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817)
러스트 [RUST]-817
블라디 아크 타워로 돌아온 마루는 바로 나주연에게 향했다.
연구 주제를 몇 개 정리해서 푹 잔 나주연이 사람 꼴을 하고 마루를 반겼다. 그런 나주연에게 오다 주웠다는 듯. 공주, 여왕개미를 담은 꾸러미를 건네는 마루.
“개미 제국 공주랑 여왕이다. 이놈들 가운데 우두머리가 있을지 모르니까 확인해봐. 그리고 이건 더듬이만 모아 놓은 거다.”
“아- 알겠어요.”
“그래. 그리고 잠은 자가면서 해라. 다크서클 없으니까 보기 좋네.”
“그럴게요.”
꾸러미와 보따리를 넘긴 마루가 무심하게 돌아섰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주연이 연구원들을 닦달하기 시작했다.
“공주와 여왕으로 분류해요. 바로! 그리고 잘린 더듬이 다시 붙이고요. 늦기 전에 빨리빨리 움직여요! 어서!”
연구실이 다시 분주해졌다.
‧
영상 통화 속 기순의 얼굴은 초췌했다. 뭔가 한참 시달린듯한 모습.
[하아- 깜빡이 좀 켜고 살자고 했잖아. 덴 아재가 토벌대 있는데 핵 쏜 거냐고 난리가 아니었다.]“토벌대가 개미 제국 본거지 안쪽까지 들어와 있더라. 완전히 포위됐는데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 당시 상황 찍은 영상 있으니까 덴 아재가 계속 압박하면 현장 영상 보내버리고 신경 끊어.”
토벌대 영상이 있다는 소리는 토벌대를 봤다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토벌대를 보고도 핵을 썼다는 소리라는 이야기.
[와- 너- 하- 우리가 신경 끊는다고 제국이 신경을 끊겠냐? 토벌대를 보냈더니 엉뚱하게 핵 맞아 죽었는데 난리 안치겠어? 왕님 갑자기 왜 이러세요?]“개미들이 페로몬으로 사람 조종하는 연구를 하더라. 그리고 놈들이 나까지 노렸다.”
[개미가 연구? 무슨 소리야 그게? 널 노렸다고?]마루가 전술 카메라로 녹화한 영상을 올렸다.
생포한 사람들을 관리하는 머리 큰 개미들과 페로몬으로 맛이 가버린 사람들이 모니터에 떠올랐다. 그리고 집요하게 교미를 권하는 개미의 모습까지.
[···교미?]“보면 알겠지만, 교미하라면서 노심 아머 벗으라고 하더군. 개미들이 노심 아머가 뭔지 알고 있다는 이야기겠지. 노심 아머가 페로몬을 차단하고 있다는 것도 이해하고 있다는 거고.”
[그래서 제국 토벌대를 구조하지 않은 이유가 뭔데? 페로몬 때문이다? 그런 소리냐?]“애초에 토벌대가 앞뒤 가리지 않고 깊은 곳까지 들어올 이유가 있을까? 그리고 동원한 병력도 그래. 정말 개미 제국 토벌이 목적이라면 대규모 병력을 동원했어야지.”
[아니. 네 말대로 그렇다고 쳐도. 그냥 핵을 쏜 걸 어떻게 커버하냐고.““토벌대를 돕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니까. 영상을 자세히 보라고. 뭣보다 완전히 포위된 제국 토벌대 구하자고 핵 공격을 늦출 수 없었어.”
공주, 여왕개미들이 몰려있는 곳을 급습했지만, 전부를 잡은 건 아니었다. 병력을 지휘하고 있는 개체들도 있었고 그렇게 현장에서 병력을 지휘하고 있는 상위 개체를 놓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수천만에서 억에 달하는 개미들이 흩어져 복수를 다짐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만에 하나 신성 왕국에 그 여파가 닥친다면?
제국의 토벌대가 핵폭발에 휘말리더라도 때려잡을 기회가 왔을 때 잡는 게 맞았다. 바로 전에 폭격했을 때도 제대로 잡지 못했던 상위 개체까지 싹 쓸어버릴 기회였는데 그걸 포기하라고?
반대 상황이었다면 제국이 신성 왕국의 토벌대를 구조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했을까? 덴 브라운이었다면 제국의 미래를 걸고 핵폭탄 투하를 미뤘을까?
그 상황에서 빠른 핵 투하는 신성 왕국 국왕이 결정했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 시발. 그래. 그 이야긴 알았다. 토벌대는 개미들에게 포위돼서 전멸한 거로 하자.]“아니야. 그러지 말고 사실대로 이야기해.”
마루의 의견에 기순의 실눈이 구겨졌다.
[사실대로?]“지금 내 이야기도 그대로 전하고. 솔직하게 말하면 당장은 기분이 좋지 않겠지만, 서로 솔직하게 까고 가는 게 맞아.”
‘정직이 최선의 정책(Honesty is the best policy)’이라는 말이 있듯, 제국과의 관계에 있어 제일 중요한 건 정직이었다.
