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835)
러스트 [RUST]-835
뒤늦게 치솟는 통증.
!!!
흡혈귀 특유의 재생력 덕분에 순식간에 지혈된 상처 뒤로 환각통이 일어났다. 잘렸음에도 잘리지 않은 것 같은 감각.
신인류 그것도 최정점에 있는 귀족이 된 뒤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통증. 심지어 인간이었을 때도 이런 식의 통증은 경험한 적 없었다.
백작의 시선이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잘린 팔로 향했다. 깔끔하게 잘렸다면 붙이기만 해도 됐을 텐데. 마치 무언가에 뜯어 먹힌 것처럼 상완부가 사라져있었다.
이건 검술이 아니었다.
놈이 들고 있는 건 칼처럼 보이지만 칼이 아니었고.
머리카락이 쭈뼛 치솟는 위기감.
저걸 막을 수 있을까?
불가능했다. 오른팔처럼 갈려버릴 터.
오른팔이 뜯겼지만, 반사적으로 피하지 않았다면 목덜미가 날아갔을지 몰랐다.
‘분명해. 저게 내 목을 노렸어.’
그 누런 칼날이 튕겨 오르면서 맡았던 이상한 냄새가 떠올랐다. 음식물 쓰레기가 썩은 냄새 같기도 하고 뭔가 쿰쿰하게 삭은 냄새 같기도 한 그 악취.
백작은 피가 멎은 어깨를 만졌다. 간질간질 상처가 급속도로 아물면서 생기는 간지러움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쇳독인가?’
신인류는 어지간한 세균, 바이러스, 곰팡이, 기생충에 면역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파상풍 따위 먹힐 리 없었다.
근데 이 간지러움은 뭐지?
당황했던 백작의 표정이 공포로 하얗게 질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눈 깜작할 사이였다. 그리고 백작의 지배력이 정신파로 변해 주변을 휩쓸었다.
후방을 들이치던 식인귀들이 그 영향을 받아 더욱 날뛰었다. 팔다리가 찔리건 총에 맞건 상관하지 않고 덮쳐드는 판에 제국군의 진형이 무너졌다.
“마. 막아!”
“앞에 뚫리지 않게 뒤에서 잡아줘!”
크아아아아악!
“이 새끼들 전부 돌았어!”
“이것들 갑자기 왜 이래?”
“머리다!”
“머리를 날려!”
“도끼든 야전삽이든 뭐든 들고 머리를 찍어!”
“—씨 뚫렸다! 피해!”
그렇게 진형을 무너뜨린 식인귀들은 눈앞에 있는 제국군을 무시하고 백작이 있는 곳으로 몰려들었다.
마치 잔잔한 호수에 생고기가 떨어지자 미친 듯이 달려드는 피라냐처럼 식인귀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등판에 총탄이 박히거나 말거나, 옆에 같이 뛰던 식인귀의 머리통이 날아가거나 말거나 모든 것을 잊은 것처럼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식인귀들.
“주. 죽여! 저걸 죽여!”
백작이 왼손으로 허공을 가리켰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이었지만, 식인귀들은 그 공간을 향해 몸을 던졌다.
아귀처럼 달려드는 식인귀에도 개의치 않은 마루는 살짝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뉴클립스를 봤다.
뉴클립스는 전혀 그런 일 없다는 듯 살짝 몸을 떨었다.
‘이 새끼 보게. 말을 알아듣네.’
반응이 이렇게 빠른 것을 보면 말을 알아듣거나 최소한 말 속에 담긴 감정을 읽을 수 있다는 이야기.
[내가 물라고 했지 먹으라고 했어?]억울하다는 듯 울리는 진동이 손잡이에서 느껴졌다.
[억울하긴 뭐가 억울해. 똥 먹고 싶어?]이클립스 때보다 칼날의 길이는 절반가량 짧아졌지만, 그 짧아진 길이만큼 공간을 씹어버리는 능력이 있으니 사정거리는 비슷하거나 더 길어진 꼴.
절대 아니라는 듯 울어대는 뉴클립스.
