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840)
러스트 [RUST]-840
신성 왕국 국왕이 되기 전부터 마루는 식인귀와 흡혈귀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간 다양한 정책이 있었고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변하지 않는 한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식인귀나 흡혈귀 같은 존재에 대한 무관용 원칙이었다.
초기에는 인육을 입에 댄 짐승들도 전부 처분 대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인육을 입에 댔더라도 끊기만 하면 처분하지 않았다.
까마귀나 늑대 가운데 인육을 먹은 개체가 있어도 인육을 절제하면 받아들였다. 한국에서 데려온 까마귀들이 대표적인 경우.
짐승들도 받아주는데 식인귀나 흡혈귀도 인육과 피를 끊으면 받아줄 만하지 않을까 싶었는데도 마루는 절대 받지 않았다.
굳이 찾아가서 죽이지는 않더라도, 식인귀나 흡혈귀가 찾아오거나 신성 왕국에서 알짱거리면 반드시 죽였다.
제국을 그만 돕자고 김 양이 그렇게 말했을 때는 꾸역꾸역 돕더니. 이제는 제국과 연을 끊은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신성 왕국이 제국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소리는 제국에 식인귀나 흡혈귀가 창궐해도 돕지 않겠다는 이야기였다.
그 결과 제국에서 식인귀, 흡혈귀가 창궐한다면?
‘그냥 쓸어버리겠다는 뜻이겠지.’
기순의 가느다란 실눈이 마루를 향했다. 이걸 말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의 생각이 복잡해졌다.
확실하지도 않은데 미리 언급하기엔 민감한 문제. 그렇다고 제국에 식인귀, 흡혈귀가 넘쳐 난 뒤에 뒷북을 치는 건 위험했다.
‘이번 결정이 위험하다는 걸 읽은 사람이 있을 텐데.’
자신만 위험함을 느꼈을 리 없을 터. 기순이 주변을 돌아보자,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는 김 양이 보였다.
‘······.’
김 양은 글렀다. 그러니까 저건 위험하다고 빛나는 게 아니라, 제국이 지랄하면 쓸어버린다는 속뜻을 알고 열렬히 지지하는 눈빛이었다.
‘하악- 하악- 역시 최고 존엄.’ 이러는 듯한 눈빛. 어쩐지 못 볼 걸 본 듯한 느낌에 기순이 재빨리 시선을 옆으로 옮겼다.
생각에 잠긴 후드, 말이 없는 PD 그리고 ‘에? 에에-’ 하는 표정의 간호사와 멍하니 자신을 보고 있는 에리카까지.
‘시바-’
그래 이곳이야말로 파괴와 혼돈이 넘치는 회의실이었다.
속으로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기를 반복하던 기순이 실눈에 힘을 팍 줬다. 다른 건 몰라도 어떻게 할 생각인지. 정말 그럴 생각인지는 짚고 넘어가는 게 맞았다.
“그래서 왕님. 제국에 식인귀나 흡혈귀가 창궐하게 된다고 해도 관여하지 않을 생각인 거야?”
“그래. 그것도 제국의 선택이니까.”
자유 캐나다 연맹이 식인귀, 흡혈귀를 선택한 것처럼 말이지. 즉답하는 마루의 표정은 단단했다. 그런 마루를 향해 김 양이 번쩍 손을 들고 말했다.
“자유 캐나다 병신들 이번 기회에 쓸어버리는 게 어떰? 흡혈귀 죽었으니까. 대가리 없어진 식인귀들이 서로 죽이고 잡아먹고 난리일 텐데.”
흡혈귀 백작이 죽었으니, 지배력이 풀렸을 터. 식인귀들은 다시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지배력을 늘리고 다른 식인귀를 견제하려 할 테니 지금이야말로 기회!
그런 김 양의 의견에 마루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둔다.”
“어째서? 지금이 기회 아님?”
지금 발광하는 식인귀를 잡으면 그 뒤엔?
자유 캐나다 연맹을 선택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그냥 없던 일로 하고 다시 받아주자고?
그렇게 받아준다고 인성이 변할까?
자유 캐나다 연맹을 지지했던 놈들은 자기들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지 못할 것이다. 다시 삼삼오오 모여서 또 헛소리하겠지. 돌아가는 꼴을 짐작해보면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냥 두면. 식인귀들이 막 늘어날 텐데? 괜찮겠음?”
“늘어나겠지.”
자유 캐나다 연맹이라고 뭉쳐있던 지휘부가 뿔뿔이 흩어지고 인프라 사업을 비롯한 모든 재건 사업은 중지되리라.
식인귀들은 인육만 있으면 버틸 수 있으니, 그저 덩치를 키우려고 할 것이고. 그런 난장판 속에서 일반인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셋 가량.
식인귀로 만들어 달라고 애원하거나, 식인귀의 먹이가 되는 것. 마지막으로 신성 왕국이나 제국으로 도망치는 것이었다.
“먹이가 도망치는 걸 그냥 두고 볼 식인귀들이 아닐 테니···.”