“저번 알현실에서 싸운 염력 개미들을 생각해봐, 개미들 가운데 능력을 발현한 개체가 나오기 시작했어.”
능력자로 토벌대를 구성했다는 건. 능력자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소리였다. 사태 초기 일본인 능력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이유가 뭘까? 대재난이 터진 일본에서 죽음의 위기를 겪으며 능력을 각성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2번의 혹한을 거친 지금. 북미 대륙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가운데 죽음의 위기를 버틴 사람들이 많이 생겼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능력자들이 폭증하고 있으리라 예상할 수 있었다.
기순은 마루의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능력 각성은 대체로 신체 능력 강화가 다수였지만, 다른 계열 능력 각성은 말 그대로 복불복 랜덤(random).
감정을 볼 수 있는 기순, 자신의 능력처럼 거짓을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이 나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자백 유도 같은 능력이 생긴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고 사이코메트리 같은 정신계가 나와서 바로 사실 확인, 진위 판단을 할지도 몰랐다.
[오케이. 영상과 함께 사실대로 전할 게. 제국 토벌대는 개미들에게 포위됐고 생존 가능성이 없었다. 그리고 적들을 궤멸시키려면 핵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전하마. 됐냐?]“개미 제국 개미들···. 전멸하진 않았을 거다.”
[수소폭탄이 안에서 터졌는데도?]“아마. 대부분 죽었겠지만, 그래도 무시하기 어려운 숫자가 살아남았을 거야.”
폭격 이후 개미들은 미친 듯이 굴을 팠다. 그렇게 미로로 얽힌 통로는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을 때, 충격을 분산하고 공기주머니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
“생체 로봇을 20기 넘게 굴렸는데도 상위 개체들이 모여있는 곳을 찾는 데 오래 걸렸어. 그만큼 통로와 공간을 많이 만들고 있었어.”
개미 제국의 건축 수준을 봤을 때 의도하고 그런 공사를 했다고 봐야 했다.
“정전‧평화 협정을 맺은 뒤에도 계속 공사하고 있었다는 건···. 이유야 어쨌든 개미들이 폭격에 대비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게 맞겠지.”
그렇게 공사 중인 개미와 공사를 지휘하던 상위 개체들은 핵폭발에서도 살아남았을 확률이 높았다.
“어쨌건 지금 개미 제국 수도에서 살아남은 개미들은 인간 제국이 핵 공격을 했다고 생각할 거다.”
[뉴욕을 공격하다 수소폭탄 맞은 경험이 있으니까?]“그래.”
[그럴까? 천장에 구멍 뚫은 것도 우리고. 처음으로 폭격한 건 우리가 했는데?]“중요한 건 폭격이 아니라 핵이 터진 거라서.”
[개미들이 핵에 두들겨 맞은 건 뉴욕에서였으니까 인간 제국이 개미 제국에 핵으로 복수했다고 생각할 거다?]“그렇지.”
[······.]기순은 잠시 애도의 묵념을 했다. 살아남은 개미들은 제국에 복수하려고 할 게 분명할 터. 덴 아재의 위장과 머리카락이 걱정될 따름이었다.
어쨌든 이번 핵 공격으로 생긴 신성 왕국과 제국 사이의 갈등은 사실만을 전달해 돌파하기로 한지라, 그걸로 됐다 싶은 기순이었다.
[하- 그래도 수소폭탄처럼 전략 무기 쓸 때는 미리 깜빡이 좀 켜줘. 부탁이다. 맞는 사람도 맞을 만해서 맞았다 싶어야 이해하지. 그냥 냅다 때려 버리면 그걸 참겠냐? 아니면 외교를 인공지능에 맡기거나. 진짜 뭔 죄냐? 내가.]“쏘리. 어지간하면 미리 말할게.”
‘어지간하면?’ 여차하면 또 깜빡이 없이 급발진하겠다는 소리잖아. 기순의 가느다란 눈이 더욱 얇게 가늘어졌다.
[다음에 또 이러면 외교는 알아서 해라. 진짜다?]“수고하고. 또 연락하자.”
확답을 피한 마루가 슬그머니 화상통화를 종료했다.
‧
마루는 기순의 가느다란 실눈 압박에도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덴 아재가 꼬투리를 잡는다면. 다른 속셈이 있다고 봐야겠군. 이번 희생을 명분 삼아 원하는 것을 달라고 할지도 모르고.’
신성 왕국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제국군의 희생이 크더라도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신성 왕국의 왕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게 마루의 생각이었다.
지금처럼 변이 괴물들이 넘치는 세상이라면 더욱 그래야만 했다. 덴 브라운도 비슷한 상황이 닥치면 똑같이 행동했을 게 뻔했으니까.
‘그나저나 김 양과 간호사가 늦네.’
김 양과 친위대가 같이 갔으니 경호나 안전 문제는 없을 테고.
김 양과 간호사가 순방하고 있는 독립 개미 왕국 지역이 표시된 지도를 우묵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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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와 김 양의 순방은 처음엔 간단했다.
(독립. 지원. 감사.)
