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827)
러스트 [RUST]-827
화학 약품과 방향제로 가려진 피비린내로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쓴 콜튼의 얼굴을 무엇이라 생각했는지, 신속 진단 키트를 건넨 제국 레인저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어서 침을 뱉으십시오.]카아아악- 퉤엣-
콜튼이 뱉은 걸쭉한 침이 제국 레인저의 헬멧을 향했다. 레인저는 각성자인지라 순간적인 순발력으로 침을 피했지만, 그 피하는 것 자체가 틈이었다.
어느새 불길한 검은 단검을 뽑은 콜튼이 고개를 돌려 가래침을 피한 레인저의 품으로 파고들어 방향을 틀었다.
뱉은 가래침이 제국 레인저의 헬멧을 스치고 지나가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가래침을 뱉는 것과 진단 키트 내민 레인저가 고개를 돌리는 것.
좌우에 자리 잡고 대기하던 제국 레인저들의 총구가 겨눠지고 방아쇠가 당겨지는 것까지 거의 동시에 이뤄진 일.
빙글-
투다다다닥-
콜튼의 손에 들린 단검은 진단 키트를 손에 들고 있는 제국 레인저의 경동맥과 목뼈. 울대를 통째로 찢어 버리며 몸을 돌렸다. 콜튼과 레인저의 위치가 바뀌며 총알을 막는 고기 방패가 됐다.
둔탁한 충격에 콜튼은 고기 방패를 왼쪽으로 떠밀었다. 식인귀 그것도 중상위급에 달하는 개체의 힘으로 밀쳐진 시체가 좌우로 각을 넓히고 있던 레인저들에게 날아갔다.
날려버린 시체를 따라 그것과 거의 비슷한 속도로 내달리는 콜튼. 그 뒤를 아슬아슬하게 따라가는 총탄 자국이 뒤섞였다.
강력한 힘으로 밀쳐진 시체가 좌측에 있던 레인저들을 볼링공처럼 덮쳤다. 목이 반쯤 뜯어진 시체에서 머리통이 떨어져 나가고, 붉은 피가 사방으로 퍼지는 광경.
우측에 있던 레인저들이 총구를 겨눴지만, 이미 식인귀와 동료들이 뒤엉킨지라 몇 초간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고작 몇 초. 엎어진 레인저의 몸뚱이를 엄폐물로 삼아 개처럼 네발로 기어 안으로 파고든 콜튼의 단검이 레인저들의 급소만 노렸다.
허벅지 안쪽 사타구니 대동맥을 시작으로 경동맥, 폐동맥···. 주요 동맥과 신경에 단검을 꽂아 넣고 피를 빨아 먹는 모습.
[FUCK!!! 중위급 이상이야!] [그냥 쏴!] [씨발-]동맥이 찔렸어도 아직 죽지 않은 동료들을 향해 총구를 겨눌 수밖에 없는 상황. 아무리 레인저 훈련을 받았다고 해도, 6개월에서 1년 전까지만 해도 민간인이었던지라. 몇 초의 망설임이 참사를 낳았다.
콜튼은 그 짧은 몇 초에 밖에 있는 부하들을 움직였다. 난민들을 통제하고 있던 레인저들이 천막 안에서 들리는 총성에 뒤를 돌아본 순간. 콜튼의 부하들이 레인저들을 덮쳤다.
난민들이 비명과 함께 흩어지며 혼란이 잉크처럼 번져갔다. 제국 레인저들이 삼삼오오 모여 저항했지만, 난민이고 뭐고 신경 쓰지 않다 못해 난민들을 고기 방패로 삼아 공격하는 식인귀들의 공격을 막기 어려웠다.
그 장면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던 마루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놈들의 대가리를 잡으려고 기껏 추적했더니 이것들 가라는 대가리한테는 가지 않고 갑자기 난민들 속으로 숨어들었다.
‘제국에 거점이 있다는 소린가?’
아니면 꿩 대신 닭이라고 제국에 작업하러 들어가는 건가?
저걸 잡아 말아.
잠시 생각하는데 상황이 개판으로 변해버렸다.
쯧-
일렁이는 공간이 사라졌다.
