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855)
러스트 [RUST]-855
‘괜찮기는 좆같지.’
영하 60도를 넘나드는 혹한에서 뺑뺑이 치고 있는데 좋겠냐?
“그냥 그래.”
[흐응- 알겠음. 그리고 연산 오류 난 보조 인공지능. 그거 연구진들이 확인해 봤는데 상태가 좋지 못해서 당장 고치기는 힘들 것 같다고 함.]“뭐가 문제래? 그렇게 된 원인이 있을 거 아니야. 원인이.”
김 양이 답지 않게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죽음에 너무 많이 노출돼서 그랬을 것 같다고 했음.]이건 또 무슨 신기한 소리래? 전원 자주 껐다 켜면 프로그램에 문제가 생기나?
[반도체? 칩셋? 그거 자체도 죽음에 영향을 받아서 현재 상황으로는 상태 분석하고 확인하는데 제법 시간이 걸릴 듯 보였음.]그녀가 나주연과 연구진들의 분석 자료를 보내왔다. 전 같았으면 보조 인공지능이 확인하고 알아서 분류해서 HUD에 올렸겠지만, 지금은 하나하나 클릭해야 할 판.
보조 인공지능이 없어도 크게 변하는 건 없겠지. 하는 생각도 조금은 있었는데, 있다가 없어지니 빈자리가 확실히 컸다.
쯧-
파일을 열어 보니, 나주연이 만든 가설과 그에 대한 현상의 분석이 제일 처음 나와 있었다. 그러니까 이미 종말은 닥쳤고. 지금은 종말 이후 신세계가 구축되는 초입일지 모른다는 가설.
‘단순히 멸망한다.’ 같은 소리가 아니라 법칙, 개념 같은 것도 ‘종말’ 했다는 개념이었다. 마루는 바로 몇 년 전에 있었던 이상한 일들이 떠올랐다.
‘그게 개념의 종말이었던가?’
그걸 개념이라고 해야 할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사태 발생 전후로 뭔가 이상해지고 있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도둑질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일반적인 통념이, 내가 도둑질하도록 만든 세상이 잘못이라는 개념으로.
내가 투자했으니 투자이익은 내 것이지만, 내가 투자에 실패한 것은 사회의 부조리 때문이니 세금으로 빚을 탕감해줘야 한다는 생각.
마루는 고개를 흔들었다.
나주연의 가설이 옳다면 그 모든 것이 재정립되는 과정에서 생긴 혼란이라는 건데. 단순히 재정립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개념이 폐기된다는 소리라면···.
설마.
인간은 소중하다는 개념이 인간도 식량일 뿐이라는 세상으로
인간은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 동물도 권리가 있다는 관점으로
인간은 모두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이상주의에서 힘 있는 자가 귀족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계급주의로
종말은 이미 개념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기존의 세상이었다면 신성 왕국이라는 나라를 북미에서 개국할 수 있었을까? 개국했다손 치더라도 여기까지 이끌고 발전시킬 수 있었을까?
신성 왕국이 자리 잡을 수 있던 근간에는 민주주의보다 능력 있는 왕이 다스리는 왕정이 더 효과적이라는 걸 사람들이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덴 아재는 이걸 알고 있던 것일까?’
미합중국의 부활, 미합중국을 계승해야 한다던 덴 브라운이 떠오른 마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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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임시수도 보스턴.
제국 의회는 고성으로 시끄러웠다.
“저번 회의에서 결정하지 못한 국방 증강 계획을 이번에 통과시켜야 합니다.”
“핵 생산에 자원을 투자해서 어쩌자는 겁니까?”
“남부 연맹을 갈가리 찢어졌고. 그쪽은 신성 왕국이 핵을 제거해서 위험이 되지 않습니다. 유럽 각국도 국가기능을 상실했고요. 핵을 만들어서 어디에 쓸 겁니까?”
