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858)
러스트 [RUST]-858
복도에서 마루와 맞닥뜨렸기에 싸우거나 도망치거나 둘 가운데 하나만 가능했다.
“도망쳐!”
“?”
“!”
인간이었다면 은신한 마루를 감지하지 못하고 몰살됐을 텐데, 유독 감이 좋은 놈들이 하나씩 있어서 그거 잡느라고 순간적으로 치솟는 살기를 가라앉히느라 피곤한 마루였다.
부컥-
잽싸게 도망치는 식인귀의 등판에 나이프가 척추에 틀어박혔다. 도망치라고 외치고 먼저 도망치던 자가 척수에 나이프가 틀어박히자, 막 싸우려고 하던 놈들의 기세가 죽었다.
“뭣!”
“어디야?”
확실히 연구원들은 식인귀가 되더라도 전투력이 약했다. 일반인들 앞에서야 포식자의 흉내를 냈겠지만, 진짜 위험한 마루 앞에서는 이빨도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다.
“은신 슈트?”
“한꺼번에 쏩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지만, 마루는 이미 그들 곁에 있었다.
???
!!!
섬뜩한 감각.
식인귀가 됐기에 느낄 수 있는 감각에 정면을 겨눴던 총구를 돌리는 순간, 권총을 쥔 팔뚝이 땅에 떨어졌다.
끄억-
식인귀 하나를 깔끔하게 썰어버린 나이프가 허공으로 사라지며 옆에 있는 자를 수직으로 갈랐다.
도축장에서 전기톱으로 수직으로 자르듯 부르르륵- 좌우로 분리되는 모습에 남은 식인귀들이 패닉에 빠졌다.
투두두두둑-
파바바바박-
사방으로 쏴대는 총알.
툭-
수직으로 토막 난 반쪽을 방패 삼아 밀고 들어간 마루는 그저 호흡에 집중했다.
흐흐흐흐흡
흐흐흐흐흡
하아아아아
요란하게 울리던 총성이 뚝 그치고 매캐한 화약 냄새가 복도에 맴돌았다. 그 적막 속에 유독 도드라지는 소리가 있었다.
끄으- 끄으으-
찌이익- 지이이익-
앓는 소리에 뒤따르는 질퍽하게 끌리는 소리.
맨 처음 도망치다 척추에 나이프가 박힌 식인귀가 필사적으로 기어가는 소리가 이어지다 서서히 그쳤다. 총성이 멈추자 기어가던 것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 것.
“······.”
쿠직- 짓밟히는 시체. 둥실 떠올라 보존용기에 담기는 머리통.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이쪽으로 다가오는 일렁이는 공간.
개장수를 앞에 둔 개처럼 찔끔 오줌을 지린 식인귀는 말하고 싶었다.
살고 싶다고. 살려달라고. 어떻게 하면 살 수 있냐고. 항복한다고. 그래.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 그가 더듬더듬 소리 냈다. 대체 뭘 원해서 이러느냐고. 왜 이러느냐고.
[웃기는 새끼네.]“······.”
쿠직-
‧
‧
‧
마루의 칼날 앞에 선 것들은 마지막이 다가오면 가끔 그랬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랬다고, 살기 위해 식인귀가 된 게 죄가 되느냐고.’ 절규하곤 했다.
간혹 어떤 것들은 ‘너도 똑같이 죽이지 않냐?’, ‘너도 살기 위해서 죽이는 건 똑같지 않냐?’면서 마루도 자기들과 똑같다고 소리쳤다.
그리고 공포에 질린 몇몇은 조금 전처럼 궁금해했다. 그렇게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데. 그 힘을 어째서 자기들을 죽이는 데 쓰냐고. 뭘 원해서 그러느냐고 물었다.
‘웃기는 새끼들.’
차라리 살려달라고 비는 놈들이 나았지, 저런 새끼들은 뒈져가면서도 자기합리화를 하는 새끼들이었다.
식인귀를 잡는 이유? 식인귀와는 공존할 수 없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나주연이 만든 억제제를 먹은 식인귀들이 나중에 어떻게 했었나?