‧
사방에 튄 피와 살점 속에서 콜튼이 입맛을 다셨다.
입속을 가득 채운 살덩이를 질겅질겅 씹는 얼굴 아래로 여기저기 관통된 상처가 느릿하게 채워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허망한 표정으로 쳐다보던 제국 레인저의 동공이 서서히 풀렸다. 동공이 풀리는 모습을 감상이라도 하듯 지켜보던 콜튼이 인상 썼다.
‘제국 놈들이 이렇게 할 줄은 몰랐는데.’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쉽게 쉽게 들어갈 수 있는 제국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대응하고 있었다니.
자유 캐나다 연맹에 집중하고 있느라 제국의 변화를 빨리 알아채지 못한 것이 실책. 상황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주인에게 알리고 이후 명령을 받아야 했다.
“밖은 정리했습니다.”
천막 한쪽이 쑥-걷히며 부하가 안으로 들어서며 보고했다. 밖에 있던 제국 레인저를 처리했다는 이야기.
“사상자는?”
“사망 5명에 중경상은 7명이지만 잘 먹으면 나을 상처입니다.”
콜튼의 어깨를 뚫은 총상이 꾸물꾸물 채워지는 것을 보며 태연스레 대답하는 부하.
“현재 상황을 보고하고 각하의 명령에 따라야 하기에 여기서 잠시 대기한다. 전부 몸을 회복시키도록 해. 그리고 생존자는 없다.”
“알겠습니다.”
난민들까지 모조리 죽이고 몸을 회복하라는 콜튼 지시에 부하의 눈이 번들거렸다. 부하가 천막 밖으로 나가는 것과 콜튼이 잠시 멈추라는 소리가 겹쳤다.
“어?”
“멈춰!”
천막으로 들어오기 전에 있던 풍경. 제국 레인저를 전부 죽이고 그 살과 피를 씹으며 웃고 떠들던 부하들의 머리가 없었다.
그의 눈동자가 전후좌우로 흔들렸다. 목이 잘렸다면 바닥에 떨어진 머리가 있어야 할 텐데. 바닥에 떨어진 머리가 없었다.
싸우다 머리를 잃었다면 시체들이 바닥에 쓰러졌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앉아있는 자세, 서 있던 모습 그대로 머리만 사라진 신인류들.
그러고 보니 한쪽에 몰아둔 난민들이 전부 쓰러져있었다. 서 있는 것이라고는 머리를 잃은 부하들뿐.
“이게··· 무···.”
보고하러 천막에 들어갔다 나오는 데 걸린 시간은 길게 잡아도 1분 안쪽이었다. 그런데 부하들의 머리통이 전부 사라졌다고.
신인류가 되면서 부작용이라도 생긴 건가?
이렇게 헛것을 보는 부작용은 들어 본 적 없는데?
인간의 살과 피가 달콤하게 느껴지는 부작용은 들어 본 적 있고, 극심한 식욕이 발동되는 부작용도 들어봤지만, 헛것을 보는 건 없었다.
‘어?’
그 부작용이 허상이라도 된 것처럼 세상이 깜깜하게 변해버렸으니까.
“멈춰!”
멍하니 선 그의 뒷덜미를 잡은 콜튼의 천막 안쪽으로 휙 잡아끌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머리가 통째로 사라진 시체가 딸려 들어왔다.
콜튼은 눈앞에서 벌어진 사건을 믿을 수 없었다. 아니 조금 전 있었던 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신인류는 수직적 지배구조로 통제됐다. 이 말은 계급이 높은 개체가 낮은 개체를 통제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당연히 낮은 개체에 문제가 생기면 그 상황을 그 위에 있는 개체가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능력에 따라 뚜렷하게 느끼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지만, 자기가 지휘하는 하위 개체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이건 상위 개체에 문제가 생겨도 마찬가지였다. 상위 개체의 목숨이 위협받을 정도의 문제가 생기면 하위 개체들은 본능적으로 상위 개체를 지키기 위해 움직였다.
그렇게 상하 유기적으로 이어진 끈이 있었는데, 그 연결된 끈이 사라진 것이었다. 그것을 느낀 콜튼이 천막 밖으로 나가려는 부하를 멈춰 세운 것이었는데.