“어디에 쓰긴요. 시궁쥐가 창궐하고 개미들이 넘쳤는데 다른 곤충이나 동물이 창궐하지 말란 법이 있습니까?”
“유럽 각국에 있는 핵이 어떻게 됐는지 누가 압니까?”
“그렇습니다. 난민들이 무장 세력을 이뤄 핵을 탈취했다면 핵 말고 다른 대책이 있습니까?”
유럽 각국 정부가 사실상 무너졌다는 첩보에 제국은 반쯤 패닉에 빠졌다. 미합중국을 계승한 제국이었기에 벌어진 일.
미국의 업보고 제국에 이어질 것이라는 공포. 절대 강국이었던 미국에 원한을 가진 자들은 세상에 넘쳤다. 피의 복수를 부르짖으며 제국에 핵을 날린다면 어떻게 될까?
많은 핵. 그리고 더 많은 핵만이 제국을 지킬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되리라 생각하는 의원은 생각보다 많았다.
“지질연구소 자료를 보고도 그런 소릴 합니까?”
“전략핵을 사용하면 지진, 화산 폭발 같은 자연재해의 위험성이 커진다는 걸 보고도 핵이 있으면 전부 해결된다?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현실적으로 생각합시다. 현실적으로. 핵으로 공멸하자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대륙판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툭 건드리기만 해도 화산이고 지진이고 터질 상태란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략핵을 쓴다는 건 자폭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동의합니다. 차라리 전술핵이나 신성 왕국처럼 초소형 핵을 만드는 쪽이 더 현실성 있고 쓸모 있다고 보입니다.”
격론 끝에 전략핵의 생산 배치는 없던 일로 됐지만 그들의 눈빛은 완전한 포기가 아니었다. 기회만 된다면 전략핵을 만들겠다는 눈빛이었다.
덴 브라운은 핵에 집착하는 의원들과 장성들을 체크했다.
“전략핵에 집착한 자들 전부 확인해. 로비는 받았는지, 누굴 만났는지, 재산 변동은 어떤지. 하나도 빼놓지 말고 전부.”
[지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혹시라도 식인귀나 흡혈귀 추종자가 주변에 있을지 모르니까 보안에 철저히 신경 쓰고. 안전에 유의하도록.”
[주의하겠습니다.]회의는 계속됐다.
“신성 왕국의 인공지능 기술을 시급히 따라잡아야 합니다. 이대로 간다면 기술격차를 좁히지 못할 겁니다.”
“동의합니다. 어렵다면 샘플을 확보해서라도 인공지능 분야를 발전시켜야 합니다.”
샘플 확보라고 순화해서 말했지만, 인공지능을 훔쳐서 역설계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신성 왕국이 아무런 대책 없이 보조 인공지능을 상용화했겠습니까?”
“대놓고 신성 왕국의 핵심 기술을 빼가려고 했다는 걸 알면 어떻게 하려는 겁니까?”
“흠- 언제 훔치자고 했습니까. 그런 말 한 적 없습니다.”
“혹시라도 전장에서 버려진 엑소슈트를 구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맙시다. 어차피 불개입한다고 해놓고 그들이 버리고 간 망가진 장비에 보조 인공지능이 있었을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앞으로 제국에 어떤 일이 생기든 불개입하겠다는 마루의 통보가 떠오른 덴 브라운이 쓰게 웃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불개입이라고 했지만, 제국의 상층부가 식인귀가 된다면 그걸 그냥 두고 볼까? 그 블라디마루 칼린이?
만약 덴 브라운 자신이 실각하고 흡혈귀 추종자들이 의회와 군부를 장악한다면? 대놓고 신성 왕국을 견제하기 시작해도 불간섭할까?
‘지진이나 화산 폭발 위험이 있다고 했으니 전략핵을 쓰지 않겠지만, 만약 제국 상층부가 식인귀나 흡혈귀가 된다면 전부 암살해버리겠지.’