억제제를 먹는다는 것은 식인 본능을 억제하고 살겠다는 뜻이고 다시 말해 인간을 먹지 않겠다는 소리였다.
인간을 통으로 먹으면 먹을수록 강해지는 식인귀에게 있어, 인간을 먹지 않는다는 것은 채식 흡혈귀가 나온다는 발상이나 마찬가지였다.
지배력이 약한 식인귀는 지배력이 강한 식인귀에게 지배당했다. 다시 말해, 억제제를 먹고 산다는 것은 언제 다른 식인귀의 휘하에 들어갈지 모르는 삶을 선택한다는 뜻이었다.
인간이 언제 식인귀의 밥이 될지 전전긍긍하며 살 듯, 식인귀도 언제 다른 식인귀의 부하가 될지 모르는 삶을 살게 되는 것.
그 불안함을 견디고 가겠다는 식인귀가 있었다면, 인간과의 공존을 위해 절제하겠다는 흡혈귀가 있었다면 마루도 진지하게 공존을 생각했겠지만 그런 식인귀는 없었다. 흡혈귀도 없었고.
연초가 몸에 해롭다는 걸 알면서도 태우는 이유가 뭔가?
그만큼 스트레스 해소라거나 답답함을 풀어주는 심리적 효과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 먹기만 하면 조금씩 강해지고 지배력이 상승하는 식품이 있다고 해보자, 식인귀들이 먹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어차피 자기들은 신인류로 지금 돌아다니는 인간들을 초월한 존재인데? 변이 괴물에게서 지켜주고 치안 유지해 주는 대가로 공물 좀 받겠다는 게 뭐가 문제냐고?
‘공물에서 끝날 놈들이 아니니까 그렇지.’
최소한의 식인으로 생활한다는 가정하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사형수를 식인귀에게 던져주거나, 흉악범을 넘기면 되는 일이 아니냐고.
그렇게 말했던 자들은 전부 자기들이 식인귀가 됐다. 식인귀가 늘어나면 어떻게 될까? 흉악범을 다 잡아먹은 뒤에는 경범죄자들 차례가 되겠지. 그럼 경범죄자들도 다 먹은 뒤에는?
그 외에도 시간이라는 변수가 있었다. 인간을 잡아먹고 지내는 시간이 오래된다면 어떻게 될까? 식인귀는 인간을 먹은 시간이 길어질수록 강해졌다.
식인귀가 강해지면 그 강해진 식인귀는 뭘 원할까? 부자가 더 큰 부자가 되기를 원하듯. 강한 식인귀는 더 강한 식인귀가 되길 원하기 마련이었다.
식인귀보다 더 강한 것은 흡혈귀. 식인귀보다 더 효율적인 식인이 가능한 존재. 살이 아닌 피만 먹어도 되는 존재가 되려고 할 터.
그들의 욕망이 흡혈귀로 끝날까?
‘그럴 리 없지.’
인간의 욕망이 끝이 없듯 그 결정체인 식인귀와 흡혈귀가 탐욕스러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마루는 그들의 탐욕을 여러 차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들의 탐욕은 마루와 일행을 위협했었다.
그러니 생존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면 식인귀와 흡혈귀는 박멸해야 할 존재였다.
‘그런데 왜 그러느냐고?’
마루는 식인귀의 잘린 머리통을 보존용기에 담았다. 뇌둥둥 생체 단말기를 굴릴 정도로 넉넉한 숫자.
‘나주연이 좋아하겠군.’
메모리를 쓸 때도 같은 성능, 같은 규격끼리 사용하는 게 좋은 것처럼. 생체 단말기를 모아서 포도송이를 만들 때도 비슷한 성능을 가진 생체 단말을 이용하는 게 좋았다.
후으으읍
후으으읍
하아아아
습관처럼 호흡을 정돈한 마루가 HUD에 표시된 다음 지역으로 향했다. 주렁주렁 매달린 용기가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 사라진 공간을 쫓듯 시러큐스 방어군이 건물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클리어!”
“클리어!”
“여깁니다. 여기 이쪽에 시체가 있습니다!”
