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856)
러스트 [RUST]-856
덴 브라운이 바로 수습에 들어갔다.
“지금 올린 영상자료 전부 1급 기밀로 전환하도록. 내 허락 없이는 누구도 볼 수 없게 봉인해. 영상을 본 모든 사람에게 비밀서약서 받고.”
[···알겠습니다.]당장 할 수 있는 조치를 해야 했다. 제국의 기조가 반 신성 왕국이 되는 것은 피해야 했으니까.
‘몇 달 전과는 상황이 달라.’
제국이 자리를 잡으면서 제국 사람들은 자긍심과 자존심을 되찾길 원하고 있었다.
안정을 찾기 시작한 사람들은 제국이 강하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 했다.
제국이야말로 미합중국을 계승한 유일한 국가라는 것을 인정받기 원했고.
누구에게 확인할까? 어떻게 인정받고?
공교롭게도 작지만 강한 나라가 있었다.
순식간에 캐나다를 먹었다가 미련 없이 뱉어버린 나라.
그래. 신성 왕국이 곁에 있었다.
제국이 강해졌는지, 제국이 유일한 계승자인지 확인할 수 있는 존재가 제국의 곁에 있었다.
신성 왕국이 깜짝 놀라는 제국.
신성 왕국이 무릎 꿇고 애원하는 제국.
그건 이야기가 됐다.
‘그래서 핵에 집착했던 건가?’
정치인들은 투표권자가 뭘 원하는지 알아채는 법.
먹고 살 만해지고 안전해진 사람들이 원하는 게 뭘까?
안전해지긴 했어도 예전 같지는 않고, 먹고 살 만해지긴 했지만 예전만 못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건 뭘까?
아마도 강했던 과거에 대한 향수겠지.
강하고 부유했던 그 시설 미합중국을 다시 느끼고 싶을 터. 의원들과 군부 인사들은 그 부분을 노렸다.
‘우리가 왜 신성 왕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가?’
‘전략핵으로 무장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힘을 회복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 될 것입니다.’
‘식량 문제가 해결됐다면 다음에는 군사력 강화가 최우선입니다.’
‘인공지능 기술이 있어야 신무기 개발에 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
그 주장의 공통점은 제국 사람들의 심리를 반영하고 있던 것.
‘빌어먹을···.’
덴 브라운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식인귀를 수색하던 요원들이 시 외곽으로 간 이유는 뭘까?
블라디마루 칼린이라면 리퍼 슈트를 이용해 흔적 없이 잠입하는 타입인데 그러지 않은 이유는 또 뭐고.
시러큐스에 식인귀든 흡혈귀든 뭔가 있다는 걸 알았다면, 먼저 통보하는 게 정상 아닌가?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으면서 직접 해결하겠다고 하면 어쩌자는 거지?’
“블리자드고 뭐고 계속 신호 보내. 받을 때까지.”
[옛.]곧바로 정보 통제에 들어갔으니, 당장 급한 불은 껐다.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일만 터지지 않으면 넘어갈 수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냐?’
덴 브라운의 시선이 정지 화면에 고정됐다.
블라디마루 칼린의 전용 비행선. 대리석처럼 매끄러운 백색으로 날렵한 비행선이 낮은 고도에 떠 있는 화면이었다.
======
======
“그러니까 제국에 최소한 3곳 이상 놈들의 거점이 있다는 거지?”
마루가 캐나다 북부 거점 요새를 털면서 잡은 늑대인간의 숫자가 두 자리 숫자에 도달할 때쯤. 늑대인간에게서 추출한 조각난 정보들이 하나로 규합됐다.
[맞음. 하나의 조직은 아니고. 각기 파벌이 다른데 협력하고 있다고 나왔음.]버지니아 잔당이라고 하더라도 서로 경쟁하고 있었고 남부 연맹 쪽에서 올라온 것들도 서로 경쟁하긴 마찬가지였다.