[좋아. 지켜본다? 지금 몰려오는 것들은 먹어도 돼.]정말? 진짜? 기쁨이 뒤섞인 진동을 보내는 뉴클립스.
[그래. 마음껏 먹어라.]크아아아아아악!
크우어어어어어!
이성을 잃은 식인귀들의 악다구니. 마루가 은신한 공간을 향해 파도처럼 밀려들던 식인귀의 머리통이 씹히기 시작했다.
쿠직- 콰드드득!
대충 아무렇게나 휘둘러도 펄떡이고 비틀리며 식인귀의 대가리를 뜯어먹는 뉴클립스. 한 번 휘둘렀을 뿐인데 그 짧게 휘두른 칼질 한 번에 수십 마리의 식인귀가 머리통을 잃었다.
눈앞에서 머리를 잃는 동료들이 널브러져도 식인귀들은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 없었다. 백작의 지배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쿠직-
쿠지지직-
쿠드드득-
좋다고 식인귀 대가리를 뜯어대는 뉴클립스가 펄떡임을 더했다. 그리고 그 펄떡임에 머리를 잃고 튕겨버린 식인귀가 흩뿌린 핏방울이 사방으로 뿌려졌다.
[야. 핏물 튀지 않게 먹었어야지.]마루의 말에 뉴클립스가 멈칫했다.
마루의 형상이 붉게 드러나자, 백작이 소리를 높였다.
“저놈이다. 저놈을 죽여.”
어느새 바닥에 떨어진 팔뚝을 챙겨 든 백작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다시 한 번 강력한 지배력이 사방을 휩쓸었다.
잠시 주춤했던 식인귀들의 마루라는 목표가 보이자, 다시금 집요하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제국군. 움직입니다.]보조 인공지능의 보고와 함께 HUD에 떠오른 영상을 확인한 마루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제국군이 뒤로 슬금슬금 빠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성 보소. 여기서 빠져?’
구해주기로 했으니까 구해주는 건 구해주는 건데···. 이건 좀 그랬다.
이쯤 해줬으면 같이 싸우는 시늉이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어그로를 끌었을 때 주변에서 거들어주면 금방 끝낼 수 있는데. 여기서 그냥 빠진다고?
자신의 뒤끝이 길다는 걸 아는 덴 아재가 명령했을 리는 없고. 현장 지휘관이 내린 명령인가?
‘뭐···. 좋아-’
병신 같은 지휘관을 뽑은 것도 제국의 팔자였다.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다면 모를까 나루즈까지 대기하고 있는 마당에 굳이 뭐라고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마루였다.
‘어지간하면 엮이지 말아야겠네.’
제국군 지휘관이 하는 짓을 보면, 제국군 군부가 생각하는 바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마루가 날뛰는 뉴클립스를 억눌렀다. 삽시간에 백여 마리가 넘는 식인귀의 대가리를 짓씹은 뉴클립스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마루의 손아귀에서 펄떡거렸다.
[야. 똥 칼.]그 한 마디에 얌전히 빳빳해지는 뉴클립스. 뉴클립스의 펄떡거림이 멈춘 틈을 타, 밀려드는 식인귀를 향해 뭉클- 파고드는 마루의 살기.
억 단위의 생명체를 죽여 쌓은 살기가 넝쿨처럼 사방에 퍼졌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살기가 눈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넝쿨인 듯, 촉수인 듯 뒤엉켜 사방을 잠식하는 죽음. 그건 이미 살기가 아닌 유형화된 죽음이었다.
이성을 잃은 식인귀들도 전신을 옥죄는 죽음에 동작을 멈췄다. 일반인이었다면 순식간에 즉사했을 충격을 간신히 버티는 식인귀들.
끄어어어—
크어어어—
맹렬했던 몸부림이 서서히 꺼지는 불꽃처럼 사그라지는 모습.
짓누르는 죽음.
조여오는 죽음.
그건 분명 죽음이었다.
쿠—
우우웃
마루를 향해 밀려든 첫 번째 파도가 죽어버린 거품으로 변했고, 두 번째 파도는 힘을 잃고 엎어졌다.
