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834)
러스트 [RUST]-834
덴 브라운은 바로 전자 문서를 만들어 보냈다. 종이 문서도 특사를 통해 보낸다고 했으니, 캐나다 문제로 껄끄러운 일이 생길 여지가 완전히 사라졌다.
‘대단하네. 덴 아재.’
긴급 회선으로 연락했다는 건 이쪽에서 제국군과 흡혈귀가 싸우고 있는 걸 보고 있는 걸 짐작했다는 것이었다.
제국군이 흡혈귀를 상대하기 위해 펼친 진형이 누굴 제압하기 위해 훈련한 진형인지, 마루가 알아차렸을 거라는 걸 짐작했음에도 병사들을 구하기 위해서 머리를 숙였다.
‘정예병이기는 했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렇게 머리를 숙여 마치 제국의 핵심 전력이 흡혈귀, 식인귀와 싸우고 있는 부대인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인구가 3천5백만에 육박하는 제국이 적게 잡으면 2개 중대 크게 잡아도 대대 병력에 목숨을 걸 정도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아- 정말 너구리 같아졌다니까.’
마루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캐나다는 미래 가치가 확실한 땅이었다. 어중이떠중이 뭣 같은 놈들 싹 굶겨 죽이고 얼어 죽게 만든 뒤, 텅 비면 다시 확보하자는 주장을 해도 그러려니 할 정도의 땅.
나중에 제국과 자유 캐나다 연맹이 엮이면 서로 불편해지기 마련이었는데 이렇게라도 깔끔하게 정리됐으니 잘된 일이었다.
그럼. 이제 끝을 봐야겠지.
“네 차례다. 똥-칼.”
갈색 작은 둔덕 위에 꽂힌 백색의 날붙이가 해방을 꿈꾸며 부르르 떨렸다. 그 환호의 떨림에 마루가 낮게 경고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네 멋대로 처먹고 다니면 영원히 똥만 먹게 해주마.”
부르르륵-
절대. 절대로 그러지 않겠다는 듯 떨리는 손잡이를 쥔 마루가 그대로 해치를 열었다. 영상 속에는 은신 장비가 망가져 반쯤 몸을 드러낸 흡혈귀가 제국군을 뒤흔들고 있는 모습.
위치를 확인한 마루가 그대로 제트팩을 작동하자, 길게 늘어지는 하울링과 함께 하얀 궤적이 지상을 향해 이어졌다.
‧
콰직-
펜싱의 찌르기(Coup droit 꾸르드와)를 넓은 방패를 살짝 비틀어 막아내는 제국군 병사.
신성 왕국과는 달리 파워로더형 엑소슈트에 장갑을 덧댄 형식이라 거친 느낌이 드는 기체였다. 힘과 방어에 특화된 모습이 장식이 아니라는 듯, 방패를 다루는 제국군 병사의 숙련도가 상당했다.
콰직- 콰지지직-
번개 같은 찌르기 한번 막히고 이어진 두 번의 찌르기. 고속 카메라가 있기라도 한 건지. 제국군 병사는 도저히 막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인 그 3번의 찌르기를 견뎌내고야 말았다.
처음은 방패를 비틀어서 막았고, 두 번째는 몸을 비틀어 장갑으로 흘렸다. 그리고 마지막 찌르기는 행운이 따랐다.
그 세 번의 찌르기 동안 진형을 잡고 버티던 병사들이 반걸음 앞으로 나섰고. 그들이 살짝 전진하면서 생긴 틈 사이로 20mm 벌컨포가 불을 뿜었다.
‘이것들이···. 설마 이놈들. 내가 오리라는 걸 짐작하고 있었나?’
뒤로 점프한 백작은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는 제국군의 움직임도 그랬지만 놈들의 편제 자체가 그랬다.
인간과 싸우거나 단순한 신인류와 싸울 때는 불리한 진형. 저렇게 밀집된 진형에 박격포탄이라도 떨어지면 한 방에 몰살.
게다가 변이 괴수를 막을 수 있는 전법도 아니었다. 두꺼운 방패에 크레이모어를 달았다고 해도 거대 변이 괴수의 돌진을 막을 수 있지는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두꺼운 신소재 방패에 크레이모어를 붙인 이유가 뭘까? 은신한 인간형 적. 그것도 접근전을 하는 적을 견제하는 용도라는 뜻.
‘이거야 원. 어이가 없군.’
황당해하던 백작의 눈꼬리가 문득 휘어지며 눈웃음으로 변했다. 제국군의 움직임과 장비를 놓고 볼 때, 하루 이틀 준비해서 나올 게 아니었다.
최소한 6개월 어쩌면 그 이상 준비했으리라. 그렇다는 것은 백작 자신을 노린 부대가 아니라는 것.
‘역시. 제국이 신성 왕국 국왕에 대비하고 있었군.’