“사주경계 똑바로 해!”
“생명 반응은?”
삐- 삐- 삐- 녹색 파형이 지나가며 내는 소리는 잔잔했다.
“없습니다.”
“동작 감지기도 이상 없습니다.”
“젠장. 또 늦었어.”
소대장이 분통을 터뜨렸다.
“대체 뭐가 이따위 짓을 하는 거야.”
복도에 널브러진 팔다리. 팔이 잘린 시체는 흔했고 간간이 좌우로 쪼개진 시체가 있었다. 그리고 모든 시체의 공통점은 머리가 없다는 것.
“머리통을 왜 가져간 거지?”
“전리품 아닐까요?”
“트로피로 가져갔다?”
“예. 그런 놈들 가끔 있지 않습니까?”
“그것도 하나나 둘이지, 열 구가 넘는 시체의 머리통을 전부 가져간 이유가 트로피라고?”
“······.”
“······.”
조금 전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범인은 집요하게 머리를 떼어갔다.
대체 왜?
진단키트에 피를 담은 감식팀이 고개를 끄덕였다.
“식인귀입니다.”
“골치 아프군.”
이곳은 시러큐스 병원 산하 연구소 가운데 하나였다. 무엇을 연구하는지는 극비였고, 보안이 철저한 연구소인데도 헤드헌터가 들어와 싹 쓸어버렸다.
‘말 그대로 헤드헌터군.’
일반인을 이렇게 죽였다면 난리가 났을 텐데, 식인귀만 골라서 죽이고 다니는 것도 신기했다.
‘소문대로 정말 신성 왕국의 국왕일까?’
국왕이 뭔 남는 게 있다고 식인귀 사냥을 하고 다닐까? 식인귀 사냥을 하고 싶으면 남부 연맹으로 가서 하면 되지, 제국에 있는 식인귀를 죽일 이유는 없었다.
“시체 전부 챙겨.”
“소대장님. 이스트 사이드입니다.”
“놈이 이스트 사이드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3분대 여기 현장 정리하고 와. 나머지는 지금 바로 간다.”
“옛.”
긴 복도 끝에 굳게 닫힌 두꺼운 방화문을 열자 맹렬히 몰아치는 눈보라가 그들을 맞이했다.
우우웅-
군용 설상차에 탑승한 방위군이 길을 재촉했다.
“최고 속도로 달려.”
이곳은 제국. 식인귀를 잡아도 제국군이 잡아야 했다.
‘생포라.’
소위는 식인귀를 생포하라는 대대장의 명령을 떠올렸다.
여러 가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자신은 군인. 명령에 따르는 것이 옳았다. 지금 같은 실전 상황에서는 더욱.
“식인귀 확보를 최우선으로 한다.”
“식인귀 확보 말씀이십니까?”
“그래. 식인귀를 생포한다.”
“그리고. 헤드헌터를 마주치면 경고사격해.”
“경고를 무시하면 원칙대로 하도록.”
“잊지 않도록 여기는 제국이다. 제국의 도시란 말이다. 식인귀를 어떻게 하든 제국군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모두 알겠나?”
“옛!”
소대장은 머리통 사냥꾼이 신성 왕국 국왕이 아니길 간절히 바랐다. 자기는 진급이 하고 싶은 거지 외교적 마찰의 중심이 되고 싶은 게 아니었다.
‘헤드헌터라.’
그러고 보면 신성 왕국 국왕 블라디마루 칼린의 옛 별명 중 하나가 헤드헌터였다.
제발 아니길.
‧
‧
‧
[그쪽으로 제국군이 가고 있음.]마루와 함께하던 보조 인공지능이 오류로 분석 중이었기에, 김 양이 상황을 알려왔다.
[도착 예정시간은?] [15분 내외. 제국군 애들이 쓰는 설상차. 성능이 나쁘지 않은 것 같음.]마루가 목표로 한 제약회사 건물은 불빛이 환했다. 전기를 끊었음에도 불이 밝다는 건 이런 상황에 대응할 준비가 잘 됐다는 것을 의미했다.