바로 코앞에서 부하의 머리가 사라져버렸다. 마치 무언가 보이지 않은 것이 덥석 먹어치운 것처럼.
!!!
콜튼은 온 힘을 다해 뒤로 몸을 뺐다.
팍- 뒤로 몸이 쏠리며 등에 천막이 닿았다. 두툼한 천막이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차가운 바깥으로 몸이 튕겨 나갔다.
등판을 때리는 충격을 비스듬한 낙법으로 흡수, 남은 운동에너지를 비틀어 공중에서 자세를 잡은 콜튼의 시선이 찢어진 천막에 고정됐다.
후우-
하아-
차가운 입김이 서리처럼 퍼지고, 냉기 가득한 공기가 폐를 채움에도 그는 찢어진 천막을 노려봤다.
!
노려봤기에.
시선을 거두지 않았기에 볼 수 있는 흔들림.
찢어져 나풀거리는 천막이 부자연스럽게 펄럭이는 순간을 포착한 콜튼이 나이프를 앞으로 찌르며 고개를 숙였다.
무언가가 그의 머리가 있던 곳을 스치고 지나갔다. 얼마나 빠른 건지 스치고 지나간 뒤에야 바람이 느껴졌다.
하지만 완벽한 카운터가 들어갔다. 무언가가 자신의 머리를 노렸지만 그걸 피하는 것과 동시에 나이프를 내질렀으니.
‘이겼다.’
콜튼의 눈빛에 승리가 떠올랐다.
둔중한 충격이 팔에 느껴지는 것으로 보면 확실했다.
승리를 확인하기 위해 앞으로 내지른 팔을···.
팔이···
“으아아아악! 팔이. 내 팔이!”
그의 팔이 사라져있었다. 그제야 묵직한 충격이 통증으로 변해 뇌를 헤집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공포심이 차올랐다. 신인류가 되고 난 뒤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
공포심.
가축들에게 있어 그는 언제나 공포였다. 다른 귀족 세력에게도 백작의 최측근이자 호위인 그는 공포의 존재였다.
그런 그가 인간이었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공포에 빠져버렸다. 머리는 패닉에 빠졌지만, 그의 몸뚱이는 그간 사선을 넘었던 경험대로 움직였다.
팔이 사라진 것과 동시에 도망치려고 한 것.
팍-
다리를 박찼다고 생각했지만, 장소가 변하지 않았다.
‘어?’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작아졌다?’
그가 작아진 게 아니었다. 단지 시야가 낮아졌을 뿐.
콜튼의 고개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
어느새 그의 다리가 허벅지 어림까지 사라져있었다.
나이프를 들고 있던 오른팔이 사라지더니 이제는 두 다리마저.
어으어어어어으으어-
고통과 공포가 콜튼을 잠식했다.
그 공포는 분명 죽음의 공포였다. 그 마지막 감정이 끈을 타고 주인에게 향했다. 그리고 콜튼의 머릿속에 주인의 명령이 떨어졌다.
[흔적을 남기지 마라.]죽음의 공포에 물들었던 콜튼의 눈동자가 흐릿하게 풀려버렸다.
‧
‧
‧
마루는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치던 식인귀가 갑자기 풀썩 쓰러진 것으로 보고 거리를 뒀다. 뭔가 자폭이나 그런 걸 하면 곤란했기 때문이었다.
음?
자폭하려고 했다면 특유의 감각이 경고했을 텐데, 심장도 감각도 조용했다.
‘······.’
살짝 뻘쭘해진 마루가 슬쩍 테러부대 지휘관으로 보이는 놈을 향해 다가갔다. 오른팔을 날리고 두 다리를 없앴으니 자폭만 아니라면 문제는 없었다.
상위 개체 식인귀를 잡는 제일 확실한 방법은 상위 개체가 뭘 해보기도 전에 하위 개체를 싹 쓸어버리고 상위 개체를 잡는 것이었다.
아니면 반대로 하위 개체가 몰려들기 전에 상위 개체를 빨리 죽여버려, 하위 개체들을 와해시킨 뒤 잡는 것이었고.
