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832)
러스트 [RUST]-832
대류권과 성층권이 만나는 경계면에 떠 있던 백색의 비행선이 서서히 방향을 바꿨다.
“거점이 성당이라···.”
마루는 여자에게서 추출한 영상을 보곤 어이가 없었다. 사람 먹는 놈들이 성당에 본진을 두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이 신의 뜻이라는 듯한···. 아니, 마치 자신이 은혜를 내려준다는 것 같은 놈의 행동.
“신을 흉내 내고 싶은 건가?”
고풍스러운 성당은 식인귀 변이 의식을 치르는 장소로 변해 있었다.
‘역시 놈들은 전부 지옥에 처넣어야 할 종자들이다.’
영상을 보던 PD는 역겨움을 느꼈다. 진실로 구원자이자 신적인 존재는 스스로 낮추시는데, 식인귀 흡혈귀 따위가 신성을 흉내 내고 있다니. 그는 견딜 수 없었다.
‘기사단을 더 강화해야겠어.’
재능(talent)있는 자들이 신성기사단에 모이기 시작하고 있으니, 이제 직접 활동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 PD가 우묵한 눈빛으로 영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교도와 식인귀 추종자들은 신성 왕국을 갉아먹는 놈들입니다. 그들을 색출하고 정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캐나다 방어하던 병력이 빠졌으니, 그러도록 하지요.”
[상시 이교도와 식인귀 추종자를 색출해야 합니다. 신성기사단이 그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신성기사단이라···.”
PD가 그러지는 않겠지만, 신성기사단과 이교도 색출, 식인귀 처단은 어쩐지 마녀사냥을 떠오르게 하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보조 인공지능도 있고 실시간 전술 카메라 녹화에 식인귀 진단 장비까지 있으니 선을 넘지는 않겠지.’
인공지능과 동물, 곤충을 이용해 완전 감시사회를 만드는 것보다, 신성기사단의 수사권을 인정하는 게 낫지 싶었다.
“수사 과정과 처벌 과정을 명확하게 하세요.”
[알겠습니다.]마루와 PD의 짧은 대화 속에서도 영상은 계속 이어졌다.
성당 지하에는 식인귀를 만드는 시설이 설치되어있었다. 식인병이 발병했던 초기와는 달리 지금은 식인귀의 뇌와 심장, 창자 같은 부위에서 변이 요소를 응축한 것을 주입해야 식인귀로 변할 수 있었다.
식인귀 하나를 그냥 잡으면 고작 두셋 정도를 변이시킬 수 있을 정도.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배양시설.
말이 배양시설이지, 사실은 장기를 떼어낸 식인귀에게 사람을 먹이로 던져줘 재생력을 올리는 걸 반복하는 시설이었다.
[간단하고 합리적인 방법이네요. 세포 배양으로 가려고 했다면 첨단 장비가 필요했을 테니까요.]나주연이 담담하게 평가했다.
[식인귀의 생명력을 이용한 방법은 효과적이죠. 사실상 인육만 있다면 재생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으니까요.]개복한 상태로 창자를 잘라내고, 뇌를 일부분 제거하는 것과 동시에 입에 꽂은 호스로 인육 세이크가 들어가는 영상.
떼어낸 부분이 실시간으로 재생되자, 바로 다시 절제하는 모습은 기계적이기까지 했다. 놈들은 그렇게 추출한 엑기스로 식인귀를 양산하고 있었다.
[모체가 되는 식인귀가 흡혈귀의 종복이라면, 수직적 지배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에요.]“지배력에 한계가 있지 않나?”
[식인귀라면 하급, 중급, 상급, 최상급 순으로 지배력에 차이가 있고 직접 명령할 수 있는 개체의 숫자가 정해졌지만, 흡혈귀에 대한 건 아직 확실한 자료가 없어요.]당연히 무한하게 지배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지 않은 숫자를 지배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나주연의 분석이었다.