제국 레인저들이 난민들 통제했을 때 벌어진 일만 보더라도, 놈들은 서로 견제했지 하나로 뭉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캐나다 북부에서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했던 놈들이 연합하고 있다는 정보가 나온 것.
“놈들이 그럴 리 없을 텐데.”
하급 식인귀에게 있어 지배력은 불합리한 시스템이었다. 인간에서 벗어나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식기도 전에 재수 없으면 자기보다 높은 등급의 식인귀의 지배력에 갈려버리는 구조였으니까.
누군가의 부하로 평생을 살고 싶지 않다면 지배력을 확보해야 했고 그것은 안정적으로 인간을 공급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인간을 온전히 먹을 때, 강해졌으니. 인간의 안정적인 번식이야말로 식인귀가 강해질 수 있는 필요조건이었다.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 인간을 잡아먹는 식인귀가 역설적으로 인간을 보호해야 한다는 아이러니함.
그래서 식인귀들은 자신들이 신인류라며 현생 인류를 보호한다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했었다.
종말의 시대, 신인류는 변이 괴물로부터 현생 인류를 보호하는 대가로 공물을 받는 것이라는 주장.
중세시대 기사가 장원 밖의 도적과 야생동물에게서 지켜주는 대신, 농노들을 지배했던 것과 본질은 같다는 이야기.
그래서 남부 연맹은 봉건제와 비슷했다. 마찬가지로 봉건제와 비슷했기에 서로 견제하기 마련이었고 더 많은 인간을 확보하기 위해 영지전이 벌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연속적인 무질서에서 벗어나려면 고위 귀족과 왕이 필요했다. 약속이나 조약을 맺고 법으로 규제하면 된다고?
지배력이 실질적으로 작용하는 세상에서는 그딴 건 아무 의미가 없었다. 상위 개체가 지배력을 사용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걸 파악한 마루는 고위 귀족과 상위 개체가 많이 모여있는 텍사스 주요 도시에 핵을 투하했고, 남부 연맹은 갈가리 찢겨버렸다.
‘그런데 놈들이 연합했다?’
뭔가 있다.
[···이상하게 조각난 정보가 많았음. 저쪽에 정보 통제 기술이 있는 건 확실한데 어떤 기술인지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해서 기다려야 함. 아직 양자컴퓨터 수리도 그렇고 생체 단말기 시험 운용이 끝나지 않아서.]“······.”
가상현실에서 죽음의 정원이 소환된 여파는 생각보다 컸다. 양자컴퓨터와 포도송이를 시즌 아웃 시켜버린 마루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재촉할 염치도 없었고.
[옛날에 에리카 죽이려고 들어온 년 기억 남? 그때보다 더 발전된 정신조작 능력이라서.]예전 정신조작 요원 침투 사건에서 알 수 있듯, 저쪽의 정보 통제 기술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그걸 늑대인간에게도 적용하고 있다고.
[···놈들의 연구소와 비밀 거점이 세 곳이 있다는 걸 확인했는데. 세 곳 가운데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는 곳은 하나뿐이었음.]시러큐스(Syracuse)시가 그곳이었다.
“나머지 정보는 가면서 듣자.”
마루와 김 양은 바로 시러큐스로 향했다.
‧
마루가 생각하기에 시러큐스는 이상한 도시였다.
도시 인구는 14만~15만. 이렇게 작은 도시에 직원만 1만 명이 넘는 거대 병원이 있었다. 아무리 대학병원이라고 하지만 1만 명이 넘는 직원을 굴리는 병원이라니.
한국에 있는 아산병원의 직원 수가 9천, 세브란스 병원이 8천 전후인 것을 보면 확실히 이상한 규모였다.
김 양이 눈을 깜박였다.
“세브란스고 아산병원이고 주변에 인구가 많잖아. 서울에 있으니까. 그런데 시러큐스는 고작 인구 14만 많이 쳐야 15만인데. 초기 바이러스 사태로 인구가 30% 가까이 줄어들었을 걸 고려하면 이상하지.”