지금 같은 경우는 부하들을 먼저 죽이고 대가리를 마지막에 잡은 케이스. 지휘관을 맨 마지막에 잡은 이유는 그 머릿속에 든 정보가 필요해서였다.
‘생각보다 전투력이 좋았어.’
제국 레인저들도 예상보다 강했는데, 지금 자유 캐나다 연맹을 장악한 식인귀들은 한술 더 떴다.
따지고 보면 압도적인 차이는 아니었지만, 기습과 인질의 시너지 효과는 굉장했다. 기습으로 절반을 줄이고 남은 절반은 난민을 인질로 삼아 아주 잠시 주저함을 만들었다.
그 잠깐의 머뭇거림이 생과 사를 갈랐다. 식인귀는 난민이 수십 수백 명이 죽건 말건 상관없었고. 제국 레인저는 아주 잠시 주저하면서 그걸로 끝.
그걸 고려한다고 해도 자유 캐나다 연맹 식인귀의 전투력은 남달랐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는 확실히 그랬다.
‘이거 자유 캐나다 연맹에 붙은 놈들이 심상치 않은걸.’
마루는 얼굴에 던진 나이프를 피하면서 카운터 찌르기를 한 테러부대 지휘관을 바라봤다. 팔이 잘리자마자 자연스럽게 몸을 빼려고 한 걸 보면 숙련된 놈이었다.
무엇보다 마루 자신이 던진 나이프를 피했다는 게 놀라웠다. 리퍼 슈트로 은신한 채 던진 나이프를 이놈이 피했다.
그래서 반사적으로 팔과 다리를 날렸는데. 변해버린 이클립스. 그러니까 뉴클립스가 그냥 팔다리를 지워버린 것이었다.
‘손에 익으려면 시간이 걸리겠군.’
마루는 그렇게 식인귀를 지웠어도 순수하고 우아한 흰색을 자랑하는 뉴클립스를 칼집에 집어넣었다.
치이이이이익-
무가 녹는 소리에 고개를 숙여보니 머리통 남기려고 팔다리 날린 놈의 대가리가 곤죽으로 변하고 있었다.
“에이- 씨-”
‧
덴 브라운은 난민을 통제하면서 식인귀의 침입을 막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레인저 중대 하나가 전멸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백 명에 육박하는 레인저 중대가 고작 서른 남짓한 식인귀에게 전멸했다는 건 끔찍한 일이었다. 일반병도 아니고 전원이 능력 각성자로 구성된 레인저 중대인데. 교환비가 3:1이라니.
‘식인귀 놈들이야 난민들을 고기 방패로 썼지만, 제국 레인저들은 민간인을 죽이는데 주저해서 생긴 차이 아니겠습니까.’
신성 왕국에 테러를 기도한 식인귀들을 추격하던 도중 현장을 발견했다는 블라디마루 칼린 국왕의 이야기였다.
전사자의 전술 카메라 녹화 영상을 확인하자, 블라디마루 칼린의 말처럼 잠깐 주저하는 사이 역으로 당한 경우가 많았다.
‘놈들이 제국에 거점을 만든 것 같습니다. 방어 잘하십시오.’
덴 브라운의 예상과는 달리 깔끔하게 이야기를 끝내버린 마루였다.
“곤란하군.”
식인귀 거점이 제국 안에 있다는 소리는 놈들의 영향력이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해상도시는 문제없어.’
어차피 해상도시에 입주할 주민은 전수 조사를 하기로 했었다. 문제는 육지에 남을 수밖에 없는 시민인데.
“전수 조사를 해야겠어.”
덴 브라운이 전수 검사 카드를 꺼냈다.
“인력이 부족하고 예산도 부족합니다.”
“예산은 그렇다고 쳐도 병력 자체가 부족합니다.”
“특수부대를 동원한다. 그리고 신형 클론도.”