흡혈귀를 생포한다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더라도 마루가 그걸 허락할 리 없었으니 나주연은 그냥 정보가 없다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냈다.
[흐응- 하나 잡아서 분석하면 되지 않음?]“생포는 없다. 자유 캐나다 연맹 놈들이 간이고 쓸개고 전부 빼줄 것처럼 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
식인귀도 특유의 지배력으로 인간을 홀리는데, 흡혈귀는 그보다 더했다. 흡혈귀 공주만 해도 그랬고 하급 흡혈귀와 싸웠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마루 자신이었으니까 무시하고 싸웠지, 일반인이라면 맥을 추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
좋다고 생포했다가 했다가 연구원을 홀리기라도 한다면? 끔찍한 사태가 벌어질 터. 그럴 가능성이 있는 걸 살려둘 생각이 없는 마루였다.
“흡혈귀는 내가 잡는다. 성당에 있는 식인귀는 U+ 팀이 정리하고, 나루즈는 외곽지역을 포위한 채 대기. 놈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고, 이후 내부 진입 소탕 작전을 펼친다.”
이미 한 번 갔었던 곳이기에 대략적인 구조는 알고 있었다. 나루즈와 U+팀과 합류를 기다리는 동안. 보조 인공지능이 이상 사태를 보고했다.
[제국 레인저와 식인귀를 잡은 곳에 문제가 생겼습니다.]레인저와 통신이 끊긴 제국군이 확인하기 위해 군대를 보냈을 터. 기절한 난민을 챙기고 뒤처리하리라 생각했는데 무슨 문제?
[성층권 감시 비행선과 고고도 드론이 촬영한 장면입니다.]제국군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화면에 떠올랐다. 파워로더형 엑소슈트를 개량한 프레임형 엑소슈트라고 해도 개량에 개량을 거듭한지라 어지간한 식인귀와 싸우기엔 무리가 없을 터인데 너무도 허무하게 쓰러지고 있었다.
“일시 정지. 조금 전 화면 확대.”
엑소슈트로 무장한 병사의 목이 부러지다 못해 뜯어질 듯 꺾이는 영상. 마루는 목이 꺾인 것보다 무엇이 병사를 공격했는지 그것에 초점을 뒀다.
성층권 비행선과 고고도 드론 모두 병사를 공격한 놈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은신 슈트를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어진 장면은 더욱 놀라웠다. 제국군을 잡나 싶더니 바로 난민을 잡아 죽이기 시작하는 모습. 짓밟히고 쪼개지고 터진 난민들이 피 웅덩이가 됐다.
[저거. 움직임. 비슷한 거 같은데?]김 양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바로 알아들은 마루였다. 강렬한 공포로 사기를 꺾고 은신을 활용해 적을 혼란에 빠뜨리는 방법. 마루가 초기에 즐겨 사용했던 방법이었다.
[단순히 사기를 꺾기 위해 난민을 죽인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뱀파이어릭(Vampiric) 슈트를 생각해 본다면 적은 자신이 유리한 지형을 만들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후드의 날카로운 분석이 이어지자, 나주연도 살을 덧붙였다.
[지금 양자컴퓨터와 포도송이로 연산한 결과. 난민들이 흘린 혈액이 실시간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게 밝혀졌어요.]얼어붙은 땅으로 흡수되지 못했을 테니, 사라진 피는 어디로 갔을까? 후드의 분석대로 놈에게로 흡수되고 있다고 봐야 했다.
‘피를 통해 더 강한 신체 능력을 발휘한다?’
마루는 직감했다. 흡혈귀가 저곳에 있었다. 놈이 자기 호위를 죽인 자를 찾기 위해 직접 움직인 것이었다.
“나루즈 현재 좌표로 이동. 지역 전체를 수색하고 포위한다. 유 플러스팀은 계획대로 적의 거점 성당으로 이동, 배양시설을 파괴하고 안에 있는 자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제거하도록.”
