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849)
러스트 [RUST]-849
마루의 첫 실전은 실전이 아니었다.
싸우고 지지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전멸했기 때문이었다. 생존자도 없었고 목격자도 없었다. 죽음의 정원이 내려앉고 고작 2~3초 남짓이었을 뿐인데 범위 안에 있는 것은 전부 죽었다.
사람과 동물을 비롯해 작은 벌레, 미생물, 심지어 곰팡이와 세균도 모자라 바이러스까지. 다른 건 몰라도 바이러스가 죽은 건 상식에서 벗어난 일이었다.
바이러스는 무생물과 생물의 경계에 있는 것이었다. 그 자체로는 생명활동을 하지 않고 무생물처럼 있는 것. 그런데 바이러스가 죽었다.
마루의 권역에서 발견한 바이러스는 세포에 넣어도 다시 분열하지 않았다. 마치 죽어버린 것처럼. 나주연은 흥분했다.
“그 능력의 일부만이라도 제약에 활용할 수 있게 되면 어떤 질병도 치료할 수 있게 될 거에요. 이게 무슨 의민지 아시겠어요? 인간이 모든 질병과 싸워 이긴다는 뜻이라고요.”
내성? 확실히 죽어버리는 데 무슨 내성이 있겠나. 마루의 능력을 이용해 항생제를 만든다면 내성이라는 게 없는 항생제의 탄생이었다. 나주연은 마루의 능력을 분석하는데 모든 연산자원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알겠는데. 잠깐 스톱. 그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위험한 거 다들 모르겠음?”
김 양이 흥분한 나주연을 진정시켰다.
“능력을 쓰면 통신이 끊기는 건 걱정 안 됨? 이번에야 2~3초 정도 끊겼지만, 만약 능력을 지속해야 할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되겠음? 통신이 끊긴 상태에서 싸우다가 같은 편이 있는 곳으로 온다면? 최대 범위가 100m 단위라서 ‘아차.’ 하면 그냥 같은 편 몰살인데?”
“통신도 그렇지만, 전자기기를 쓸 수 없다는 게 문제에요.”
후드도 이번에는 김 양의 이야기에 동의했다. 통신 두절도 문제거니와 노심 기체, 리퍼 슈트를 비롯해 비행선도 쓸 수 없었다. 능력을 발휘하면 현대 문물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것.
전자기기를 죽이는 건가 싶었는데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건 아니었다. 단순하게 전원이 꺼지는 거였고 프로그램이 삭제된 것처럼 먹통이 될 뿐. 죽음의 정원이 사라지고 난 뒤, 다시 전원을 켜면 문제없이 작동됐다.
다만 신성 왕국의 전자기계가 대부분 고도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는 게 문제였다.
복잡한 프로그램일수록 마루의 능력에 반응해 나가버려서 재설치해야 했다. 특히 인공지능의 경우에는 자동 백업 파일만 남고 지워졌다고밖에 다른 표현을 쓸 수 없었다.
“프로그램이 지워졌다고 하기도 그렇고 죽었다고 하기도 그렇고. 인공지능을 비롯한 운영체계가 먹통이 돼서 어떡하든 그 부분을 해결해야 합니다.”
전자, 정보 쪽을 관리하는 후드가 사만다와 함께 그쪽을 조사한 결과를 설명했다. 노심 아머, 리퍼 슈트, 비행선을 굴리려면 보조 인공지능뿐만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이 필요했는데, 마루의 능력에 닿으면 한 방에 먹통이 됐다.
“EMP도 아닌데 그런 효과라니. 역시···. 기존에 하고 있던 다른 연구를 전부 중지하고 집중적으로 분석해야겠어요.”
나주연이 칙칙하게 내려온 다크 서클 속 눈동자에 번들번들 윤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에- 그. 그러니까 능력을 조절하실 수 있게. 능력을 조절하도록 연습을 충분히 하시도록 하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요.”
까악!
간호사의 어깨에 앉은 까마귀가 동의한다는 듯 짧게 울자, 고개를 끄덕인 PD가 간호사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어떤 상황이든 먼저 저 능력에 익숙해지셔야 한다는 게 우선입니다. 예전에는 명확한 살기를 품으셨을 때, 특유의 기운이 나왔다면. 지금은 그렇지 않았음에도 발현되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지배력 섞인 정신파에 불편함을 느끼고 살짝 짜증을 냈을 뿐인데, 능력이 발현됐다. 만약 나주연이 실험을 한다며 귀찮게 해서 귀찮았을 뿐인데 능력이 발현된다면?
적과 싸우기 전 짜증 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범위를 줄이거나 최소한 적이 있는 방향으로만 능력이 발현되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은 상황.
“그거 넝쿨이 움직일 수 있으니까. 그쪽만 조종할 수 있으면 괜찮을 것 같기는 함.”