아무리 동맹이라고 한들, 정치에서는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었다. 제국이 블라디마루 칼린을 견제하는 것처럼 신정 왕국도 제국을 견제했으니까.
‘제국의 핵무기를 전부 회수하고 신성 왕국 산 핵무기로 바꿔줬으니.’
애초에 신성 왕국으로 핵을 쓸 수 없게 락을 건 무기로 넘겨줬다는 건, 어떻게 생각해도 제국을 견제한 행동이었다.
투드드드드득-
강력한 십자포화를 백 점프(Bond en arrière, 봉 덩 나리에르)로 피한 백작이 허리를 앞으로 숙이고 길게 반원을 그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20mm 벌컨포가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그의 뒤를 따랐지만, 그것도 잠시. 반원을 그린 움직임 때문에 백작의 옆에 제국군 진형이 들어왔다.
벌컨포를 막은 백작이 다시 방패를 향해 찌르기를 뻗었다. 방패 뒤에 있는 병사를 노린 공격이 아닌, 방패를 노린 공격.
병사는 힘을 줘 강력한 찌르기의 충격을 살짝살짝 흐트러뜨렸다. 방패를 요리조리 작게 비틀어 대는 모습에 백작이 살짝 감탄했다.
하지만 그가 노린 것이 바로 그런 움직임이었다. 제국 병사가 살짝살짝 방패를 비트는 틈을 타 크레이모어를 해체한 백작이었다.
‘이제 됐군.’
건드리기만 해도 반응장갑처럼 폭발하던 크레이모어를 없앴으니 이제 놈들은 거북이나 마찬가지. 쏙 움츠러든 대가리에 칼을 꽂아넣기만 하면 끝이었다.
백작은 크레이모어와 20mm 벌칸포에 깨진 헬멧을 벗었다. 깨진 영상처럼 유지되던 은신 기능이 해제되며 백작의 모습 드러났다.
제국군은 성급하게 공격하기보다 진형을 움직여 오발 각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후방에 난전이 벌어졌음에도 이렇게 앞에만 집중하다니. 과연 제대로 된 정예병이었다.
“살아남는 자는 신인류로 받아주마.”
백작의 입에서 극찬이 나왔다.
(놈들의 진형을 깨라.)
후방에서 난전을 펼치던 식인귀들이 숫제 광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애초에 잘 죽지도 않은 식인귀였지만 이제는 목숨을 내다 버린 듯한 움직임.
수적인 열세에도 버티고 버텼던 제국군 후방이 거센 물결에 휩쓸려 무너지려고 하는 찰나 하늘에서 들려오는 하울링.
길게 이어지던 소리가 정확하게 백작을 향하고 있었다. 질긴 껍질을 벗기고 막 요리하려고 하려는 순간에 난입한 소리에 백작의 이마에 혈관이 솟아올랐다.
“웬 놈이냐!”
소리만 들릴 뿐, 보이지 않는 적의 모습.
크아아아아아앙—-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엔진음이 저 멀리 사라졌지만, 흡혈귀 특유의 감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이 근처에 있음을 경고했다.
‘이놈이.’
은신 슈트였다. 그것도 남부 연맹 버지니아에서 만든 것보다 더 수준 높은 은신 슈트. 순간적으로 능욕을 받은 느낌에 백작이 그대로 제국군을 공격했다.
겉으로는 분노를 참지 못해 눈앞에 있는 제국군에 화풀이하는 것처럼 보였어도 사실은 은신한 적에게 틈을 보여 유인하려는 행동.
지극히 자연스러운 백작의 분노와 이어진 공격에도 은신한 적은 반응하지 않았다. 적이 미끼를 물지 않자, 백작의 이마에 불뚝 솟은 핏줄이 꿈틀 움직였다.
‘그렇게 나온다면.’
제국군을 죽이면 움직이겠지. 백작의 날카로운 칼끝이 제국군 병사를 향해 쏘아졌다. 처음처럼 병사는 방패를 살짝 비틀어 찌르기를 막았다.
하지만 이제는 크레이모어가 없었다. 찌르기와 함께 거리를 좁힌 백작이 방패를 걷어찼다. 쿵-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흔들리는 방패.
그 흔들림 속으로 백작의 칼날이 파고들었다. 장갑을 덕지덕지 덧붙인 엑소슈트가 속절없이 꿰뚫렸다.
병사의 팔뚝을 뚫고 들어간 칼날이 뱀처럼 휘어지며 팔꿈치 관절을 헤집고 헬멧과 목의 틈새를 노렸다.
그와 동시에 느껴지는 은신한 적의 움직임. 백작은 비틀던 칼날에 의지해 점프했다. 그 점프 뒤로 이어진 적의 공격.
콰직-
대전차 미사일도 막을 법한 제국군 방패의 윗부분이 짐승에게 뜯어 먹힌 것처럼 사라지는 광경.