6m 가까이 쌓인 눈도 건물 주변에는 완벽히 제설작업이 끝나 문과 창문이 전부 제대로 드러나 있었다.
영하 60도를 넘나드는 추위에도 멀쩡하게 작동하는 CCTV도 그렇고 눈보라가 치는데도 자동으로 제설 작업하는 로봇을 본다면 첨단 제약회사로만 보였다.
찍! (이곳입니다.)
찌이익! (진입한 수색대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수색 쥐들이 돌아오지 못한 곳은 모두 2곳이었다.
‘여기가 제일 큰 거점인 것 같군.’
여길 15분 만에 정리하는 건 곤란해 보였다. 쥐 수색대가 내부 구조를 확인하고 놈들이 어디에 있는지 정보가 있다면야 모르겠지만, 생으로 들어가서 찾아다닐 걸 생각하면 15분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했다.
그렇다고 시간 내에 정리하지 못한다면 제국군 방위대와 마주칠 것이고. 제국군이 이쪽으로 온다니 차라리 다른 곳으로 갈까?
[다른 쪽은 어떻지? 그쪽으로도 제국군이 이동 중인가?] [응. 다른 쪽도 제국군이 가고 있음.]마루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큰 곳 말고 작은 곳은?] [쥐떼가 확인한 이상한 장소에는 제국군이 가고 있는 거로 보임.]마루의 직감이 근질거렸다.
위기감은 아니었고 껄끄러운 듯한 감각.
생명이 위험해졌을 때와는 다른 찝찝함.
[쥐떼들 복귀시켜.] [괜찮겠음?]쥐떼를 복귀시키라는 말은 여차하면 죽음을 쓰겠다는 뜻이었다.
[일단. 지켜보려고 하니까.] [알겠음.]제약회사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지켜보기로 한 마루였다. 식인귀 머리는 넉넉하게 챙겼으니 급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목표가 식인귀와 늑대인간 잡아 족치고 꼬리를 잡는 것이었으니, 목표를 달성한 지금 굳이 직접 죽이겠다고 무리할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확인해 보면 알겠지.’
뒤를 추격하듯 따라온 제국군이 어떻게 나올지. 마루는 제약회사에서 조금 떨어진 건물로 들어섰다.
‘제약회사로 진입할까? 아니면 이쪽으로 올까?’
부우우우웅-
특수 차량이 눈 위를 거칠게 달리는 모습. 작은 눈보라를 일으키며 달려온 설상차가 제약회사 정문에서 멈췄다.
우르르 내리는 병사들. 절반 이상이 엑소슈트로 무장하고 있었고 엑소슈트를 장비하지 않는 병사들도 무장이 탄탄했다.
굳게 닫힌 정문에서 잠시 실랑이가 벌어지는가 싶더니, 이어서 문이 열렸다. 엑소슈트 병이 먼저 들어가고 그 뒤를 따라 일반 병사들이 들어갔다.
쿠웅-
2개 분대 병력이 모두 들어가자 정문이 자동으로 닫혔다.
‘제국이나 식인귀 놈들이 탐지기를 만든 건 아니었네.’
워낙 빨리 따라와서 특수한 추적기나 탐지기 같은 걸 만들었나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처음 입구에서 실랑이한 걸 보면 제국군과 식인귀가 말을 맞춘 것도 아닌 듯싶었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제약회사에 반응이 없었다.
‘들어갔으면 뭔가 반응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다른 곳은 어때? 제국군 어떻게 하고 있어?] [교전하고 있음. 생각보다 잘 싸워서 몇몇은 이긴 거 같음. 지원이 요청하는 곳도 있고.]그런데 앞에 있는 제약회사는 너무 조용했다.
‘방음시설?’
마루의 직감이 작게 긍정했다.
[들어갈 테니까. 통신 끊기면 주변 통제 부탁해.]통신이 끊긴다는 것은 죽음을 사용했다는 이야기였다.
[알겠음.]팍.
CCTV를 날린 마루가 창문을 도려내고 안으로 들어섰다.
훅- 풍기는 짐승의 노린내.
늑대인간의 누린내와 함께 짙은 쇠 냄새가 복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