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830)
러스트 [RUST]-830
마루 전용 비행선 안.
윗부분만 남은 여자의 머리통에 정보 추출기를 꽂은 마루가 회의를 시작했다.
[너무 무른 거 아님?]전술 카메라에 찍힌 영상을 본 김 양이 눈을 가늘게 떴다. 우리 최고 존엄. 너무 풀어진 것 같다는 눈빛이었다.
[뭐가 무른데? 식인귀 전부 정리하는 것 못 봤어?] [그건 당연한 거지. 그거 말고 난민 찌꺼기 말하는 것임.]난민을 죽이지 않고 왜 살려줬느냐는 김 양의 이야기에 잠깐 할 말을 잃은 기순이었다.
[민간인을 죽이지 않아서 무르다고요? 무슨 생각을 하는 겁니까?] [잘살아보자는 생각이지. 다른 거 있겠음?] [민간인을 죽여야 잘산다는 이야깁니까? 어이없네요. 신성 왕국 최강의 전력인 그분께서 난민을 죽였어야 한다는 소릴 하는 겁니까?] [응. 당연한 소릴.]후드와 김 양의 목소리가 점점 날을 세웠다.
[잠깐. 잠깐만. 둘 다 감정적으로 가지 말자고. 오케이?]두 여자의 감정을 읽은 기순이 아니다 싶었는지 중간에 끼어들어 환기했지만, 두 여자가 풍기는 분위기는 사뭇 날카로웠다.
[말씀해 보시죠. 어째서 난민을 죽였어야 한다는 건지.] [보안 때문이지. 지금까지 최고 존엄의 살기를 겪고 살아남은 건, 사람이건 동물이건 곤충이건 신성 왕국 출신이 됐어. 이게 무슨 뜻인지 모름?]최고 존엄이 살기의 농도를 조절할 수 있게 된 것은 좋은 일이나, 그 정보가 난민들 통해 알려질지 모른다는 건 명백히 좋지 않은 일이었다.
적에게 알려진다면, 즉살시키는 살기는 모르더라도 최소한 다수를 기절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게 알려질 터.
그걸 감추자고 난민들을 데려온다면 ‘행동에 따른 책임.’. ‘선택에 따른 책임.’을 확실하게 하자는 신성 왕국의 방침을 어겨야 했다.
자유 캐나다 연맹에 붙었다가, 아니다 싶으니까 런(run)한 난민 따위를 위해 최고 존엄의 정보를 흘릴 이유가 없었다. 김 양의 생각은 그랬다.
[그렇다고 몇천에 달하는 난민을 전부 죽여야 했다는 말입니까? 그분의 살기 능력은 이미 제국과 한국에서 공개된 것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넌 고작 몇천 살리자고 최고 존엄의 능력이 까발려져도 된다는 거니? 그 때문에 우리 최고 존엄이 위험에 빠질 수도 있는데도? 그리고 제국과 한국에서 공개됐다고?] [제국 덴 마이어 총통을 구하면서 능력을 사용하셨으니 제국이 그 능력을 알겠지요. 아닌가요?] [좋아. 제국은 그렇다고 치고 한국은 아니지. 한국에서 존엄의 능력을 본 애들은 우리 왕국 애들뿐이었고. 그 능력을 경험한 식인귀는 단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전부 죽였는데 무슨 소리니.]마루가 두 사람의 논쟁을 중지시켰다. 개미 제국을 공략한 후 어느 정도까지 능력이 강해졌는지 확인하지 못했을뿐더러. 수천 난민을 죽인다고 해도 그 뒤가 문제였다.
아무런 외상 없이 심장마비와 뇌출혈로 천 단위의 사망자를 제국군이 보게 된다? 민간인 대량 학살자로 보인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냉정하게 따진다면 ‘그래서 어쩔 건데?’ 할 수 있는 상황이라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난민을 죽일 필요가 있을까?
‘그럴 필요는 없지.’
난민들은 앞으로 뿌린 대로 거두게 될 터, 거기에 굳이 손을 쓸 필요는 없어 보였다. 종말의 세상이 그들을 정리할 테니.
“난민 문제는 거기까지만 하지. 난민들은 그들이 선택한 것에 대한 대가를 스스로 치를 테니까. 일단 지금 확보한 정보부터 확인합시다.”
[······.] [······.]김 양과 후드가 입을 다물었다. 코 윗부분만 남은 여자의 머리통에 박힌 정보 추출기가 꿀렁꿀렁 영상을 뽑아냈다.
[이거. 흐릿한 부분이 너무 많은데?]영상을 보던 기순이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어금니 있는 부분을 도려냈는데도 이러네.”
남자 호위를 무력화시키자마자 갑자기 죽어버리더니 순식간에 머리통이 통째로 녹아버려서, 여자 호위는 바로 자살이고 뭐고 하기도 전에 머리 윗부분만 남기고 썰었는데도 손상된 부분이 많았다.
[그래도 어떻게 캐나다를 노렸는지는 알겠네.]정보가 깨졌음에도 제법 쓸만한 내용을 건질 수 있었다. 제일 중요한 건 어떤 놈이 자유 캐나다 연맹을 장악했는지 확인하게 된 것.