[······.]확실했다. 죽음이 쌓일수록 무언가 변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마루는 심증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죽일수록 살기가 강해진다.’
이걸 살기라고 해야 하나? 그저 죽이겠다는 살의를 넘어서, 죽인다고 생각하는 순간 죽여버리는 무언가.
이성을 잃은 식인귀를 순식간에 죽여버릴 정도의 힘이라니. 그것도 단순한 힘이 아니었다. 넝쿨이나 촉수 같은 느낌으로 적을 옭아매는 느낌.
흘러내리는 안개 같았던 죽음의 기운이 이젠 실체화된 것처럼 사방을 헤집으며 생명을 수확하고 있었다.
그 기묘한 감각에 마루는 숨을 들이켰다.
‘그만.’
꿈틀거리는 죽음이 아쉽다는 듯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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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이 충격받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왕이라고?”
“정말 왕이었다고?”
“죠셉 마이어의 말이 진짜였어?”
파먹힌 오른팔을 언제 재생시켰는지, 칼을 꼭 쥔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백작이었다.
[왕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지?]“···마. 막아!”
살아남은 식인귀로 마루의 앞을 가로막은 백작이 뚫린 공간을 향해 필사적으로 내달렸다. 순간적으로 잔상이 보일 정도로 빠른 동작이었다.
이미 멀찌감치 떨어져 멀뚱멀뚱 보고만 있는 제국군이었다. 흡혈귀가 도망치는데도 그냥 공간을 열어둔 채 지켜만 보고 있는 모습.
마루는 앞을 가로막은 식인귀를 향해 뉴클립스를 휘둘렀다. 기가 죽었는지 펄떡이지 않고 얌전히 휘둘러진 뉴클립스.
공간을 파먹는 칼질이 수십 마리의 식인귀를 단칼에 토막 냈다. 마루는 바로 나루즈에 명령을 내렸다.
[놈이 도망친다. 머리는 정보를 뽑아야 하니까 조심해.] [네.] [맡겨 주세요.] [오라버닝이 명령하셨어] [꺄아아- 왕님이다.] [머리. 머리. 머리 조심.] [머리 강조하지 마.] [그래 혹시라도 머리 쏘는 년이 생기면 어떡해.] [맞아. 이상한 년 하나 있었잖아.] [어차피 이번에 흡혈귀 잡고 나면 전수 조사하지 않겠어.] [잡자. 저거 잡으면 또 포상 있을지도.] [왕님과의 데이트?] [오라버닝과의 식사?] [꺄아아아아앗!]마루는 조용히 통신 채널을 바꾸곤. 호위대를 불렀다.
[살아있는 놈은 포장해서 연구부에 보내고. 머리가 멀쩡한 놈들은 정보 추출해. 죽은 것들은 한 자리에 모아서 태우고.] [옛.]호위대가 전장 정리를 시작하자, 멀찌감치 떨어졌던 제국군에서 통신이 들어왔다.
[제국군 사령관이 통신을 요청했습니다. 연결할까요?] [아니.]마루는 제국군 사령관의 통신을 거절했다. 놈이 하는 짓을 보면 개소리를 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제국군이 전리품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뭐?] [제국군이 죽인 식인귀 시체는 제국의 소유라고, 식인귀 시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그래. 지금처럼 말이다.
‧
신속 기동군 부관은 사령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신성 왕국 국왕이 식인귀의 주의를 끌었을 때, 옆을 쳤으면 금방 끝낼 수 있었다. 그땐 군을 뒤로 후퇴시키고 거리를 벌리더니, 전투가 끝나자 전과를 나누자고 하고 있었다.
블라디마루 칼린이 오지 않았다면 신속 기동군이 궤멸 될 뻔한 전투였는데, 제국군을 구원해준 상대에게 전과를 운운하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짓이었다.
“그래서 우리 요청을 거부했다는 건가?”
“사령관님. 저들은 제국군을 구했습니다.”