마루가 실전(?) 훈련에 나갈 때마다 따라다니는 김 양이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렇지 않아도 능력 발현 범위랑 넝쿨 조종 쪽에 집중하고 있으니까. 그게 우선인 건 맞지 싶음. 괜히 연구한다고 신경 건드렸다가 불쑥 나와버리면 그거 누가 감당함?”
“에- 그리고 동물들도 훈련(?)하실 때 같이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까마귀와 쥐, 늑대 전부는 아니더라도, 새로 낳은 애들은 마루의 위력을 말로만 들었을 뿐이었다.
가끔 한 번씩 하던 정훈교육이 그간 거미 사태나 개미 사태로 인해 뒤로 미뤄졌기 때문이었다.
처음 신성 쥐가 분열됐던 것처럼 문제가 생기지 않기 위해서는 이번 겨울 대대적인 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는 간호사의 의견이었다.
까아아악!!!
깍!
까마귀의 열렬한 지지에 언제 들어왔는지 까치도 짧게 동의했다.
그나마 개미는 수직적 사회라 여왕만 기강 잡으면 그 밑은 상관없어서 다행이랄까. 어쨌든 신생 쥐와 까마귀, 까치는 마루가 직접 교육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근데 저 까마귀랑 까치들. 잘못하면 뒈질 수 있다는 거 알면서 저러는 걸까?
김 양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번에도 개기던 까마귀 애들 실내 경기장에서 한 번 몰살됐었는데···.
뭐.
알아서 하겠지.
‧
‧
‧
흔들거리는 풀잎 사이로 뱀처럼 뻗은 넝쿨이 도망치는 식인귀의 발목을 휘감았다. 두꺼운 양말과 방한화를 신었음에도 죽음의 기운을 막을 순 없었다.
잠시 버둥거리던 식인귀가 독사에 물리기라도 한 것처럼 움찔움찔 경련을 일으키는 것을 끝으로 착해졌다.
“괴물이다!”
“도망쳐!”
“뛰어!”
“씨발 쏴!”
제각각 반응은 달랐지만, 결과는 하나. 평등한 죽음.
괴물이라는 외침과 함께 굳어버린 자는 그 굳은 표정 그대로 안식에 들어갔고, 도망치라고 외친 자와 뛰라고 소리친 자는 몇 걸음 옮기지 못한 채, 평안을 선물로 받았다.
그리고 맹렬하게 죽음을 거부한 자들은 검은 정원에 삼켜 졌다. 검은 풀밭과 넝쿨이 가득한 정원에서 거름으로 변한 자들.
쯧-
정원의 중심에 선 마루가 혀를 찼다. 기존에 사용하던 살기가 더 쓰기 편하고 직관적이었다. 지금 이 죽음의 공간은 뭐라고 할까. 반쯤은 자기 멋대로 움직인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성질은 대충 파악됐어.’
원형으로 펼쳐지는 공간. 통칭 죽음의 정원에는 크게 두 종류의 형태가 있었다. 하나는 넝쿨. 다른 하나는 풀잎.
넝쿨은 흔히 보는 넝쿨과 식물과 거의 비슷하게 생겼지만, 풀잎은 아니었다. 짧은 것은 잔디 정도였고 큰 것은 갈대만큼 컸다.
말이 갈대지 거의 1.5m~2.5m에 달하는 길이의 풀잎은 날카로운 면도칼 같았다. 흔들리는 면도칼의 풀숲에 들어간 것과 마찬가지 효과를 보였다.
“흐헉- 흐으어어억- 피가. 피가!”
순식간에 무성하게 자라버린 풀숲에서 빠져나오려던 식인귀가 온몸이 난도질당한 채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반복됐다.
일반인이었다면 영역에 들어서자마자 편해졌겠지만, 생명력이 강한 식인귀는 오히려 그 강한 생명력 때문에 고통스럽게 비료로 변했다.
‘하긴. 살기를 먹여도 버티던 놈들이 있었으니.’
잠깐 굳었다가도 살기를 뿌리치고 움직이던 놈들도 있었던 만큼, 버티는 놈들이 있었지만 죽음의 영역은 살기가 아니었다. 실체화된 덫에 가까운 공간.
‘식인귀나 변이 괴수를 잡는 데, 살기보다 유리한 점이 많아.’
살기는 거리에 반비례했다.
마루와 가까이 있을수록 살기의 강도가 강하다는 뜻.
반대로 해석하자면 조금만 거리가 멀어지면 즉사의 기운이 약해져, 공포나 마비 정도의 수준으로 변한다는 이야기.
일반인이나 소형 동물에게 살기는 즉사나 마찬가지였지만, 생명력이 강한 식인귀에게는 아니었다. 조금만 거리가 떨어지면 마비 정도로 버텼기에 마루가 직접 손을 써야 할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죽음의 영역은 아니었다. 일단 공간 안에 들어오면 잔디처럼 작은 풀들이 적의 이동을 제한했고, 긴 풀들은 면도칼처럼 놈들을 찢고 베었다. 그리고 뱀처럼 움직이는 넝쿨이 단숨에 생명을 빼앗았다.