‘이 무슨···.’
제국군을 난도질하던 칼을 뽑아 허공에서 사방으로 휘둘렀다.
휙- 없다.
휙- 없다.
휙- 쿠드드드득-
외계의 소재로 만든 칼날이 믹서기에 갈리는 소리를 냈다.
“거기냐!!”
한 줌의 반동을 이용해 공중에서 방향을 바꾼 백작이 허공을 향해 맹렬한 찌르기를 시작했다. 신속의 찌르기가 순식간에 분열하는 모습.
팅- 탱-
크디디디디디딕-
소나기처럼 쏘아진 찌르기가 투명한 방패에 막힌 것처럼 뻗지 못했다. 그 몇 초의 시간에 팔을 다친 제국군이 뒤로 물러서고 옆에 있던 병사가 빠진 틈을 채웠다.
대놓고 그랬음에도 백작은 제국군을 공격할 수 없었다.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은신한 적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제국에 이런 놈이 있었다고?’
정보를 놓쳤을까? 아니, 그럴 리 없었다. 캐나다와 제국을 먹기 위해 오랫동안 준비한 그였다.
‘아니면 이자가 신성 왕국의 백정?’
신성 왕국 국왕인 블라디마루 칼린이 엄청난 칼잡이라고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는 아니야. 신체 능력 각성자 급이었어. 많이 쳐줘도 하급 신인류 정도였고.’
마루는 자신의 상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 백작이었다. 미합중국 시절 용병으로 활약한 블라디마루 칼린의 전투 영상을 보면 더 그랬다.
영상 속 놈에겐 제대로 된 검술이 없었다. 단지 은신 슈트를 이용한 기습과 날카로운 감각에 의지한 칼질만 있을 뿐.
그렇기에 백작은 자신의 공격을 막아선 고절한 검객이 신성 왕국 칼잡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영상에서 본 마루였다면 자신의 공격을 맞받아치지 않고 피한 다음, 은신을 이용해 뒤를 노렸을 테니까.
그래서 백작은 혼란스러웠다. 칼잡이와 마주쳤다는 호위의 마지막 사념에, 놈을 잡겠다고 매복까지 시켰는데 막상 현장에 와보니 제국군 정예부대가 있었다.
제국군 정예부대를 족치는 동안 칼잡이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더 웃긴 건 제국군 정예부대는 마치 신성 왕국 백정을 잡는 훈련을 한 것 같았기 때문.
심지어 백작 자신이 고전할 정도로 수준 높은 대응을 펼친 정예병이었다. 그걸 거의 다 잡았는데, 갑자기 난입한 자가 이렇게 대단한 검객이라니.
뭐가 뭔지 엉망이고 난장판임에도 백작은 흥이 올랐다.
제국의 정예병을 여기서 잡아 자신의 부하로 만들면 잃은 병력을 보충할 수 있었다. 그것도 백작급 귀족의 공격에 잠시나마 버틸 수 있는 병력을.
이 정예병을 신인류로 진화시킨다면 어떻게 될까? 하급 귀족이나 중상급 신인류는 병사들만으로도 토벌할 수 있게 될 터.
‘자유 캐나다 연맹에서 일반병을 뽑고, 지금 이 정예병까지 흡수한다면 군사력에서는 최고가 된다.’
거기에 지금 앞에 있는 검객은 죽은 두 호위를 대체할 수 있는 인재로 보였다. 그렇기에 백작은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웃어?]백작의 미소에 마루가 처음으로 반응했다. 그리고 백작의 예민한 감각이 은신한 위치를 알아챘다. 마루가 은신한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린 백작이 너그럽게 제안했다.
“제국은 무너질 것이야. 그 재능을 헛되이 쓰지 말고 내 밑으로 오게.”
그런 흡혈귀의 제안에 마루는 어이가 없었다. 말을 섞을 것도 없이, 마루가 뉴클립스의 봉인을 풀었다.
[물어.]휘익- 정직하게 휘둘러지는 칼날의 감각에 백작이 코웃음 쳤다.
“죽이지는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게. 대업을 이루려면 인재가 필요하거든.”
백작이 휘둘러지는 칼날을 막으면서 마루의 하체를 동시에 찌르려고 했다. 기동성을 묶고 서서히 잡으려는 생각.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누런빛을 띤 짧은 칼날을 튕겨내는 찰나, 칼날이 살아있는 것처럼 펄떡였다.
검술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칼이 살아있는 것처럼 그것도 물고기가 퍼덕거리는 것처럼 움직이는 누런 칼날.
“이 무슨!”
백작의 칼을 펄떡 튕겨버린 뉴클립스의 칼끝이 공간을 쩍 벌려 백작의 머리를 노렸다.
콰직—
툭- 검을 잡은 팔뚝이 바닥에 떨어졌다.
어깨 어림이 물어뜯긴 것처럼 사라진 백작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