저들은 이제 곧 공주나 여왕의 지위를 받고 살충제, 독가스에 내성이 있는 개미들을 낳기 시작할 것이다.
‘덴 브라운이라면 그에 대한 대비책이 있겠지.’
나주연도 살충제를 만들 땐 성분을 바꿔 내성에 대비했던 것을 보면, 제국도 내성 대비 약물이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약물로도 개미를 박멸하는 것 불가능하다는 점이 문제.
그냥 개미도 아니었고 인간을 생포해 자기들 방식으로 연구하고 실험하는 것들이었다. 개미들도 나름대로 독가스 대책을 세우지 않을 리 없었다.
‘일반 곤충이었다면 살충제 맞고 내성 키우고 다시 다른 살충제 먹고 또 내성 키우는 식이겠지만. 개미들 하는 짓을 보면 그런 패턴에서 벗어날 것 같단 말이지···.’
인간이었다면 똑같은 방법에 똑같이 반복해서 당할까? 인간이 대책을 세우는데 변이를 일으킨 개미들이 대책을 세우지 않을 거라는 건 막연한 기대일 따름이었다.
영상 속 토벌대는 분전했다. 무엇 때문에 도망치지 않고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오는지 모르겠지만, 개미 제국 중심부를 향해 밀고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 도중 갑작스럽게 개미들의 움직임이 변했다. 포위하던 포위망의 절반가량이 갑작스럽게 뒤로 빠지기 시작한 것.
‘갑자기 후퇴?“
천만 단위의 개미들이 썰물처럼 빠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삐-삑삑-삑삑삑삑삑삑삑
삐-삐-삐삐삐-삑삑삑삑-
삐이이이이이이—-삑삑
사방에 흩어졌던 생체 로봇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접근 경보를 울려대기 시작했다.
‘이런 씹-’
공주, 여왕을 비롯한 지배층이 공격받았다는 소식이 포위하고 있던 병력에 전해진 것이었다. 마루는 그대로 인질(?)들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순식간에 밀려드는 개미떼의 앞에 더듬이가 잘린 공주 개미를 방패 삼아 길을 여는 마루.
[전부 비켜. 접근하면 이것들 죽인다.]페로몬 번역기가 마루의 경고를 번역했지만, 개미들은 그런 경고를 무시하곤 달려들었다.
‘뭐야 이것들. 공주와 여왕이 포로인데 그냥 달려들어?’
한 손이 열 손을 막지 못한다는 속담처럼. 백 마리가 훌쩍 넘는 포로들을 마루 혼자서 지키기는 힘들었다.
그렇기에 마루는 과감하게 손을 썼다. 더듬이 잘린 곳에 박아 넣은 줄을 휙 잡아당기자 우르르 끌려오는 공주, 여왕개미들이 바리케이드처럼 마루의 앞에 늘어섰다.
콰직-
고통으로 꿈틀대는 살아있는 바리케이드가 자신들을 구하려고 온 일반 개미를 물어뜯었다. 처음에는 다가오지 말라는 경고였으나, 나중에는 거의 발작적으로 물어뜯기 시작하는 공주, 여왕개미들.
상위 개체에 걸맞게 일반 개미보다 월등히 강한 턱의 절삭력으로 순식간에 접근한 개미들을 토막 낸 공주, 여왕개미였다.
일반 개미들 구하러 왔다는 페로몬을 내뿜어도 그 페로몬을 읽을 더듬이가 없는 공주, 여왕개미들은 그저 마루가 잡고 휘두르는 끈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개미들이 흘린 체액으로 뒤덮인 공주, 여왕개미들. 예전 같았다면 시녀 개미를 비롯한 일반 개미들이 몸을 닦아 줬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공주, 여왕 특유의 페로몬이 체액과 뒤섞여 흐려지기 시작한 것.
크릭?
크리릭?
크릭?
처음에는 더듬이를 흔들며 잠시 주저하나 싶더니, 그대로 공주와 여왕개미를 물어뜯기 시작하는 일반 개미들이었다.
어?
마루는 당황했다. 일반 개미들이 공주, 여왕개미를 공격한다는 건 예상할 수 없었다.
‘더듬이? 더듬이를 날려버려서인가?’
이유야 어쨌든 마루의 판단은 신속했다.
뭉클.
강력한 살기가 주변을 휩쓸었다.
‘역시.’
몰살당한 쥐와는 달리 개미들의 피해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굳기야 하지만, 즉사 비율이 확연히 달랐다.