신형 클론이라면 한몫 단단히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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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스트 [RUST]-827
화학 약품과 방향제로 가려진 피비린내로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쓴 콜튼의 얼굴을 무엇이라 생각했는지, 신속 진단 키트를 건넨 제국 레인저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어서 침을 뱉으십시오.]카아아악- 퉤엣-
콜튼이 뱉은 걸쭉한 침이 제국 레인저의 헬멧을 향했다. 레인저는 각성자인지라 순간적인 순발력으로 침을 피했지만, 그 피하는 것 자체가 틈이었다.
어느새 불길한 검은 단검을 뽑은 콜튼이 고개를 돌려 가래침을 피한 레인저의 품으로 파고들어 방향을 틀었다.
뱉은 가래침이 제국 레인저의 헬멧을 스치고 지나가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가래침을 뱉는 것과 진단 키트 내민 레인저가 고개를 돌리는 것.
좌우에 자리 잡고 대기하던 제국 레인저들의 총구가 겨눠지고 방아쇠가 당겨지는 것까지 거의 동시에 이뤄진 일.
빙글-
투다다다닥-
콜튼의 손에 들린 단검은 진단 키트를 손에 들고 있는 제국 레인저의 경동맥과 목뼈. 울대를 통째로 찢어 버리며 몸을 돌렸다. 콜튼과 레인저의 위치가 바뀌며 총알을 막는 고기 방패가 됐다.
둔탁한 충격에 콜튼은 고기 방패를 왼쪽으로 떠밀었다. 식인귀 그것도 중상위급에 달하는 개체의 힘으로 밀쳐진 시체가 좌우로 각을 넓히고 있던 레인저들에게 날아갔다.
날려버린 시체를 따라 그것과 거의 비슷한 속도로 내달리는 콜튼. 그 뒤를 아슬아슬하게 따라가는 총탄 자국이 뒤섞였다.
강력한 힘으로 밀쳐진 시체가 좌측에 있던 레인저들을 볼링공처럼 덮쳤다. 목이 반쯤 뜯어진 시체에서 머리통이 떨어져 나가고, 붉은 피가 사방으로 퍼지는 광경.
우측에 있던 레인저들이 총구를 겨눴지만, 이미 식인귀와 동료들이 뒤엉킨지라 몇 초간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고작 몇 초. 엎어진 레인저의 몸뚱이를 엄폐물로 삼아 개처럼 네발로 기어 안으로 파고든 콜튼의 단검이 레인저들의 급소만 노렸다.
허벅지 안쪽 사타구니 대동맥을 시작으로 경동맥, 폐동맥···. 주요 동맥과 신경에 단검을 꽂아 넣고 피를 빨아 먹는 모습.
[FUCK!!! 중위급 이상이야!] [그냥 쏴!] [씨발-]동맥이 찔렸어도 아직 죽지 않은 동료들을 향해 총구를 겨눌 수밖에 없는 상황. 아무리 레인저 훈련을 받았다고 해도, 6개월에서 1년 전까지만 해도 민간인이었던지라. 몇 초의 망설임이 참사를 낳았다.
콜튼은 그 짧은 몇 초에 밖에 있는 부하들을 움직였다. 난민들을 통제하고 있던 레인저들이 천막 안에서 들리는 총성에 뒤를 돌아본 순간. 콜튼의 부하들이 레인저들을 덮쳤다.
난민들이 비명과 함께 흩어지며 혼란이 잉크처럼 번져갔다. 제국 레인저들이 삼삼오오 모여 저항했지만, 난민이고 뭐고 신경 쓰지 않다 못해 난민들을 고기 방패로 삼아 공격하는 식인귀들의 공격을 막기 어려웠다.
그 장면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던 마루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놈들의 대가리를 잡으려고 기껏 추적했더니 이것들 가라는 대가리한테는 가지 않고 갑자기 난민들 속으로 숨어들었다.
‘제국에 거점이 있다는 소린가?’
아니면 꿩 대신 닭이라고 제국에 작업하러 들어가는 건가?
저걸 잡아 말아.
잠시 생각하는데 상황이 개판으로 변해버렸다.
쯧-
일렁이는 공간이 사라졌다.
‧
사방에 튄 피와 살점 속에서 콜튼이 입맛을 다셨다.