[남부 연맹은··· 당분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입을 꾹 다문 김 양과 후드를 두고 기순과 PD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나도 행정부 장관님 의견에 동의해. 귀족이라고 서로 견제하고 있는 남부 연맹 흡혈귀, 식인귀들이니 굳이 들쑤실 필요는 없지 싶다.]“자유 캐나다 연맹을 그냥 두자는 건가?”
[왕님 말대로 지금 당장은 그냥 두는 게 낫지 않겠어? 우리가 인프라 전부 철거해 왔으니, 어떻게 대응하는지 두고 보는 게 인과응보라고 생각하는데?]“그렇지. 자유 캐나다 연맹 지휘부는 그렇다고 치고 흡혈귀 백작은? 그걸 그냥 두면 식인귀가 늘어나고 또 헛짓거릴 할지 모르는데. 최소한 흡혈귀는 잡는 게 맞지 않겠어?”
마루는 대가리를 잘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기순의 생각에 동의함.]입을 다물고 있던 김 양이 기순의 생각에 동의했다.
게다가 조금 전에 마루가 말하지 않았나? 선택에 따른 인과응보가 자연스럽게 될 테니 굳이 손을 쓰지 않았다고.
[블리자드나 폭설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식인귀라고 해도 우리 방어선을 뚫고 들어올 수 없고, 온다고 해도 충분히 처분할 수 있음.]그러니까 굳이 손댈 필요 없이. 이번 혹한의 겨울 지나도록 그냥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김 양의 이야기였다.
[문제의 원인은 최대한 빨리 도려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혹한이라고 하지만, 흡혈귀에게 시간을 주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후드의 생각은 달랐다. 난민들이야 그렇다고 쳐도, 흡혈귀는 아니었다. 그게 자유 캐나다 연맹을 오래 장악하면 할수록 불필요한 희생이 커질 위험이 있었다.
차라리 강한 전력인 적의 호위와 식인귀를 다수 처리한 지금. 전력이 약해진 틈에 흡혈귀를 잡는 게 낫다는 주장이었다.
[그거 식인귀고 흡혈귀고 우리가 문제 해결해주면? 자유 캐나다니 어쩌니 했던 놈들이 인간 대표 뽑아서 홀랑 제국과 합병하겠다고 그러면 어떻게 할 건데?] [······.] [캐나다 지역을 제국이 날름 먹도록 그냥 둘 건가? 그건 아니잖음? 이번 겨울 굶어 죽고, 얼어 죽고, 먹히고 해서 살아남은 것들 눈물, 콧물. 쏙- 뺀 다음에 쫓아낼 놈들 쫓아내고 다시 장악해야 우리도 고생한 보람이 있는 거 아니겠어?] [······.]인과응보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식인귀고 흡혈귀고 잡아버리면 놈들만 좋지 우리에게 남는 게 없지 않나?
김 양은 지금이야 캐나다에서 발을 뺐지만, 언제고 다시 장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겨울 동안 힘을 기를 흡혈귀는 생각하지 않는 겁니까? 식인귀가 된 자유 캐나다 연맹 지도부는 그렇다고 쳐도 남부 연맹 지역에 거점을 가지고 있는 흡혈귀는 지금 잡는 게 좋습니다. 흡혈귀 백작이 자기 거점에 있는 세력을 캐나다 방면으로 옮기면 어떻게 할 건가요?] [······.] [흡혈귀가 어디 있는지 대략적인 장소를 알 수 있는 지금. 그걸 놓치면 다시 처음부터 그것의 위치를 찾아야 하는데. 강력한 호위 둘을 순식간에 죽인 존재가 있다는 걸 알게 된 백작이 가만히 있을까요?] [······.]한 번씩 상대방의 말문을 막은 김 양과 후드였다.
[일단. 왕님이 혼자 흡혈귀 백작 잡으러 간다는 건 반대. 가려고 한다면 최소한 나루즈나 희연이네 U+ 클론이라도 데려갔으면 한다.] [저도 그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확인한 정보로는 흡혈귀는 남부 연맹의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은 개체입니다. 지원 병력과 함께하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흡혈귀를 잡겠다는 운을 뗀 마루였으니, 그 고집을 막기는 어렵다고 생각한 기순과 PD가 한목소리로 말했다.
마루가 흡혈귀 잡으러 간다는 걸 전제로 말하자, 김 양이 실망했다는 듯한 눈빛을 두 사람에게 보냈다.
[인과응보는? 흡혈귀가 악랄하게 쥐어짜게 둬야 하는 거 아님? 그래서 흡혈귀 세력이 확 커지면 그거 핑계로 커다란 핵을···.]“전술핵은 당분간 안 된다고 했잖아.”
개미 제국을 끝장낸 핵폭발의 여파가 아직 제대로 분석되지 않고 있었다. 그 이야기는 폭발의 여파로 일어날 일에 대한 경우의 수가 그만큼 많고 복잡하다는 의미였다.