차라리 잘됐다 싶은 마루였다. 놈의 거점으로 갔는데 비밀 통로 같은 걸 파놔서 도망치거나, 지하수로 같은 곳으로 빠져서 뺑뺑이 도는 것보다 차라리 평원이 유리했다.
“근처 개미 왕국에 전하도록. 인근에 포위망을 만들라고. 까마귀 부대도 긴급 출동 준비한다.”
몬트리올로 향했던 마루 전용 비행선이 방향을 바꿨다.
“전속력으로.”
하얀 대리석으로 만든 것처럼 매끈한 비행선이 속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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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연과 U+팀은 놈들의 생산시설이자 거점인 성당을 공략했다.
(통신 차단.)
쥐들이 등짐으로 나른 초소형 EMP 폭탄이 터졌다. 강력한 전자기파가 성당 내부를 휩쓸고 지나갔다.
(개미 수색대 진입)
카메라를 든 개미들이 틈을 뚫고 성당 내부로 진입했다.
“이봐 통신기 고장이야!”
“또? 젠장 그러니까 몰려있으면 안 된다고 했잖아.”
적들은 좁은 공간에 모여 발생한 생체 EMP 때문에 통신기가 고장 났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시간을 벌 수 있었으니 시작부터 좋았다.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개미들은 부지런히 내부 상황을 전달했다. 예전 성당의 모습을 알고 있던 희연은 내부로 침투한 개미들이 보내온 영상을 보곤 미간을 찌푸렸다.
공간 전체를 금박과 은박 그리고 보석으로 치장한 모습. 그렇지 않아도 고풍스러운 성당이 더욱 화려하게 변해 있었다.
‘무슨 지랄이지?’
웅장하고 경건하다기보다 어쩐지 질릴 정도의 화려함. 단순히 화려함만 따진다면 러시아 로마노프왕조의 황금 방에 견줘도 뒤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정신 차린 놈들은 일단 밖으로 내보내.”
“창고에서 멀쩡한 통신기부터 가져오라고 해.”
통신기가 고장 난 놈들은 밀도를 줄이는 겸사겸사 갓 식인귀가 된 자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희연은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나가는 놈들 처리해.)
퉁- 투웅- 툭-
희연의 명령에 따라 클론들이 밖으로 나온 식인귀들을 저격했다. 도망치지 못하게 맨 뒤에서부터 처리하는 센스.
밖으로 나온 식인귀들은 반사적으로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맨 뒤부터 죽어 나가는 모습을 보자 패닉에 빠졌다.
“저격이다!”
“씨발 어디야?”
퍽-
어디냐고 전의를 내뿜는 놈부터 머리통을 날려버리자, 바로 무너지는 적들. 이제 갓 식인귀가 된 자들에 제대로 된 장비도 없이 밖으로 나왔으니 그저 멍청한 표적이 될 뿐이었다.
(계속 쏴. 지원 나오면 그거까지 싸잡은 뒤 진입한다.)
의도적으로 식인귀 몇 마리를 살려둔 유 플러스 클론들이 스코프로 중앙 출입구를 노려봤다.
“으아아악! 내 다리!”
“도와줘!”
“살려줘!”
하반신과 다리가 날아간 식인귀들이 살려달라며 출입구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다.
‘이상한데. 식인귀 놈들도 하나의 개체에서 파생된 놈들은 확실히 끈으로 연결됐으니까 밖에 있는 것들이 죽었다는 걸 알 텐데도 아무 반응 없다고?’
살려달라고 울부짖고 있으니 살짝 문을 열어봄직도 했는데 그런 것도 전혀 없었다.
(개미 수색대 정문 쪽으로.)
천장을 타고 정문 방향으로 간 개미들이 보낸 영상에는 바리케이드를 치고 대비하는 적들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밖으로 나간 건 버리고 안을 지키겠다는 건가?’