입속을 가득 채운 살덩이를 질겅질겅 씹는 얼굴 아래로 여기저기 관통된 상처가 느릿하게 채워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허망한 표정으로 쳐다보던 제국 레인저의 동공이 서서히 풀렸다. 동공이 풀리는 모습을 감상이라도 하듯 지켜보던 콜튼이 인상 썼다.
‘제국 놈들이 이렇게 할 줄은 몰랐는데.’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쉽게 쉽게 들어갈 수 있는 제국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대응하고 있었다니.
자유 캐나다 연맹에 집중하고 있느라 제국의 변화를 빨리 알아채지 못한 것이 실책. 상황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주인에게 알리고 이후 명령을 받아야 했다.
“밖은 정리했습니다.”
천막 한쪽이 쑥-걷히며 부하가 안으로 들어서며 보고했다. 밖에 있던 제국 레인저를 처리했다는 이야기.
“사상자는?”
“사망 5명에 중경상은 7명이지만 잘 먹으면 나을 상처입니다.”
콜튼의 어깨를 뚫은 총상이 꾸물꾸물 채워지는 것을 보며 태연스레 대답하는 부하.
“현재 상황을 보고하고 각하의 명령에 따라야 하기에 여기서 잠시 대기한다. 전부 몸을 회복시키도록 해. 그리고 생존자는 없다.”
“알겠습니다.”
난민들까지 모조리 죽이고 몸을 회복하라는 콜튼 지시에 부하의 눈이 번들거렸다. 부하가 천막 밖으로 나가는 것과 콜튼이 잠시 멈추라는 소리가 겹쳤다.
“어?”
“멈춰!”
천막으로 들어오기 전에 있던 풍경. 제국 레인저를 전부 죽이고 그 살과 피를 씹으며 웃고 떠들던 부하들의 머리가 없었다.
그의 눈동자가 전후좌우로 흔들렸다. 목이 잘렸다면 바닥에 떨어진 머리가 있어야 할 텐데. 바닥에 떨어진 머리가 없었다.
싸우다 머리를 잃었다면 시체들이 바닥에 쓰러졌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앉아있는 자세, 서 있던 모습 그대로 머리만 사라진 신인류들.
그러고 보니 한쪽에 몰아둔 난민들이 전부 쓰러져있었다. 서 있는 것이라고는 머리를 잃은 부하들뿐.
“이게··· 무···.”
보고하러 천막에 들어갔다 나오는 데 걸린 시간은 길게 잡아도 1분 안쪽이었다. 그런데 부하들의 머리통이 전부 사라졌다고.
신인류가 되면서 부작용이라도 생긴 건가?
이렇게 헛것을 보는 부작용은 들어 본 적 없는데?
인간의 살과 피가 달콤하게 느껴지는 부작용은 들어 본 적 있고, 극심한 식욕이 발동되는 부작용도 들어봤지만, 헛것을 보는 건 없었다.
‘어?’
그 부작용이 허상이라도 된 것처럼 세상이 깜깜하게 변해버렸으니까.
“멈춰!”
멍하니 선 그의 뒷덜미를 잡은 콜튼의 천막 안쪽으로 휙 잡아끌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머리가 통째로 사라진 시체가 딸려 들어왔다.
콜튼은 눈앞에서 벌어진 사건을 믿을 수 없었다. 아니 조금 전 있었던 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신인류는 수직적 지배구조로 통제됐다. 이 말은 계급이 높은 개체가 낮은 개체를 통제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당연히 낮은 개체에 문제가 생기면 그 상황을 그 위에 있는 개체가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능력에 따라 뚜렷하게 느끼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지만, 자기가 지휘하는 하위 개체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이건 상위 개체에 문제가 생겨도 마찬가지였다. 상위 개체의 목숨이 위협받을 정도의 문제가 생기면 하위 개체들은 본능적으로 상위 개체를 지키기 위해 움직였다.
그렇게 상하 유기적으로 이어진 끈이 있었는데, 그 연결된 끈이 사라진 것이었다. 그것을 느낀 콜튼이 천막 밖으로 나가려는 부하를 멈춰 세운 것이었는데.
바로 코앞에서 부하의 머리가 사라져버렸다. 마치 무언가 보이지 않은 것이 덥석 먹어치운 것처럼.