과거 남미에 반미정치인이 대중의 지지를 받으면 ‘사고’당했던 것처럼. 그렇기에 덴 브라운은 의회와 군부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실각할 수 없었다.
덴 브라운이 보기에 시급히 개혁해야 할 것은 로비였다.
‘정책을 만들 때 로비의 개입이 너무 커.’
로비를 허용하는 것이 전통적인 방법이었다. 게다가 덴 브라운이 로비 금지법을 발의한다고 해도 의회에서 표결이 통과될 가능성이 없었다.
의원들에게 있어 로비는 그들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좋은 합법(?)이자 전통(?)이었고 세력을 결집하는 원동력이 됐다.
만에 하나, 로비하는 것들이 식인귀나 흡혈귀와 연결되어있다면? 그들의 로비를 받은 의원들이 발의하는 법안이 정상적인 법안일까? 마찬가지로 식인귀와 흡혈귀의 후원을 받은 군부가 제국을 수호할 수 있을까?
‘빌어먹을. 꼬리를 잡아야 하는데.’
심증은 있어도 물증이 없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총통 직권으로 로비를 끝내버리는 건 위험해.’
그렇다고 합의를 하는 것도 어려웠다.
강제로 바꾼다면 독재를 몰아내자며 무장한 민병대를 부르짖을 놈들이 넘칠 테니 남은 방법은 하나뿐.
‘국민투표와 헌법개정으로 가야 하나?’
덴 브라운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했다. 때론 그 민주주의적 절차가 비효율적으로 보인다고 하더라도. 자유민주주의야말로 미국의 전통과 가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세상의 종말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자유민주주의의 종말에서부터 시작됐을 것이며 그건 바로 미국의 쇠퇴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왜냐면 미국의 쇠퇴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질서 그 자체의 몰락이었으니까 당연한 결론.
그럼 누가 미국을 약하게 만들었을까?
중국? 러시아? 그러니까 브릭스(BRICS-브라질(Brazil), 러시아(Russia), 인도(India), 중화인민공화국(China), 남아프리카 공화국(South Africa) 같은 국가들? 아니면 미국의 등골을 빨아 먹고 성장한 주제에 어깃장 놓기 좋아하는 유럽 나토(NATO) 국가들?
그들도 문제였지만, 미국을 약하게 만든 것은 미국 내부에 있는 기생충들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중국과 손을 잡고 멕시코 카르텔을 옹호하며, 마약성 진통제와 자폐증약을 뿌리고 다니는 것들. 유전자 조작 식품을 퍼뜨려 미국을 병들게 한 자들.
뉴욕에 있는 라이저 제약을 뿌리 뽑았고 유력 가문의 원로들과 여러 회사의 회장단을 정리했지만, 그건 그야말로 일부일 뿐이었다.
아무리 선거를 해서 새로 의원을 뽑아도. 그들의 후원과 지원을 등에 업은 의원이 당선됐고. 덴 브라운이 아무리 군부에 신경을 쓴다고 하더라도 군부의 허리 이상은 그들의 후원과 지원을 받은 자들이 올라섰다.
‘국민투표라. 국민투표.’
총인구의 20% 그러니까 성인 다섯 가운데 한 명은 사실상 문맹이었다. 단순 의사소통이나 하면 다행인 자들. 나머지 80% 가운데 절반인 40%는 시사상식이 현저히 떨어졌고 문해력이 낮았다.
나머지 40% 정도가 그나마 상식선에서 정보를 분석할 수 있는 시민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로비를 불법으로 하자는 국민투표를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시민들을 따라 줄 것인가? 로비를 폐지해야 하는 이유를 얼마나 많은 시민이 이해할 수 있을까? 국민투표에서 진다면 그 정치적 리스크는 누가 질 것인가?
‘불간섭 선언이라.’