그렇게 놈들이 국경을 넘으면 그때 개입한다는 마루의 설명에 김 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넘어온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제국 방면으로 쫓아내야지.”
당연한 소릴 왜 묻느냐는 듯한 마루의 답변에 ‘오-’ 하는 표정으로 존경심을 보이는 김 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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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보스턴. 총통관저 대회의실.
제국 의원들과 행정부처장 그리고 군부 장성들이 서로 목소리를 높였다. 총통제가 아니었다면 탄핵감이었다고 대놓고 저격하는 의원을 시작으로 흉흉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제국도 공식적으로 식인귀를 부정하고 있었다. 식인귀의 존재 자체가 민주주의를 위협했기 때문이었다.
몇 차례에 걸쳐 식인귀를 거르고 식인귀 추종자들을 걸렀기에 그나마 제국 의회가 운영되고 있었다.
“총통이 너무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총통이 긴급 명령권, 긴급 재량권을 가졌기에 헤쳐나올 수 있었던 위기가 몇인데 그런 소릴 하는 거요?”
“비상시국에는 비상한 방책이 효과가 있겠지만, 이제는 비상시국이 아니지 않습니까?”
“당장 자유 캐나다 연맹에서 난민들이 몰려들고 있고 남부 연맹을 비롯해 중부지역에서도 난민들이 몰려들고 있는데 비상시국이 아니라는 말입니까?”
변이 괴물을 물리쳤고, 식인귀가 정치권, 군부로 침입하는 것도 막았다. 시궁쥐의 창궐과 개미 제국의 습격까지 퇴치했으니 긴 겨울 동안은 비교적 평온하리라. 그런데 고작 난민들 몰린다고 비상시국이라니.
“난민들이 몰려들었던 건 미합중국 시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난민이 문제가 아니라 난민에 섞여 들어오는 식인귀가 문제지요.”
“그렇게 섞여 들어오는 식인귀는 제국 레인저들 선에서 충분히 정리할 수 있는데도 비상시국이란 말입니까?”
“레인저와 통신이 끊겨서 급히 파견한 신속 기동부대까지 전멸할 판 아니었습니까? 그래서 신성 왕국에 도움을 요청해 간신히 구했는데 문제가 아니다? 대단한 결론이네요.”
“신속 기동군을 파견한 건 총통의 독단적인 결정이었습니다.”
“옳습니다. 신성 왕국에 도움을 요청한 것도, 캐나다에서 손을 떼겠다고 조약을 맺은 것도 총통의 독단적인 결정이었고요.”
“그래서 신속 기동군이 몰살당하도록 손을 놓고 있었어야 한단 말입니까?”
“결정하기 전에 최소한 의회와 군부의 자문을 구했어야 한다는 겁니다. 승인이 아니라 자문이요. 그것도 못합니까?”
“비상시국에 자문? 그거 한다고 시간 끄는 동안 헛되이 잃을지도 모르는 장병들의 목숨은 안중에도 없소?”
“비상시국이라는 명분으로 내린 독단적인 결정 때문에 장병들이 희생당했다고 생각하지는 못합니까? 독단적으로 결정한 결과가 이렇다면 그 책임도 져야지요.”
토론은 점차 격해졌다.
“비상시국이 아니라니. 미쳤습니까?”
“총통이 책임을 져야 한다? 무슨 책임 말입니까?”
“그래서 지금처럼 총통이 제국의 핵심 이익을 무시하는 결정을 내려도 괜찮다는 뜻입니까?”
“근본적으로 총통제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가 되긴 했습니다.”
자유 캐나다 연맹. 구(舊) 캐나다 지역 전체에 제국이 손을 떼겠다는 결정을 독단적으로 내렸다는 것을 꼬집는 의원이었다.
“당장 제국은 제국 영토 건사하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합니다. 자유 캐나다 연맹이 제국과 합병을 요청하면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서류상으로만 합병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서류로만.”
“당장 자유 캐나다 연맹 지휘부가 식인귀입니다. 그럼 식인귀를 받아들이겠다는 소린가요? 아니면 서류상으로 합병한다고 해놓고 자유 캐나다 연맹 지도부를 처분하겠다는 소립니까? 애초에 자유 캐나다 연맹. 아니 캐나다는 신성 왕국이 장악했던 곳입니다.”
“그래서 신성 왕국이 자유 캐나다 연맹을 먹는 게 옳다는 겁니까?”
“총통의 권한 축소를 위해 엉뚱한 핑계 대지 말라는 겁니다.”
“총통의 권한을 축소하니, 마니. 총통제를 다시 생각해 보자느니, 솔직히 지금 이 시국에 논의할 주제입니까?”
[총통 각하 입실하십니다.]난리 북새통이었던 회의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덴 브라운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신성 왕국 국왕이 앞으로는 군사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군. 아니, 군사 지원뿐만 아니라 제국에 어떤 문제가 생기건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네.”
“······.”
“······.”
“······.”
“······.”
합죽이가 된 의원들과 군부 장성들.
“그러니 앞으로는 신성 왕국과 관련된 결정을 독단적으로 내릴 이유가 없을 것이네.”