!!!
콜튼은 온 힘을 다해 뒤로 몸을 뺐다.
팍- 뒤로 몸이 쏠리며 등에 천막이 닿았다. 두툼한 천막이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차가운 바깥으로 몸이 튕겨 나갔다.
등판을 때리는 충격을 비스듬한 낙법으로 흡수, 남은 운동에너지를 비틀어 공중에서 자세를 잡은 콜튼의 시선이 찢어진 천막에 고정됐다.
후우-
하아-
차가운 입김이 서리처럼 퍼지고, 냉기 가득한 공기가 폐를 채움에도 그는 찢어진 천막을 노려봤다.
!
노려봤기에.
시선을 거두지 않았기에 볼 수 있는 흔들림.
찢어져 나풀거리는 천막이 부자연스럽게 펄럭이는 순간을 포착한 콜튼이 나이프를 앞으로 찌르며 고개를 숙였다.
무언가가 그의 머리가 있던 곳을 스치고 지나갔다. 얼마나 빠른 건지 스치고 지나간 뒤에야 바람이 느껴졌다.
하지만 완벽한 카운터가 들어갔다. 무언가가 자신의 머리를 노렸지만 그걸 피하는 것과 동시에 나이프를 내질렀으니.
‘이겼다.’
콜튼의 눈빛에 승리가 떠올랐다.
둔중한 충격이 팔에 느껴지는 것으로 보면 확실했다.
승리를 확인하기 위해 앞으로 내지른 팔을···.
팔이···
“으아아아악! 팔이. 내 팔이!”
그의 팔이 사라져있었다. 그제야 묵직한 충격이 통증으로 변해 뇌를 헤집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공포심이 차올랐다. 신인류가 되고 난 뒤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
공포심.
가축들에게 있어 그는 언제나 공포였다. 다른 귀족 세력에게도 백작의 최측근이자 호위인 그는 공포의 존재였다.
그런 그가 인간이었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공포에 빠져버렸다. 머리는 패닉에 빠졌지만, 그의 몸뚱이는 그간 사선을 넘었던 경험대로 움직였다.
팔이 사라진 것과 동시에 도망치려고 한 것.
팍-
다리를 박찼다고 생각했지만, 장소가 변하지 않았다.
‘어?’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작아졌다?’
그가 작아진 게 아니었다. 단지 시야가 낮아졌을 뿐.
콜튼의 고개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
어느새 그의 다리가 허벅지 어림까지 사라져있었다.
나이프를 들고 있던 오른팔이 사라지더니 이제는 두 다리마저.
어으어어어어으으어-
고통과 공포가 콜튼을 잠식했다.
그 공포는 분명 죽음의 공포였다. 그 마지막 감정이 끈을 타고 주인에게 향했다. 그리고 콜튼의 머릿속에 주인의 명령이 떨어졌다.
[흔적을 남기지 마라.]죽음의 공포에 물들었던 콜튼의 눈동자가 흐릿하게 풀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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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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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는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치던 식인귀가 갑자기 풀썩 쓰러진 것으로 보고 거리를 뒀다. 뭔가 자폭이나 그런 걸 하면 곤란했기 때문이었다.
음?
자폭하려고 했다면 특유의 감각이 경고했을 텐데, 심장도 감각도 조용했다.
‘······.’
살짝 뻘쭘해진 마루가 슬쩍 테러부대 지휘관으로 보이는 놈을 향해 다가갔다. 오른팔을 날리고 두 다리를 없앴으니 자폭만 아니라면 문제는 없었다.
상위 개체 식인귀를 잡는 제일 확실한 방법은 상위 개체가 뭘 해보기도 전에 하위 개체를 싹 쓸어버리고 상위 개체를 잡는 것이었다.
아니면 반대로 하위 개체가 몰려들기 전에 상위 개체를 빨리 죽여버려, 하위 개체들을 와해시킨 뒤 잡는 것이었고.
지금 같은 경우는 부하들을 먼저 죽이고 대가리를 마지막에 잡은 케이스. 지휘관을 맨 마지막에 잡은 이유는 그 머릿속에 든 정보가 필요해서였다.