줄어든 인구로 따지면 고작 10만의 도시에, 1만이 넘는 직원을 굴리는 병원이 돌아가고 있다고? 뭘 먹고 살고. 아니. 병원 유지할 만한 환자가 모일 수나 있을까?
심지어 이 작은 도시에는 직원 수 1천 명이 넘는 중대형 병원이 2곳이나 더 있었다. 병원뿐만 아니라 의료기기 회사와 의약품 관련 회사까지 따진다면 정말 이상한 동네였다.
[흐응- 그러니까 인구 대비해서 의료계 종사자들이 과도하게 많다는 게 의심스럽다는 소리임?]“늑대인간에서 뽑은 정보도 그렇다며. 뭐가 됐든 여기에 있다는 게 확실하다고 하지 않았어?”
마루가 장비를 챙기는 모습에 김 양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괜찮겠음? 덴 총통 나중에라도 알면 피곤해 질 건데. 그 아저씨 뭔가 힘든 길로만 가는 타입이라서.]“그렇기는 하지.”
힘든 길로 간다는 김 양의 해석에 마루도 동의했다. 그나마 제일 정 붙인 사람이기도 했고 거래가 되는 양반인지라 어지간하면 좋게 가고 싶은데.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았다.
캐나다 북부 거점 요새에 있는 늑대인간들을 때려잡고 다닌 지 벌써 2주가 넘었다. 아무리 주먹구구식으로 연합한 적이라고 해도 관련 소식이 들어가기에 충분한 시간.
여기서 제국에 정보를 전달해, 제국이 자체적으로 해결한다고 시간 끌면 진짜 중요한 자료와 핵심 인물은 다 도망치고 껍데기만 남을 가능성이 있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자신이었으니까 늑대인간을 쉽게 잡았지. 제국군이 잡겠다고 들어갔다가 대량으로 사상자가 생길 가능성이 컸다.
“식인귀라면 모르겠지만, 늑대인간은 위험해. 그렇다고 제국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식인귀와 늑대인간을 잡겠다는 의지를 보일 것 같지도 않고.”
시러큐스는 뉴욕 주에 있는 도시였다. 제국의 중심 주인 뉴욕 주에 이 식인귀가 똬리를 틀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는 것만 봐도 믿음이 가지 않았다.
잘해야 연합작전을 펼쳐 소탕하는 건데. 그러려면 마루 자신이 직접 참여할 수 없었다. 아직 완전하게 제어하지 못하는 죽음의 정원을 쓸 수도 없었거니와, 죽음을 다룬다는 정보를 까발릴 시기는 아니었기 때문.
그렇다면 김 양과 친위대가 투입돼야 한다는 건데. 늑대인간 정도 되면 아무런 희생 없이 잡기란 쉽지 않았다.
그렇게 도와줘 봐야 좋은 소리 들을 시절은 지난 것도 사실이었고. 혹시라도 작전 도중 친위대 엑소슈트가 터지거나 그러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길지도 몰랐다.
[좋지 않은 일?]“저번에도 그런 기미가 보였잖아. 시애틀에서 대규모 교전했을 때.”
[그때 우리 기술에 눈독 들였던 거?]“당장 남부 연맹과 교전 중이라서 지나갔지, 이번에는 제국 내 도시 소탕 작전이잖아.”
똥개도 자기 집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제국군 몇 명이 총대 메고 지랄 떨면? 그거 지켜보다가 감정 조절, 마음 조절 실패해서 욱-해버리면 몰살 엔딩이라는 마루의 이야기에.
[아–]김 양이 깊이 공감했다.
확실히 그랬다. 그냥 조용히 수색해서 놈들 비밀 연구소 찾아서 정리하고 뜨는 게 제일이었다.
[기순이 함정은 아닐지 걱정했음.]“함정은 아니야. 근데 시간 끌면 함정을 팔 시간을 주게 되는 꼴이 되겠지.”
시러큐스에 함정을 깔아놨다고? 그건 캐나다 거점 요새를 마루가 직접 정리하러 갈 것을 예측하고 공사 들어갔다는 걸 전제로 해야 했다.