(주 출입구 공격. 시선 분산, 우회로를 이용해 침투. 제압한다.)
간단한 명령이었지만, 유 이사 클론들은 내재한 기억을 이용해 정밀한 작전을 시작했다. 장거리 저격과 연막탄을 터뜨려 중앙 출입구를 총공격하는 듯 연출했고.
그렇게 요란하게 공격하는 틈을 타, 스테인드글라스(stained-glass)로 장식된 창문을 깨고 안으로 침투했다.
퍼어어엉!
섬광탄이 터지고 제압 사격. 식인귀와 민병대로 보이는 자들이 뒤섞인 방어선이 옆구리를 치고 들어온 U+ 팀에 휩쓸렸다.
투다다다다닥!
“적이다!”
“놈들이 창문을 뚫었어.”
“방탄창문인데 뚫렸다고?”
“창문 막아!”
“양동작전일지 몰라!”
“거기 그쪽! 거기까지만 창문 막고 나머지는 정문 지켜!”
“통신은?”
“틀렸어. 통신기 가지러 나간 애들은 전멸이라고 봐야 해!”
“유선 있잖아. 비상 통신!”
“그것도 끊겼어.”
유선 통신을 끊은 것은 쥐와 개미였다.
“제길. 버텨. 곧 백작님이 돌아오신다.”
“방어선 지켜!”
“소음기 떼고 쏴!”
“상관하지 말고 수류탄 던져!”
총소리와 폭파음을 통해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려야 했다. 성소가 공격받는다는 것을 알면 민병대가 지원 올 터.
펑!
푸쉬시시시시식—
처음에 단순한 연막탄을 사용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화생방 장비가 부족했기 때문인지, 놈들은 연막탄이 터져도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
‘반응이 늦네?’
섬광탄과 연막탄으로 간을 본 희연이 본격적으로 신경가스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신경가스탄 사용.)
아직 식인귀가 되지 않은 민병대는 신경가스를 버텨내지 못했다. 순식간에 팔다리를 오그라뜨리며 시체가 된 민병대.
민병대를 고기 방패와 치료제로 취급하던 식인귀들도 연막탄과 뒤섞인 신경가스를 견디지 못하고 지하로 내려갔다.
이미 지하로 침투한 개미 수색대가 보내온 영상. 어찌나 급했는지 놈들은 배양시설을 총동원해 민병대를 실시간으로 식인귀로 만들고 있었다.
(스프링클러 부숴.)
화재대응 장비를 작살 낸 개미들이 변전실로 들어가 전력을 끊었다. 식인귀들은 특유의 시력으로 어둠을 꿰뚫어 볼 수 있었지만, 그건 반대로 섬광탄에 당하게 된다는 의미였다.
퍼어어어어엉
강력한 빛이 칠흑 같은 어둠을 녹여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미친듯한 신성 왕국의 섬광탄인데 그 강렬한 빛에 노출된 식인귀들은 순간적으로 시력을 잃어버렸다.
몇 마리 좀 치는 식인귀가 있었지만, 각 잡고 신경가스와 섬광탄을 아낌없이 사용하는 U+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이제 배양시설만 끝내면 되는데.’
핵심 시설답게 완전히 밀폐된 배양시설이었다.
‘작은 핵을 써야 하나?’
어차피 날려버릴 것이면 핵 수류탄으로 뚜껑을 열고 부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희연이 잠시 고민하는 찰나. 굳게 닫힌 철문이 열렸다.
그리고 드러난 내부. 안으로 도망친 식인귀들이 전부 팔다리가 잘려 무력화된 상태였다.
‘응?’
희연이 잠시 당황한 사이, 머리가 반쯤 열린 식인귀가 앞으로 나섰다.
“놈들에겐 원한이 있습니다. 함께 싸울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길게 찢어진 배가 서서히 아물고 있는 식인귀, 창자 일부가 없는 식인귀들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