“무엇보다 자유 캐나다 연맹 사람들 응징하겠다고, 식인귀 세력이 강해지게 두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마루는 흡혈귀 백작을 잡겠다는 생각을 밝혔다. 혼자 가는 게 제일 편하지만, 백작이 고기 방패를 던져놓고 도주할 가능성이 있었다.
“너무 많으면 둔해지니까. 100명 안팎으로 데려면 되겠냐?”
[희연이네 U+ 클론과 나루즈 가운데 숙련된 애들을 데려가는 게 좋겠다.]“그렇게 할게. 같이 갈 나루즈 애들 뽑는 건 네가 해라.”
[나보고 나루즈를 선발하라고?]기순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잠깐. 나는? 지금은 공격이니까 나도 가면 안 됨?]마루의 출장 업무 반대했던 김 양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같이 가겠다고 눈을 빛냈다.
“말했잖아. 놈들이 빈틈을 노릴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호위 둘이 죽은 걸 느낀 흡혈귀가 시간을 벌기 위해 수도를 공격할 수도 있어.”
[···알겠음.]김 양의 동공이 흐릿해졌다.
“이번 일만 해결하고 보자.”
[이번만? 진짜임?]“내가 빈 말하는 거 봤냐?”
[알겠음.]흐려졌던 눈동자에 다시 빛이 돌아온 김 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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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호위의 머리통 윗부분이 놓인 쟁반. 정보 추출기가 박혔던 구멍이 뻥 뚫린 두개골 안쪽에는 회백질이 드러나 있었다.
죽었음이 확실함에도 질기디질긴 식인귀의 생명력은 머리통에 뚫린 구멍을 조금씩 메우고 있었다.
펄떡-
어항에서 빠져나온 물고기가 몸을 펄떡이며 움직이는 것처럼. 칼집에서 몰래 빠져나온 뉴클립스가 구멍 뚫린 머리통을 향해 펄떡거리기 시작했다.
먹이를 앞에 둔 개새끼처럼 헐떡거리는 뉴클립스의 몸부림.
조금.
조금만 더.
그렇게 치열하게 펄떡이던 뉴클립스가 뭔가를 느꼈는지 그대로 빳빳하게 몸을 굳혔다. 언제 펄떡였느냐는 듯.
‘나는 칼이오.’
‘절대 움직인 적 없소.’
‘그저 쓰러지면서 칼집에서 뽑혔을 뿐이오.’
얌전히 놓인 뉴클립스를 향해 마루가 발을 들어 올렸다.
‘잠깐. 손이 아니라 발?’
순간적으로 당황한 뉴클립스가 꿈틀하기도 전. 그대로 뉴클립스를 짓밟은 마루가 이를 드러냈다.
“너 이 새끼. 내가 뭐라고 했어? 그따위로 멋대로 하면 가만 안 둔다고 했지?”
말귀를 못 알아먹고 개똥 같은 짓을 해?
“넌 지금부터 똥클립스다.”
마루가 발로 걷어찬 곳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무엇이 있었다.
끄아아아악!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제발.
잠시만요.
잠깐만요.
으아아아악!
아- 안돼!!!
자- 잠깐!!!
푹-
며칠 동안 쌓아 올린 누런 언덕에 엑스칼리버처럼 꽂힌 뉴클립스가 몸부림쳤다. 그럴수록 사방으로 튀는 다갈색 덩어리.
아—
질퍽거리는 작은 언덕에서 펄떡이던 뉴클립스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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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똑같은 음색을 지닌 목소리들이 사방에서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아악 수도다!”
“오라버닝이다아앗!”
“오라버닝은 어디?”
“왕님은 어디에?”
“이번에는 나부터 휴가야!”
“사다리 말고 다른 거로 바꾸기로 하지 않았어?”
“그래. 바꾸기로 했으면 새로 해야지.”
“새로 하긴 뭘 새로 해.”
“휴가 갔다 왔으면서 너희는 또 휴가 타 먹겠다는 소리야?”
디트로이트 블라디아크 타워가 나루즈로 복작거렸다.
실로 오랜만에 휴가철.
캐나다 북부에서 변이 괴수들이랑 구르고.
몬트리올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구르고.
그린 순 호위한 애들은 이번에 자유 캐나다 연맹이니 어쩌니 하는 애들이 급습해서 굴렀다.
실로 굴렁쇠가 되기라도 한 듯 캐나다에서 구른 나루즈였기에 힐링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오라버닝이라는 힐링이. 왕님이라는 비타민이. 그러니까 후후훗-
잘하면 저번처럼 왕님이랑 식사를 같이 할 수 있을지도
이번에는 달콤한 디저트를 먹어야겠어.
그래. 치킨도.
치킨 좋지. 소맥 말아서.
아 먹는 거 생각나니까 본체년 생각나네.
두런두런- 속닥속닥- 한 번씩 꺄르륵- 돌고래 소리를 내던 나루즈를 향해 인공지능 디아나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폐하께서 흡혈귀 백작을 잡으러 가십니다. 현재 작전에 필요한 인원은 87명으로 숙련된 나루즈의 지원을 받습니다.]꺄아아아아아앗!
끼에에에에에엣!
오라버닝과 작전이닷!!
나루즈 대기실이 익룡 소리로 가득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