마루는 실망하지 않고 바로 뉴클립스를 휘둘렀다. 창대에 꽂은 뉴클립스가 낚싯대라도 된 것처럼 낭창낭창 사방을 헤집기 시작했다.
푹- 쑤셔진 주변이 통째로 날아가는 장면은 초현실적이었다. 그냥 이능(異能)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험악한 위력이 펼쳐졌다.
써는 게, 써는 것이 아니었고. 베는 게, 베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거대한 괴수가 한 입 베어 문 것처럼 뉴클립스에 닿은 근처가 통째로 분쇄되는 모습.
삽시간에 천 단위, 그리고 만 단위를 넘어 포위망을 통째로 갈아버린 마루가 다시 살기를 터뜨렸다.
!
!!!
미친 듯이 달려들던 개미들이 그 살기에 움찔 멈췄다. 홀로 개미들을 도륙 낸 마루의 위세에 개미들도 질려버렸는지, 한 번 멈춘 공격이 다시 이어지지 못하고 대치 상태가 됐다.
삑-삑삑- 삑삑삐–
생체 로봇이 전해온 정보. 마루가 정신없이 싸우는 동안 토벌대는 궤멸적인 피해를 보고 도주하고 있었다.
쯧-
그러니까 너무 깊게 들어오더라.
‘음? 저것들은?’
생화학 특수부대가 가스를 뿌렸는데, 그걸 무시하고 달려드는 개미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내성을 얻은 개미들이 공격한 것.
내성 능력을 각성한 개미?
뭐가 됐건 토벌대가 살아서 퇴각하긴 어려워 보였다.
휙- 잡아당긴 끈에 반응한 건 고작 여섯 마리. 꿈틀거리는 것들까지 합하면 스물은 넘었지만 자기 다리로 걸을 수 있는 건 고작 여섯 마리였다.
마루는 그 여섯 마리를 따로 묶어 짐작처럼 등에 둘러맸다. 그러는 동안에도 개미들은 차마 달려들지 못했다.
[폭격. 구멍 막힌 거 뚫고 신형 수소폭탄 준비.] [명령 전달했습니다.]잠시 뒤 거대한 폭음과 함께 수직으로 뚫린 구멍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폭발이 이어질수록 구멍에서 화산재처럼 떨어지는 개미들.
새카맣게 타버린 개미 조각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폭격 중지.]푸화아아아악!
마루가 구멍을 향해 날아가자, 날개미 수만 마리도 구멍을 향해 날아들었다. 입구를 막아 탈출을 막으려는 건지 아니면 폭격하고 있는 적을 찾아가는 건지 확실하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루는 제트팩의 속력을 최고로 높였다. 근처에 걸리적거리는 날개미를 뉴클립스로 갈아버리면서 수직으로 치솟았다.
지하 4km 깊이 수직 균열을 통과한 마루가 신성 왕국 특유의 수소폭탄 공격을 명령했다.
[쏴!] [수소폭탄 발사합니다.]거대한 미사일이 수직 통로 속으로 쑥 사라졌다.
콰드드등-
깊숙한 구멍을 뚫고 나오는 불꽃이 화산처럼 폭발하듯 치솟았다. 잠시 뒤, 거대한 지진과 함께 반경 15km가 넘는 공간이 땅속으로 푹 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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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통 각하. 개미 본거지로 추측되는 좌표에서 거대한 인공 지진파가 확인됐습니다.]“인공 지진파? 핵인가?”
[최소 120 Mt급 폭탄이 터진 것으로 예측됩니다.]“토벌대는···?”
신성 왕국이 핵을 쓴 것이 분명했다.
[개미 본진으로 진입한다는 보고를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겼습니다.]“······.”
덴 브라운의 얼굴이 구겨졌다.
“신성 왕국에 긴급 회선으로 연결해.”
제국과의 외교를 담당하고 있는 기순이 긴급 회선으로 연락받았다.
[예? 제국의 토벌대가 연락이 끊겼다고요? 그런데 그걸 왜?]그러니까 마루가 대충 ‘핵’ 해버렸다는 이야기.
대체 뭔 일이 있었으면 핵을 쓰는 데 아무런 말도 없이 그냥 날려버려?
그래도 그렇지. 핵 해버린 걸 어째서 덴 아재를 통해 들어야 하는 건데.
미리 알려주고 핵 하면 안 되는 병이라도 걸린 거냐?
‘제발 깜빡이 좀 켜자니까.’
기순은 울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