“누가 그걸 부인한다고 했나? 구조한 것은 구조한 것이고 우리 장병들이 싸워서 얻은 전리품은 전리품이지. 무엇보다 놈들은 우리를 공짜로 구조한 것이 아니야.”
“예?”
언제 본국과 교신했는지 상황을 알고 있는 사령관이었다.
“총통과 신성 왕국 국왕이 캐나다를 두고 거래했다. 제국이 캐나다에서 손 떼는 조건으로 우릴 도운 거야.”
“······.”
사령관이 전장을 정리하는 신성 왕국 호위대와 블라디마루 칼린을 날카롭게 바라봤다.
“조금 전에 봤지? 신성 왕국 국왕이 식인귀를 잡는 모습을···.”
“······.”
발작하던 식인귀들이 속절없이 죽어가는 장면. 직접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마치 죽음으로 만들어진 넝쿨이나 촉수가 생명을 쥐어짜는 듯한 환상.
“내가 부대를 뒤로 물리지 않았다면 그 이상한 현상에 우리 군이 휘말렸을 거다.”
부관은 사령관의 말에 순간 어이없었다.
군을 뒤로 물려서 그 힘을 쓴 게 아닐까? 뒤로 물리지 않고 지원했어도 그랬을까? 묻고 싶었지만, 입을 다문 부관이었다.
부관의 그런 생각을 짐작이라도 했는지 아니면 주변의 장교들을 의식했기 때문인지 사령관이 살을 덧붙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결과다. 군을 물렸기 때문에 블라디마루 칼린이 숨기고 있던 능력을 볼 수 있게 됐다. 이건 중요한 정보야.”
몇몇 장교들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런 장교들과 하나하나 눈을 마주치며 사령관이 말했다.
“어쩌면 신성 왕국 국왕은 인간이 아닐 수 있다.”
분명 환상이겠지만, 그 죽음의 힘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런 힘을 같은 인간이 가졌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죽은 버지니아 회장의 말에 따르면 저자는 어쩌면 식인귀들의 왕일지도 모른다.”
덴 브라운과 제국 의회를 노렸던 테러 현장. 그곳에서 있었던 이야기. 마루가 신인류의 왕이라고 말했던 죠셉 마이어의 유언이 조금씩 퍼지기 시작했다.
‧
‧
‧
백작은 지배력을 끌어올렸다. 분명히 인간도 유혹할 정도의 지배력을 풀었지만, 제국군에게 먹히지 않고 있었다.
어째서?
신성 왕국에서 식인귀의 지배력에 대응하는 기술을 제국에 넘겼다는 걸 몰랐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뻥 뚫린 포위망을 지나간 백작은 의도적으로 제국군이 있는 방향을 타고 이동했다. 제국군은 뒤로 퇴각하며 교전을 피했지만, 백작은 언제든 제국군에 뛰어들 수 있을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몸을 피했다.
‘지배력에 대응하는 장비가 있다는 건가?’
제국의 정보를 빼내는 놈들이 이런 중요한 정보를 놓쳤다고? 백작의 생각이 복잡해졌다.
‘지금은 탈출하는 게 중요해.’
한 번에 신성 왕국까지 먹을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정보가 구멍이 뚫린 것이었고 무엇보다 블라디마루 칼린에 대한 정보는 엉망이었다.
‘미친 새끼들.’
설마 날 이용한 건가? 백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감정적 동요가 흡혈귀 특유의 감각을 둔하게 만들었는지, 멀리서 추격하는 나루즈의 움직임을 백작은 알지 못했다.
뿌각!
동시에 양쪽 무릎관절에 구멍이 뚫린 백작이 앞으로 철퍼덕 꼬꾸라졌다. 그 꼬꾸라지는 찰나의 순간에도 엉덩뼈와 척추에 박히는 총탄.
[내가 맞췄어.] [나도.] [난 엉덩이.] [아깝다 똥꼬 쐈는데.] [빨리 가자. 저거 흡혈귀라 금방 재생한다니까.] [목은 내가 자를게.] [웃기시네.] [야. 그만하고 일단 팔다리부터 자르고 목 자르는 건 따로 정하자.]백작은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