그러니까 종합하자면 이런 말. 자유 캐나다 연맹에서 손을 떼겠다고 한 신성 왕국 군이 갑자기 다시 캐나다 북부로 올 것이다.
거점 요새를 탈환하고 정보제거 장치된 늑대인간에게서 정보를 뽑아 시러큐스로 올 테니, 시러큐스에서 함정 파고 기다리고 있자.
이렇게 계획을 짰다는 건데. 그게 말이 되나? 심지어 마루 자신이 직접 온다는 걸 예상하고 함정을 판다고?
설령 함정을 팠다고 해도 의미 없었다. 죽음의 정원을 실체화하면서 실체화된 정원의 유형화가 점차 강해지고 있었으니까.
‘하긴 총알이랑 네이팜 가뿐하게 막았었지.’ 김 양이 주억거렸다.
총알이나 네이팜이 문제가 아니었다. 가상현실에서 있었던 일이지만, 작은 핵 수류탄을 먹어 버렸던 걸 떠올려 보면···. 흐응-
[확실히 후딱 정리하고 뜨는 게 좋을 것 같음.]“까마귀나 드론이 뜨면 우리가 왔다는 걸 광고하는 거니까. 쥐들을 보내.”
[알겠음.]김 양이 강하를 준비하고 있는 쥐떼에게 명령했다.
[시러큐스 시와 인근까지 전부 수색한다. 먼저 외부와 연결되는 통신망부터 끊어.]찍! (알았다!)
[전력도 끊고. 비상 발전기 돌아가는 곳이 의심스러운 곳이니까 거기를 위주로 수색해.]찌찍. (당연한 소리.)
하긴 마을 공격한 쥐새끼들도 전기, 통신 끊고 들어갔었지.
[흥- 좋아. 식인귀, 흡혈귀, 늑대인간은 놓치면 안 돼. 그리고 비밀 실험실이나 연구소를 찾아.]찌이익! (몸통은 우리 것이다!)
탐욕스러운 쥐들이 시러큐스로 강하했다.
‧
‧
‧
갑작스러운 블리자드(blizzard 강풍을 동반한 눈보라)에 삼켜진 도시 속으로 쥐떼가 파고들었다.
순식간에 쌓이기 시작한 눈을 치우러 제설 장비가 바삐 움직여야 했지만, 어쩐지 다들 멈춰있었다.
찍!- (빨리 먹고 교대!)
우적우적-
고열량의 전투식량을 씹어먹은 쥐들이 교대로 굴을 파기 시작했다. 철근 콘크리트도 뜯어내는 앞니와 날카로운 발톱은 얼어붙은 땅까지 순식간에 뚫고 들어갔다. 실로 무시무시한 속도.
찌익? (통신선 찾았어?)
찌-지찍. (몰라- 전부 끊어.)
1m 이상 깊이로 묻어 놓은 통신선이 그렇게 쉽게 끊겼다.
전력선도 마찬가지.
모듈 원전에서 뻗어 나간 전선이 순식간에 잘리며 어둠이 내려앉았다.
“모듈 원전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단선인 것 같습니다.”
“땅에 묻어 놓는 전선이 갑자기 끊겼다고? 전부?”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송전선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불길한 느낌에 도시 방위군 사령관이 현황판을 재차 확인했다.
“중요 포인트로 수색대를 내보내도록.”
“옛.”
영하 60도지만 비상사태인 만큼 어쩔 수 없었다.
“방위군 사령부와 통신은?”
“연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 무전기로라도 연결해야지. 뭐 하고 있나?”
“눈보라 때문인지 먹통입니다.”
뭐?
전기가 끊겼는데 유선 통신도 연결되지 않더니, 무선도 먹통이라고?
동시에 셋이 전부?
“비상이다. 경보 울려!”
웨에에에에에에엥—
탐욕스러운 어둠이 닥치고 나서야 잠들었던 도시가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