‘생각보다 전투력이 좋았어.’
제국 레인저들도 예상보다 강했는데, 지금 자유 캐나다 연맹을 장악한 식인귀들은 한술 더 떴다.
따지고 보면 압도적인 차이는 아니었지만, 기습과 인질의 시너지 효과는 굉장했다. 기습으로 절반을 줄이고 남은 절반은 난민을 인질로 삼아 아주 잠시 주저함을 만들었다.
그 잠깐의 머뭇거림이 생과 사를 갈랐다. 식인귀는 난민이 수십 수백 명이 죽건 말건 상관없었고. 제국 레인저는 아주 잠시 주저하면서 그걸로 끝.
그걸 고려한다고 해도 자유 캐나다 연맹 식인귀의 전투력은 남달랐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는 확실히 그랬다.
‘이거 자유 캐나다 연맹에 붙은 놈들이 심상치 않은걸.’
마루는 얼굴에 던진 나이프를 피하면서 카운터 찌르기를 한 테러부대 지휘관을 바라봤다. 팔이 잘리자마자 자연스럽게 몸을 빼려고 한 걸 보면 숙련된 놈이었다.
무엇보다 마루 자신이 던진 나이프를 피했다는 게 놀라웠다. 리퍼 슈트로 은신한 채 던진 나이프를 이놈이 피했다.
그래서 반사적으로 팔과 다리를 날렸는데. 변해버린 이클립스. 그러니까 뉴클립스가 그냥 팔다리를 지워버린 것이었다.
‘손에 익으려면 시간이 걸리겠군.’
마루는 그렇게 식인귀를 지웠어도 순수하고 우아한 흰색을 자랑하는 뉴클립스를 칼집에 집어넣었다.
치이이이이익-
무가 녹는 소리에 고개를 숙여보니 머리통 남기려고 팔다리 날린 놈의 대가리가 곤죽으로 변하고 있었다.
“에이- 씨-”
‧
덴 브라운은 난민을 통제하면서 식인귀의 침입을 막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레인저 중대 하나가 전멸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백 명에 육박하는 레인저 중대가 고작 서른 남짓한 식인귀에게 전멸했다는 건 끔찍한 일이었다. 일반병도 아니고 전원이 능력 각성자로 구성된 레인저 중대인데. 교환비가 3:1이라니.
‘식인귀 놈들이야 난민들을 고기 방패로 썼지만, 제국 레인저들은 민간인을 죽이는데 주저해서 생긴 차이 아니겠습니까.’
신성 왕국에 테러를 기도한 식인귀들을 추격하던 도중 현장을 발견했다는 블라디마루 칼린 국왕의 이야기였다.
전사자의 전술 카메라 녹화 영상을 확인하자, 블라디마루 칼린의 말처럼 잠깐 주저하는 사이 역으로 당한 경우가 많았다.
‘놈들이 제국에 거점을 만든 것 같습니다. 방어 잘하십시오.’
덴 브라운의 예상과는 달리 깔끔하게 이야기를 끝내버린 마루였다.
“곤란하군.”
식인귀 거점이 제국 안에 있다는 소리는 놈들의 영향력이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해상도시는 문제없어.’
어차피 해상도시에 입주할 주민은 전수 조사를 하기로 했었다. 문제는 육지에 남을 수밖에 없는 시민인데.
“전수 조사를 해야겠어.”
덴 브라운이 전수 검사 카드를 꺼냈다.
“인력이 부족하고 예산도 부족합니다.”
“예산은 그렇다고 쳐도 병력 자체가 부족합니다.”
“특수부대를 동원한다. 그리고 신형 클론도.”
신형 클론이라면 한몫 단단히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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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가 신성 왕국을 공격한 식인귀 부대를 끝장내는 동안, 캐나다 몬트리올 총독 관저에 있던 기순과 나루즈, 희연의 유 플러스 클론 부대가 안전하게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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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가 신성 왕국을 공격한 식인귀 부대를 끝장내는 동안, 캐나다 몬트리올 총독 관저에 있던 기순과 나루즈, 희연의 유 플러스 클론 부대가 안전하게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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