[약속대로 봄이 오면 거미와의 전쟁에 참여하는 겁니다?](맹약. 당연. 참전. 한다.)
[좋아요. 여기에 표시하세요.]간호사가 내민 특수 재질 판에, 개미 여왕이 친히 페로몬을 가득 묻혔다.
[개미들 약속 잘 지키는데요?] [흐응- 끝까지 가봐야 알지.]근처에 있는 다른 왕국들도 전부 참전하겠다는 걸 재확인했다.
(약속. 지킴. 참전. 한다.)
(참전. 약속. 당연. 지킴.)
1~10번대 개미 왕국은 이야기가 편했다. 약속대로 독립했으니 참전하겠다는 약속도 지키겠다고 한 것. 조금씩 이야기가 길어지는 건 20번대 왕국 이후부터였다.
(봄. 먹이. 부족. 참전. 시기. 조율. 필요.)
(참전. 숫자. 조절. 필요. 먹이. 부족.)
그러니까 신성 왕국과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이야기가 길어지기 시작했다.
(독립. 증거. 제국 병사. 주변에 출몰.)
(방어. 위험. 참전. 위험.)
특히 독립을 인정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온 뒤로는 신성 왕국과 거리를 두려는 움직임까지 보이는 개미 왕국이 있을 정도였다.
[이것들이 미쳤나? 뒈지려고 용을 쓰네?] [에? 자. 잠깐만요. 일단 대화로.] [대화? 개미 년들 귓구멍이 막힌 년들인데 뭔 대화.] [아니. 개미들은 페로몬으로 의사소통하잖아요. 귀랑 입이 아니라.] [개미는 발성 기관이 없다고요. 턱으로 딱딱 소리를 내는 것도 진동이나 충격으로 신호를 보내는 거고요.] [그래서? 어쩌라고? 입 닦으려는 개매 년들 그냥 두자고? 1호기 미쳤니?]분노하는 김 양. 그걸 뜯어말리는 간호사. 그런 두 사람에게 하녀 개미가 접대를 해주겠다며 다가왔다.
(인간. 행복, 교미. 대접.)
페로몬 번역기에서 나온 말에 간호사가 눈을 깜박였다.
[에? 행복 교미 대접이요?] [이건 또 무슨 개소리니?](교미. 페로몬. 인간. 행복. 대접.)
그러니까 페로몬으로 행복 교미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간호사가 ‘에에엣- 갑자기 교미요? 왜?’ 그러는 사이. 김 양이 하녀 개미 앞으로 다가서며 이를 드러냈다.
[그러니까. 참전이니 어쩌니 따지지 말고 행복하게 교미나 하다가 가라고?](인간. 페로몬. 행복. 인간. 교미. 좋음.)
더듬이를 흔들며 페로몬을 뿌리는 개미에
위이이잉- 김 양의 노심 아머가 화생방 대응을 시작했다.
흔들리는 더듬이를 확 낚아챈 김 양이 쿠직- 잡아 뜯었다.
[미친 개미 년들이 어디서 약을 팔아. 뒈지려고.]더듬이가 뽑힌 개미가 발작하자, 발로 뻥- 걷어찬 김 양이 친위대를 향해 외쳤다.
[전원 전투 준비!] [전투 준비!] [전투 준비!] [에에에에엣!]‧
작은 개미 왕국은 개미와 애벌레, 알을 포함해 5만가량. 10번대 왕국처럼 신성 왕국 가까이에 있어 먹이 공급이 원활했던 개미 왕국은 20만 내외.
김 양과 친위대의 숫자는 다 합해도 200명가량. 압도적인 교전 비율에도 김 양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작은 V의 x도 있었고 귀여운 핵도 있었다. 독가스 내성? 방사능 변이? 그딴 거 신경 쓰다가 뒈지면 누가 책임지고.
그게 그렇게 문제가 될 거면 모조리 죽이면 그만이었다. 내성 생기고 지지고 자시고 할 거 없이 싹 죽이면 그만 아닌가?
(오해. 진정. 대접. 인간. 오해. 접대. 진정.)
[오. 오해래요. 잠시만요. 진짜 오해일 수도···.] [지랄! 가스!]김 양이 시작부터 독가스를 터뜨렸다.
[가스!] [가스!] [가스!]갑작스럽게 독가스에 맞은 개미들이 죽어 나갔다. 예고나 경고도 없이 벌어진 사태에 버둥거리며 탈출하는 여왕개미의 대가리를 뽑아 든 김 양이 외쳤다.
[애벌레와 알도 모조리 태워버려!]그날 개미 왕국 하나가 잿더미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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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양의 급발진을 막기 위해 바로 보고한 간호사였지만, 개미 제국을 날려버리고 돌아온 마루가 한마디로 정리했다.
[잘했다.] [에?] [흐응-]간호사의 당혹스러운 감탄사와 김 양의 만족스러운 콧소리가 교차 됐다.
그렇게 개미 왕국과 관련된 외교가 깔끔하게 정리됐다. 깨끗하게 불타올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