크흠-
흠-
“그렇다면 신성 왕국과 국교가 끊어졌다고 생각해야 하는 겁니까?”
“경제적인 부분은 언급이 없었으니 교역은 그대로 이뤄질 걸세. 다만, 제국에 흉년이 든다고 해도 신성 왕국이 긴급 지원을 한다거나 그런 일은 없을 것으로 보면 되겠지. 군사적인 부분도 마찬가지겠고.”
덴 브라운은 신성 왕국과의 군사적인 거래가 사실상 끊겼다는 것을 알렸다.
“제국의 문제에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제국이 다시 독자적으로 핵무장을 하는 것도 문제없겠군요.”
“클론 연구를 비롯한 생물병기 연구도 마찬가지겠지요.”
“차라리 잘 된 겁니다. 이번 겨울을 최대한 활용해 전력을 강화한다면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신성 왕국이 지원하지 않겠다고? 관여하지 않아? 오히려 좋았다. 제국 의원들과 군부 장성들의 눈빛이 변했다.
덴 브라운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쓸데없이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기보다, 차라리 이렇게 하나로 뭉쳐 파도를 넘는 게 좋아 보였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는 달리, 그들의 눈빛이 의미하는 것은 달랐다.
제국에 어떤 사태가 발생해도 관여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덴 브라운 총통이 하야해도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했기 때문이었다.
덴 브라운 이후 차기 총통에 대한 꿈.
총통제를 폐지하고 다시 대통령제로 가겠다는 의지.
총통과 대통령제를 폐기하고 의원내각제로 가겠다는 열망 등. 각자의 생각과 신념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신성 왕국의 불개입 원칙이 어느 정도나 확실한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을 것이네. 블라디마루 칼린은 자기 입으로 뱉은 말을 어기는 타입이 아니니까.”
하지만 의원 대부분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군부 장성들도 마찬가지. 말로 하는 선언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것도 지금처럼 종말의 시대에.
“블라디마루 칼린이 식인귀와 흡혈귀의 왕이라는 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신성 왕국이 제국에 관여하지 않게 못을 박으려는 장군이었다. 덴 브라운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돌고 돌아서 엉뚱한 소문이 퍼지는 것보다 제대로 정리하고 넘어가는 게 좋았다.
“신속 기동부대 사령관이 보낸 보고를 보고 이야기하지.”
그렇게 시작된 영상. 초반 신속 기동군이 흡혈귀 백작을 서서히 몰아가는 것을 시작으로, 이후 식인귀들의 난입으로 난전이 된 상황.
신속 기동군이 위험에 빠졌을 때, 등장한 신성 왕국의 지원. 신성 왕국 클론 부대 나루즈가 흡혈귀 백작을 몰아세우고, 이성을 잃고 발광하는 식인귀를 블라디마루 칼린이 순식간에 정리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단칼에 머리가 날아가는 흡혈귀 백작. 블라디마루 칼린의 위력이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 영상 속 장면은 격이 달랐다.
너무나 허무하게 죽는 흡혈귀 백작.
천이 넘는 신속 기동군이 시간 단위로 밀어붙였음에도 죽이지 못했던 흡혈귀를 그저 칼질 한 번으로 머리를 날려버린 장면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앙이시여. 앙이시여!]“······.”
“······.”
“저게 무슨···.”
“앙?”
“왕이라는 거 아닙니까?”
“맞네.”
“흡혈귀가 목숨을 구걸하는 상황 아닙니까?”
소란스러워진 회의실과는 달리.
단호하게 흡혈귀를 처단하는 블라디마루 칼린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영상이 끝났다.
“···저번에도 한 번 언급된 이야기지만, 신성 왕국 국왕이 식인귀와 흡혈귀의 왕인지 아닌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국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의 속뜻이. 제국에 식인귀와 흡혈귀를 밀어 넣겠다는 뜻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흡혈귀 백작이 죽어가면서 이간질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머리가 한 번 잘린 뒤에 이간질이라. 이해하기 어렵군요.”
“다른 건 모르겠지만 블라디마루 칼린이 식인귀, 흡혈귀가 아니라는 확인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확인하자는 건가?”
“식인귀 진단 키트의 레시피를 요청하지요.”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그 레시피를 이용해 제국에서 만든 진단 키트로 검사하면 의혹이 해소될 테니 말입니다.”
“어차피 진단 키트는 거의 무상으로 배포하고 있던 것 아닙니까? 경제적인 이익 문제가 아니라. 최소한의 신뢰 문제니. 큰 문제가 없으리라 봅니다.”
신성 왕국이 제국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결정이 어째서 블라디마루 칼린이 인간인지 아닌지 검증하는 문제로 돌아왔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제국 의원들과 군부 장성들의 의견이 오랜만에 하나로 일치했기에 마냥 무시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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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 왕국. 디트로이트. 블라디 아크 타워.
[식인귀 진단 키트 레시피를 공개하는 것은 안 됩니다.]치료제, 억제제 레시피도 흔쾌히 공개한 나주연이 반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