지금 생각해 보니 블라디마루 칼린과 신성 왕국이 불간섭을 선언한 시점이 매우 공교로웠다. 해상도시로 중심 기능을 이전하면서 제국의 병폐를 뜯어고칠 생각이었는데, 불간섭 선언으로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번 겨울이 지나면 해상도시로 이주를 시작할 계획이었다. 겨울이 지나기 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이야기.
덴 브라운은 모든 가능성을 열고 있었다.
‘유력 가문과 기업의 요구를 거절하고 로비까지 건드리면 확실히 위험하겠군.’
미국 역사에 대통령이 암살된 경우는 흔했다. 총통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고 봐야겠지.
제국을 위해 죽는다면 아깝지 않을 목숨이었지만, 제국을 좀먹는 놈들을 위해 죽는 건 사절이었다.
[총통 각하. 시러큐스(Syracuse)에 잠입한 요원들과 연락이 끊겼습니다.]의원과 장군을 비밀리에 후원하고 있는 자들을 역추적한 결과 교통의 요지인 시러큐스가 나왔다.
“시러큐스?”
[예. 로비스트로 보이는 자들이 간 곳이 시러큐스라. 그쪽에 요원들을 파견했었습니다.]요원들 파견은 아는 일이었다.
‘시러큐스라···.’
시러큐스에서 서로 가면, 로체스터(Rochester)와 버펄로(Buffalo)가 있었고 동으로 가면 올버니(Albany)와 스프링필드(Springfield) 그리고 보스턴(Boston)이 나왔다. 북으로는 캐나다에 가깝고 남쪽으로는 필라델피아(Philadelphia)와 뉴욕(New York)까지 이어졌다.
덴 브라운이 생각을 정리했다. 국토안보국에서 잔뼈가 굵은 그였기에 머릿속에서 시러큐스와 관련된 내용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인구는 14~15만 명 내외. 그 가운데 가장 큰 시설은 병원. 무려 1만 명이 넘는 고용인을 거느린 대형 병원이 시러큐스에 있었다.
그 외에도 대략 1천에서 1천5백 명을 고용하고 있는 병원 두 곳과 제약분야 인력을 더한다면 인구 10명 가운데 1명꼴로 병원에서 근무하는 도시.
시러큐스의 특징을 떠올리던 덴 브라운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버펄로, 로체스터와 더불어 겨울철 폭설로 유명한 도시로도 유명한 곳이 시러큐스라는 것이 떠올랐다.
최대 폭설 기록이 있는 도시였기도 했지만, 재작년과 작년에 걸쳐 매년 적설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었다.
아직 11월인데 눈이 20피트(6m)가 넘게 쌓였다고 하니, 혹독한 제설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말 그대로 봄까지 눈에 파묻힐지도.
‘도로와 철도는 끊겼을 테고.’
[···통신이 끊기기 전, 요원들이 보낸 영상자료가 있습니다.]“내용이 뭔가? 아니. 직접 확인해 보지.”
모니터에 떠오른 영상.
시러큐스 외곽지역 상공에 떠 있는 두 척의 비행선이 찍혀있었다. 하나는 매끄럽고 날렵한 백색의 소형 비행선. 다른 하나는 검은색 초대형 비행선.
멀리서 봐도 확실히 식별할 수 있는 특징적인 모습. 블라디마루 칼린의 전용 비행선과 야니아 킴의 블랙 드레이크호가 있었다.
‘시러큐스에? 설마?’
저 둘이 있다는 소리는 시러큐스에 식인귀나 흡혈귀가 있다는 소리였다.
“비상 연락망으로 연결해.”
제국 의회와 군부에 로비를 한 자들이 시러큐스에 있었다. 블라디마루 칼린과 야니아 킴이라면 그들까지 모조리 쓸어버릴지도 몰랐다.
[블리자드로 통신이 연결되지 않습니다.]정말 시러큐스에 식인귀나 흡혈귀가 있었고, 그걸 전부 죽여버린다면. 제국에 미리 언급도 없이 일방적으로 처리해 버린다면.
국민투표가 문제가 아니었다.
‘오- 신이시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