영역에 들어온 놈들은 마루가 따로 신경 쓰지 않더라도 착해졌다. 즉사의 넝쿨과 확정적 죽음으로 몰고 가는 풀잎이 가득한 죽음의 정원.
‘살기보다 지속성도 좋고 영역 인근이라면 자동으로 사냥한다는 점이 좋기는 한데.’
살기가 그랬듯 죽음의 공간도 피아(彼我) 구분이 어려웠다. 특히 정원이 펼쳐지지 않더라도 독립적으로 삐져나오는 넝쿨이 문제였다.
지배력 담긴 정신파에 짜증 내자, 바로 근원인 죠셉 마이어의 찌꺼기를 찾아 죽여버리는 넝쿨에 속으로 놀랐던 것처럼. 즉사의 넝쿨이 불쑥불쑥 반응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마루였다.
‘애매하네.’
제일 자유롭게 움직이는 넝쿨이 가장 위험한 즉사의 능력이 있다는 게 여러모로 부담스러웠지만, 효과적인 건 사실.
죽음의 영역이야 그렇다고 쳐도 넝쿨은 확실히 통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이쪽 다 정리했다. 다음 구역으로 이동한다.”
[칙- 치지지직-]‘아직 통신은 어렵나?’
그나마 잡음이라도 생기는 걸 들어 보니, 연구하다 보면 통신은 해결할 수 있을지도. 마루가 생각을 정리하자 서서히 사라지는 죽음의 공간.
반짝이는 검은 입자로 변해 허공 속으로 사라지는 정원. 마치 꿈이라도 꾼 것처럼 텅 빈 땅만 남았다.
반경 100m가 넘는 공터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마루.
‘단순한 능력이 아니야.’
능력을 쓰면 쓸수록, 식인귀를 비롯한 변이 괴수에게 써보면 써 볼수록 생각했던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유형화. 물질화를 써먹을 방법이 있을 텐데.’
마루의 고민을 해결해 준 건 식인귀들이었다.
캐나다 식인귀들이 토론토로 모이고 있었다.
‧
상위 개체가 되기 위해 서로 견제하고 싸웠던 자유 캐나다 연맹 지휘부 식인귀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다들 모인 걸 보니, 그 괴물의 소문은 들었나 봅니다.”
“흥! 소문은 소문일 뿐.”
“소문이라고 단정 지은 분이 어째서 무거운 엉덩이를 여기까지 끌고 오셨는지 모르겠네.”
“머리는 무섭지 않았는데 엉덩이가 무서웠나 보지.”
“확실히 탱탱한 엉덩이라서 두렵기는 했겠네요.”
고작 몇 개월 만에 망가진 자들이었다. 명분이었더라도 자유와 독립을 부르짖던 자들은 식인귀가 된 뒤 변해버렸다.
엘리트라면 엘리트였던 사람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언론, 법조계 인사거나 가족인 자들이 대부분이었건만, 이들의 행동거지는 거의 범죄 집단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적당히들 하지. 다들 헛소문이 아니라는 걸 알아서 이곳에 모인 것 아닌가?”
“······.”
“······.”
누군가 그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소문의 출처는 도시락. 그러니까 여차하면 잡아먹으려고 끌고 다닌 일반인의 증언이었다.
‘괴. 괴물입니다.’
‘검은 지옥에 빠지면 전부 죽었어요.’
‘모. 모두 죽을 거야.’
‘죽어. 죽는다고.’
두서없는 증언이었지만. 확실한 건 뭔가 자신들을 노리고 있었다.
“제국에 귀의하는 건 어떻게 됐지?”
“제국도 신인류를 거절한다고 하더군.”
“덴 브라운 총통 때문인가? 그 양반 갈아치운다고 하지 않았어?”
“아직은 때가 아니라 기다려야 한다는군.”
창밖은 벌써 영하 40도를 넘어가고 있었다. 영하 30~40도가 흔한 캐나다였지만, 북부 지방도 아니고 토론토 인근에 영하 40도는 드문 한파였다. 그것도 11월 중순이면 더욱.
“신인류가 인간을 통제하지 못하면 인류는 멸종할 거다.”
“그래. 인간은 너무 많지.”
제국 의원과 제국 군부에서도 서서히 그 진리를 깨닫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들이 제국의 허리를 장악하게 되는 순간, 자유 캐나다 연맹과 제국은 하나가 되리니. 인간은 멸종의 위험에서 벗어날 것이고 신인류에게는 유토피아가 펼쳐지리라.
그렇게 식인귀들이 밝은 미래를 이야기하는 중간, 한쪽 구석진 곳이 일렁거렸다.
[지랄하네.]그 감정에 반응하기라도 하듯 검은 정원이 펼쳐졌다.
촤라라라라라—
사방으로 뻗는 넝쿨이 뱀 같은 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